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 째는 없을 거야
글램핑을 가기로 했다. 자의는 아니었다. 모임 인원 중 절반 정도가 캠핑족인 탓에, 얘기가 흘러 흘러 그렇게 진행되었다. 사실 싫다고 어깃장 놓을 수도 있었지만, 당시엔 그게 꽤 괜찮을 듯싶었다. 반쯤은 호기심이었다. 하도 주위에서 캠핑이니 차박이니 들떠있기에, 뭐가 그렇게 좋은 건지 궁금했다. 게다가 글램핑이라니. 여태껏 나의 캠핑 도전을 막아왔던 장애물 1(화장실), 장애물 2(공용화장실), 장애물 3(냄새가 심한 공용화장실)에 대한 걱정이 상대적으로 좀 덜했다. 덕분에 그럭저럭 한 번 가볼 만하다 싶었다.
근처에서 장을 보기로 했다. 도착하니 1시가 조금 넘어 있었는데, 다른 인원들이 늦는다고 연락이 왔다. 일어나자마자 온 거라, 도저히 배고픔을 참을 수가 없어서. 근처 식당에 들어갔다. 컨테이너 같은 공간에 있는 백반집이었는데, 메뉴가 김밥천국 뺨 칠 정도로 다양했다. 처음엔 분명 순댓국집으로 시작했음이 분명해 보였으나, 추가 메뉴로 인해 한쪽 벽면이 온통 너덜너덜해져 있었다. 고심 끝에 순댓국을 먹었다. 맛은 평소 밖에서 사 먹었던 순댓국과 다를 바 없었지만, 나오는 밑반찬이 맛있었다. 같이 간 친구 효가 우리 이 반찬을 좀 싸 달라고 할까, 물었다.
효는 넉살(그 넉살 아님)이 좋은 애다. 곧잘 저런 시도를 했고, 대부분의 결과가 성공이었다. 거절당하는 게 그다지 두렵지도 않고, 그걸 마음에 담아두는 성격도 아니라고 했다. 나와는 전혀 다른 타입이라 여러모로 신기했다. 난 어렸을 적부터 사람 대하는 걸 극도로 어려워해서, 중국집에 전화 주문도 못 할 때가 많았다. 배달부와 얼굴을 마주하는 것도 꺼려해서, 현관 벨소리가 들리면 후다닥 방에 들어가 숨곤 했다. 지금이야 많이 나아졌는데, 그래서 그런지 효 같은 애들을 보면 다음 생에 저렇게 태어나는 것도 아주 즐겁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 어떠한 것으로도 태어나지 않는 것이 베스트겠지만. 그렇지. 사는 건 지옥이야. 으. 어쨌든 식당 사장님은 효의 부탁을 흔쾌히 들어주셨고, 우리를 위해 김치와 장아찌, 깍두기를 판매해주셨다.
빵빵해진 배를 움켜쥐고 마트를 털었다. 배가 든든하니까 쓸 데 없는 걸 안 사게 되더라. 애초에 사려고 했던 삼겹살과 목살, 소시지 등을 샀고. 햇반과 과자, 라면, 짜글이 재료 등을 샀다. 물론 메인은 술이었다. 좀 더 현명한 소비를 할 수 있었겠지만 남으면 집에 가져 가자! 하고 생각 없이 담았더니 영수증 종이가 거의 3미터는 나온 거 같더라. 절반 정도 노나서 각자 가져온 차에 싣고 글램핑장으로 향했다.
날씨가 무진장 좋았다. 오랜만에 외출한 거기도 하고. 콧구멍에 신선한 공기 좀 넣고, 최근 넷플릭스에서 본 드라마 얘기를 조잘거려가며 글램핑장에 도착했다. 평일이라 그런지 손님은 우리뿐인 듯했다. 다소 불친절한 주인분의 안내를 받은 후 배정받은 텐트로 갔다. 그리고 나는 깨달았다. 내가 막연하게 생각했던 글램핑은, 이 따위 가격으론 감히 넘보지 못할 존재였다는 것을. 어두침침한 텐트 안에는 매트리스만이 덜렁 두 개 놓여있었고, 그 위에 세팅된 이불과 베개는, 그다지, 음, 맨살로 접촉하고 싶진 않은 모양새였다. 난방도구라곤 전기매트가 전부였으며, 아주 퀴퀴한 냄새가 났다. 하지만 이딴 것들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내가 충격받은 건, 그 텐트 안에 화장실에 보이지 않았다는 거다. 딩동댕. 오랜 세월에 걸쳐 피하고자 했던 장애물 3(냄새가 심한 공용화장실)을 직면하게 되었단 얘기. 그때부터 필사적으로 수분 섭취를 줄이기 시작했다.
