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1026

by 신호사


1.

토요일에 경양식을 먹으러 갔는데, 보통 제일 처음 나와야 할 샐러드가 밥 다 먹도록 나오질 않는 거다. 친구가 아무래도 메뉴가 누락된 거 같다더라. 그래서 돈가스 소스를 좀 더 달라고 주문하는 김에 조심스레 물어봤다. 샐러드 언제 나오냐고. 그 말을 들은 아르바이트생의 얼굴이 하얗게 질리더라. 그때 깨달았다. 누락이구나. 안 그래도 양이 적어서 메뉴를 하나 더 시킬까 하던 참이라, 샐러드를 취소하고 파스타를 하나 더 시켰다. 그렇게 돈가스 소스는 영원히 나오지 않았고, 추가로 시킨 파스타는 맛있었다.


2.

파주에 아주 넓고 좋은 카페가 있더라. 털 복실이들과 함께 커피를 마시는 사람들. 겁나 여유로워 보이더라. 그러다 문득 돈 많은 사람은 인터넷에 있지 않다는 말이 떠올라서 조금 서글퍼졌다. 그래. 나도 돈이 많았다면 옆구리에 귀여운 멍멍이를 끼고 좋은 카페들 도장깨기만 하면서 살 수 있었겠지.


3.

일요일에는 이케아를 다녀왔다. 고양점이었다. 고기국수 한 그릇 맛있게 때린 뒤, 노란 가방 들고 예쁜 의자 사진 하나 찍자마자 사이렌이 울렸다. 화재경보였다. 직원이 대피하라 할 땐 장난인가 싶었고. 사람들과 한 덩어리가 되어 계단을 내려갈 땐 화재대비 피난훈련 같은 건가 싶었다. 거대한 이케아가 더 거대한 숫자의 사람들을 토해냈고, 그 인원들이 전부 노란 건물을 에워싸더라. 분위기만 보면 거의 메탈리카 내한 공연이었다. 그때까지도 얼빠져 있었는데, 소방차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등장했다. 그때야 비로소 진짜 화재경보였구나 싶었다. 오작동이긴 했지만, 사람들이 생각보다 침착하게 대피하는 모습에 조금 감동받았다. 일련의 사건을 겪으며 시민 의식이 많이 높아졌구나 싶고. 그 순간 펄떡펄떡거리던 내 심장을 떠올리니, 나 의외로 이번 생에 미련이 많았구나 싶고.


4.

덕분에 드디어 의자가 생겼다. 손님을 초대할 수 있게 되었어!


5.

좋은 소식을 들었다. 분명 좋은 소식이고, 기뻐해야 하는 게 맞는데. 막 기쁘지가 않았다. 그 소식을 전해주는 사람도 내 반응이 의외였는지, 이거 기쁜 소식 맞다고 덧붙이더라. 고맙다는 말로 전화를 끊고 나서야 스스로를 들여다보게 되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기쁜 소식이 영 달갑지가 않다. 왜, 영화 보면 그렇잖아. 아직 결말 날 때가 아닌데, 주인공이 막 행복해지면 얼마 안 가서 어마 무시한 불행이 들이닥치는 거. 고통스럽고 힘든 일이 올 때마다 액땜이다 셈 치고 넘어가는데 익숙해져 가지고, 갑자기 기쁘고 행복한 일이 생기니까 이 뒤에 얼마나 더 굉장한 고통이 오려고 이러나 싶어졌다. 이 행운이 믿기지 않고. 이래 봤자 얼마 안 가 나는 결국 불행해지고 말 거야, 싶은 비뚤어진 생각만 들고. 좋은 일이 생겨도 마음껏 좋아할 수 없는 건, 좋은 일에는 영 내성이 없기 때문일 거야. 고기도 먹어 본 놈들이 먹는다고.


6.

재수 없어. 왜 그동안 나한테는 고기 안 줬냐.


7.

이래서 나는 신을 안 믿어. 재수 없어. 으.


8.

내가 믿는 건 유한락스 멀티 액션뿐이야. 이번 달 최고의 소비였다.


9.

점심엔 간장계란밥을 먹었고, 저녁엔 컵라면에 밥을 말아먹었다. 식단이 슬슬 망해가고 있다. 엄마가 나 나갈 때, 너 밖에 나가 살면 아무거나 주워 먹고 살찌고 건강 나빠진다 했으니 조심해라, 했는데. 그 얘기 들을 때 콧방귀 엄청 크게 뀌었는데. 조만간 그 점쟁이 용하단 얘기 할까 봐 무섭다. 으으. 싫어. 살찌는 건 알 바 아니지만, 아픈 건 싫다.


10.

얼마 전 베놈 2를 봤다. 기대했던 딱 그 정도여서, 나쁘지 않았다. 뭣보다 쿠키가 너무 쇼킹해서 울 뻔했지 뭐야. 듄도 보고 고장 난 론도 봐야 하는데. 바쁘다 바빠, 현대 사회.


11.

최근에 재밌는 넷플릭스 예능을 찾아냈다. 베이킹 임파서블 이란 예능인데 정말 미친놈 같고 재미있다. 제빵사와 공학자가 한 팀이 되어, 먹을 수 있는 걸로 로봇이나 건물 따위를 만드는 경연 프로그램. 온갖 식재료를 섞고 부수고 구워서 하나의 작품을 만들어내는데 진짜 경이롭더라. 8화까지 다 몰아 봤는데, 우승팀(의 배경)까지 완벽하다. 성별과 나이에 따라 다양하게 조합된 팀 보는 재미가 쏠쏠.

keyword
작가의 이전글글램핑 첫 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