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포닥은 얼마나 출산휴가를 쓸 수 있을까
미국은 법적으로 정해진 육아휴직 기간이 없다.
다만 출산 후 쉴 수 있는 출산휴가 개념의 기간은 있다. 우스갯소리로 미국 여자들은 애 낳고 다음날 출근한다더라- 하는 얘기도 있지만 (실제로 오전에 애낳고 오후에 시험보러온 대학원생도 본 적 있지만) 어쨌든 이들도 사람이고 출산은 사람의 몸에 큰 데미지를 주는 일이기에, 이들도 출산 후 6주는 몸을 회복해야하는 기간으로 알고 있다.
미국의 출산휴가는 주 마다, 회사 마다, 보스 마다 다 다르다.
나는 메사추세츠 주, 하버드 대학과 병원 소속 포닥 연구원이고, 나의 보스는 굉장히 family issue에 supportive 한 사람이다 (그렇지 않았으면 포닥 과정 중 임신/출산/육아를 상상도 못했으리라).
내가 소속된 곳에서는 일 년간 family issue (임신/출산/가족 간호 등)로 제도상으로는 총 26주까지 휴가를 낼 수 있다. 26주 중 8주는 회사에서, 8주는 주정부에서 월급을 지원받을 수 있다. 나머지 기간의 월급은 보스와 협의해야하는 것으로 안다. 이정도면 미국에서 굉-장히 후한 곳이다. (아직까지 이보다 supportive 한 곳을 보지 못했다).
문제는, 제도적으로 말고, 그래서 실제로 포닥 연구원이 얼만큼의 출산휴가를 쓸 수 있느냐다.
일단 답 부터하자면, 보통 포닥들은 6-12주 정도 출산 휴가를 쓰고, 나는 12주를 출산휴가로 썼다.
내가 있는 곳의 분위기는 이렇다. 한 달을 쉰다고 하면 "빨리 오네?" 싶고, 두 달을 쉰다고 하면 "그렇군. 그럴만하지" 싶고, 세 달을 쉰다고 하면 "충분히 쉬네" 싶고, 세 달 이상 쉰다고 하면 "??????" 싶다.
나는 고작 2년 계약(이후 계약은 성과/상황에 따라 결정)한 포닥 연구원이다. 많은 사람들은 포닥 기간 중 실적을 폭발적으로 내서 이후 좋은 job을 갖길 원하고, 포닥을 고용한 보스 역시 같은 기대를 가진다.
내가 아는 포닥 연구원들은 출산 후 2주만에 혹은 4주만에 복귀한 사람도 있었지만, 6-8주 출산휴가를 갖는 것이 흔했다. 포닥이 8주를 초과해 출산 휴가를 쓰는 것은 드물었다. 나도 8주를 쓸까 고민을 했으나, 어차피 8주 후 복귀해도 연말이라 다들 휴가를 쓸 것 같아 (내가 소속된 곳에서 12월 중순~말은 암묵적으로 일의 템포를 늦추고 쉬는 기간이다) 그냥 눈 딱 감고 12주를 썼다.
내가 출산휴가 8주와 12주 중 고민하고 있다는 것을 넌지시 보스에게 알렸을 때,
보스는 자신은 너가 몇 주간 maternity leave를 사용하든 거기에 어떠한 expectation이 없으며, 그저 니가 결정한 그 숫자를 나에게 알려주기만 하면 된다. 아기의 생애초기 폭발적인 성장을 보는 것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일이며 나는 너가 new mom으로서 행복한 시간을 충분히 보내길 바랄 뿐이다- 라고 했다.
많은 포닥들이 출산휴가 기간 중에도 일한다.
나도 12주를 쓰긴 했지만 그 기간 중 10주는 회복에 집중하고 나머지 2주는 어느정도 일하면서 복직을 준비하는 기간을 가졌다. 기한 내에 처리해줘야하는 논문 리비전이 와서 일해야 하기도 했지만, 그게 아니더라도 1-2주 정도는 미리 일을 시작하면서 우리가 생각해놓은 시스템 (맞벌이하며 교대로 아이를 보는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는 지 알고자 했다.
선배 워킹맘들은 나에게 출산휴가 기간 중 일하지 말라고 조언했다.
연구소에 있는 여자 교수님들은 한 달정도 니가 일을 안한다고 해서 큰일나지 않는다고, 하지만 그 기간은 너와 너의 가족들에게는 너무나도 소중한 시간이라고 했다. 본인은 2-3주 동안 (고작 출산휴가를 2-3주 밖에 안썼단 말인가) 출산휴가를 쓰면서 미팅도 참석하고 메일도 주고 받았는데 그게 너무 후회된다고 했다.
나는 그들의 조언을 듣고 여러 고민을 하다가, 차라리 출산휴가 기간을 늘려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중 마지막 2주 정도는 워밍업 기간을 갖는게 낫겠다 생각했다. 풀타임으로 일하는 시기를 빨리 시작하는 것이 더 부담스러웠다.
만약 후배 포닥 연구원이 출산휴가에 대한 조언을 구한다면,
"본인 마음 편한대로"하는게 정답이라고 하고 싶다. 최적의 출산휴가 기간은 사람마다 다르다. 육아를 직접하길 원하는 정도, 업무강도, 재택근무 가능 여부, 아이를 돌봐줄 사람/시스템이 있는지의 여부, 남편의 육아참여 정도 등이 변수다. 조직 내에서 통상적으로 acceptable한 휴가 기간을 최대한 활용하라고 하고 싶다. 말해 놓은 기간보다 일찍 복귀하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으니 차라리 넉넉히 휴가기간을 신청하는 것이 낫다.
출산휴가와 육아휴직이 길게 보장되는 한국이 부럽다. 공무원이나 공기업에서 3년까지 육아휴직을 쓴다는 걸 보고 깜짝 놀랐다. 와우 3년이라니. 그런데 막상 일을 시작하면, 그때부터 family issue에 supportive 한 것은 미국이나 외국계회사다. 아이가 아파서라면 미팅 시작 10분전 못간다고 말하고 당일 휴가를 내도 모두가 이해해준다. 9개월 이상의 휴직과 가족 일에 관대한 문화 둘 모두가 허락되면 좋겠다.
모든 육아동지들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