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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 Nov 20. 2023

사고 수습

2023.08.08.화요일

사고를 쳤다. 어제 블로그에 일기를 올리고 나서 댓글 중에 광고제의와 광고성 댓글을 찾아서 지우는 과정에서 버튼을 착각해서 그만 일기 몇 개를 지워버렸다. 처음에는 광고 댓글을 단 사람들에게 화가 났으나 누구를 탓하랴. 나의 덜렁댐이 문제지.

어제는 너무 충격적이라 아무것도 못하고, 오늘 침착하게 어떻게 수습해야 할지 고민했다. 네이버블로그(이때는 네이버블로그에 일기를 올리고 있었음) 질문 게시판에 보니까 글을 삭제하면 데이터에서 바로 지우기 때문에 복구할 수 없다고 했다. 지워진 일기는 3편인데 날짜로 따지면 7일치다. 비교적 최근의 글은 그럭저럭 기억을 떠올려 수습이 가능하지만 이곳에 온 초기의 일기는 너무 막막하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다시 써봐야지. 공부 노트에 메모한 것들과 사진, 간간히 녹음한 것을 토대로 다시 써야한다. 그동안 일기 작업을 하면서 당시의 느낌과 감정을 담아서 정성껏 작성했었기 때문에 다시 쓴다해도 그것을 그대로 복구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그래도 있던 일들을 중심으로 해서라도 일기를 메꾸어 놓아야 한다. 그래야 다음에 이것을 토대로 소설을 쓰거나 다시 최종 정리를 할 때 구멍이 생기지 않을 것이다. 며칠 전부터 브런치에도 올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일단 이 사고부터 수습해야겠다. 지금도 계속 마음을 다독이고 있다. 이런 일도 다 해프닝이다. 이런 일도 생기고 저런 일도 생기는 거다. 나 자신에게 하는 말이다.


오늘은 화요일이지만 어제가 휴일이었기 때문에 한 주를 시작하는 첫날이다. 어김없이 새로온 학생들이 엄청 많다. 학생 라운지가 꽉 찼다. 어제 함께 린 캐년에 갔다온 학생들과 반갑게 인사했다. 아는 친구들이 무척 많아졌다. 


문법 수업. 

수업 시간이 다 되어가는데 복도에 여기저기서 몇 명의 교사들이 뛰어다닌다. 무슨 일인가 했더니 문법 교사 S를 포함해서 여러 명의 교사가 전철 때문에 지금 도착하지 못하고 있단다. 브라질 친구 L이 자기가 오늘 전철 안에서 숨막혀 죽는줄 알았다고, 역대급으로 사람이 많다고 했는데 정말 난리가 났나보다. 어떤 교사가 와서 지금 어디를 진도 나갈 차례냐고 묻는다. L이 어디어디가 숙제였는데 오늘 처음 온 학생들이 많으니까 그들이 숙제 부분을 풀 시간을 주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래, 그러면 L에게 리더가 되어서 학생들에게 알려주라고 한다. L이 가볍게 어깨를 으쓱하고 새로온 친구들에게 숙제를 자세히 설명해주었다. 나는 옆에서 해당 페이지를 펼쳐서 학생들이 볼 수 있게 도왔다. 처음 와서 긴장하고 있는 학생들에게 영어로 설명하는 페이지가 잘 들리지 않을 것 같아서였다. 본의 아니게 나와 L이 새로온 학생들에게 이런 저런 진도에 대해 설명해주게 되었다. 하긴, 지금 여기 있는 모든 학생들 중에서 우리가 가장 오래된 사람들이다. 이런걸 짠빱이라고 하지.


결국 30분 정도가 지나서 교사 S가 도착했다. 그는 전철에 사람이 꽉 차서 아예 타지를 못하고 몇 대를 보냈다고 한다. 이런 것은 처음 본다고 한다. 그래. 지금 밴쿠버는 사람들로 넘쳐 난다. 관광객, 어학연수학생 등으로 가득하다. 어쨌든 우리가 숙제 부분은 다 했고 연습 문제도 몇 개 풀고 있는 중이라고 했더니 잘했다고 한다. 그리고 새로 온 학생들 신상을 파악하고는 바로 문법 설명을 했다. 교사 S는 다행히 지금 진도 나가는 부분이 조동사 부분이라 쉬운 편이라고 한다. 그러나 나와 눈이 마주친 몇 명의 학생들은 결코 쉽지 않다는 눈빛을 교환했다. 



듣기 수업. 

