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Thaumazein Aug 9. 2020
나는 가끔 온라인 지역맘 카페에 종종 들어가서 이런저런 글들과 정보를 살피고는 한다.
그곳에는 주로 지역의 주부들이 대부분 회원으로 일상을 나누는 온라인 장인데,
그 날의 저녁 반찬부터 시작해서 소소한 살아가는 이야기, 남편, 시댁, 자녀교육, 사회 이슈 등등 살아있는, 살아가는 이야기를 그대로 볼 수 있어서 무명의 소통의 장소이자 주부들의 또 하나의 소셜 라이프인 통로가 되기도 하다.
그리고 때로는 날 것으로 정제되지 않은 이야기들과 댓글들이 마구 올라와 논란의 쟁점이 되기도 한다.
내 삶 속의 민주주의에 대한 글을 쓰자고 하니 내가 종종 들어가는 그 지역맘 카페가 생각이 났다.
하루는 누군가가 올린 "참 이해 안 되는 일이 있었어요!"라는 글이 눈에 들어왔다.
어떤 일일까 궁금해하며 클릭하고 글을 읽어보니,
어떤 카페에 갔는데 옆 테이블에 아기를 데리고 온 엄마가 이해가 안 된다는 글이었다.
아기를 데리고 왔으면 아기를 보던가 해야 하는데 본인 이야기하는데 빠져있어서 아기가 뭘 하는지 도통 신경도 안 쓰더라,
그럴 거면 카페에 왜 아이를 데리고 오냐,
노 키즈 카페가 왜 생기는지 이해가 간다는 식의 글이었다.
그리고 그 글 아래에는 나도 그런 경험이 있다,
정말 상식 없는 엄마들 많다 등의 댓글들이 순식간에 수수히 달렸다.
처음에는 그 글을 보다가
'그래, 가끔 아이에는 도통 신경도 안 쓰고 너무한 엄마들이 있지.'라고 별생각 없이 그 글에 동의가 되다가,
너무 지나치게 마녀사냥식의 댓글들이 달린 것을 보고 물론 그 엄마가 누구인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아무리 무명이라고 해도 너무한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상식 없고 교양 없다며 한 엄마를 나무라는 그 사람들의 교양은 과연 어느 정도일까라는 괜한 의문이 들었다.
민주주의에 대해서 기본적으로 우리는 '백성이 주인이다, 시민이 주인이다, 모두가 주인이다'라는 간단한 풀이로 말한다.
모두가 주인이라는 것은 어떻게 생각하면 너무 당연하고 너무 이상적인 명제이지만, 그것을 우리 삶 속으로 적용하자고 하면 가장 어려운 이념이라는 생각도 든다.
왜냐하면, 모두가 주인이라면,
모두가 주인 행세를 해야 하고,
내가 주인인 동시에 타인도 주인이기 때문이다.
주인과 주인이 함께 살아가면,
분명 자기만의 세계와 이상을 주장할 테고,
그 이상적인 세계가 동일 할리는 만무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나와 다른 타인의 세계를 모두 다 인정해 줄 것인가. 그것도 어렵다.
우리는 모두 살아온 환경이 다르고 경험한 것이 다르며,
처한 현실이 다르기에 모두 다른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내가 생각하는 이상과 타인이 생각하는 이상이 달라도 함께 주인으로 살아가려면,
'민주주의'라는 바퀴를 굴려서 한 발짝씩 더 앞으로 나아가려면,
그 서로 다른 세계와 사상이 조금씩 가까워져야 하고,
그것이 가까워지기 위해서는 내 안의 울타리 속으로 타인도 가끔 초대해야 하고,
나 역시 이해하기 어려운 타인의 울타리 속으로도 종종 들어가 봐야 하지 않을까.
여우가 두루미의 집에 가서 직접 긴 호리병에 들어있는 수프를 먹어보기 전에는 두루미의 심정을 이해할 수 없었던 것처럼 우리는 가끔 '똑똑~' 노크하고 두루미네 울타리 안으로 들어가서 서로의 교집합을 키워야 하지않을까.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공부라는 것을 하고 교양이라는 것을 기르지 않는가.
나 아닌 다른 사람과의 교집합을 키우기 위해.
나와 다른 누군가의 생각도 어느 정도는 이해하고 용인해줄 수 있는 여유.
그런 걸 두고 '똘레랑스'라고 하는 게 아닌가 싶다.
실제로 프랑스에서 그런 생활 문화가 생겨난 배경과 유래가 어떻게 되는지는 정확하게 모르겠지만,
요즘 우리 사회에서도 수많은 교양 수업과 쉽고 다양하게 접할 수 있는 인문학 강좌가 생겨나며 시민들의 수준도 점점 높아져가고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교양 있는 시민'이라는 말 뒤에 우리는 '조금의' 상식 없음은 아예 몰상식으로 만들어버리고, 서로로부터 절대 '조금의' 피해도 보지 않으려 하고, '조금이라도' 교양 없음은 가차 없이 내몰아치는
'교양 없는 교양'을 키우고 있지는 않은가 하는 생각도 동시에 든다.
그리고 '조금의' 다름도 용인할 수 없는 교양 뒤에 힘없고 나약한 존재들이 얼마나 소외되고 외면당하는지.
그런 교양이라면 그건 교양이라는 탈을 쓴 오만과 자만일 수도 있지 않을까.
그리고 그런 생각으로 나를 돌아볼 때 나 역시 얼마나 나와 다른 사람에게 관대할 수 있었나를 반성해 본다.
이처럼 일상 속의 민주주의란 내게 가장 어려운 과제이다.
그것은 한 번으로 끝나는 일회성이 아닌 매일매일의 연속이고,
대중 앞에서 잘 발표하면 되는 연설문이 아닌
나의 속살과 민낯을 드러내야 하는 내 솔직한 일기와 같기에.
잘 차려입고 학식 있는 사람으로 나의 이름과 얼굴을 내보이고 앉은 테이블 위에선
웬만해선 이해되고 정 안 되는 것은 그 자리에서 일어나 안 보면 그만이지만,
그 잘 차려입은 옷을 벗어놓고 앉은
우리 집 식탁에서, 거리에서, 시장에서, 카페에서
나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나.
당장은 한 번엔 어려워도 하루하루 내 삶 속의 민주주의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작은 실천과 경험이 무수히 쌓이고 쌓일 때,
그건 굳이 '민주주의'라고 이름 지으며 가르치지 않아도
내 아이에게 자연스레 스며들 것이고,
나와 우리 가족의 진짜 교양이라는 바퀴가 커지며 내 이웃과의 교집합도 커질 테고,
그렇게 되면 '맘충'이나 '층간소음'이나 '묻지 마 폭행' 같은 사회 이슈도 없어지지 않을까.
그리고 그런 시민이 모여있는 사회가 되면 앞선 누군가는 목숨을 내걸면서 지키고 싶었던 '모두가 주인인 세상'이 이제는 어떤 고귀한 생명도 희생되지 않고도,
아무도 슬프지 않고도,
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우리 가정에서, 사회에서, 나라에서 꽃 피울 수 있지 않을까라고 꿈꿔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