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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인A Oct 25. 2022

임신14. 미국 출산 5일 간의 기록

잊지 않기 위해 기록해본다

시간 순 정리


- 수요일 (38 4): 검진에서 자궁경부 닫힌상태. 예정일 채워서 나올 걸로 예상.


- 목요일 저녁: 엇 배가 아픈데? 말로만 듣던 5분 간격으로? 헐? 이거 설마 진진통이야? 나 논문 리비전 담주에 넘기기로 했는데?? 남편도 논문 리비전 오늘 실험 끝냈고 내일 라이팅 해서 보낼 예정이었는데??? 설마 못 보내고 병원 가야 하는?? 안돼애애. 애 낳고 라이팅 할 수 없어.


- 목요일 밤 11-새벽1:30: 진통 사이사이에 미친 듯 집중해서 남편과 각자의 논문 리비전 끝내버림. 인생에서 가장 빠른 리비전. 보스에게 "자궁 수축이 심상치 않아 급히 리비전을 보낸다, 모든 정보는 어느 파일에 정리되어있다, 진통이 진행되지 않으면 낼 아침에 다시 얘기하자, 진통이 진행되면 뒷일을 부탁한다"는 내용의 이메일 보냄.


- 금요일 새벽-아침: 계속 4-5분 간격 진통. 병원 가기 전에 자두고 먹어두어야 한다는 선배맘들의 말을 생각하며 자려고 애썼지만 진통으로 자다 깨다 반복하다가 자길 포기함. 남은 동그랑땡에 계란물까지 묻혀 구워서 소꼬리 곰탕 한 사발과 같이 먹음 (먹는 것에 진심인 사람)


- 금요일 아침 7-8시: 병원 감. 1.5센티밖에 안 열렸으나 (WHAT? 이제 겨우?) 자궁 수축이 강하고 양수 파수 위험 있어 입원 결정. 보스에게서 "아무 걱정마라. 마무리는 내가 한다"는 메일 답장을 받음. Thanks♡


- 금요일 낮 12시: 계속 3-5분 간격 진통. 진통 세기에 비해 진행이 늦다고 곧 촉진제 투여 결정. 촉진제 투여하면 아무것도 먹지 못하니 급히 병원 지하 웬디스에서 햄버거 샐러드 콜라 감자튀김을 사옴. 무거운 음식인 햄버거는 별로 들어가지 않고 감자튀김, 샐러드, 콜라가 힘이 났다 (먹는 것에 진심인 사람2)


- 금요일 오후 12:30-3:30: 촉진제 투여. 1-3분 간격 진통.


- 금요일 오후 3:30: 고작 3센치 열림. What the??!? 왜 아직도 3센치냐!!!! 간호사와 함께 좌절함. 가족 카톡방에 자궁경부가 안 열린다고 얘기하니 아빠가 "열려라참깨"라고 답장 보냄 (oh my...)

에피듀럴 (무통주사) 투여 결정. 무통천국♡ (그러나 이후 허리 진통엔 에피듀럴 효과가 적음. 대신 남편과 연습한 각종 감통 자세가 주효함. 간호사도 계속 자세변경 도와줌. We are a good team. Thanks♡)


- 금요일 밤 11시: 고작 5센티 열림. 왔더xx!!!


- 토요일 새벽 3시: 갑자기 10센티 다 열렸다고 함. 간호사와 함께 흥분. 이제 푸시하자고 함. 갑자기? 호오~ 이제 말로만 듣던 푸시인가! (설렘).


- 토요일 새벽3:40 (39주 0일): 푸시 5번 했는데 나옴. 당황. 남편과 둘이 어리둥절. 응? 나온 거라고? 튼튼이가 으앙으앙 움. 남편이 탯줄 자름. 스킨투스킨 (skin-to-skin, 캥거루 케어) 한 시간 하는 동안 후처치 받음. 회음부 3도 열상(질부터 항문 초입까지 찢어짐을 의미)이라는 슬픈 소식. 그래도 아기는 건강해서 다행. 3.54kg 52.8cm.

밤새 같이 고생한 간호사가 Congratulations!!  축하해주며 고생했다고 얼음물을 줌. 출산 후 차가운 거 먹지 말라는 말이 갑자기 생각나 상온 물로 줄 수 있냐고 했다가 간호사가 "원래 물어보고 줬어야 하는데 미안. 너 좀 전에 팝씨클(과일맛 아이스크림) 두 개 먹었잖아 얼음물 필요한 줄 알았어." 해서 '아 맞네. 나 이미 차가운 거 먹었네 함'


- 토요일 아침: 회복실로 옮겨서 아침으로 퀘사디아. 모자동실로 모유수유 시작 (미국은 특별한 의학적 이유가 없는 한 모두 모자동실). 신기한 모유수유의 세계.


- 토요일 낮: 교회 언니들이 미국 병원 밥 말고 따순 음식 먹으라며 미역국 호박죽 불고기 각종 반찬을 배달해주고 감 (Thanks♡ 그런데 저는 이미 팝씨클을...)


- 토요일 밤: 산후조리 도와주러 한국에서 동생 도착. 조카 찍어주려고 당근 했다는 카메라 장비들로 아기를 찍기 시작. 조카바보 탄생.


- 일요일: 모유수유, 아이 케어, 산후케어, 회음부 케어 배움.


- 월요일 낮: 퇴원. 한국처럼 조리원은 없음. 집에서 바로 현실 육아. 집에 가니 쌓여있는 택배박스와 아파트 이웃 친구들의 축하 메시지가 있었음. Thanks♡




위기의 순간들


1. 더딘 진행

초산은 자궁문 열리는데 오래 걸리는게 보통이고 미국은 진통 시간이 오래 걸려도 최대한 기다려주는 출산 문화를 갖고 있긴 하지만, 양수가 터졌고 내가 열이나서 감염이 의심되는 상황이라 마냥 오래 기다려줄 수가 없었음. 진통은 진통대로 하고 제왕절개 하고 싶지 않아서 아기 내려오라고 열심히 움직이고 머릿속으로 자궁 열리는 상상함. 


2. 태아 심박수 불안정

태아 심박수가 떨어져 간호사가 급히 달려온 적이 여러번 있었음. 주로 내가 옆으로 돌아누울 때였는데 이상하게 이때는 나도 유독 불편했음. 요가에서 일명 아기 자세 (child pose)라고 하는 자세로 무릎 꿇고 엎드려있을 때 아기 심박수가 가장 안정적이어서 나는 주로 이 자세로 있었음. 


3. 저혈압

평상시 60-90 정도의 혈압을 가지고 있고 종종 컨디션이 안좋으면 50-80도 나오는데, 진통으로 이틀간 잠을 제대로 못자서인지 에피듀럴 부작용인지 계속 최고혈압이 85를 넘지 않음. 최고혈압이 70대가 나오기도 해서 2시간 마다 계속 혈압을 잼. 




출산과정에서의 느낀점은 다음 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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