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책 잡히다

제1화- 마흔 셋, 그리고 엄마

<물 그림 엄마> 한지혜

by 이작


바람에 꽃잎이 떨어집니다.

봄이 왔기 때문에 꽃이 핀 건지,

꽃이 피었기 때문에 봄이 온 건지.

세상에는 경계를 알 수 없는 애매 모호한 것들이

참 많습니다.


중년이라는 나이도 그런 것 같아요.

몇 년 전 마흔이 되었을 때, 저는 드디어 중년이 되었다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생각하자 괜히 은퇴를 해야 할 것 같고,

마치 인생을 다 산 사람처럼, 아무것에도 의욕이 나지 않았어요.



그런데 얼마 전 읽은 책에서

중년은 55살부터라는 글을 읽고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55살이 중년이면 43은 한창 젊은 나이잖아요.

중년이 되려면 아직 12년이나 남았으니 저는 못할 것이 없다고 생각했어요.


그렇다고 평범한 일상이 하루아침에 달라지지는 않았어요.

현실은 영화나 소설이 아니니까요.

대신, 매일 똑같이 하던 일상을 조금 더 가치 있게 여기기로 했습니다.

일상의 사소한 반복이 일상을 의미 있게 만드는 기술이라는 걸, 믿기로 했습니다.



아이가 학교에 가면 제일 먼저 책 읽기를 해요.

사람마다 집중이 잘 되는 시간이 따로 있다던데 저는 오전이 그런 것 같아요.

오늘 고른 책은 한지혜 작가의 <물 그림 엄마>라는 소설집이에요.

첫 번째로 실린 <환생>이라는 글을 가장 인상 깊게 읽었는데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면

부모의 임종 순간을 앞두고 보통 다음 세상에는 내 자식으로 태어나 달라거나

다시 내 엄마가 되어 달라면서 울잖아요.

그러나 작가는 엄마를 또 만날 자신이 없다고 해요.

이번 생으로 충분히 버겁고 힘든 인연이었다면서요.



저는 죽음과 아직은 먼 나이지만,

생의 끈이 다 닳았다는 생각이 들면 미련 없이 놓아버릴 거라고 늘 생각하거든요.

한 번 산 인생을 두 번 다시 살아보고 싶을 정도로

아쉽고, 후회 가득한 삶을 살지 않겠다는 각오이기도 하고요.


그런데 두 번째로 읽었을 때는 엄마의 입장이 많이 와 닿았어요.

다음 세상에는 끈 달린 연으로 다시 태어나기를 임종 직전, 끊임없이 바라고 기도하는 엄마.

엄마의 지나온 삶이 얼마나 외롭고 힘들었으면

자식들 중 누군가의 자식으로 다시 태어나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일까요.

그 누구도 바라지 않는데 말이에요.



책을 덮자 저도 엄마 생각이 났어요.

좀 야박할 수 있지만, 저 역시 엄마를 그렇게까지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거든요.


어렸을 때 엄마는 실 짜는 공장에 다니셨어요.

새벽 5시면 어김없이 일어나 집을 나가셨죠.

뒤늦게 일어난 우리 삼 남매는 엄마가 차려놓은 식은 밥을 먹고 학교에 갔습니다.

밥상에 올라오는 반찬은 대부분 조리시간이 간편한 인스턴트였지만,

제철에만 먹을 수 있는 반찬도 가끔 있었어요.

그중 하나가 달래 오이무침이었는데,

요즘 같은 봄이면, 밥상을 덮어놓은 보자기 위에

빨간 고춧가루 물이 묻어나던 달래 오이무침이 자주 생각이 나요.



우리 엄마도 다음 생에 우리 중 누군가의 자식으로 다시 태어나고 싶을까요.


엄마에 대한 글 쓰기를 하면서

엄마의 시간에 대해 생각해 보았어요.

어린 시절의 엄마, 초등학교밖에 다니지 못한 학창 시절의 엄마,

실 짜는 공장에서 청춘을 다 보낸 엄마, 지금의 내 나이와 같았던 중년의 엄마,

그리고 언니의 아이들을 돌보느라 늙는 줄도 모르는 지금의 엄마.


그리고-

엄마가 다음 생에는 우리 중 누군가가 아닌,

더 좋은 누군가의 자식으로 태어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한 번 산 인생을 두 번 다시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만큼,

자신에게 주어진 인생을 바닥까지 박박 긁어, 아낌없이 살다 가기를,

그런 인생을 살아보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또 바랐어요.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