배정받은 텐트 중 그나마 넓은 데크에 짐을 풀었다. 아래는 계곡이 흐르고 있었다. 졸졸졸 흐르는 물소리에 기분이 좋아야 하는데, 고소공포증이 있는 탓에 내딛는 걸음걸음이 고통스러웠다. 헐겁게 덧댄 나무판자 사이로 아찔한 높이의 돌무더기 같은 것이 보였고, 그 마저도 군데군데가 타서 구멍이 뚫려있었다. 나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인테리어였다. 나무 데크 위에 화로를 올려놓다니? 거기서 장작을 태운다니? 속이 좋지 않았지만 이에 대해 그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기에 나도 가만히 있었다. 실비보험의 보장 범위 따위를 속으로 헤아리며, 만약 추락한다면 부디 즉사이기만을 바랐다.
저녁때까지는 시간이 좀 남아있었지만 할 일은 없었다. 체력 좋은 친구들이 컵차기 등을 제안해왔지만 그럴 수 있는 몸뚱이가 아니었다. 나와 비슷하게 늙고 지친 일행 면과 함께 불멍이나 때리기로 했다. 장작에 불을 붙였고, 그때야 비로소 아, 사람들이 캠핑을 하는 이유가 있구나 를 깨닫게 되었다. 온갖 미디어에서 불멍, 등을 내세우며 방송을 할 때마다 저게 뭐라고 저럴까 싶었는데. 정말 좋더라. 아주 정열적으로 스스로를 불사르며 일렁이는 생명체를 보는 듯한 기분이었다. 캘시퍼가 떠오를 때만 해도 스스로가 무척 귀엽다 생각했는데, 그 뒤에 바로 떠오른 게 김동인의 광염 소나타 여서, 스스로에 대한 환멸이 조금 일었다.
이 모임 최고의 귀염둥이, 영의 어머니가 키우셨다는 고구마를 구워보기로 했다. 양이 꽤 많았다. 군고구마, 그건 참을 수 없지. 준비성 좋게 포일까지 가져온 면 덕분에, 고구마 아홉 개 정도를 장작더미 안으로 투하했다. 시간을 맞출까 했지만, 옆에 있던 효가 이런 건 오래오래 구워야 하기 때문에 일찍 자면 먹을 수 없다고 했다. 좋아. 기필코 살아남아 주지. 그런 다짐을 한 지 3분 만에 선물 받은 포트 와인을 개봉했다. 나는 포트 와인이 포르투갈 와인인 걸, 그날 알았지 뭐야. 정말 달콤하고 도수가 세더라. 진짜 맛있었다. 너무 맛있어서 사진도 찍어왔다. 코로나만 아니었다면 작년 여름이 이 포트 와인을 현지에서 맛볼 수 있었을 텐데. 술기운과 함께 은은한 빡침이 올라왔다.
조금씩 어둠이 내려앉고, 슬슬 고기를 굽기로 했다. 테이블을 세팅하고, 숯에 불을 붙였다. 어두워가지고, 고기가 익었는지 안 익었는지 도무지 분간을 못하겠더라. 아니, 이게 어떻게 글램핑이야. 이건 그냥 캠핑이잖아. 그것도 뭐가 필요한지 암 것도 모르는 초짜들의 세상 읎어 보이는 캠핑. 입에 넣어봐야, 익었는지 안 익었는지를 판단할 수 있는 극악의 시스템. 안 익었어도 차마 내뱉을 수 없는 낙장불입의 향연. 자발적 원효대사 해골물 시식회. 그래도 배는 고파가지구, 요즘 돼지고기는 좀 덜 익혀 먹어두 된다를 3초에 한 번씩 중얼거리며 먹기 시작했다. 철저히 내 주장으로 후랑크 소시지를 사 갔는데, 와, 맛있더라. 안 그래도 맛있는데 불맛 입히니까 더 맛있더라. 밥반찬이 따로 없었다. 그렇게 고기 먹고, 소시지 먹고, 술 먹고, 웃고, 떠들고. 평소와 크게 다를 바 없는 짓을 했다.
