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 그런 게 아니었다
이번 주부터 아이가 학교에 다시 가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그동안 못 보고 지냈던 학부모들을 마주치게 되었다. 아이와 친하게 지내는 친구들 중심으로 널찍이 서 있는 친구 엄마 아빠와 건네는 짤막한 대화마저도 반갑기만 하다. 서로 1.5미터쯤 떨어져 있고 마스크도 쓰고 있어서 표정을 제대로 볼 수는 없지만, 마음만은 아주 가까운 거리에 있다는 것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방금 전까지도 혼자서 사람들이 이제 남에게는 관심도 없어졌으면 어쩌나, 혹시 잊어버렸거나 어색해졌으면 어쩌나 생각했던 두려움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그동안의 아이들의 안부를 묻고 우리도 잘 버티고 있는지 서로 위로해주는 상황이 된 것 만도 그저 다행스럽고 감사했다.
락다운 기간 동안에는 먹거리를 사기 위해 마트에 가는 것과 건강을 유지할 수 있도록 바깥에서 운동하는 것은 허용되었지만 (당연히 아픈 사람은 병원에도 갈 수 있다), 그 외에는 모두 금지되었다. 마트에서 팔지 않는 옷이나 기타 생활용품들은 대부분 온라인 쇼핑으로 해결한다. 내가 사는 아파트의 빌딩 매니저는 요즘 매일매일을 크리스마스처럼 보낸다며 한숨을 쉬곤 하는데, 그만큼 택배량이 폭발적으로 늘어난 것이다. 그마저도 온라인으로 살 수 없는 것이 있으니, 바로 미용실이다. 사실 먹고사는 문제,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코비드로 죽고 사는 문제에서 비껴가 있다는 이유로 나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헤어스타일 따위에는 신경 쓰지 않은지 오래되었다. 나도 락다운이 잠시 해제되었을 때 갈 수 있는 시기를 놓쳐서 미용실에 가지 않은지가 어느덧 1년이 훌쩍 넘어버렸다. 긴 머리라서 머리를 다듬지 않은 티가 많이 나지는 않지만 (그러리라 바라보지만), 나만이 느낄 수 있는 이 곱슬거림과 푸석거림 때문에 그냥 가위를 들고 잘라버릴까 하는 마음도 들었다. 하지만 그때마다 더 후회할 것을 생각하며 꾸역꾸역 참아냈다.
오랜만에 만난 학부모들을 보니, 음? 다들 어딘가 모르게 조금씩 촌스러워졌다. 여자들은 마스크 때문에 화장을 거의 안 하게 되자 조금 더 피곤해 보였고, 남자들은 자주 잘라주어야 하는 머리를 길러버리는 바람에 어딘가 약간 히피스럽게 변해있었다. 아이들의 머리는 그동안 나처럼 엄마들이 잘라주었는지 우스운 바가지 머리도 눈에 띄고, 아예 단발로 길러버린 남자아이들도 몇 명 있었다. 우리 아이는 내가 이발기와 가위를 가지고 네다섯 차례 씨름한 끝에 그나마 바가지 형태는 약간 벗어난 수준이다. 아이는 미용실 가기를 싫어했지만, 나의 네다섯 번의 실패를 겪으며 차라리 미용실에 가고 싶다고 하소연했다. 그리고 놀이터도 못 가는 바람에 아무래도 운동량이 부족했던 아이들은 다들 전보다 조금씩 포동포동해졌다. 촌실촌실 포동포동 해맑은 모습이 그래도 너무나 귀엽기만 하다.
한편 가장 중요한 것만 남겨두고 나머지는 뺀 생활을 몇 달째 살아보니 비로소 알게 된 것이 있다. 서울에서 미용실을 적게는 6개월에 한 번, 많게는 3개월에 한 번씩 갔었던 내가 안 간지 1년이 지났는데도, 이제 한번 가면 되겠다 싶은 것이다. 앞으로는 1년에 한 번만 가도 괜찮을 것 같다. 옷도 사지 않다 보니 그렇게 자주 살 필요가 없었던 것도 알게 되었다. 내 옷뿐 아니라 아이 옷도 마찬가지다. 얼굴이 좀 못 생겨지면 어떠랴, 머리가 좀 촌스러워 보이면 어떠랴. 우리는 다행히 잘 살아남았고 이렇게 다시 만나 이야기할 수 있으니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그렇지 않아도 호주는 내추럴하고 느린 나라인데, 나는 느린 나라에 와서 코로나까지 겹쳐서 더욱더 느리고 내추럴하게 사는 법을 터득해가고 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