한달간 휴가간 교사를 대신해서 온 교사는 A다. 내가 싫어하는 그 보강교사가 아니라 다행이다. 그는 차분하게 자신을 소개하고는 학생들에게 자신에게 궁금한 것을 하나씩 질문하도록 시킨다. 질문하고 답하는 것 자체가 영어 연습이다. 아주 쉽게 나이, 결혼 여부, 사는 곳 등으로 질문이 시작되었다. 학생 수가 많아서 기본 질문만으로는 안된다. 나는 후반부에 질문하게 되었는데 내가 메모한 것들을 이미 다 질문했다. 취미가 뭐냐, 휴가 때 무엇을 하느냐, 좋아하는 음식이 뭐냐, 여행 갔던 것 중에 제일 좋았던 곳은 어디냐 등이 다 나왔다. 나는 그냥 간단하게 스포츠를 좋아하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재치있게 자기 몸을 보면 어떨거 같냐고 묻는다. 다들 웃었다. 그래서 질문을 바꿔서 스포츠 시청을 좋아하냐고 물었다. 그는 결혼 전에는 운동을 좀 했지만 지금은 바빠서 못하고 스포츠 시청도 못한단다. 그렇게 한바탕 자신에 대한 질문을 답하고 나서 교재 진도를 나갔다. 


이번 단원은 국가와 도시에 대한 것이다. 파트너와 함께 대화하라는데 질문이 가본 나라가 얼마나 되고 가장 좋았던 곳은 어디인지 묻는 것이다. 나의 파트너가 된 브라질 친구는 이곳 캐나다가 해외로 나와서 본 첫번째 나라란다. 나는 이것저것 늘어놓다 보니까 15개국을 넘게 다녔다. 한바탕 서로 질문을 주고 받은 후에 교사는 자기 파트너와 이야기를 나눈 것에 대해 전체 학생들에게 소개하고 싶은 내용이 있으면 말해보란다. 어느 친구가 자기 파트너는 16살이고 이곳 캐나다가 처음 해외에 나온 것인데 혼자 비행기를 타고 왔다고 소개한다. 다들 감탄하고 박수를 쳐 주었다. 내 파트너는 내가 15개국 이상을 다녔다고 소개했다. 다들 놀란다. 응? 내 나이쯤 되면 그 정도는 다녀봐야하는거 아니야? 하.하. 농담이다. 교사는 나에게 제일 좋았던 장소와 음식을 말해 보란다. 그래서 페루의 마추피추가 가장 신비로웠고 페루의 '세비체'라는 음식을 추천하고 싶다고 말했다. 


읽기와 쓰기 수업. 

교사가 무슨 일이 생겨서 못와서 보강교사가 왔다. 그는 원래 교사인 D가 메모해준 대로 진도를 나가야 하는데 그 메모의 내용을 이해하지 못한 것 같다. 일단 지난 금요일에 보았던 중간 시험 결과지를 나눠주라는데 그게 어디 있는지 못 찾았다. 그래서 대신 제일 좋아하는 음식에 대해 대화를 나누라고 하는 것부터 하자면서 교재를 펼치란다. 그래서 나는 지난 주에 교사 D가 쓰기 주간이라 교재가 필요없다고 말했다고 알려주었다. 이리저리 헤매던 보강교사는 겨우겨우 교사 D의 자리를 찾아가서 우리의 시험 결과지를 찾아왔다. 그걸 나눠주고 답을 다시 맞추어 주었다. 결국은 좋아하는 음식에 대한 대화 나누기는 하지 못하고 지난 시간 복습만 하고 끝났다. 내일 교사 D가 오면 뭐 알아서 진도를 빼겠지.



점심 시간. 

듣기 수업에 함께 하는 일본 친구 A가 와서 내가 여행을 많이 다닌 것에 대해 신기해하면서 이것저것 묻는다. 함께 점심을 먹으면서 여행 얘기도 하고 일본과 한국의 유명 관광지도 서로 소개했다. 그 친구는 김밥을 너무 좋아해서 한국식 김밥을 며칠 전에도 해먹었다면 사진을 보여준다. 오! 나보다 낫다. 모든 재료를 가늘게 채썰어서 식감을 살려서 만들었다. 그 친구가 가고 나자 일본 학생 H가 와서 지난 주말에 있던 이야기를 나누었다. 자기는 생일이라 홈스테이 가족들이랑 중국식당에 가서 맛있는 고기를 먹었단다. 먼 나라에서 어린 학생이 생일을 맞이한 것이 좀 짠하다. 가족들과는 전화로 축하한다는 인사를 나누었단다. 나는 주말에 친구들과 놀러갔다 왔다고 했더니 알고 있단다. 인스타그램에서 봤다면서 거기서 본 친구들 중에 일본 친구를 알고 있다고 한다. 자기랑 같이 수업 듣는 친구란다. 그래. 여기 학원친구들과 갔으니까 너랑 같이 수업 듣는 친구도 있구나. 


회화 수업. 

오늘은 자신이 좋아하는 영화를 소개하는 그룹 활동을 했다. 예상대로 '인셉션'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다. 줄거리를 소개하니까 다들 흥미롭다면서 한번 봐야겠다고 한다. 친구들은 '인어공주', '탑건' 혹은 내가 모르는 일본 애니메이션 등을 소개했다. 그룹을 바꾸어서 한번 더 소개를 하고 활동이 끝났다. 영화 소개하는 글을 써 온 종이는 교사가 걷어갔다. 아마도 채점해서 주겠지. 


