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화 -마흔셋, 그리고 친구
<명랑한 중년_웃긴데 왜 찡하지?> 문하연
중년은 외롭습니다.
중년이기 때문에 외로운 건지,
외롭기 때문에 중년이 되는 건지,
나만 이렇게 흔들리고 아픈 중년인 건지.
모든 것에 확신이 서지 않을 때,
저는 비슷한 시기를 겪는 작가의 책을 읽습니다.
고등학교 때 단짝 친구였던 고향 친구는
제가 그런(?) 책을 너무 많이 읽어서 그런(?) 거라며, 차라리 밖에 나가서 꽃도 보고 좀 걸으라며 충고합니다.
그러나 오늘 고른 책은 우울함과는 거리가 먼, 제목부터 명랑한, 문하연 작가의 <명랑한 중년_웃긴데 왜 찡하지?>라는 책이예요.
오 마이 뉴스에 1년 동안 연재했던 글을 한 권의 책으로 엮어 낸 에세이인데요,
사실, 20대 중반에 결혼하 아들 둘을 낳고 전업 주부로 살다가 40대가 넘어 잠들어 있던 글쓰기 본능을 깨워 미술, 음악, 문학에 대해 미친 듯이 글을 써서(작가의 표현입니다)
<다락방 미술관>이라는 책에 이어, 이번 책까지 출간하고 그 외에도 신간 서평과 영화 리뷰,
월간 잡지에 실을 에세이와 대중가요 작사, 최근에는 드라마를 준비하는 예비 작가의 역할까지.
누구나 마음먹는 다고 다 이런 삶을 살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
그러나 결과만 놓고 보면 불가능해 보이지만
과정을 들여다보면 나라고 못할 게 무엇인가,
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문학 중년의 글과 사람, 그리고 사랑에 관한 책입니다.
저는 그녀의 문학 인생에 빼놓을 수 없는 주변인들의 이야기를 재미있게 읽었어요.
글을 쓰는 동안 친구들이 다 떨어져 나갔다고는 하지만, 그녀가 밥을 먹었는지 안 먹었는지 항상 궁금해하고, 그러다 김치며 된장이며 반찬을 날라다 주고, 그녀가 쓴 글에 항상 '좋아요'를 눌러주는 친구들...
중년 이후 삶의 질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인 중 하나가 친구라고 하잖아요.
저는 대학을 졸업하기도 전에 사회생활을 시작해서 직장 동료가 곧 친구였어요.
그래서 직장을 그만두면서 자연스럽게 친구도 사라져 버렸습니다.
유일하게 남아 있는 친구는 저보다 두 살이 많은 언니인데, 그마저도 저는 서울에, 언니는 용인에 살고 있어 1년에 한두 번 얼굴을 볼까 말까 한 사이입니다.
그리고 또 한 명,
매년 생일이면 크고 작은 선물을 잊지 않고 보내주고 새해나 한 해의 마지막 날,
올 한 해 수고 많았다거나 새해 복 많이 받아라, 인사를 하는 직장 동료가 한 명 있어요.
며칠 전에도 제 생일에 맞춰, 와인 한 병을 택배로 보내주었어요.
그러나 얼굴은 1년에 한 번 볼까, 말까 한 사이.
이런 사이를 뭐라고 불러야 할지 저도 잘 모르겠는데 이마저도 없으면 너무 외로울 것 같아, 쉽게 놓지도 못하네요.
그 친구에게 저는, 관리 중인 수많은 '아는 사람' 중에 한 명일 뿐일지도 몰라요.
그런데 제가 너무 큰 의미부여를 하고 있는 지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이 인연을 놓지 못하는 이유는
어쩌면 저를 위한 건지도 몰라요.
나를 기억해주는 사람이 적어도 한 명은 더 있다, 라는 자기 위안.
예전에는 마흔 살 이후에는 삶이 없다고 생각했어요.
더 이상 새로울 것 없는 무미건조하고 무기력한 삶이 계속될 뿐인, 살아 있지만 죽은 거나 마찬가지인 시간이라고요.
그러나 그 나이가 되어 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인생이 있다는 걸 이제는 알아요.
봄은 여름을 모르듯,
봄과 여름을 지나온 가을만이 아는 시간이 있는 법이잖아요.
제 안에도 그 시간들이 쌓여 있을 거예요, 분명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