밤 여덟 시가 넘어가기 시작하자 진짜 추워지더라. 내 생각에 산기슭의 추위는 추위라 부르면 안 된다. 좀 더 강한 어휘가 필요하다. 뭔가, 반죽음이나 임사체험 같이, 사람들이 듣자마자 두려움을 집어 먹고 내복과 패딩 하나씩을 더 챙길 수 있는 그런 단어. 분명 내복 입구, 코듀로이 남방 입고, 패딩 조끼 입고, 두툼한 항공점퍼까지 입었는데도 몸이 오들오들 떨리더라. 다들 약속이나 한 것처럼 화로 근처로 모이기 시작했다. 그때쯤 누군가 잊고 있던 고구마의 존재를 상기시켜 주었다. 그래, 그래. 이쯤 되면 익었겠거니, 장작 사이를 뒤적였다. 근데 아무것도 없더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없었다. 진짜, 낫띵. 진심, 아무것도. 그냥, 모든 고구마가 달콤한 장작이 된 거다. 잡히는 거라곤 파삭파삭하게 구워진 포일 나부랭이뿐이었다. 그러다 게 중 덩어리 져 있는 하나를 건지기도 했는데, 정말 모든 것이 새카맣게 타버리고, 가운데 샛노란 것이 새우깡 크기 정도로 존재하더라. 그 누구도 먹을 엄두를 내지 못해서, 아무도 고구마 맛을 보지 못했다.
그 뒤로 무슨 보상심리가 작용했는지 모르겠지만, 테이블 위에 있는 걸 하나둘 씩 포일로 감싸서 장작에 넣기 시작했다. 화력에 따라 다르지만 바나나는 10분 정도 흠씬 구우면 아주 달고 맛있다. 목살은 10분 정도 구웠으나 다소 퍽퍽하니까 추천하지 않는다. 삼겹살도 비슷한 처지더라. 아마도 우리의 조리법이 잘못되었으리라. 하지만 바나나는 반드시 구워 먹어보았으면 좋겠다. 구운 바나나 최고. 달고, 진득하고, 바닐라 아이스크림이랑 같이 먹으면 잠깐 천국 체험 가능. 이제와 생각해보니 크로플이랑 먹으면 더 맛있겠다. 휴.
기본 제공 장작은 한 망이었는데, 잘게 잘린 나무토막이 서른 개쯤 들어있는 거 같았다. 우리가 불장난을 너무 좋아해서 두 망을 더 샀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한 망 당 만 오천 원씩이더라. 미리 말해주지. 그랬다면 좀 참았을 텐데. 앞에 만 원은 못 듣고 오천 원만 들어서, 아주 신명 나게 태워버렸지 뭐야. 그래도 후회는 없다. 정말 좋았다. 내가 장작 태우기에 소질이 있다는 것도 깨달았고. 응. 왜 나는 특출 나게 잘하는 한 가지가 없이 대부분의 것들을 은은하게 잘하는 걸까. 리를 빗 속상.
그렇게 잘 사람은 자고, 몇 안 되는 인원만이 남아 미련을 떨며 마지막 장작들을 태우고 있는데 누가 저만치에서 걸어오더라. 하얀 담요를 둘러 쓰고 곱게 화장을 한, 아주 어린 처자였다. 장작이 있으면 조금만 빌려줄 수 있냐고 묻는데, 그때쯤 우리도 진짜 마지막 장작을 털어 넣은 터라 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있는 그대로 그렇게 말을 하니, 그 처자가 그럼 여기서 불을 쬐고 가도 되겠느냐고 묻더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남아있던 놈들의 얼굴에 당혹감이 서리기 시작했다. 그 처자는 아주 어리고 해맑고 텐션이 높았다. 남자 친구와 남자 친구의 친구들과 같이 왔지만, 자기 빼고는 모두 남자라 재미가 없다고, 여기에 껴서 놀면 안 되겠느냐고 묻는데, 그 누구도 '예, 그러세요.'라고 대답을 못 했다. 우리는 대부분이 일로 만난 사이였다. 대화 주제도 죄다 일과 관련되어 있었기 때문에, 모두들 급속도로 말을 잃기 시작했다. 그나마 대꾸하는 건 나와 귀염둥이 영뿐이었는데, 그 처자는 꾀꼬리 같은 목소리를 뽐내며 내게 나이를 물었다. 