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트너'란?
본사가 미국에 있는 회사에서 겪었던 모습과 호주에서 경험하게 된 일상적인 모습에 꽤나 유사한 점이 있다. 그것은 바로, 한국에서는 사용하지 않는 ‘파트너’라는 개념이다. 우리말로 굳이 옮겨보면 ‘동반자, ‘반려자’ 정도로 풀이할 수 있을 텐데, 배우자, 남편, 아내, 동거자, 여자 친구, 남자 친구 등 모든 커플의 개념을 통칭한다. 여러 형태의 커플을 굳이 하나로 통칭하는 ‘파트너’라는 단어가 왜 필요했을지를 가만히 따져보면, 예상외로 ‘평등’이라는 큰 개념에 다가가게 된다.
미국 중에서도 사고가 가장 넓게 열려있다는 캘리포니아에 본사가 있어서인지, 내가 몸담고 있던 회사는 유독 ‘평등’이라는 가치를 중요시하고 그것을 수호하는데 앞장선다. 예를 들면, 회사에서 주최하는 연례행사의 등록신청서 양식에는 자신의 성(Gender)을 선택하는 란에 다양한 선택지가 주어진다. 단지 Male, Female (남, 여) 두 가지로만 국한되지 않고, 그 외에 게이, 레즈비언, 양성애자, 트랜스젠더, 퀴어, 그리고 심지어는 ‘밝히고 싶지 않음’ 또는 ‘아직 밝혀지지 않음’도 있다! 굳이 그렇게까지 여러 옵션이 있어야 하나 싶을 정도이다. 하지만 바꿔 말하면 소수의 성에 대해서 다양성을 존중한다는 의미이다. 차별을 유도할 수 있는 ‘결혼 유무’나 ‘나이’를 묻는 문항은 아예 존재하지도 않는다. CEO 가 인도인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그러한 열린 분위기가 소위 잘 나가고 트렌디한 ‘백인’ 중심의 리더들 때문도 아니다.
미국 본사 직원과 이야기할 때처럼, 호주에 와서 처음 만난 사람과 대화할 때도 자연스럽게 ‘Partner (파트너)’라는 말이 자주 들린다. 처음에는 동성애자들이 굳이 동성애자임을 밝히고 싶지 않아서 두리뭉실하게 파트너라는 말을 쓰는 것이려니 생각했다. 그러나 평범한 이성애자 역시 자신의 배우자나 남자 친구, 여자 친구를 소개할 때 그를 파트너라고 부른다. 그래서 ‘나의 파트너’라고 이야기했을 때, 그 사람이 배우자인지, 남자 친구인지, 동성 애인인지 알 수 없다. 이야기를 듣는 상대방은 구체적으로 어떤 파트너인지 묻지 않는다. 사회에 이미 자리 잡은 타인을 배려하는 태도인 것이다. 호주에서 2017년에 국민투표를 통해 동성혼이 합법화된 것을 고려하면, 무지개 깃발 (Rainbow flag : 동성애 차별을 반대하는 의미)이 일반 가정집에서도 흩날리는 것이 자연스러워 보인다.
이와 비슷한 맥락에서, 이혼한 가정에 대한 차별 역시 좀처럼 눈에 띄지 않는다. 동성애자 부부가 아이를 입양해서 가지면 아빠 또는 엄마가 둘인 경우가 가능하다. 마찬가지로 이혼한 가정에서는 엄마 아빠가 서로 다른 집에 사는 경우도 가능하다. 이를 반영하듯 아이 초등학교에 붙어있는 한 포스터에는 다양한 가족을 상징하는 모습이 담겨있다. 엄마가 둘인 가족, 아빠가 둘인 가족, 할머니와 사는 가족, 엄마와 사는 가족 등 여러 가지 가족 형태가 그려져 있다.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다양성에 대해 학습하는 것이다.
한국도 요즘 비혼이나 졸혼 등 기존의 획일화된 결혼제도로부터 벗어나 점점 형태가 다양화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혼자 사는 여자는 ‘결혼은 언제 할 거냐’, ‘아이는 있어야 한다’ 등의 질문과 충고를 아무렇지도 않게 받고 있다. 이혼한 사람에게 꽂히는 시선은 더욱 불안하고 책망 가득하며, 성소수자들은 아예 자신의 성을 밝힐 수도 없다. 시간이 좀 더 지나면 한국도 사회의 전반적인 인식이 더 성숙해지고 그에 따른 제도도 변화할 것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시간을 껑충 건너온 듯, 이미 변화한 사회에 와서 경험해보니 한국의 현실이 더 안타깝게 느껴지는 것이 사실이다.
마지막으로 배려에 대한 한 가지 예를 더 들자면, 아이 학교의 공지사항 이메일은 늘 ‘Dear Parents and Carers’라는 문구로 시작한다. 학부모뿐 아니라 학부모가 아니지만 아이를 돌봐주는 사람과 살고 있는 아이들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부모 또는 아이를 돌봐주는 분에게’이라고 표현하는 것이다. 이메일 내용의 경중에 상관없이 항상 그렇게 시작한다. 부모가 없거나 부모의 돌봄을 받을 수 없는 아이가 혹시나 있을 수 있기에 그런 가정의 상황까지도 배려하는 것이다. 작은 것에서 시작하는 배려가 큰 차이를 만든다는 것을 실감하며, 한국도 다양성을 존중하고 소수자에 대한 배려가 작은 일상에서도 보이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