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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책 Oct 09. 2020

호주의 어린이 TV 프로그램

광고가 아예 없다?

호주의 전반적인 교육제도에 대해 아직 많은 걸 경험해 본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지난 7개월간 이곳에 살면서, 7살 아이 엄마의 눈으로 바라본 호주 어린이들에 대해 몇 가지 느낀 점을 얘기해 보고자 한다.


한국에 있을 때는 어린이 TV 프로그램을 보면 왠지 마음에 불편한 점이 많았다. <한글이 야호>와 같이 교육적으로 좋은 프로그램도 물론 있었지만 내가 불편하게 여긴 부분은 이런 것들이다. 아이돌처럼 꾸미고 나온 초등, 중학생 진행자가 나온다거나, 극명한 대결 위주의 만화들, 그리고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광고 같은 것들 말이다. 현실에서의 아이들과는 거리가 멀게도 형과 누나들이 지나치게 꾸미고 나오는 것은 물론이고, 가끔씩 등장하는 어른들도 여자는 대부분 짧은 치마에 인형처럼 예쁜 모습을 하고 있다. 요즘은 남자도 예쁘게 꾸미는 추세다. 가장 불편했던 것은 바로 프로그램 사이사이에 끊임없이 등장하는 장난감 광고이다. 아이를 토이저러스 같은 장난감 가게에 일부러 데려가지 않아도 TV 만 몇 번 보면 어떤 장난감이 있는지 다 알게 된다. 내 아이도 TV를 통해 알게 된 장난감을 사달라고 많이 조르곤 했었다. 더욱이 광고하는 장난감의 대부분이 TV 프로그램과 연관된 것들이라 아이들이 더 사고 싶을 수밖에 없도록 만들어졌다. 그렇게 소비를 부추기는 광고들 때문에 나는 아이에게 TV를 잘 보여주지 않게 되었었다. 


호주에 온 뒤로는 영어학습에 도움이 될까 싶어서 아이에게 TV를 허용했다. 그런데 몇 달 동안 어린이 TV 프로그램을 관찰해 본 결과, 장난감 광고는 물론이고 학습지 같은 광고도 전혀 볼 수 없었다. 어린이 프로그램에서는 아예 광고 자체를 하지 않는 것이다. 프로그램 사이에는 이후 이어질 프로그램 몇 개를 소개하거나, 호주의 다양성을 강조하듯 ‘We are one, but we are many~’로 시작하는 ‘I’m Australian’이라는 노래가 종종 나온다. 요즈음은 그나마 COVID-19 때문에 사회적 거리두기나 손 씻는 방법 등의 홍보가 추가된 정도이다.  


또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프로그램 곳곳에 인종, 나이, 성별, 장애 등에 대한 차별을 견제하는 모습이 많이 보인다는 것이다. 백인, 아시아인, 흑인 등 다양한 인종의 어른들과 아이들이 함께 나오고, 장애인이나 할머니, 할아버지도 자주 등장한다. 장애인은 장애인으로 강조되어 나오지 않고, 여느 진행자들처럼 진행할 뿐이다. 우리나라 TV에서 흔히 나오는 늘씬한 몸매에 주름 없이 팽팽한 얼굴의 여자들 대신, 옆집 아줌마나 아저씨 같은 어른들이 티셔츠와 청바지 등 평범한 차림으로 나올 뿐이다. 그래서인지 외모에 대해 평가하는 문화가 거의 없는 것 같다. 아이의 같은 반 친구들만 보아도 남자아이인데도 머리가 긴 아이도 있고, 같은 날씨인데도 반바지에 반팔, 긴 바지에 패딩잠바, 장화 등 옷차림이 각양각색이다. 물론 어른들도 그렇게 각양각색의 차림으로 돌아다니며, 아무도 거기에 대해서 뭐라 하지 않는다.

 




내가 어렸을 때는 저녁 9시가 되면 TV에서 시계가 9시를 가리키며 어린이들은 이제 자러 갈 시간이라고 알려주었다. 부모들은 그것을 핑계 삼아 TV를 끄고 아이들을 서둘러 재우고는 했다. 호주에서는 아직도 그와 비슷하게 TV에서 자장가 같은 노래가 나오면서 아이들이 자러 갈 시간임을 알려준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시간이 ‘저녁 7시 반’이다. 실제로 이 곳 아이들은 대부분 저녁 7시 반에서 8시 사이에 잠자리에 든다. 심지어 어른들도 9시-10시 정도면 모두 잠자리에 드는 듯하다. 내가 사는 아파트에서 다른 집들을 보면 보통 6시-7시 정도에 저녁을 먹고 8시-9시에 하나둘씩 불이 꺼지고 10시면 거의 80% 이상 불이 꺼진다.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일찍 잘 수밖에 없는 분위기다. 반면, 한국의 아이들은 저녁 9시, 10시가 되어서야 잠이 들고, 심지어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 그 시간에 비로소 학원에서 끝나고 집에 돌아오기도 한다. 아이들이 어려서부터 쉴 시간이 너무 부족하니 그로 인한 스트레스가 쌓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엄마 아빠의 퇴근 시간도 한몫하는 듯하다. 퇴근이 늦어지면 저녁식사 시간이 늦어지고 아이들과 조금이라도 놀아주려면 자연스레 재우는 시간이 늦어질 수밖에 없다. 나도 한국에서는 퇴근하고 와서 저녁 먹고 조금이라도 아이와 시간을 더 보내기 위해 놀고 책 읽다 보면 어느새 9시가 넘어있었다. 호주에서는 어른들이 오후 4-5시면 퇴근한다는 점을 고려해보면, 아이들이 일찍 잠들 수 있는 여건이 만들어지려면 어른들의 퇴근시간도 빨라져야 할 것 같다. 우리 아이들이 충분한 수면시간을 가지고 더 건강하게 자랄 수 있도록, 한국 사회 전체가 다 같이 노력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 본다. 


(2020.7.2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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