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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인A Oct 21. 2022

임신 11. 당분간 없을 둘만의 여행

뉴욕. 철없는 예비부모의 마지막 발악.

임신 34주. 남편과 뉴욕으로 여행을 다녀왔다.


보통 태교여행은 임산부의 컨디션이 좋은 20-28주사이에 많이 간다. 우리 부부도 그때쯤 뉴욕이든 LA든 가자고 계획했지만 남편의 아킬레스건파열 수술로 취소되었다.


반깁스를 하고 절뚝이며 걸어야하지만 어쨌든 걸을 수는 있게된 수술 후 5주 정도 지난 시점이 되자, 우리는 결국 뉴욕여행을 지르고야 말았다. 이번에 안가면 언제쯤 다시 둘이 여행을 갈 수 있을지 모른다. 십년 뒤? 이십년뒤? ...


남편은 오하이오에서 비행기를 타고 뉴욕으로,

나는 보스턴에서 기차를 타고 뉴욕으로 가서

뉴욕 맨하탄 거리에서 만났다.


34주 배불뚝이 임산부 여자와 반깁스를 하고 걷는 남자의 여행.

계단이 많은 곳에서 disability 서비스를 이용하려고하면 휠체어를 가지고 온 사람이 남자와 여자 둘 중에 누가 휠체어가 필요한 건지 두 명이 다 필요한건지 우리 둘을 번갈아가며 쳐다봤다.

 

택시비 아까워하지 말고 쉬엄쉬엄 다니자고 결심했으나

소싯적 돈 아끼며 새벽부터 밤까지 쉬지않고 배낭여행 다니던 짬바는 어디 안가고

하루에 만4천보를 걷는 여행을 하고야 말았다.

그래도 좋았다.

몸은 약해졌으나 마음은 여전히 20대인 서로를 보며 웃었다.


"ㅋㅋㅋㅋㅋ너는 수술한지 얼마 안됐는데 이렇게 다녀도돼? 택시타고 오라니까?"

"ㅋㅋㅋㅋㅋ너는 배 뭉친다면서 계속 이렇게 걸어도 돼? 숙소에서 쉬라니까?"

"싫어 ㅋㅋㅋㅋㅋㅋ 나 아직 괜찮아!!! 나 맨날 만보 넘게 걷는 여자야!!"

"나도 싫어 ㅋㅋㅋㅋㅋㅋ 중간중간 쉬면서 가면 할 수 있다고!! 예전보다 더 발목 튼튼해져서 농구 다시 하고 말거야!"

 

 

돌이켜 생각해보면,

우린

나이듦에 저항하고

곧 다가올 부모라는 역할에 저항하는

철없는 애들이었다.

뉴욕은 우리의 마지막 발악이었다.




남편과 나는 21살때부터 동갑 친구이자 연인이다.

사귀기 전 친구였던 21살 여름, 그는 북부-동부유럽 중심의 여행을 갔고, 나는 중부-남부 유럽 중심의 여행을 갔다. 딱 하루, 일정이 프라하에서 겹쳤다.


프라하 구시가지 길에서 그를 만났다.

그는 돈이 없어 식비를 줄인 탓에 여행하며 10키로가 빠졌고 까맣게 타서 더 말라보였다.

그가 본 나도 크게 다르지 않았으리라. 너무 꾀죄죄하고 초라해서 내가 길을 물어보려고 다른 사람에게 가까이 가면 다른 사람이 내가 집시인 줄 알고 피했을 때였다.

그래도 우리는 반짝반짝 빛나는 젊은이들이었다.



지금은 21살이 아닌 31살이지만

그때보다 금방 지치는 몸을 갖고 있지

그래도 여전히 반짝반짝 빛날거라 믿어본다.

그의 빛나는 시간을 내 눈에 담을 수 있고

나의 빛나는 시간을 그의 기억속에 담을 수 있어

행복했던 뉴욕 여행이었다.



당분간 둘만의 여행은 힘들겠지만

셋이서 또 재밌을 거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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