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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인A Oct 04. 2022

[유학5] 코로나 시대 졸업식

한국에 가고 싶지만 갈 수 없을 때

2020 12, 박사 졸업식.


미국 대학의 졸업식은 굉장히 성대하다. 한 명씩 일일이 이름을 불러주고 휘장을 걸어주며, 이 학교에서 학위를 받고 졸업한 것에 대해 엄청나게 proud를 느낄 수 있게끔 판을 깔아준다.


나는 평소 "식"이라는 것을 싫어해서 졸업식을 한 번도 참석하지 않았다.

그래도 마지막 학위인 박사학위인 만큼 그 번지르르한 "식"에 한 번도 미국엔 와보지 못한 부모님을 초대해 같이 가고 싶었다.

여기가 내가 사는 마을이고 여기가 내가 다니는 학교라고 보여주고 싶었고, 말로 전하지 못한 고마움과 미안함을 전하고 싶었다. 이렇게 딸을 잘 키웠다고 스스로 자랑스럽게 여겨도 된다고 말하고 싶었다.

그러나

코로나 때문에 졸업식은 온라인으로 진행되었고 부모님은 미국에 방문 할 수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굳이 졸업식에 참석할 이유는 없었다.




무척이나 한국에 가고 싶은 날이 서너 달째 계속되고 있다.


미국에서 직장을 갖고 사는 나에게

"한국에 가고 싶다"는 마음은

"쉬고 싶다"

"다 그만두고 싶다"

는 마음과 맞닿아있다.


비자 문제로 예상보다 졸업이 1년 앞당겨지면서 기한 내에 논문을 쓰기 위해 애썼었다. 무리하면서 미래의 에너지까지 끌어다 썼고, 그 결과 지금 난 에너지가 없다. I deserve to be exhausted.


충전을 하고 싶다.

40-50% 정도로 살지 않고 80% 이상 충전된 채로 살고 싶다.


충전을 위해서 많은 사람들이 아는 그 행동들이 필요하다.

영양가 있는 음식 먹기, 운동하기, 햇볕 쐬며 경쾌한 야외활동 하기, 만족스러운 사회활동 참여하기, 재밌는 취미활동, 머리를 즐겁게 해주는 책 읽기, 영적 건강을 위한 종교활동 등.


이 모든 걸 한다고 가정해도 어딘가 채워지지 않은 느낌이 드는 건, 한국에 가서 가족을 보고 싶은 마음 때문이다. 엄마 아빠 동생 친구들, 전화나 카톡으로는 만날 수 있지만 실제로 보지 못한 지 1년 6개월이 지났다.

보고싶다.


세상은 참 빨리 바뀌어서 1년 6개월 만에도 많은 것들이 달라진다.

1-2년 만에 만날 때마다, 우리의 변화가 눈에 선명하게 보일 때마다 마음이 시리고 쓰리다.

언제까지고 내 옆에 내가 기억하는 모습으로 있을 줄 알았던 사람들이 낯설게 느껴질 때,

나는 가슴에 구멍이 뚫린 듯한 느낌을 받는다.




한국에 가고 싶다.

나 해냈다고 말하고 싶고, 부모님에게 고생했다는 말도 듣고 싶다.

한번 안기고 싶고 안아주고 싶다.


코로나에 막혀, 비자에 막혀,

적어도 앞으로 6개월 간은 내가 한국에 갈 수도, 엄마 아빠가 미국에 올 수도 없다.


그래서 100% 충전까진 안될 것이다.

그래도 80% 는 충전된 채로 살아야겠다. 할 수 있는 것들을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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