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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 Dec 20. 2023

여행방식도 변한다

2023.08.15.화요일

오늘의 일기는 비교적 짧을 것 같다. 하루 종일 한거라고는 이동 뿐이다. 드디어 앤섬(프린스 에드워드 아일랜드)에 가는 날이다. 어제 몬트리올에서 놀다가 늦은 시간에 기차를 타고 와서 숙소에서는 바로 뻗었다. 아침 7시 알람 소리에 일어나서 씻고 나서 조용히 짐을 챙겨 나왔다. 다들 아직 한밤중이라 대충 짐을 싸가지고 나와서 밖에서 짐 정리를 했다. 위치가 너무 좋아서 하루 종일 돌아다니다가 수시로 들어와 쉴 수 있었던 숙소와 아쉬운 작별을 했다. 그리고 그 사이 익숙해진 거리를 뒤로 하고 공항으로 향했다. 이제 또 새로운 곳으로 간다. 여행이란 늘 익숙해질만하면 떠나야 한다. 그래서 늘 새롭다. 오늘은 또 어떤 새로운 곳에 가게 될까?


공항에 도착해서 바로 비행기에 탑승했다. 어제 에어캐나다 어플의 알람을 받자마자 자리를 잡고 채크인했다. 내리기 편하도록 앞쪽 자리를 선택했다. 이번에도 환승한다. 짧은 거리이지만 싼 표를 구하느라 환승이 있는 것을 샀기 때문이다. 첫 비행기는 어제 다녀왔던 몬트리올까지 30분 비행한다. 그 다음 비행기는 샬럿타운까지 1시간 30분 비행한다. 짧은 시간이라 불편해도 가운데 자리와 창가쪽 자리를 선택했다. 그것들이 제일 앞쪽에 남은 자리였기 때문이다. 몬트리올까지 금방 도착하고 나서 30분 정도 기다린 후에 샬럿타운 가는 비행기를 탔다. 둘 다 통로가 하나뿐인 작은 비행기다. 비행 시간은 짧았지만 그 사이 시간 변경선(1시간 빨라짐)을 지나기 때문에 샬러타운에 도착했을 때 현지 시간으로 오후 3시30분이었다. 저번에 밴쿠버에서 퀘백 넘어올 때도 그랬다. 워낙 나라가 크니까 그렇다. 그러니까 같은 나라 안에서 살더라도 밴쿠버에 사는 사람과 여기 샬럿타운에 사는 사람은 약 4시간 정도 시간 차이가 난다. 이러한 시간변경은 휴대폰을 비행기모드에서 해제하면 자동으로 적용된다. 참 편한 세상이다. 


샬럿타운 공항에 도착했을 때 허걱하였다. 정말 작은 공항이다. 공항 건물은 1층이 전부다. 비행기에서 내릴 때는 야외로 내려야 한다. 너무 귀여운 공항이다. 공항에서 나와서 버스를 타기 위해 구글맵을 따라갔는데 그냥 길 한복판이다. 아무 표시가 없다. 이곳 앤섬은 대중교통을 이제서야 강화하기 시작해서 여러 모로 편의성이 떨어지는 것 같다. 내가 당황하여 두리번거리는데 어떤 동양사람(일본 사람)이 같은 장소를 두리번거린다. 우리는 둘다 여기가 버스 정류장인가 이러고 있는데 택시가 접근한다. 우리가 버스를 탈 거라고 하니까 이 장소가 아니라 저쪽이라고 가리키는데 표지판이 보이지 않는다. 반신반의하면서 일단 그쪽으로 이동해보니까 손바닥만한 표지판이 있긴 하다. 구글맵에서는 5분 후에 버스가 도착한다는데 구글의 정보를 믿어도 될지 의문이 들었지만 일단 기다려보았다. 만약 안되면 이 친구랑 택시를 쉐어해서 시내까지 가야지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버스가 온다. 정말 여기가 맞다. 구글맵의 지도와는 다른 위치지만 시간은 정확하게 맞았다. 




버스 요금은 2달러다. 오는 길에 폭풍검색해서 최신 정보로 알아낸 바로는 2.5달러에서 2달러로 내렸단다. 버스비가 내리기도 한다는 것이 신기하다. 그런데 더 신기한 것은 나와 그 동양친구가 둘 다 환승 터미널에서 다른 버스로 갈아탄다니까 그 버스비는 내지 않아도 된단다. 구글맵에서 경로를 알려줄 때 버스비를 2달러로만 표시해서 혹시 버스비를 내면 티켓을 주고 그것으로 다음 버스를 탈 수 있는 시스템인가 예상했었다. 그런데 예상과 다른 대답이다. 버스기사가 무전기로 우리가 탈 다음 버스의 기사에게 말할 거니까 그냥 타면 된단다. 그리고 정말 환승 터미널에 도착할 때쯤 다음에 탈 버스의 기사에게 무전으로 뭐라뭐라 말하고 우리에게는 지금 탄 버스 번호만 말하라고 했다. 그렇게 버스를 갈아타고 숙소 근처에 내렸다. 그 동양친구는 더 가야 한단다. 안녕. 잠깐이지만 혼자 헤맨게 아니라서 다행이었다.


