최근 n번방 사건을 접하며 연이어 충격을 받았다. 먼저 디지털 성범죄의 주요한 대상(피해자)이 아동·청소년이었다는 사실에 경악했고, 그 범죄 가해자 다수가 청소년이라는 후속 보도를 접하며 더 큰 충격을 받았다. 어쩌다 우리 청소년들이 이런 지경에까지 이르게 되었나? 누가, 무엇이 우리 아이들을 이렇게 만들었나? 생각하니 머리가 하얘진다. 이는 지금 우리 청소년들의 정신건강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라 생각한다.
실제로 최근 우울과 불안 등 정신건강 문제로 진료받은 10대 청소년들이 급증하고 있다. 2019년 <국민건강보험공단>의 2016∼2018년 10대 청소년 정신건강 질환 진료 현황에 따르면, 우울증으로 진료 받은 10대는 3만7천여 명으로 2016년의 2만2천여 명에서 65% 늘어난 1만5천여 명이나 증가했다. 불안장애 진료인원도 2016년 1만4천여 명에서 2018년 1만8천여 명으로 4천여 명 증가했으며, 공황장애는 2만여 명에서 3만여 명으로 증가했단다.
청소년 자살률도 점점 더 심각해져 가는 추세다. 지난해 여성가족부와 통계청 조사 결과, 우리나라 9살에서 24살까지 청소년 자살률이 2017년 기준 인구 10만 명당 7.7명으로, 청소년 사망 원인 중 1위로 나타났다. 지난 3년 동안 자살, 자해를 시도한 청소년도 매년 2천명 이상인 것으로 조사되었다. 2019년 12월 통계개발원의 <KOSTAT 통계플러스>에 실린 ‘아동·청소년 삶의 질 지표 분석 결과'에 따르면 아동·청소년의 33.8%가 “죽고 싶다는 생각을 가끔 하거나 자주 한다”고 응답하기도 했단다.
이러한 자살률, 정신건강 문제는 낮은 아동·청소년의 삶 만족도와 연동된다. 한국의 아동청소년의 삶의 만족도는 평균 점수 6.6점(2018년 기준)으로, OECD와 유럽 주요국과 비교해 최하위권이다. 단적으로 말해, 한국의 아동·청소년은 행복하지 않다!
UN 세계행복보고서, 청소년 정신건강 중요성 역설
UN이 매년 발간하는 《세계행복보고서(2013년판)》 ‘정신건강과 불행’ 장에는 다음과 같이 서술되어 있다.
“정신질환을 예방하고 정신건강을 향상시키기 위해서는 학교 및 일터에서 정신건강에 관심을 갖고 적극적으로 대처해 나가야 한다. 모든 학교교사들은 정신건강 문제를 인지하고 학생들의 정신건강 문제를 확인해낼 수 있는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정신질환을 가진 성인의 절반이 15세(중2)에 정신건강 문제를 경험한다는 것을 명심하라.”
정신건강은 불행에 영향을 미치는 가장 강력한 요인임에도, 대한민국 정부정책의 우선순위에서는 밀려나 있다. 청소년 정신건강은 더 말할 것도 없다. 정신질환자들에게는 더 나은 건강관리 및 사회적 지원이 필요하고, UN보고서가 얘기하고 있듯 정신질환 성인들의 절반이 15세 연령에 질환이 시작된다는 것을 감안하면, 보다 일찍 개입해야 할 당위성이 제기된다.
다행스럽게도 지난 해(5월 1일) 국가인권위원회가 아동·청소년기의 정신건강 대책 마련을 보건복지부 장관에게 권고하였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런데 이후 복지부가 어떤 대책을 마련하고 시행하고 있는지 듣지 못한다.
UN 행복보고서나 국가인권위의 권고처럼 더 늦기 전에 정부차원의 아동 청소년 정신건강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이는 복지부 차원의 정책만으로는 해결될 수 없다. 범정부 차원의 특단의 대책을 통해서만 가능한 일이다. 그 중에서도 교육부 역할이 더 중요하다 생각한다. 지금 우리 아이들의 일차적인 불행의 원천은 잘못된 교육제도에 기인한 것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능력주의로 포장된, 경쟁을 조장하는 반인간적 교육이 그것이다. 우리 청소년들이 행복해지려면 교육제도부터 근본적인 수술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핀란드는 “모두를 위한 평등한 교육 기회를 제공”하는 것을 교육의 제일목표로 삼는다. 핀란드는 영재교육이 없으며(1등이 되거나, 탁월함을 추구하지 않는) 학교 간 학업성취도 격차가 제일 적은 나라다. 뒤처지는 아이들에게 교사가 일대일 개인지도를 해 주는 나라이며, ‘평등’과 ‘협동’을 지향한다. 16세 전에는 시험이 거의 없으며 등수도 공개하지 않는다. 나는 이 것이 핀란드가 세계 최고의 행복국가로 3년 연속 선정된 중요한 기반이라 생각한다.
그 동안 대한민국의 교육은 ‘일등이 되라!’고 가르치는 것이었다. ‘경쟁에서 살아남는 자가 승리하는 것’이고, 같은 반 친구들은 함께 해야 할 동료가 아니라 이기고 넘어뜨려야 할 경쟁 대상이었다. 즉 적자생존 이데올로기가 시험과 성적순을 통해 자연스레 체화되도록 강제해 온 나라다. 이런 교육환경 속에서 우리 청소년들의 정신이 건강하기를 기대하는 것은 난망한 일이다.
물론 이 문제의 최종심에는 교육의 문제를 넘어선 우리사회에 팽배한 '물질주의'와 '불평등'이란 근본 문제가 있다. SKY대학 입학과 강남사람이 되기를 바라는 부모들의 생각을 바꾸지 않는 한, 불평등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 한 근본 치유는 어렵다.
‘행복짜르’ 리처드 레이어드 교수의 제언
그렇다고 이런 근본문제가 해결되길 기다리며, 마냥 손 놓고 있을 수만은 없는 일이다. 세계행복보고서의 ‘정신건강과 불행’ 분야를 집필한 리처드 레이어드(Richard Layard) 교수는 최근 발간한 <우리는 더 행복해질 수 있을까? 증거와 윤리(Can We Be Happier? Evidence and Ethics)>라는 저서에서, 청소년 정신건강을 위해서는 학교의 역할이 중요하다며 다음과 같이 역설하고 있다.
- 학교는 대부분의 학생들의 행복을 증진시킬 수 있는 방법을 활용해야 한다.
- 학교는 학생들의 행복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측정해야 한다.
- 학교는 행복과 미덕을 장려해야 한다. 학생들은 비폭력적이고 신중해야 한다.
- 모든 교육기관은 삶의 기술과 가치를 완전히 전문적인 방법으로 가르쳐야 한다.
- 학교는 학생들이 정신건강에 문제가 있는 경우, 이를 인식하고 도움을 줘야 한다.
일단 교육부가 먼저 나서서, ‘현실적인 대책’을 마련해 주었으면 좋겠다. 동시에 객관적인 실태 조사와 현황 파악에 근거한 정확한 ‘원인 진단’과. 이에 따른 '근본적 해법'을 범정부 차원에서 강구해주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