그런 류의 질문을 너무 오랜만에 받아봐서, 기쁜 나머지 말을 더듬으며 스무 살이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그 처자가 까르르 웃으며 자신보다 동생이라고, 말을 놔도 되겠냐고 물었다. 정말이지 보통 처자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내 얼굴을 보고도 태연하게 그 되지도 않는 농담을 받아치다니. 거기서 멈추지 않은 인싸 처자는 나에게 전화번호를 줄 수 있겠느냐고까지 물었다. 이미 14억 중국인들과 공유하고 있는 전화번호긴 해도, 이런 곳에서요? 갑자기요? 머릿속으로 수많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1번, 신천지. 2번, 장기매매. 그쪽도 핸드폰을 안 가지고 왔고, 나도 핸드폰이 가방 속에 있어서 단순 해프닝으로 지나가긴 했지만. 그 무리에서 처자 빼고는 다 남자라고 하기에, 괜한 마음에, 일단 번호를 가르쳐 줘야 되나 싶기도 했다. 뭐 결국 처자는 얼마 안 가 자신의 글램핑장으로 돌아갔고, 별 일은 없었다. 웃긴 건, 그 처자가 돌아가자마자 여태 입 꾹 닫고 있던 모두가 와르르 말을 쏟아내기 시작했다는 거다. 자신은 아까 자러 들어간 뫄뫄인 줄 알았다고 호들갑을 떠는 효와 답례 방문을 하고 오는 게 어떻겠느냐 제안하는 일행 등등. 소소하게 신기했던 건, 그 처자가 우리의 직종을 맞췄단 거다. 꼭 뫄뫄 하시는 분들 같아요, 라는 그 처자의 말에 빠른 속도로 시선 교환을 하던 일행들이 매우 웃겼다. 우리가 정말 그렇게 보이는 걸까, 하고 느닷없이 메타인지에 열 올리던 얼굴들. 아마도 죄다 목소리들이 커서 그쪽으로 이야기가 넘어간 거 같단 걸로 결론이 나긴 했지만, 신선한 경험이었다. 세상은 넓고, 해맑은 사람들은 많다.
새벽 한 시쯤이 되어서야 자리가 파했다. 그 순간 가장 끔찍했던 건, 씻고 싶단 생각이 들었단 거다. 따뜻한 물이 나오긴 했지만 수건이 없었다. 덕분에 그날, 이제 겨우 한 네 번쯤 만난 일행에게 수건 반 장을 나눔 받을 수 있었다. 빠르게 양치를 하고, 세수를 하고, 로션을 바르는데. 너무 추워서 로션이 피부에 스며들 생각이 없어 뵈더라. 지독한 추위였다. 잠옷으로 입으려던 반팔 티셔츠(지금 생각하니 정말 어처구니없는 준비물)를 덧입고 모든 옷을 단단히 여몄다. 내일 신으려던 양말까지 하나 더 신고, 잠을 청했다. 별로 높지도 않은 콧대가 뒤지게 시리더라. 전기장판 온도 제일 높게 올렸는데도 미적지근해가지고, 누운 채로 항공점퍼에 손 집어넣고 발은 가부좌를 틀고 잤다. 밖에서 자면 잠귀가 엄청 밝아지는 탓에 6시간 자면서 네 번쯤 깼다. 여러모로 끔찍한 밤이었다.
다음날 노인네처럼 일찌감치 일어나 근처를 산책했다. 계곡 같이 생긴 데도 가보고, 다른 텐트 쪽은 어떻게 생겼나 구경도 해보고. 아침잠 없는 인간들 두어 명이 더 일어났길래 같이 청소를 시작했다. 간밤에 고양이들이 뜯어먹고 간 꼬깔콘이 나무 데크 위로 화려하게 흩어져있더라. 그거 다 줍고, 설거지 하구, 애매하게 남은 술과 음식들도 처리하고. 그 지역 명물이라는 해장국을 먹으러 갔다. 선지랑 양을 잔뜩 넣어주는 해장국이라는데, 나는 돼지 부속을 좋아하지 않아가지고 뜨끈한 곰탕이나 한 사바리 때려 넣었다. 술보다는 추위가 가시는 느낌. 그 전날, 캠핑 한 번 가지 않겠냐는 영의 말에 좋다고 했었는데. 부디 영이 나의 그 말을 기억하지 못했으면 좋겠다.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아웃도어형 인간이 될 수 없어. 그렇지만 이다음에 이사를 하게 된다면 베란다가 있는 곳이었으면 좋겠다. 자그마한 화로를 사서 불멍 때릴 수 있으면 좋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