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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책 Oct 28. 2020

당신은 왜 오셨나요

가을을 떠나 봄에 도착한 멜번

호주는 적도 아래 남반구에 있기 때문에 계절이 한국과 정반대이다. 그 점도 좋았다. 가을에 비행기를 탔는데 그녀가 내린 곳은 봄이었으니, 이제 조금만 더 있으면 따뜻한 여름이 될 터였다. 아무래도 처음 시작하는 해외생활이 추운 겨울보다는 따듯한 봄이면 좀 더 위안이 될 것 같았다. 그런데 알고 보니 멜번은 호주에서도 가장 남쪽, 즉 남극과 가장 가까운 쪽이어서 시드니보다 훨씬 추웠고 날씨가 예측하기 어렵게 변화무쌍했다. 그녀가 우버 기사에게서 가장 많이 들었던 소리가 바로 이거였다. ‘Melbourne has four seasons a day. (멜번에는 하루에 사계절이 있어요).’ 봄인데도 바람이 많이 부는 날에는 시속 25km의 강한 바람이 부는가 하면, 하루 일교차가 10도 정도는 기본이었다. 그러다 해가 잠깐이라도 나오면 갑자기 여름이 찾아와 온 세상이 강한 햇빛으로 조명을 받은 듯했다.  


새로운 집에 들어가기 전에 일주일 정도 기간이 있었으므로 여자는 호텔에 머무르면서 먼 비행으로 인한 피로도 달래고 동네도 익힐 참이었다. 임시로 있는 거처이니 예산에 맞게 적당한 호텔로 골랐는데, 남자는 호텔방이 너무 좁다며 혼자 다른 곳으로 얻어서 나갔다. (흠.. 아이가 걱정되어 온 거 아니었나..) 그리고 점심 정도에 나타나서 함께 주변을 돌아다니거나 관광을 하고 저녁에는 자신의 호텔로 돌아갔다. 관광을 할 때는 가는 곳마다 혼자서 셀카를 찍느라 정신이 없었다. 아이와 여자 때문에 걱정이 돼서 왔다고 했지만, 행동을 보면 왠지 관광을 즐기러 온 듯해 보였다. 사실 여자는 관광에 별로 관심이 없었다. 아이가 심심할까 봐 같이 가는 것일 뿐, 당장 먹고 입을 일 등 앞으로 어떻게 적응할 지에 더 신경이 쓰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일주일 후 드디어 새로운 집에 입성했다. 남자는 이삿짐이 도착하면 아무래도 손이 필요할 테니 그때까지 있다 가겠다고 얼렁뚱땅 같이 집으로 따라 들어왔다 (이삿짐은 원래 2주 후에 도착할 예정이었으나 태풍으로 지연되어 한 달 반이나 걸렸다!). 여자는 아이가 갑자기 아빠가 없어지는 것보다 얼마 동안 새로운 곳에 적응하고 나서 자연스럽게 출장 가는 것으로 헤어지는 것이 나을 것 같아 일단 내버려 두었다. 그런데 얼마 지나서 여자는 도대체 남자가 아무런 도움이 안 되면서 왜 같이 있는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어느 날 집안을 둘러보니, 한국에서와 똑같이 늦잠 자고 일어나서 챙겨주는 밥을 먹는 생활패턴이 펼쳐지고 있었다. 두 시간밖에 안나는 시차도 시차라며.. ‘아니 그렇게 힘든 과정을 거쳐서 각자 시간을 가져보자고 여기까지 왔는데 이게 뭐냐'라고 여자가 말하자, 남자는 알았다며 근처 숙소를 얻어서 나갔고 이삼일에 한 번씩 와서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한 달쯤 지났을까. 아이가 아파서 응급실에 가고 입원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원인이 밝혀지지 않은 어떤 병이었는데 다행히 일찍 발견한 데다 면역치료법이 있어서 시행해 보기로 했다. 다른 나라로 온 지 두 달 정도밖에 안되었는데 큰 병원에 가게 되어 여자는 매 순간 긴장했고, 틈날 때마다 인터넷을 샅샅이 뒤져 병과 관련된 정보를 알아냈고 관련된 영어 단어 등을 익혔다. 보호자가 한 명밖에 있을 수 없었기에 여자가 아이와 병동에 함께 남았고 남자는 집으로 돌아갔다. 밤새 아이의 경과를 확인하기 위해 의사와 간호사가 번갈아 다녀갔고 그녀는 그때마다 계속 일어나야 했다. 그러다 새벽이 다되어 겨우 한 시간 정도 눈을 붙이고 깨어보니 남자에게서 긴 문자가 와 있었다. 문자를 열어보기 전, 여자는 그래도 내심 염려하는 문자이겠거니 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그녀의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역시 이 남자는 너무나 창의적이다!). 그가 보낸 문자 내용은 이러했다. ‘아이의 병은 **병(병명)이 아니고 그냥 면역력이 약해져서 온 병이다. 내가 바지 두 개씩 입히라고 할 때 무시하고 대충 입히고 대충 먹이더니, 그래서 이런 병이 찾아온 거다. 나는 아이가 퇴원하면 바로 한국으로 돌아가겠다.’  


이번에도 그녀는 눈을 의심했다. 남도 그렇게는 안 할 것 같았다. 누구는 그랬다. 이 남자는 여자를 지배하려는 성향이 강해서 말을 듣지 않는 것을 못 참아할 거라고. 설사 정말 옷을 춥게 입혀서 걸린 병이었다고 치더라도 그 상황에 할 말은 아니었다. 그녀는 그날 막연하게 남겨두었던, 남편과 혹시 다시 좋아질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도 고이 접었다. 그래도 아이에게는 아빠가 필요할 것이고 10년을 함께 살았는데 다시 한번 좋은 쪽으로도 생각해보자고. 마음이 편해지면 자연스럽게 상대방을 더 넓은 마음으로 보듬어줄 수 있지 않을까 하고. 혹시 떨어져 있으면 애틋한 마음이 생기지 않을까 하고. 자신은 없지만 그래도 한 가닥 희망을 가슴 한편에 품었었던 그녀였다.  


남자는 아이가 퇴원한 다음날 비행기표를 끊어서 한국으로 돌아갔다. 아이와 여자가 걱정되어 왔다더니, 실컷 관광을 즐기다가 결국 아이가 퇴원해서 가장 약하고 필요할 때 가버렸다.  


여자는 한 달 후에 있을 이혼 확인 기일에 꼭 한국에 돌아가서 정리를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원래는 그 역시도 미련때문에 가능성을 열어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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