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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인A Oct 02. 2022

임신6. 엄마가 되는 것이 두렵다

21주. 나만 이상한가?

그렇다. 산전우울증(임신중우울증)이 있는 것 같다.

진단을 받은 건 아니다. 계속 우울한 생각이 나면 산전우울증이 있는 건가 하고 넋두리할 뿐이다.

많은 산모에게 발생한다고 알려져 있으니 내가 그 중 하나라 해도 놀랍지 않다. 더군다나 임신 전 우울증 경험이 있는 산모가 산전우울증이 발병할 확률은 그렇지 않은 산모보다 5배 높다고 하니 우울증 경험이 있는 나로서는 더더욱 놀랍지 않다.


놀랍지 않으나 서글프긴 하다.


다른 엄마들은 초음파를 보면서 귀엽고 설레서 어쩔 줄 모른다는데 나는 그렇지 않다.

그냥 초음파를 보면 TV보는  다. 나와 상관 없는 다큐가 나오는 TV.

태동을 느껴도 그냥 그런가 보다 한다. 배에 무언가 움직이지만 그것이 내 아이란 생각은 들지 않는다.

내가 느린 기질의 사람이라 변화에 다른 사람보다 매우 느리게 반응한다는 건 알고 있다. 아마 아이를 낳고 그 아이를 키우면서 관계를 쌓아가면 이 아이가 내 아이구나 내가 엄마구나 하고 자각하게 될 것 같다.


그냥 정말 솔직하게 내 마음을 펼쳐놓으면 이렇다.


일단, 아이를 너무 빨리 가진 거 같다.

내 나이 31살, 만으로 29살. 결혼 2년 차에 임신을 했다. 빠르지도 늦지도 않은 시기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내가 주관적으로 느끼기에 빠르다. 친한 친구들과 자주 만나는 주변 지인들이 미혼인 게 크다. 내가 익숙한 사람들은 자신이 하고 싶은걸 하기 위해 유학길에 오른 고학력 싱글 혹은 커리어를 위해 아이를 미루거나 낳지 않기로 결정한 여성들이다.

 

아이가 태어나면 내 삶이 사라질 것 같다.

엄마로서 새로운 삶이 시작되겠고 전에 모르던 기쁨을 알게 되겠으나, 내 자유는? 이제 자유로운 여행은 못 가는 건가? 나 3시간씩 아이쇼핑하고 음료 한잔 마시며 돌아다니고 싶은데 그런 건 이제 없는 건가? 생각하면 우울하다. 나는 꽤 즉흥적이고 즉흥적인 상황에서 오는 즐거움을 행복해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이제.... 못한다고 생각하니 우울하다.


그리고 커리어........




그렇다.

이제 와서 이런 생각을 하면 뭐하냐.

이런 생각을 왜 임신 전엔 안했냐고 물을 수 있다.

임신 전에도 했다. 괜찮을 거라 생각했다. 감수할 수 있을 거라 여겼다. 그래도 아이에게서 얻는 행복이 나에게 더 클 거라 생각했다. 근데 막상 배에서 뭐가 느껴지니 다르다.

두렵다. 매우.



그럼에도 아이가 건강하길 바란다.

무사히 임신과 출산을 마치고 건강한 아이를 만나길. 진심으로 바란다.

그리고 내가 그 아이에게 좋은 부모가 되어 줄 거라고 오늘도 다짐한다.




내 뱃속에서 꾸물거리는 존재야,

난 사실 네가 내 인생에 가져올 변화가 무척 두려워.

그래도 내가 감당할 만한 일이니 너가 나에게 와주었다고 생각할게.

그 과정에서 나도 더 나은 사람이 되어갈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할게.

표현이 많이 부족한 사람이지만 그래도 너한테는 아낌없이 사랑한다고 말해줄게.

기준이 높고 칭찬에 인색한 사람이지만 그래도 너에게는 작은 거에도 잘했다고 말해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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