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에 대한 믿음

당신의 선한 눈빛을 기억하며

by 정다운 너

살아가다 보면, 속고 속이는 게 다반사이지 싶다.

믿긴 누굴 믿어! 요즘 같은 세상에. 그렇게 단정해 버리면, 세상은 극명하게 이분된다.

내가 믿는 나와 나를 제외한, 믿을 수 없는 타인의 세계.


하지만, 이 틈바구니에서는 어느 순간 나조차 믿기 어려운 시기가 오는 것 같다.

분명히 아무개는 믿을 수 없는 존재인데, 어느 순간 그의 배려가 느껴진다거나

예기치 않게 베풀어지는 호의를 맞닥뜨리게 되면, 우리의 앞선 다짐은 혼동과 균열을 마주한다.

그리고 불신하는 나 자신이 과연 제대로 불신을 이행하고 있는지 헛갈리기 시작하고

그 늪에 빠져 무표정한 얼굴로 아무에게도 우호적이지 않은 채, 노땅이나 꼰대처럼 늙어가는 자신을 거울 앞에서 마주친다. 그래서 늙는다는 게 서글픈 게 아닐까.


때때로 나는 좋은 사람인지, 나의 친구는 영원히 내 편인지 자문하곤 한다.

나의 슬픔을 함께 덜어내는 노력보다 나의 기쁨을 나보다 더 축하해 줄 수 있는 사람이 다섯 손가락으로 꼽을 수만 있다면, 밥을 먹지 않아도 배가 부르고 어두운 밤에도 두 다리를 뻗고 잠들 수 있을 것이다.


베트남 퐁냐로 향하는 새벽길에서의 만남을 기억한다.

밤 버스에 몸을 실은 건 나의 선택이었으나 새벽 네 시 오밤중에 낯선 거리에 하차 된 건 나의 결정과는 무관했다. 버스 기사의 안일함과 횡포, 공갈은 없지만 사기 행각의 희생양이 된 나는, 배낭 하나를 들쳐 메고 하차시키는 대로 하차 된 채, 먼지를 일으키며 내달리는 버스의 뒷머리를 지켜보았다. 뒤통수라거나 뒤꽁무니라고 불러야 더 정확한 지칭이 될 것이다. 이 순간에 내가 할 수 있는, 보여줄 수 있는 분노, 분통은 새벽잠에 묻혀 끄집어낼 수도 없었다. 취한 잠에서 깨어나 동도 트지 않은, 가로등 몇 개 있는 거리에서 나의 위치를 확인하는 것이 먼저였다.


그 찰나에 내게 다가선 오토바이 기사 하나. 퐁냐에 가냐고 묻는 그를 두고, 그렇다고 말하자, 그는 검은 눈동자를 더욱 반짝였다. 사람이 말을 걸어온다는 것에 한편으로는 안도했지만, 그렇다고 구세주를 만난 기분은 들지 않았다. 그런 나의 예감은 아마도 앞으로 다가올 상황에 대한 기시감이었던 것 같다.



나의 정확한 위치를 확신할 수 없는 지점에서, 이 한밤중에 인적 드문 대로를 걷는 것은 지나치게 모험적인 상황이었다. 내가 기피하고 피하고 싶은 순간임은 말할 것도 없다. 혼자 여행하는 여자 여행자라면(물론 남성 여행자도 마찬가지겠지만) 아마도 모두 내 마음이지 않을까. 어쨌거나 5초간 생각하고 1~2달러로 값을 흥정하고 오토바이 뒷좌석에 앉았다. 헬멧을 썼었나? 오토바이에 오르긴 했으나 아직도 비몽사몽 중이라 무거운 배낭에만 신경을 곤두세웠다. 오토바이에 탑승하고 내달린 지 40초 후. 실바람처럼 가뿐하게 달리던 오토바이는 정말 저만치 180m쯤 이동 후에 벌써 도착했다고 내리라고 한다.


이 어이없음!

당했군, 당했어!



눈 뜨고도 코 베어 간다는 속담이 귓가에서 쟁쟁하게 울렸고 1~2달러가 큰돈은 아니어도, 베트남의 택시비와 비교해도 말이 안 되는 값이라서 오토바이 기사의 면상을 보는 데도 얼굴에 열이 올랐다. 이때쯤 제정신이 돌아온 것이다. 가로등은 이 지점에서 꽤 밝았다. 어쨌거나 약간의 실랑이를 벌이다 몇 푼을 쥐여주었다. 그러나 이 불행은 여기에서 멈추지 않았다. 오토바이에서 내가 하차한 이곳이 나의 목적지가 아니라는 것! 퐁냐로 가기 위해서는 '시내버스정류장'으로 가야만 했으나 내가 도착한 곳은 '시외버스정류장'이었던 것이다. 입구에서 알아볼 수 없는 정류장 간판을 해독하지 못하고 건물 안으로 들어간 것이 화근이었다. 건물 내부에서 노선표를 확인한 후에야 그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이 늦은 (혹은 이른) 시간에도 환하게 불을 밝혀놓아 조금은 마음을 놓고 (어두컴컴한 거리와는 비교할 수 없이) 대합실에 앉아 있을 수 있었다는 점이다.


나무 벤치의 냉기가 형광등 불빛을 받아 유독 차갑게 느껴졌던 그 새벽. 슬금슬금 터오르는 동이 느릿느릿 하늘 한 켠을 밝히고 있는 시간. 밤 버스를 탔으니 이런 풍경도 보는구나, 하고 스스로를 위로하고, 물어물어 다시 내가 가야 하는 시내버스정류장의 위치를 확인했다. 더 확실히 하기 위해서 현지어로 그 이름을 크게 적어달라고도 부탁했다. 그리고 다시 등짐 같은 배낭을 메고 건물 밖으로 나왔다.


차도 없는 건널목을 두 개쯤 건넜을 때, 내 옆으로 다가온 또 다른 오토바이. 새벽공기 탓인지 맨 처음 이곳을 지나올 때와는 달리 정신이 뚜렷하고 기분이 상쾌했다. 그래서 이 오토바이의 정체가 뭔가, 하고 잠시 물끄러미 바라봤다. 한 눈에 봐도 승객을 태우는 오토바이도, 호객하는 기사로도 보이지 않는, 낯선 사람. 오토바이 앞머리에 먹거리 한 꾸러미를 대바구니 가득 담은 여자. 나의 판단으로는 새벽 장사를 하러 가는 이 동네 주민쯤으로 보였다. 뒷자리에 빈자리가 있었는데, 그 사람은 내가 배낭을 짊어지고 뒤뚱뒤뚱 걷는 모습을 보았는지 배낭부터 가리킨다. 자주 눈물샘이 고장 나는 나! 현지인이 적어준 시내버스정류장을 펼쳐 보이고 나는 그 뒷자리에 올라앉았다. 그곳 역시 버스 정거장 두 곳을 지나올 만한 가까운 거리였다. 새벽공기를 가르며 그래도 사람은 아직 믿을 만하다. 그리고 저런 인간도 있고, 이런 분도 계시다, 라는 생각이 흙먼지처럼 내 머릿속을 스쳐 갔다. 가는 길에 태워주는 배려라지만, 그 새벽길에 마주친 두 사람 덕에 나는 쉽게 절망하거나 실망하지 말 것, 이라는 당연한 결론을 몸소 겪는 행운아가 되었다. 나를 태워주신 그 아주머니의 얼굴은 가물가물하지만, 그의 선한 눈빛과 그때의 뭉클함은 가끔 베트남에 대한 기억을 더욱 따뜻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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