보충수업. 

오늘도 귀여운 11살, 9살 대만 친구들이 참석했다. 지난번 수업이 마음에 들었나보다. 오늘의 주제는 여행에 대한 것이다. 교사는 히치하이킹에 대해 아는지 묻는 것으로 시작했다. 그런데 11살 꼬마가 손을 번쩍 들더니 안단다. 설명하라니까 차를 세워서 태워달라고 하는 거란다. 꼬마가 어떻게 아는지 궁금해졌다.

교사가 히치하이킹에 대한 유튜브 영상을 보여주었다. 어떤 캐나다 청년이 히치하이킹으로 캐나다를 횡단하는 내용이다. 이어서 여행에 대한 질문지를 나눠주고 파트너끼리 대화하도록 했다. 나는 회화 수업을 같이 듣는 일본 친구와 파트너로 한참 이야기를 나누었다. 중간에 교사가 이제 파트너를 바꾸어서 나머지 대화를 하자고 한다. 그런데 우리 꼬마 친구들과 함께 대화하고 싶은 사람이 없냐고 묻는다. 내가 번쩍 손을 들었다. 교사가 고맙다면서 자리를 섞어 앉도록 했다. 나는 우리 꼬마 친구들 사이에 앉았다. 

먼저 내가 11살 오빠에게 히치하이킹을 어떻게 아냐고 물으니까 전에 아빠 차를 타고 가다가 어떤 사람이 손을 이렇게 들어서 아빠에게 물어보니까 히치하이킹이라고 알려주었단다. 그런데 얼마 전에 수업에서 히치하이킹이라는 말이 나왔는데 자기가 그것을 까먹었단다. 그래서 다시 아빠에게 물었더니 아빠가 왜 그걸 모르냐고 했단다. 꼬마가 아주 신나서 다다다다 이야기를 하는데 끊을 수가 없다. 

나는 9살 여동생에게도 말할 기회를 주고 싶어서 질문지의 내용을 물었다. 그런데 11살 오빠가 대답을 자꾸 가로채서 열심히 말한다. 에고, 너는 너무 말하고 싶은게 많구나. 오빠의 답을 들은 후에 여동생에게 너는 어떠냐고 물었더니 동생은 자기 생각을 또박또박 말한다. 너무 귀엽다. 신나게 꼬마 친구들과 대화(아니 나는 주로 들었지만)를 나누고 나니까 시간이 후딱 지나갔다. 

교사가 작별 인사를 하면서 내일은 문법 보충이라고 말해주었다. 꼬마들이 내일은 그러면 여기 수업을 하지 않는 거냐고 물어서 이 교실에서 같은 선생님이 수업을 하는데 내용은 회화가 아니라 문법이라고 설명해 주었다. 내 느낌에는 이 꼬마 친구들은 이 수업을 몹시 마음에 들어 하는 것 같다. 내 생각에는 아마도 아이들만 모여 있는 수업에서는 너도 나도 떠드느라 이들에게 말할 기회가 많지 않았나 보다. 

교사가 끝나고 아이들과 대화해주어서 고맙다고 한다. 나는 내가 더 즐거웠다고 했다. 아이들과의 대화는 늘 즐겁다. 나는 역시 아이들과 함께 해야 행복한 사람인가보다.


수업을 다 마치고 메트로타운으로 향했다. 이번 주에 가는 퀘백 여행을 대비해서 옷을 좀 살 필요가 있다. 아니 그건 핑계일 수 있다. 그냥, 일기를 몇 개 날린 것이 너무 속상해서 기분 전환을 하고 싶었다. 언제나 쇼핑은 즐겁다.


집에 오니까 활달한 브라질 친구 K가 오늘 하루 어땠냐고 묻는다. 쇼핑해서 즐겁다고 했더니 당장 패션쇼를 하란다. 그래. 새로 산 옷들을 보여주고 가격을 말해주었더니 멕시코 친구가 난리가 났다. 다른 친구들은 다들 메트로타운을 가본 적이 있는데 이 멕시코 친구만 안가봤단다. 그러면서 당장 같이 가자고 난리다. 그래. 하루 날 잡아서 같이 가자. 역시 여자들은 옷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 엄청 할 이야기들이 많다. 


그러나 나는 한가하게 노닥거릴 수 없다. 일기 사고 친 것을 수습해야 한다. 퀘백 여행 가기 전까지 수습해야만 여행 가서 마음 편히 다닐 것 같다. 간단히 저녁을 먹고 사고를 수습하고 있다. 그 와중에 오늘의 일기도 쓰고 있다. 그래. 사고를 쳤으면 뒷수습을 해야지.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한다. 중요한 것은 실수를 어떻게 처리하는가이다. 실수를 인정하고 수습을 하면 된다. 그런게 인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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