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책 잡히다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작 May 17. 2021

제6화 - 마흔셋, 한 달 용돈 십팔만 원

제17회 황순원 문학상 수상작품집


제17회 황순원 문학상 수상작품집.


찾아보니 2017년도 이기호 작가의 수상 이후, 황순원 문학상의 수상작이 없네요.

있는데 나만 모르는 건가 싶어 계속 찾아봤는데 없더라고요.


제17회 수상작은 이기호 작가의 '한정희와 나'입니다.

개인적으로 자전작인 '권순찬과 착한 사람들'이 더 좋았습니다. 평소 작가가 쓰고자 하는 글의 방향성 - 고통받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와 더 맞닿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니다.


권여선의 '손톱'도 좋았습니다.

한 달에 백칠십만 원의 월급을 받아, 언니가 자신 이름으로 받고 도망친 대출금과 월세 보증금으로 대출받은 오백만 원을 갚기 위해 한 달을 십팔만 원으로 살아야 하는 스물한 살의 소희.

불특정 다수를 향해 쓰인 소설이 나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고 느낄 때가 있잖아요.

소희가 그랬어요. 20여 전, 대학생이 되어 서울 생활을 시작한 저를 떠올리게 했거든요.



그때 저의 한 달 용돈도 십팔만 원이었습니다.

시골에서 농사를 지어 삼 남매의 교육 뒷바라지를 해야 하는 부모님 입장에서는 적지 않은 돈이었지만, 저에게는 옷 한 벌 사 입지 않고 한 달을 살아도 마지막 일주일은 끼니를 굶어야 할 정도로 빠듯한 돈이었습니다.

그런 상황이면 당장 아르바이트를 했어야 했는데 당시 급하게 서울로 올라오느라 살 집을 구하지 못한 저는, 성당에 다니는 친구의 소개로 수녀원에서 운영하는 기숙사에서 한 학기를 살아야 했습니다. 핑계라면 수녀님들이 운영하는 기숙사는 밤 10시가 통금 시간이어서 9시에는 무조건 기숙사로 향하는 지하철을 타야 했습니다.


그런 데다 다니던 학교가 여대였던 터라 잡지에 나오는 옷과 가방을 걸치고 아무 걱정 없이 캠퍼스를 누비는 아이들이 많았습니다.

그중 아직도 기억에 남는 무리가 있는데 강남에 사는 아이들이었습니다. 같은 부류는 어떻게든 서로를 알아본다같은 고등학교를 나오지 않았는데도 그들은 입학 첫날부터 오랫동안 알아온 사이처럼 친하게 어울려 다녔습니다. 그 모습이 너무나 당연했기 때문에 그녀들이 다른 무리와 어울리는 모습은 물과 기름이 섞이는 것처럼 자연스럽지 않게 느껴질 정도였습니다. 부럽고 신기한 마음은 마치 연예인을 보는 것 같은 기분마저 들게 해, 졸업 후에도 저는 그녀들 중 한 명의 미니홈피를 오랫동안 훔쳐보았습니다. 그리고 그때 말로만 듣던 속설을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지요.


그런 부류의 아이들은 시집도 잘 가더라.


그러다 그녀들과 제가 크게 다르지 않다고 느끼게 된 계기가 있었습니다.

무리 중 한 명을 같은 방송국에서 같은 방송작가로 만났을 때입니다.

그때 저는 '신동엽의 있다?! 없다?!'라는 프로그램을 하고 있었는데 그 친구가 같은 층에 있는 예능 프로그램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우연히 화장실에서 그녀와 마주쳤을 때, 그녀가 나를 알아보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먼저 알아보고 인사를 건넬 때, 그때의 기분은 뭐랄까.


나와 전혀 다른 세계를 사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출발점은 달랐지만 결국 같은 지점을 달리고 있다는 을 알게 되었을 때.

그때 느껴지는 안도감 같은 것이었습니다.



500원이 아까워 짬뽕 한 그릇 마음 놓고 사 먹지 못한 소희가 눈앞에 있다면 말해주고 싶습니다.

지금 삶이 남루하고 초라하더라도 앞으로 계속 그럴 거라고 생각하지는 말라고요.


매거진의 이전글 제5화 - 마흔셋, 우울증 극복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