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책 잡히다

제3화-마흔셋,감정 회복 탄력성

<상대의 마음을 사로잡는 대화 심리학> 시부야 쇼조

by 이작

저는 친구가 많은 편이 아니에요.

일이나 좋아하는 관심사에 대한 에너지는 종종 문제가 될 정도로 차고 넘치지만, 유독 인간관계에 대해서만은 에너지가 약한 편이에요.

그래서 친구가 얼마 없기도 하고 그나마 있는 인연도 어이없게 잃어버린 경우가 많아요.

최근, 그렇게 또 한 명의 소중한 인연을 잃어버렸어요.

오늘은 그 이야기를 해볼까 해요.



마흔셋이 되면서 피부만 탄력을 잃는 게 아니더라고요.

온종일 신고 있던 스타킹을 벗으면 뼈 없는 동물이 누워있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있는데, 다리 모양대로 늘어난 스타킹은 새로 빨지 않는 이상 원상복귀가 안 되잖아요.

회복 탄력성을 잃어버린 감정도 그런 것 같아요.

한 번 상한 감정은 아무리 에너지와 노력을 쏟아부어도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기 힘든 것 같아요. 그걸 잘 알기에 애초에 시도조차 하지 않게 되는 나이, 그게 마흔셋인가 봐요.



고등학교 3년 내내 단짝이었던 친구가 있었어요.

서로 다른 반이 되어도 점심 도시락만은 함께 만나서 먹을 정도로 친한 사이였어요.

타지로 대학을 갔던 친구는 졸업 후 공무원이 되어 다시 고향으로 돌아왔어요.

제 고향은 강화도예요.

부모님과 단짝 친구가 있는 고향은 제게 언제나 든든한 위안이 되었죠.

매번은 아니어도 고향에 갈 때마다 친구를 만났어요.

얼마 전에도 친정에 간 김에 얼굴을 보자고 약속을 했어요.

그런데 만나기로 한 날, 갑자기 고향에 코로나 집단 감염이 발생했어요.

친구는 아무래도 얼굴 보기가 힘들 것 같다며 톡으로 연락을 해왔어요.

평소 같았으면 저도 톡으로 괜찮다고, 다음에 다시 약속 잡자고 했을 텐데, 그날은 전화를 했어요.

아마, 오랜만에 친구 목소리가 듣고 싶었나 봐요.


평소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하고, 사람들과 술 마시는 것도 좋아하는 친구는 1년 내내 방역 수칙을 지키느라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오로지 일만 하고 있다며, 답답함을 토로했어요.

사실 저는 아이가 학교에 정상적으로 등교하기 시작한 올해부터 방역에 살짝 느슨해져 있었거든요.

주말이면 가까운 곳에라도 갔다 와야 일주일을 버틸 수 있었고, 날이 따뜻해지면서 1박 2일로 여행도 다녔어요.

하지만 공무원 의식이 투철한 친구는 그렇지 않았어요.

저는 진심으로 그 친구가 너무 대단하다고 생각했어요.


"너 진짜 FM이다. 참 공무원이야."


저의 이 한 마디가 친구의 마음 어딘가를 찌를 거라고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어요.



친구는 당연히 지켜야 할 수칙을 지키는 것뿐인데 FM이라는 둥, 참 공무원이라는 둥, 비아냥거리는 것 같아 기분이 나쁘다며 화를 냈어요. 그러면서 평소처럼 톡이나 할 걸, 괜히 전화했다며, 원래 통화 같은 거 자주 안 하는 사이니까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지내자며 쏘아붙였어요.


상대방이 화를 내면 일단 제 잘못부터 찾고 보는 저는, 무조건 미안하다고, 나의 생각이 짧았다고 사과했어요. 다른 집단도 아니고 모든 면에서 더 엄격한 잣대가 필요한 공무원 중에서 감염자가 발생하면 타격도 두 배이기 때문에 특히 더 조심해야 한다는 친구의 말을 저는 도대체 어디로 듣고 흘려버린 걸까요.

다행히 친구는 저의 사과를 받아주었어요.

재빨리 응급 처치를 한 결과, 전화 통화는 겉으로 보기에 아무 문제없이 마무리가 되었죠.


그러나 전화를 끊은 뒤, 비로소 제 마음이 불편해지기 시작했어요.

왜 이런 마음이 들지? 내가 잘못한 게 맞는데.

답답한 마음은 며칠 후 읽고 있던 책에서 이유를 찾을 수 있었어요.



(문자 메시지로만 대화하는 관계는)
항상 단편적인 정보만을 교환하기 때문에 상대의 일에 대해 상상할 수 없고 상대의 기분을 배려하지 못하는 사람이 되고 만다. 무언가 궁금한 게 있으면 바로 문자로 묻고, 거기에 대한 대답이 돌아오는 직접적인 관계밖에 존재하지 않아, 상대와 만날 수 없을 때 그 사람에 대해 생각하거나 상상하는 간접적인 관계는 갖기 힘들다. 그렇게 되면 사람과 사람 사이의 뉘앙스를 제대로 읽어내는 능력이 떨어지게 된다. 그 결과 인간관계가 희박해지고 막상 사람을 만났을 때 상대를 이해하거나 배려하지 못하게 된다.
p. 42


말로는 고향과도 같은 친구라면서 그동안 톡으로만 안부를 묻고 대화를 하다 보니 친구의 뉘앙스를 제대로 읽지 못했던 것 같아요. 언젠가는 실수를 할 수밖에 없는 관계였는데, 그게 이번이 된 것뿐이고요.


그렇다고 핑계를 대는 건 아니에요.

다만, '원래 전화 통화 같은 거 자주 안 하는 사이니까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지내자'는 친구의 말에 상처를 받았나 봐요.

아무리 화가 나도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가 있나. 우리 우정이 얼마나 길고 단단한데. 돌아오는 건 결국 이런 차가운 말과 상처라니. 그때 느낀 감정은 배신감이었던 것 같아요.


그날 이후, 친구와 한 번 더 연락을 주고받았어요. 물론 톡으로요. ^^

끊어진 걸 억지로 이어 붙이려고 하면 할수록 그 부분이 더 도드라져 보이잖아요.

손 때가 타서 더 흉이 지고.

그래도 20년 넘게 이어온 인연인데... 그래서 더 서운하고 안타까웠지만, 다시 이어 붙이기 힘들 거라는 느낌이 대화하는 내내 들었어요.



한번 꺼진 피부는 아무리 비싼 화장품을 발라도 다시 부풀지 않잖아요.

온갖 시술로 끌어올리려고 하면 할수록 더 부자연스럽게 망가질 뿐이잖아요.

주름 진 얼굴도, 단순해지는 관계의 흐름도, 모두 자연스럽게 내버려 둬야 한다는 걸, 20년 지기 친구를 잃은 후에야 깨닫게 되네요.

마흔셋, 떠나고 사라지는 것에 더는 연연해하지 않을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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