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행인A Oct 11. 2022

임신9. 대단하다는 말이 불편하다

그냥 새콤달콤이라도 하나 사주시던 지요

나를 안쓰러워하는 사람들과 대단하다 여기는 사람들을 종종 만난다.

실제로 많은 이들이 나에게 "대단하다"는 말을 한다.

"남편도 없이 혼자 지내서 어떡해요... 대단하네요..."

"막달까지 일하세요? 대단하세요"

"임신이라니 대단하세요. 저는 내 몸하나 챙기기도 어려운데..."

"타지에서 혼자 아이 낳고 키우는 결심을 하다니 정말 대단해요"

"아들은 에너지가 많아 힘들다는데 아들 엄마 대단해요"

"일하고 공부하면서 아이를 키우다니 정말 대단해요"


고백하건대, 나 또한 다른 사람에게 "대단해요"라는 말을 한 적이 많았다.

박사과정 공부를 하며 아이 둘을 키우는 선배에게 그랬고 사고로 장애가 생겼지만 포기하지 않고 할 수 있는 운동을 해나가는 사람에게 그랬다. 나쁜 의도는 없었다. 진짜로 그 사람이 대단해 보였고 열심히 사는 사람을 치켜세워주고 싶기도 했다.  


그런데 내가 "대단하다"는 말을 자주 듣는 입장이 되어보니, 웬걸, 진짜 기분 잡치고 찝찝한 말인 게 아닌가?

두 아이를 입양한 셀럽의 인터뷰에서 "대단하다"는 말이 가장 불편하다는 말을 보고 나만 그런 게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생각해보면, 내가 "대단하다"라고 했을 때 상대방 반응이 좋았던 적은 없었다. 보통 떨떠름했다. "그냥 하는 거지 뭐." 정도의 반응. 상대도 내가 악의가 없다는 걸 알기에 더 심한 말을 할 수 없었으리라.



대단하다는 말은 왜 기분이 나쁠까?


대단하다는 말은 상대와 나 사이에 벽을 만든다. 나를 다른 세계 사람으로 만들어 배제시키는 느낌이다. 그래서 내가 상대에게 힘들다는 말을 하기 어렵게 만들고 소외감을 느끼게 한다. 그러면서 상대적으로 그 말을 한 상대방은 안정된 곳에 있다는 느낌을 준다. 안전한 곳에서 호들갑 떠는 느낌.



대단하다고 생각해서 대단하다고 하는데 왜 그것을 고깝게 듣냐고 물으신다면


1. 일단 말의 뉘앙스가 중요하다.

당신이 진심으로 상대를 대단하다 멋진다 나도 저렇게 되고 싶다고 여긴다면 상대도 그 마음을 느낄 것이다. 이 경우엔 상대가 고깝게 여길 거란 걱정은 접어 두시라.


2. 대단하다는 말 대신 다른 식으로 표현할 수 있다면 그래 주길 바란다.

예를 들면, "아들 둘을 키우시다니 대단해요" 대신 "아이들 존중하면서 키우시는 거 배우고 싶어요"라든가.

"막달까지 일하시는 거 대단해요" 대신 "같이 일할 수 있어서 든든해요"라든가.

사실 많은 경우엔 침묵이 낫다.


3. 당신이 대단하다고 말하는 그 삶, 얼마나 알고 있는가?

어쩌면 상대방은 "대단은 무슨. x같은데ㅋㅋ"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대단하다, 대견하다, 안쓰럽다 등등의 마음을 느끼신다면 그냥 하이파이브 한번 해주시거나 새콤달콤이라도 하나 사주시면 좋겠다.


p.s. 이 글을 처음 쓴 뒤 일년이 지난 지금, 누군가 대단하다고 하면 "감사해요" 혹은 "맞아요. 저도 잘모르고 시작했는데 대단한 일이더라구요" 하게 되었다. 익숙해진건지 여유가 생긴건지 모르겠다.





작가의 이전글 [유학6] 부담감. 실패에 대한 두려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