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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 Dec 16. 2023

비 속의 폭포, 햇살 아래 평원

2023.08.13.일요일

아침에 눈을 뜨니 7시40분이다. 거의 기절하듯 잠을 잤다. 한밤중에 복도에서 쿵쾅거리는 소리, 침대 위층에 사람 올라오는 소리에 잠깐, 잠깐 깼지만 이내 다시 스르르 잠이 들었다. 굉장히 피곤했나 보다. 이 방에는 2층 침대가 4개, 사람은 8명이 들어올 수 있는데 모두 다 찼다. 역시 극성수기가 맞나 보다. 아직 모두 자고 있어서 조심스럽게 일어나 간단하게 씻고 왔다. 이번 도미토리는 룸 안에 화장실이 없고 복도에 공동 욕실과 화장실이 있다. 씻고 와서 옷을 갈아 입고 밖으로 나왔다. 


오늘은 몽모랑시 폭포라는 곳에 갈 것인데 그 전에 먼저 기차역부터 들러 보려고 한다. 내일 새벽 기차를 이용할 일이 있어서 동선을 파악할 겸해서 미리 가보려는 것이다. 그런데 밖으로 나오니까 비가 살짝 내리고 있다. 앗, 우산을 숙소에 두고 왔다. 일기 예보를 확인해 보니까 비올 확률이 30%다. 이정도면 그냥 버텨도 되겠다 싶어서 그냥 출발했다. 

기차역은 생각보다 작았다. 기차역에서 표를 받는 곳과 타는 곳 등을 확인했다. 그리고 기차역 바로 옆의 버스정류장으로 갔다. 몽모랑시 폭포까지 가는 버스가 이곳을 지난다. 버스는 800번이다. 혹시나 해서 버스를 타면서 기사에게 구글맵으로 가고자 하는 곳을 보여주었다. 여기 사람들은 불어를 사용하는데 내가 아무리 말해도 못알아듣는다. 그들의 발음을 나도 못알아 듣는다. 그냥 보여주는게 안전하다. 맞는 버스라고 해서 미리 준비한 3.57불(약 3,500원)을 냈다. 

버스로 30분 정도 가니까 목적지에 도착했다. 내려서 입구를 찾아가니까 입장료를 내란다. 입장료는 약 8,000원 정도한다. 여기 몽모랑시 폭포는 한국 사람들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았으나 이 동네에서는 꽤 유명한 폭포다. 좀 과장하면 나이아가라 폭포만큼 멋지다고 한다. 그런가? 나이아가라 폭포에 가보지 않아서 비교는 어렵다. 그런데 폭포 입구에서 물을 샀는데 4,000원이나 한다. 시내에서 1,500원 정도이므로 두 배가 넘는다. 역시 관광지로구나.

그리고 여기서는 짚라인도 탈 수 있다는데 오늘은 날씨가 안좋아서 그런지 타는 사람이 없다. 짚라인 전망대를 지나 폭포를 향해 올라갔다. 와!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비가 와서 수량이 더 풍부해진 것일까? 아니면 원래 이런가? 좀 무서울 정도로 물줄기가 거세다. 게다가 건너는 다리가 완전히 봉합되지 않는 나무 다리라서 아래가 살짝살짝 보인다. 오금이 저린다는게 이럴 때 어울리는 표현인 듯하다.  



다리를 건너가면 폭포 아래로 내려가는 길이 있다. 쉬엄쉬엄 구경하면서 내려가는데 중간에 비가 거세지기 시작했다. 다행히 중간중간에 정자들이 몇 개 있어서 거기서 비가 좀 잦아지기를 기다렸다. 그 와중에도 폭포는 멋지다. 게다가 이렇게 비가 오는데 폭포 옆으로 절벽을 오르는 사람들도 있다. 저것도 짚라인과 함께 체험 코스 중 하나였다. 우와, 왜 저런걸 돈 주고 하는지 모르겠다. 하긴 짚라인도 그렇고 놀이기구도 그렇고 보는 사람에 따라서는 저런걸 왜 돈주고 하냐고 묻는다. 놀이기구를 좋아하는 나는 그냥 그 짜릿함이 좋다. 그냥 취향의 차이일 뿐이다. 지금 저기 절벽을 오르는 사람들도 짜릿함을 느끼면서 즐기고 있을 것이다. 



