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임신2. 임신이 욕심이었을까

장거리 부부의 현실 고민

by 행인A

임신 5주 차.

1년 6개월 전, 2021.03.16에 쓴 글이다 (중간 중간 현재 2022.09.21의 내 목소리도 나온다).



임신이 실수였나 싶은 마음이 들었다.

다시는 꺼내고싶지 않은 말이다.

그런데 오늘 솔직히 이 마음이 들었다.


상황 이해를 위해 좀 더 부연설명을 해보겠다. 나의 직장(보스턴)과 남편의 직장(오하이오)은 차로 12시간 떨어져있다. 현재 나는 남편과 오하이오 주에 살면서 재택근무를 하고 있다. 코로나 바이러스 유행의 여파로 2020년 3월 경 시작된 재택근무는 1년 넘게까지 이어져 오고 있고, 많은 직원들은 코로나 유행이 끝나도 계속해서 재택근무 할 의향을 갖고 있지만 다시 오피스에서 일할 날을 꿈꾸는 사람도 있어 회사 정책이 어떻게 바뀔지 미지수다. 그에 따라 나도 보스턴으로 거주지를 옮겨야 할지 계속 오하이오에 있어야 할지 불확실하고, 아이는 어디서 낳고 어디서 키워야 할지 불확실하다.


나의 직장과 남편의 직장은 12시간 11분 떨어져 있다. 우린 미국 장거리 부부다.


옵션은 세 가지였다.

1. 내가 보스턴에서 아이를 혼자 키우는 것

2. 남편이 오하이오에서 아이를 혼자 키우는 것

3. 남편과 내가 오하이오에서 같이 아이를 키우되 주양육자는 남편이 되고 나는 주 3일 정도 비행기로 오피스를 출근하는 것.

우리 부부는 마지막 옵션을 염두에 두고 임신을 계획했다. 남편과 함께 보스턴에서 아이를 키우는 건 남편 직업 특성상 불가능했고, 아이를 한국 양가 부모님께 보내는 건 가능한 피하고 싶었다. 풀 재택근무가 가능해져서 내가 계속 오하이오에 있으면서 재택근무를 하며 아이를 남편과 같이 키운다는 이상적인 시나리오가 있었지만, 비자 문제가 걸렸고 실현 가능성이 낮아서 이 시나리오는 옵션이라기 보단 기적으로 분류되었다.

(지나고 나서 느끼는 거지만, 우리는 정말 아무것도 몰랐고 정말 무모했다.)



보스에게 임신 사실을 알렸다.

보통 유산 위험이 낮아지는 13주 이후 회사에 임신 소식을 알리는게 보통이지만, 나의 경우엔 비행기를 이용한 여러 출장과 재택근무 등의 근무조건 협의를 위해 하루빨리 논의해야했다.

나의 보스는 착하고 좋은 사람이다. 보스는 "Life is complicated. We will find a way."라고 괜찮을 거라 말해주었다. 하지만 내가 보스턴에서 매일 오피스 출근을 할 거란 자신의 기대를 벗어나는 계획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 실망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그것도 매우 실망한 표정. 곧 다시 친절한 표정을 지으며 임신을 축하해 주었지만, 그 찰나의 표정은 강렬했고 내 마음에 남았다. 보스는 보스턴의 좋은 점에 대해서 계속 이야기했다. 같이 길을 찾아보자는 말은, 내가 보스턴에서 혼자 아이를 키울 수 있도록 길을 찾아보자는 말로 들려서 고마웠으나 조금 찜찜했다.




아이를 가진 게...

실수였을까.

타주에 있는 직장을 택해놓고 아이를 가진 게...

실수였을까.

나의 오만이었을까.

남편이 갖는 압박감에 대해 정교하게 고려하지 못한 게...

외국인 비자에 대해 엄밀하게 살펴보지 못한 게...

실수였을까.


의미 없는 생각이, 의미 없는 생각인 줄 알면서도, 자꾸 머릿속을 맴돈다.


애초에 일주일에 3일을 아이 곁에 있어 주지 못하면서 아이를 갖고자 한 게 무슨 엄마인가 싶은 생각이 든다. (아니다 그래도 엄마 맞다. 정신차려 과거의 내 자신!)

그렇게 일을 놓고 싶지 않았으면, 아이를 갖지 말았어야 했나 하는 생각도 든다.

(괜찮다. 일을 하면서 아이를 키워도 된다. 완전 된다. 정신차려 과거의 내 자신!)

나의 자기 중심성이 부끄럽다.

욕심이 과했다는 생각을... 내 욕심이 과해서 가족을 힘들게 한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아직 임신 5주밖에 안되었고 여전히 12주까지는 유산의 가능성이 높다.

그렇지만 유산을 바라지 않는다.


나에게 찾아와 준 아이가 고맙고

이 아이가 나의 이런 생각을 모르고

그저 행복했으면 좋겠다.


스스로에게 말해본다.


안된다 싶으면 그때 그만두면 돼.

그 전까진

월급을 다 써서라도 방법을 찾을 거야.

방법이 있을 거야.







keyword
작가의 이전글임신1. 임신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