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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인A Oct 05. 2022

임신7. 너는 왜 아이를 갖기로 했어?

임신 중기. 친구와의 대화.

임신 중기. 몸이 날아갈 듯했다.

특히 20-29주까지 컨디션이 최상이었다.

덕분에 일도 많이 했다. 좋다. 매일 지하철로 1시간 출퇴근을 했고 매일 만보를 넘게 걷고도 힘들지 않았다.

초기 때 너무 컨디션이 안 좋아서 그런지 분명히 몸무게는 늘었지만 몸이 가볍게 느껴졌다.


친구와의 만남도 부담스럽지 않았다.

당분간 없을 자유라고 생각하며 마음껏 친구들을 만나 맛있는 음식을 실컷 먹었다.


3명의 친구들과 만난 자리였다.

한 친구는 결혼을 앞두고 있었다. 예비신랑은 아이를 원하지 않았고 친구는 아이를 원했다. 그 친구는 딩크를 선택해야 할지 아니면 좀 더 예비신랑을 설득해봐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다.


친구가 물었다.

"너도 아이를 가질지 말지 고민했었어?"


"응. 고민 많이 했지."


"너는 왜 아이를 갖기로 했어?"


"나는 얼마나 살 지 모르겠지만 주어진 시간을 풍부하게 살고 싶었어. 엄마가 되면 자식에게 엄청난 사랑을 느낀다는데 그게 뭔지 궁금하기도 했고. 정확하게 말로 설명은 못하겠지만 나라는 사람에게는 아이를 낳고 키워보는 쪽이 인생이 더 풍부해지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자유가 없어지고 커리어에 집중 못하는 게 아쉽지 않아?"


"아쉽지. 엄청 아쉬워. 나는 내 시간과 공간이 유독 중요한 사람이거든. 그래서 내 인생이 끝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우울할 때도 있어."


"그래도 이제는 어쩔 수 없는 거 아니야? 이미 선택을 하는 시점은 지난 거잖아"

(한 친구가 이 말을 했을 때 다른 친구는 내 표정을 살폈다. 정작 나는 괜찮았다.)


"임신은 그렇지. 그래도 여전히 내 identity(정체성)에서 엄마를 어느 정도 비중으로 둘 지 선택할 수 있지."



모임을 마치고 집에 가는 길. 내 표정을 살피던 친구가 메시지를 보냈다. 기분 나쁘지 않았냐고.

나는 괜찮았다오히려 부모가 되는 이유, 부모가 되지 않는 이유에 대한 솔직한 대화가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결단코 아이를 갖지 않고 싶지도, 기필코 아이를 갖고 싶지도 않은 그 중간에 있다고 생각한다. 아침엔 그래 역시 딩크가 최고지 하다가도 저녁엔 그래도 아이가 있어야 하는 걸까? 싶을 수도 있고, 반대로 아침엔 아기가 너무 갖고 싶다가도 저녁엔 그래도 딩크의 삶이 더 낫지 않을까? 싶을 수도 있다. 이 문제에 있어서 처음부터 100퍼센트의 확신을 가진 사람은 드물 것이다. 장단점을 따져보고 무엇이 내가 더 행복할 수 있는 길인지 선택한다. 

선택의 문제다.


사람들은 제각기 다른 이유로 아이를 갖는다.

노후를 대비하려고, 아이가 귀여우니까, 남편과 나 닮은 아이가 궁금해서, 많이들 그렇게 사니까, 기타 등등.

누구는 이 이유들이 결국 부모를 중심에 둔 이유라고 한다. 아이에게 태어나고 싶냐고 물어보면 좋겠지만 그럴 수 없다. 그래서 어떤 이유로 아이를 원하든 그 이유 자체가 중요한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 이후가 중요하다. 부모로서 책임을 다하는 것이 중요하다.   



박사과정 때, Identity에 대한 수업을 들은 적이 있다. 교수는 본인을 설명하는 짧은 5개 키워드를 써보라고 했다.

누군가는 "대학원생" "여성" "흑인" 같은 명사를 적었고 누군가는 "cheerful (발랄한)" "curious(호기심 많은)" "sincere (진실된)" 같은 형용사를 적었다. 교수는 자신이 적은 5개 중 명사가 몇 개고 형용사가 몇 개인지 생각해보라고 했다. Women, Asian, Student 같은 명사들도 중요한 identity 지만 5개 키워드가 모두 명사인 건 위험하다고 했다. 너무 사회적인 시선을 신경 쓰거나 특정 타이틀에 나를 가두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면서 말이다.


그래, 나는 임산부다. 나는 예비엄마다.

"엄마"라는 단어에 스트레스를 갖기보다는

어떤 형용사로 나를 설명하고 싶은지, 어떤 사람으로 살아가고 싶은지 생각해본다.

엄마가 되면 내가 없어지는 게 아니라 엄마도 된 내가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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