폭포 아래쪽에 다 도착했을 때쯤 또다시 폭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여기서부터는 비를 피할 정자도 없다. 어쩔 수 없이 뛰다가 힘들어서 그냥 걸었다. 폭포 맞은 편의 다리를 건너 케이블카가 있는 건물에 겨우 도착했다. 비를 쫄딱 맞아서 가디건과 모자가 척척하다. 물을 짜내야 할 정도는 아닌 것이 그나마 다행이다. 뜨거운 커피를 한잔 마시면서 가디건과 모자를 말렸다. 여기는 커피도 무지하게 비싸다. 우리 학원의 자판기 정도의 커피인데 4배나 더 비싸다. 역시 관광지티를 내는구나. 하긴 우리나라도 물이나 음식값이 관광지일수록 더 비싸긴 하지. 세계 어디나 그런가보다.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갈 것인지 말 것인지 한참 고민했다. 5분 정도의 짧은 거리인데 15,000원이나 한다.  그런데 입구로 걸어가려면 아까 왔던 길을 그대로 다시 가야한다. 비 속을 뚫고 다시 올라갈 자신이 없다. 게다가 오늘은 걸어야 할 거리가 꽤 된다. 그래. 이 나이에 무리하지 말자. 비도 맞았고 이미 많이 걸었다. 결국 가성비가 너무 낮은 케이블카를 탔다. 아깝지만 나를 보호하기 위한 투자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다시 입구로 와서 올드퀘백 쪽을 향해 걸었다. 내 목표는 올드퀘백으로 가는 도중에 있는 달라라마에 가는 것이다. 사야 할 것이 있다. 내가 미련한 짓을 또 했다. 멀티어댑터를 가져오지 않은 것이다. USB가 가능한 어댑터는 가져왔는데 노트북을 연결할 것을 착각하고 가져오지 않았다. 그밖에 썬크림, 우비 등도 필요하다. 달라라마까지는 약 30분정도 걸어가면 된다고 나왔는데 실제로 걸어보니까 45분 정도 걸렸다. 구글맵의 시간 예상은 다리가 길고 걸음이 빠른 서양애들 기준인가보다. 대부분 내가 걸어가면 약 1.5배 정도 더 걸리는 것 같다. 다행히 비가 그쳐서 걷는 데는 어려움이 없었지만 좀 지쳤을 때쯤 겨우 달라라마에 도착했다. 규모가 굉장히 큰 것을 보고 기대를 가지고 들어갔으나 멀티 어댑터는 없다. 썬크림과 우비도 없다. 수건을 걸어두는데 사용할 작은 옷걸이와 휴지만 사가지고 나왔다. 

세상에는 예상대로 되지 않는 일이 이렇게나 많다. 오늘이 딱 그런 날인 것 같다. 비가 적게 올 것 같았는데 생각보다 많이 왔다. 필요한 물건을 사러 고생고생하면서 왔는데 딱 그것들만 없다. 뜻대로 되지 않는 일들이 연달아 일어날 수도 있는 것, 이런게 인생이다. 이 나이쯤 되면 이런 일들에 초연해질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다. 역시 나는 아직 덜 여문 사람이다. 

달라라마의 가까운 곳에 800번을 탈 수 있는 버스정류장이 있다. 버스를 타고 숙소로 돌아왔다. 일단 젖은 옷을 갈아입고 간단히 식사를 한 후 다시 출발했다. 그런데 그 사이 날씨가 바뀌었다. 구름이 걷히고 있다. 아까 이랬으면 좋았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다. 얄궂은 날씨다.



오후의 목적지는 아브라함 평원이다. 올드퀘백의 관광지는 정리해보면 세 가지 구역으로 나눌 수 있다. 첫번째는 올드타운 시내다. 여기에는 드라마 도깨비 코스인 호텔과 언덕, 관광객이 드글대는 쇼핑거리, 벽화, 산책로가 몰려있다. 여기는 그냥 산책삼아 걸어다니면 된다. 두번째는 올드타운의 외곽지역이다. 시내에서 약간 벗어난 곳에 박물관과 역사유적지, 아브라함 평원이 있다. 그리고 페리를 타고 강을 건너갔다 오는 것도 여기에 포함시킬 수 있다. 페리를 타는 것 외에 박물관이나 역사유적지, 평원 등도 걸어서 갈 수 있다. 다만 좀 많이 걷는다. 튼튼한 다리가 필요하다. 세번째는 몽모랑시 폭포다. 여기는 시내에서 한참 떨어져 있으므로 걸어서 갈 수 없다. 버스를 이용하거나 택시나 자가용을 이용해야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올드타운 시내만 돌거나 조금 확장해서 올드타운 외곽지역을 가기도 한다. 

