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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인A Oct 15. 2022

임신10. 아킬레스건 파열 수술한 남편 간호하기

인생은 한 치 앞을 모른다

남편에게서 전화가 왔다.

보스턴에서 혼자 자유로운 임산부 생활을 즐기고 있던 임신 28주 즈음 어느 날이었다. 

불길한 전화는 진동소리부터 이상하다. 


평소와는 다른 목소리.


"놀라지 말고 들어. 농구하다가 다쳤어. 지금 병원에 가는 중이야."

"병원? 너가 다쳤다고? 얼마나?"

"슛하고 착지할 때 뒤에서 누가 찬 것 같았거든. 그땐 괜찮아서 굳이 응급실 안 갔는데 점점 안 좋아지네. 인터넷 찾아봤는데 아무래도 증상이 아킬레스건 다친 것 같아. 수술해야 할 수도 있대. 일단 의사 만나보려고. 다시 연락 줄게."


WHAT?????


임신한 몸으로 남편도 아는 사람도 없는 12시간 거리에 떨어진 타지에 살면서 만약 비상으로 응급실에 가야 하는 상황이 오면 어떡하지 생각해본 적이 있다. 하지만 시나리오에서 급하게 병원에 가야 하는 쪽은 임산부인 나였다. 남편이 수술하는 건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남편은 농구를 좋아했다. 

중학교 때부터 꾸준히 농구를 해왔고 미국에 와서도 코로나 락다운 때를 제외하곤 매주 했다. 선수 출신은 아니었지만 시 대표로 도 대회에 나갈 정도의 실력이었다. 우스갯소리로 35살 되면 농구 외에 다른 종목을 시도해본다고 했다. 보통 35살 전에 무릎, 발목, 어깨 중에 하나가 다쳐서 복귀가 어렵다나. 

남편은 31살이었다.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던) 시간이 흐르고 다시 전화가 왔다.


진단은 아킬레스건 완전 파열. 

3일 뒤 전신마취 수술에서 인공물을 이용해 끊어진 아킬레스건을 재건한다고 한다.

그때까진 마약성 진통제를 먹으며 버텨야 한다고 했다 (한국이었으면 바로 수술을 했을까?)


발은 아예 딛지 못한다고 했다. 거의 침대에서만 생활하다가 꼭 움직여야 하면 엎드린 채 포복으로 다니거나 무릎을 바퀴 달린 의자에 올려두고 의자를 끌며 다닌다고 했다. 

선사시대 배경 드라마에서 발목을 잘라 노예로 부리는 형벌에 처한다는 장면이 떠올랐다.



바로 다음 날 출발하는 비행기를 예약했다. 

남편은 굳이 오지 않아도 되다고 했지만 그래도 전신마취 수술이라는데 곁에 있어 주고 싶었다. 

결혼을 결심한 이유 중 하나는 아플 때 병원에서 당당히 "법적보호자"가 되어주고 싶기 때문이었다. 


가족돌봄 휴가 신청을 위해 보스와 면담을 요청했다.

재택근무에서 오피스로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다시 재택근무를 해야 한다고 양해를 구해야 하는 상황이라 난처했다. 보스도 난처했지만 상황이 상황인 만큼 양해해주고 남편을 잘 돌봐주라고 했다. (감사감사)

보스는 남편이 과격하게 농구할 때마다 불안 불안했는데 결국 사고가 났다는 내 말을 듣더니 지금 너의 말투랑 눈빛이 지난번 자기가 바이크를 타다가 다쳤을 때 자신의 와이프 말투 눈빛 비슷하다고 했다. 

"See? I told you!"

"그것 봐. 내가 이런 일이 있을 줄 알았어. 그러게 내가 뭐랬어! 조심 좀 하라고 했지! 으휴 못 살아!" 하는 말투. 하지만 애정과 걱정이 담긴 눈빛. 그는 가족 얘기를 할 때마다 굉장히 행복해 보인다. 



보스가 마지막에 했던 말이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다.

"Marriage life is all about negotiation." 

(결혼생활은 협상이 전부야) 

그리고 덧붙여진 말. 

"네가 남편이랑 같이 울고 웃으며 오래오래 협상하며 살길 바래." 


이 사람과 평생 지지고 볶으며 협상하는 삶. 

결혼생활을 표현하는 그 어떤 말보다 와닿았다.

그렇다. 우리는 같이 잘 살기 위해 각자의 인생을 테이블에 올려두고 협상하는 중이다.

목적이 같다면 인생을 건 이 기나긴 협상에서 둘 모두 승리자일 것이다. 


 


수술을 마치고 3주간 옆에서 재활을 도왔다. 

다시 걷는데 3개월이 걸린다고 했다. 뛰는 데는 6개월, 자유롭게 격한 운동을 하는 건 1년 후.


남편은 수술 후 4일간은 마약성 진통제로 버텨야 할 만큼 괴로워했지만 

그 이후론 오랜만에 찾아온 휴식을 행복하게 즐기는 듯 보였다. 남편은 모든 물건을 침대에서 손 닿는 거리에 세팅해두고 하루 종일 넷플릭스로 그동안 못 본 n년치의 한국 드라마와 미국 드라마를 보았다. 

 

문득문득 열받고 서러웠다. 

"누구는 임신한 몸으로 재택근무하며 밥 해서 침대까지 날라주고 먹으면 치워주고 중간중간 갖다 달라는 거 갖다 주는데 누구는 하루 종일 침대에서 드라마만 본다니!! 다른 임산부들은 남편이 집안일해준다는데!!"


하지만 좋은 마음이 더 컸다. 

곁에 있어줄 수 있어 감사했다. 두고두고 바가지 긁을 거리(내가 임신했을 때 너 수술해서 간호해줬다 나한테 잘해라!!)가 생긴 것 같아 기분이 좋았고, 무엇보다 한참 태동이 활발할 때 남편과 같이 이 시간을 나눌 수 있어서 좋았다.




인생은 정말 한 치 앞을 모른다는 걸

남편의 수술로 더욱 실감하게 되었다.

온 마음을 다해 후회 없이 살자.

이 순간이 마지막인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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