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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인A Nov 24. 2022

육아8. 가난한 유학생의 육아용품

2022.03 San Diego 4개월 아이와 여행

1. 중고로 버티면 시간은 간다.


우리집 물건들은 그릇부터 쇼파까지 모두 중고였다.

일단 생활비가 빠듯하고

타주 이사 혹은 귀국으로 인해 떠난 사람들이 놓고 가는 괜찮은 중고 물품도 워낙 많고

나 역시 언제 이 곳을 떠날지 모르는 상황이니 제대로 된 가구를 들일 필요는 없다고 느꼈다.


아이가 생겼다고 소비습관이 하루아침에 달라질 리는 없다.

남편과 나는 어지간해서는 돈을 안 쓰며 살았던 사람들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나는 대학생 시절부터 최저생계비 수준으로 한 달 벌어 한 달 살면서 절약하며 쓰는 생활을 한게 1n년이라 돈을 최대한 안 쓰면서 사는게 습관이 된 사람이었고,

남편은 세상이 아름답고 만족스러워 왜 굳이 돈을 써가며 소비를 해야하는지 (쉽게 말해, 천원짜리 식사나 만원짜리 식사나 십만원짜리 식사나 모두 맛있고 행복^^) 욕구를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둘이 살 땐 문제가 없었다.

아이가 태어나고도 한동안은 문제가 없었다.

한인 커뮤니티에 올라오는 중고 육아용품이나 지인이 나눔해준 물건을 썼다.

몇 달 안 쓸 물건이었고 특히 아는 한국인들이 나눔해준 물건은 품질이 좋고 깨끗해 믿을 수 있었다.


하지만 아기와 한번 여행을 다녀오고, 생각이 바뀌었다. 



2. 생각이 바뀐 계기: 여행


남편의 4박5일 학회 일정을 동행해 4개월 아이와 샌디에고 (San Diego)에 다녀왔다. 

집나가면 고생이라는데 아기와 같이 집나가면 개고생이었다. 돈까지 아끼면 개개고생이었다.


아기는 자야하는 시간인데 공항이 너무 밝고 안내방송으로 시끄러워서 자꾸 깼고, 아기는 똑바로 누워자는게 익숙한데 카시트에서 답답하게 자야하거나 앉긴 채로 자야해서 아기가 매우 낯설고 불편해했다. 나의 멘탈이 탈탈 털렸다. 비행기에선 나의 팔과 다리가 6시간을 꼼짝하지 못한채로 아이의 침대가 되어주어야 했다.


아기랑 여행갔던 다른사람들의 이야기에서 봤던 것들-

한 손 핸들링이 가능한 가벼운 유모차, 비지니스 혹은 넓은 좌석, 항공 내 베시넷, 경유없는 항공편, 생체리듬을 고려한 비행기 스케줄, 안락한 호텔, 일정내내 차량렌트 등은 우리에게 없었다.


대신

녹이 슬고 낡아 양손 핸들링도 어려운 중고 유모차, 비행기 꼬리부분 이코노미석, 경유와 3시간 대기, 새벽비행기와 밤비행기 (새벽에 경유지에서 3시간 대기하고 경유해서 아침에 도착하는 일정..), 아기를 데려오기엔 맞지 않은 젊은이를 대상으로 했던 호텔, 겨우 하루 차량 렌트... 

이것들이 우리 여행에 있었다.


남편과 둘이 가는 여행이라면 아무것도 문제가 될 것이 없는 요소였지만 아기가 있음으로 인해 모든 것이 불편하게 느껴졌다. 성격이 수더분하고 초긍정적인 남편은 아이랑 여행을 왔다는 것에 매우 만족했고 내가 느끼는 불편을 못느끼는듯 싶었지만, 나는 불편했다. 그럼에도 편함을 위해 쓰는 돈을 아까워하는 남편, 정확히 말하면 그런 돈을 써본적이 없는 학생이라 돈을 아끼고 불편함을 감수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남편에게, 나는 이 사람에게 어디까지 맞춰야하는 생각을 했고, 나도 오랜 유학생활로 돈 아끼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운 사람이었으나 나는 이제 그 단계는 아니구나 앞으론 돈을 쓰는 단위가 달라져야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3. 돈을 써야 될 곳과 말아야할 곳을 구분하기


육아 경험치가 쌓이면서 어떤 육아용품은 새 것으로 사야하는지, 어떤 용품에는 돈을 아끼지 않아야하는지 배우게 되었다.

 

*돈을 써야하는 용품: 자주 또는 오래 쓰는 용품

- 음식 관련: 젖병, 젖꼭지, 숟가락, 식판, 베이비브레짜 (중고를 샀으나 생각보다 제품 내구성이 좋지않아 잘 고장난다. 분유수유를 생각한다면 a/s를 위해서라도 새 제품 구입이 낫다)

- 유모차: 여전히 60만원 이상의 유모차는 불필요하다고 생각하지만 가볍고 폴딩/언폴딩 쉬운 유모차가 필요

- 카시트: infant 카싯을 졸업한 다음 쓰는 카싯은 3년 이상쓰므로 필히 신제품 구매

- 하이체어: 굉장히 자주 & 오래 씀

- 매트리스: 침대는 중고를 써도 매트리스는 새 것을 사자


*돈을 안 써도 되는 용품

- 0-3개월 육아템: 모빌, 스윙, 아기체육관 등. 중고로 충분. 

- 아기 옷: 특히 자주 못 입히는 외출복은 중고가 최고. 

- infant 카시트 (일명 바구니카싯): 보통 6개월 이내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아 그냥 중고 써도 됨 (단 expiration date 반드시 확인 필요)

- 책: 깨끗한 중고로도 충분. 필요하면 그때 새 책으로 구매해도 됨. 

- 장난감: 컨디션 좋은 중고가 있다면 좋음. 특히 12개월 이후엔 입으로 들어가는 빈도가 적어 장난감은 중고로 충분.



4. 결론: 님 생각이 다 맞아요


중고를 쓰든

최고급을 쓰든

인생에서 몇 번 없는 육아시기,

주머니 사정이 어려운게 아니라면

육아용품 소비는

부모 마음대로 하는게 다 맞다.

대신 애 핑계는 대지말자. 부모 만족이다.


하지만 주머니 사정이 여유롭지 않다면

(이를테면 가난한 유학생이라면)

당당하게 똑똑하게 소비하자.

적극적으로 중고를 쓰고

중요한 물건에 돈을 쓰자.


어쨌든 아기에게 최고의 장난감은 엄마아빠다.

최고의 모빌은 엄마아빠 얼굴이고

최고의 사운드북은 엄마아빠 목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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