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개월 반 만이다
지난 7월부터 확진자수가 급증하면서 Term 3은 학교에 돌아가지 못하고 집에서 온전히 ‘엄마와 함께하는 온라인 학습’ 에만 의존했었다. 그러다가 일일 확진자수가 10명 미만으로 줄어들고 그 트렌드가 계속 유지되더니 드. 디. 어. Term4의 2주 차인 이번 주부터 학교에 돌아갈 수 있게 되었다. Hooray! 나는 뛸 듯이 기뻤지만 혹시나 눈치 빠른 아이가 알아챌까 봐 크게 내색을 하지는 않았다. 대신 이렇게 말했다.
"와~ 우리 **는 좋겠다. 이제 학교 가면 친구들이랑 맘껏 놀고 말이야. 선생님들도 얼마나 기다리고 계실까~."
그랬더니 아니나 다를까. 아이의 반응은 이랬다.
"음. 난 좋기도 하고 안 좋기도 한데. 엄마랑 같이 놀고 싶거든. 근데 엄마도 엄마 시간 갖고 엄청 좋겠다~ 그치?"
뜨끔했지만 바로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 엄마도 엄마 시간 가지게 되어 너무 좋아!
등교 시간이 학년 별로 5분 단위로 다르게 정해져 있어서 정해진 시각에 맞추어 들어갈 수 있도록 미리 도착했다. 시간이 늦어버리면 학교를 빙 돌아서 다른 쪽 문으로 가서 교무실에 연락을 하고 들어가도록 룰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가능한 한꺼번에 많은 아이들이 몰려들지 않도록 나름 안전장치를 해 놓은 것이다. 학교 울타리 밖 잔디밭에는 반가운 친구들은 물론, 친구의 엄마 또는 아빠들이 적당한 거리를 유지한 채 서 있었다. 오랜만의 반가움과 함께 약간의 어색함이 감돌았지만, 다들 즐겁고 흥분된 모습은 마스크 밖으로도 한껏 뿜어져 나와서 감출 수가 없었다. 호주는 12살 미만의 아이들은 마스크를 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아이들은 예전에 알던 얼굴 모습 그대로 - 하지만 못 본 사이 키와 몸집이 약간은 커진 채로- 맘껏 웃고 있었다. 선생님들은 약간은 조심스러운 몸짓으로 아이들을 줄 세워 인솔해서 각 교실로 데리고 가셨다.
그리고 찾아온 나만의 (아이 없이 나 혼자만의) 산책 시간! 그동안 얼마나 이 순간을 기다려왔던가. 친한 엄마와 함께 커피를 테이크아웃해서 근처 공원을 한 바퀴 돌았다. 마침 날씨도 화창해서 하늘의 맑은 파란색과 함께 사방이 푸르렀다. 커피 맛도 왠지 더 향긋한 것 같고, 길가는 개들도 더 사랑스러워 보이고, 이제 막 돋아난 봄의 새싹과 잔디도 왠지 더 푸르러 보였다. 그런 풍경을 보고 있자니 얼마 전에 읽은 공지영의 <먼 바다>라는 소설에서 묘사된 봄의 느낌과 닮은 것 같았다.
엄마, 순천 금둔사에 홍매화가 피었어. 오늘 새벽에는 꽁꽁 언 흙 속에서 수선화 구근들이 뒤척이겠지. 매미 유충이 기지개를 켜는 소리와 배추흰나비 번데기에 첫 균열이 가는 소리….. 온 땅이 두근두근 거리며 새싹! 새싹! 하기에 하도 시끄러워 잠을 설치고 말았어.
공지영, <먼 바다> 중
형태만 떠올리게 했던 '새싹'이라는 단어가 소리를 내는 의성어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나에게도 온 땅이 새싹! 새싹! 하면서 소리치며 인사하는 듯했고, 나도 맘 속으로 안녕! 환영해! 하고 외쳤다.
산책을 마치고 마트에 가서 역시 '나만의 여유로운 장보기'를 하고 집에 들어갔다. 집에 돌아와서 청소도 즐겁게, 설거지도 즐겁게 하고 보니, 베란다에서는 집 근처 학교에서 아이들의 깔깔거리는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나만의 샤워 타임과 (아이가 아직 혼자서 샤워하는 게 무섭다고 해서 샤워도 같이 한다..) 독서 타임, 아이 눈치 안 보는 유튜브 타임도 가졌다. 언제 또 코로나 확진자 수가 증가해서 이 생활이 어느 순간 뚝 끊길지 모르지만, 오늘 하루 정말 온전한 나만의 시간을 가지고 나니 몸도 정신도 충전이 만땅 되었다.
2020.10.12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