어제 나는 올드타운 시내를 보고 강도 건너 갔다 왔다. 오늘 오후는 외곽 지역 중에서 아브라함 평원과 유적지를 좀 걸어볼까 한다. 그래서 아까 다리힘을 아껴야 해서 케이블카를 탄 것이다. 평원으로 가는 길에 이곳 공립도서관 내부가 멋있다고 해서 거기 들렀다가 가려고 했다. 그런데 일요일이라 문을 받았다. 아쉽지만 어쩔 수 없지. 대신 도서관 근처에 주변 전망을 볼 수 있는 건물이 있다고 해서 가보았다. 정보가 별로 없어서 이게 맞나 싶었는데 관광버스가 서 있고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앉아 있는걸 보니 맞나보다. 31층까지 올라가는데 입장료는 없다. 무슨 공공 건물인 듯한데 안내표지판을 따라 들어가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면 된다. 마침 단체 관광객들이 엘리베이터에서 한바탕 내린다. 덕분에 내가 올라갔을 때는 거의 사람이 없었다. 사방으로 전망을 볼 수 있는데 동쪽, 북쪽, 서쪽, 남쪽을 각각 표시해주고 터치스크린으로 어느 건물이 어떤 역사적 의미가 있는 건물인지 설명하는 안내판도 있다. 어제 걸었던 곳들과 오늘 걸 곳들이 한눈에 다 들어온다. 아주 알찬 공간이다. 게다가 공짜라서 더 좋다. 



전망대를 나와 조금만 걸어가면 알함브라 평원이다. 알함브라 평원은 예상했던 것보다 더 좋았다. 어떻게 오밀조밀한 올드타운 바로 옆에 이런 평원이 있지? 조금만 걸어 나오면 드넗은 평원이 펼쳐진다. 너무 멋지다. 게다가 햇살과 구름이 어우러진 하늘까지 예쁘다. 아, 날씨가 정말 요물이다. 굉장히 넓은 평원이라 동선을 잘 짜서 걷지 않으면 중간에 쓰러질 수도 있다. 이 평원을 공원화해서 안내도가 곳곳에 설치되어 있고 벤치도 많아서 살살 걸으면서 쉴 수 있다. 

어떤 곳은 인공적인 정원으로 꾸며져있고 어떤 곳은 거치른 자연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어떤 곳에는 역사유적지도 있다. 조그마한 타워형 건물인데 입장료를 받는다. 딱 봐도 볼게 없어 보인다. 이런 거는 그냥 개방하면 안되나? 



그밖에도 전에 요새로 사용하던 곳도 있다. 지금은 박물관으로 사용하고 있는데 투어를 신청해야만 들어갈 수 있단다. 지금 막 투어가 시작되었다고 한다. 좀 기다렸다가 다음 투어를 기다릴까 하다가 그냥 돌아서 나왔다. 투어는 약 한 시간 정도 걸린다는데 평가가 엇갈린다. 그 정도 시간과 비용을 투자할만큼의 가치가 없다는 의견도 있고 들을만하다는 의견도 있다. 

그냥 유적지 밖으로 한바퀴를 돌고 알함브라 평원을 가로질러 산책을 했다. 유적지에 대한 안내도가 있어서 읽어보았다. 이 지역이 전략적인 요충지라서 여러번 침략을 당했단다. 특히 미국이 쳐들어온적이 있는데 그때부터 여기에 성을 쌓고 요새를 세웠단다. 미국 여행 때도 느낀 것인데, 이들은 역사가 짧아서 그런지 비교적 최근의 것이라도 크건 작건 역사적인 사건이 있는 곳은 모두 이렇게 소중하게 다루고 전시한다. 1,000년이 넘는 역사를 지닌 우리로써는 저 정도는 역사적 유적지라고 하기가 좀 그렇지 않나 싶은 것도 소중히 다룬다. 그 마음도 한편으로는 이해가 간다. 



알함브라 평원을 가로질러 다시 시내로 나왔다. 비교적 번화가인 거리의 마트에서 드디어 내가 찾던 멀티 어댑터를 찾았다. 야호! 이제 노트북을 쫄지 않고 사용해도 된다. 지금 일기를 쓰고 있는 이 시간, 이 시간을 위해 어댑터는 필요했다. 오늘 걸은 걸음수가 3만보를 넘겼다. 오늘은 일찍 일기도 마무리하고 저녁을 먹고 자야한다. 내일은 새벽 5시25분. 몬트리올 가는 기차를 타야한다. 그 이야기는 내일 이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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