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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작 Apr 30. 2021

제5화 - 마흔셋, 우울증 극복기

<진짜 멋진 할머니가 되어버렸지 뭐야> 김원희


며칠 전 어느 날, 자고 일어났더니 기분이 바닥까지 내려가 있었습니다.

분명 열심히 살아온 것 같은데 잠깐, 한눈을 파는 사이 모든 길을 잃어버린 사람처럼 절망감에 꼼짝도 할 수 없었습니다. 물론, 이런 감정이 처음은 아닙니다. 올해 들어 절망과 희망은 매달 날아오는 납부 고지서처럼 주기적으로 저를 괴롭히고 있는 중입니다.


그러나 이런 시간이 앞으로 40년은 더 넘게 지속될 거라고 생각하니 새삼, 노인 분들이 대단해 보였습니다.


저들은 어떻게 지금을 견디고 있을까.
이 막막함과 무기력을 어떻게 이겨내고 있을까.
노인이 되면 그냥 자연스럽게 모든 게 다 사라지는 걸까.


아마, 그건 아닐 거예요. 얼마 전 읽은 책에서 우리나라의 자살률이 전 세계적으로 높은 이유는 노인층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많이 하기 때문이라는 내용을 읽은 적이 있어요. 조금만 더 살면 되는데 그 잠깐조차 견디기 힘들어 자살을 선택한다는 노인들에 대한 이야기는 참담한 기분을 들게 했습니다.


물론, 모든 노인이 그렇다는 말은 아닙니다.

<진짜 멋진 할머니가 되어버렸지 뭐야>의 저자, 김원희 할머니처럼 남아 있는 육신을 마음껏 쓰고 가기 위해 밤낮으로 노력하는 분들도 분명 많을 겁니다.



이 책은 우리나라 70세 할머니가 직접 쓴 여행 에세이예요.

<사는 게 뭐라고>, <죽는 게 뭐라고>를 쓴 사노 요코나 <모모요는 아직 아흔 살>을 쓴 무레 요코 같은 할머니는 일본에나 있는 줄 알았는데 우리나라에도 이런 멋진 할머니가 있다니. 

지팡이 대신 캐리어를 끌고 이십여 개의 나라와 그 나라 도시들을 자유로이 여행하며 쓴 김원희 할머니의 여행 에세이인데 읽는 내내 나도 70세가 되면 이렇게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했습니다. 


내 나이가 몇이라 해도, 노년이 되었다 해도, 인생이 끝났다고 생각하지 말자. 아직 죽지 않았다면 어쨌든 삶은 끝난 게 아니다. 아직은 더 섧고, 더 외롭고, 더 고독하고, 더 인내하고, 더 아픈 시간이 지속될 것이다. 그런 것들을 부여안고 내가 할 수 있는 무언가를 끝없이 해나가야 한다. 그래서 나는 지팡이 대신 캐리어를 끈다. 그리고 여행한다.


죽음이 닥치기 직전까지 인생은 계속해서 힘들 거라는 말은, 요즘 하는 말로 뼈를 때렸습니다. 조금만 참고 견디면 좋은 날이 올 거라는 판에 박힌 위로를 했다면 저는 금방 책을 덮어버렸을지도 몰라요. 그러나 인생은 나이가 들수록 더 섧고, 외롭고, 고독하고, 아플 테니 각오 단단히 하고 네가 할 수 있는 것을 하라는 할머니의 말은 끝까지 정신 똑바로 차리고 살라는 말로 들렸습니다.


'이 나이에, 다 늙어서 무엇을'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래서 더 새로운 일에 도전하기가 쉽다. 젊었을 때는 부양해야 할 가족도 있고 타인의 시선도 신경 쓰여 자유롭지 못했지만 나는 이제 국가에서도 공식적으로 인정한 '더 이상 일하지 않아도 누구도 질타하지 않는 나이'를 살고 있다


이 책을 읽기 전에는 사노 요코처럼 나이 들고 싶다는 생각을 했는데(물론, 암에 걸리는 건 빼고요) 이제는 김원희 할머니처럼 70세를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바이러스가 세상을 또 어떻게 뒤집어 놓을지 알 수 없지만, 꼭 이십여 개의 나라를 여행하며 살아야 하는 건 아니지만, 무기력하지 않고 젊은이들처럼 해 낼 수 있는 것, 긍정적인 마인드와 용기와 자신감을 가질 수 있는 것, 노년이기에 획득할 수 있는 특별함에 의미를 두고 살자고, 다시 한번 결심했습니다.

그러자 끝없이 가라앉던 마음이 방향을 틀어 수면 위로 헤엄치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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