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과 가족, 그리고 돈과 여행
한국인들은 ‘행복’하면, 어떤 단어를 떠올릴까? 한국인들은 ‘떠올릴 때 행복한 단어’로 ‘건강’과 ‘가족’을 먼저 꼽았고 다음으로 ‘돈’과 ‘여행’을 꼽았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최근 발간한 <한국인의 행복과 삶의 질에 관한 종합연구> 보고서에는, 우리 국민들이 ‘떠올릴 때 행복한 단어’를 분석한 내용이 실려 있다. 연구진은 응답한 단어 간 출현 관계와 함께 네트워크 분석의 연결중심성, 근접중심성, 매개중심성 등 3가지 주요 중심성 지표를 함께 확인했는데, 그 결과가 성별과 연령별로 크지는 않지만 유의미한 차이를 보여주고 있다. 한국인들의 행복을 결정하는 주요한 조건을 직접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근거는 아니지만, 간접적으로 유추해 볼 수 있는 흥미로운 연구결과다.
놀라운 것은 응답자들이 선택한 단어들이, 국제적으로 행복도를 측정하는 핵심지표들이라는 점이다. 한국이 매년 꼴찌를 차지하는 시그나그룹의 행복지수는 신체건강, 사회관계, 가족, 재정상황, 직장 등 5개 항목을 통해 지수를 측정하는데, 아래서 살펴볼 것이지만 이는 우리 국민들이 ‘행복하면 떠올리는 단어’들과 거의 맞아 떨어진다(‘직장’을 제외하고).
세계행복보고서는 1인당 GDP, 사회적 지원, 건강 기대수명, 삶의 선택의 자유, 관용, 부패인식도를 기준으로 국가별 행복지수를 조사·발표한다. 1인당 GDP는 돈과 소득, 사회적 지원은 가족과 친구라는 단어와 연동되는 지표라는 점에서, 건강 기대수명까지 포함, 앞의 3가지 주요한 지표는 행복을 측정하는 주요한 개념인데 응답자들은 이를 대부분 선택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우리 국민들은 어떤 답변을 하였는지 살펴보도록 하자. 먼저 성별 분석.
성별 행복 동시출현 주요단어 중심성
남성의 경우 네트워크의 중심성 지표에서 건강, 가족, 돈, 여행,자녀의 5개 단어가 행복과 연관된 주요한 단어로 등장한다. 이 중에서도 특히, ‘건강, 가족, 돈’의 연결중심성이 높아 3개 특성이 개인을 행복하게 만드는 주요 조건으로 분석된다. 그러나 ‘여행’의 근접중심성과 매개중심성이 높아. 여행을 통한 경험과 시간 사용으로 행복의 조건을 의미 있게 만들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여행 다음으로 가족.
여성도 남성과 유사하게 건강, 가족, 여행, 돈, 자녀 등의 단어가 네트워크 중심에 나타난다. 중심성 지표를 보면, 연결중심성에서 ‘건강, 가족, 여행’이 상위에 등장한다. ‘돈’의 연결중심성 순위가 남성은 3위인데 여성은 4위로 나타나 약간 낮다. 반면, 남성과는 달리 ‘가족’의 근접중심성과 매개중심성이 '여행'보다 높게 나타나, 여성들의 행복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조건은 가족임을 말해주고 있다.
주목할 것은, 남녀 불문하고 한국인들은 ‘건강과 가족’이 행복의 제일 조건이라 응답하고 있다는 점이다. 또한 ‘돈’은 그렇다 하더라도 ‘여행’이 한국인들이 행복을 실현하는 주요한 수단임을 보여주고 있는 것도 흥미롭다. 코로나19 팬데믹 사태로 여행을 통해 행복 실현 통로가 막혀버린 우리 국민들의 행복도는 어떤 상태일까? 연휴 기간 동안 제주를 비롯한 전국의 관광지에 인파가 몰린 것도 이해할 만 한 일이다.
다음은 연령별 행복 연관 단어 네트워크 분석 결과다.
연령대별 행복 동시출현 주요단어 중심성
먼저 청년집단의 경우 연결중심성이 높은 단어는 '가족, 건강, 여행, 돈, 그리고 친구'다. 다른 연령대에서는 보이지 않는 ‘친구’란 단어가 보이는 것도 인상적이지만, 이 중에서 근접중심성과 매개중심성에서 ‘여행’이 가장 높다는 점이 주목할 만하다. 청년이 행복을 찾는 주된 탈출구는 여행이라는 것을 말해준다.
중년집단에서 연결중심성이 높은 단어는 ‘가족, 건강, 돈, 여행, 자녀’다. 청년집단과 달리, ‘자녀’라는 단어가 등장했다. 이 중에서 ‘가족’의 근접중심성과 매개중심성이 가장 높게 나타나 중년 집단의 행복을 제고하는 데에는 가족이 중요하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장년집단의 경우 ‘가족, 건강, 여행, 돈, 자녀’가 연결중심성이 높은 5개 단어인 것으로 확인되었다. 눈여겨볼 것은 이 중 청년에 이어 다시 ‘여행’이 등장했을 분만 아니라, 근접중심성과 매개중심성이 가장 높게 나타난 것이다. 중년기에 가족을 이루고 자녀를 양육한 이후 여행을 통해 행복을 찾고 싶어 하는 중년집단의 사고의 한 단면을 볼 수 있다. 중년집단도 이제 ‘어디든 나가고’ 싶다.
노인집단은 ‘건강’의 연결중심성이 가장 높고, ‘돈, 여행, 가족, 자녀’가 뒤를 잇는다. 매개중심성도 ‘건강’이 가장 높지만, 근접중심성은 ‘돈’이 가장 높다. 이는 노인들의 행복조건 제 일 순위는 ‘건강’임을 말해주며, 행복한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노후 ‘소득’이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코로나19 팬데믹 사태로 건강이 행복의 제일 조건이라는 사실이 분명히, 세계적으로 증명되었다. 여행하지 못하고 자가 격리가 지속되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인지도 새삼 절감할 수 있었다(여행은커녕 사회와 격리된 북미나 유럽인들은 더 그럴 것). 평상시에는 자각하지 못했던 이 소중한 가치를 이번 기회에 되새겨보는 것도 좋겠다. 더불어 점점 단절돼 가고 있는 가족관계의 복원도 생각해 볼 일이다. 너무 가까이 있어 자칫 소중함을 자각하지 못할 수도 있는 데, 뭐니뭐니해도 가족만큼 우리에게 행복을 주는 이들은 없기에 하는 말이다(물론 종종 웬수같은 가족들도 있지만). 가정의 달에 새삼 다시 생각하는 소중한 가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