버스에서 내려서 숙소를 찾아갔다. 에어비앤비로 찾은 숙소다. 여기는 시내에서는 좀 떨어져 있지만 평가가 아주 좋은 곳이라서 선택했다. 이번 앤섬에서는 주로 릴렉스하게 휴식을 취할 것이다. 그래서 돌아다니기 편한 시내보다 숙소가 마음 편히 있을 수 있는 곳으로 선택했다. 처음에는 호텔을 위주로 알아봤지만 너무너무너무 비싸다. 대부분의 호텔이 평가도 안좋고 위치도 안좋은 곳인데도 비싸다. 그래서 에어비앤비로 잡아 보았다. 이 집은 은퇴한 중국인 부부가 운영하는 곳이다. 주인 부부는 윗층에 살고 있고 1층을 에어비앤비로 내어준다. 1층에 방이 2개가 있고 공용화장실이 있단다. 대부분의 평가가 주인들이 너무 친절하고 아늑한 곳이라 잘 쉬고 간다는 내용이었다. 장소도 주요 버스가 다니는 도로에서 그리 멀지 않다. 15분 정도 걸어나가면 이것저것 살만한 가게도 있다. 물론 1분 거리에 편의점이 있는 한국과는 비교할 수 없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이곳에서는 좋은 위치다.


어제 숙소주인이 에어비앤비 메시지로 집 현관 문의 사진을 보내주었다. 현관은 열려 있을 것이고 내방은 2번방이고 키는 문에 걸려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현관문이 잠겨있다. 에어비앤비 어플을 통해 메시지를 보냈으나 답이 없다. 가급적 에어비앤비에서는 개인 정보 보호를 위해 각자 연락처 정보를 공개하지 않고 에어비앤비의 메신저를 이용한다. 그런데 이것을 즉각즉각 읽지 않으면 실시간 소통은 어렵다. 초인종도 눌러보고 문도 두드려 보았지만 답이 없다. 메시지에도 답이 없다. 30분 정도 지나서 화도 나고 지치고 뭔가 대책을 세워야겠다고 생각할 때쯤 차가 한대 들어왔다. 주인아저씨다. 그는 에어비앤비의 메시지로 현관 비번을 알려주었다고 착각하고 있었다. 내가 메시지를 보여주면서 와이파이 비번만 있다고 했더니 미안해서 어쩔줄을 몰라한다. 얼마나 기다렸냐, 대부분 비번을 알려주어서 이번에도 그런 줄로 착각했다, 너무 미안하다고 한다. 사람이니까 실수할 수도 있지만 나는 너무 난감했었다. 에어비앤비를 이용할 경우 채크인 과정에서 이런저런 어려움들이 있다고 들었는데 내가 경험하게 될 줄은 몰랐다. 


일단 아주 난감한 상황에서 주인이 와서 그나마 다행이긴 하다. 주인이 안내해준 대로 방에 들어가니까 방이 아주 넓직하고 예쁘다. 노트북을 펼쳐 놓을 수 있는 아주 넓직한 책상도 있다. 무엇보다도 창밖의 풍경도 너무 좋다. 공용 화장실과 욕실도 깨끗하다. 수건과 물도 준비되어 있다. 방을 본 순간 화났던 마음이 누그러졌다. 아까의 실수는 용서해주어야겠다.




짐 정리를 마치고 시내로 나가서 관광 안내소를 찾아가 버스 정보를 좀더 알아보려고 나서는데 집의 안주인이 내려왔다. 다시 한번 미안하다고 한다. 그녀는 자기는 남편보다 영어를 잘 못한다고 하면서 더듬더듬하는 영어로 사과를 하고는 방 앞의 책장에 이곳에 대한 안내책이랑 지도가 있으니까 필요하면 그것을 보라고 한다. 나도 역시 영어를 잘 못한다고 말하고 서로 피식 웃었다. 그래. 영어는 어렵다. 내가 시내에 나갔다가 곧 들어올거라고 했더니 그녀는 놀라면서 시내에 어떻게 나가냐고 한다. 지금 버스가 없을 거라고 한다. 구글맵에서는 버스가 있다고 나온다. 물론 좀 있으면 이브닝 시스템으로 바뀌어서 30분에 한대 꼴(낮에는 10분에 한대)로 다니겠지만 버스가 있다. 아무래도 이분은 차만 이용해서 잘 모르나 보다. 가끔은 현지인들이 더 모르는 정보도 있다. 그녀는 만약 무슨 일이 있으면 자기 남편 휴대전화로 연락하라고 한다. 걱정되나보다. 좀전에 에어비앤비 메시지로 주인이 휴대전화 번호를 알려주었다. 아까의 일로 긴급하게 연락할 때는 직접 휴대전화로 연락하는게 나을거라고 생각한 것 같다. 그녀는 그러고도 걱정되는지 자기는 휴대전화가 없다면서 집 전화번호를 알려준다. 만약 휴대전화가 안되면 집으로 전화하란다. 내가 영어를 잘 못해서 그게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저장해두었다. 역시 친절한 사람들이다.


숙소에서 큰길까지는 5분정도 거리다. 큰길에서 버스를 타고 시내로 향했다. 시내까지는 버스로 약 10분도 안걸린다. 사실 걸어가려면 걸어다닐 수 있는 거리다. 관광 안내소에 가서 내가 가려는 앤의 마을, 그린게이블스에 가는 방법을 물어 보았다. 그랬더니 곧바로 투어를 권한다. 프로그램을 보니까 4시간동안 엄청 많은 곳을 돌아다닌다. 버스 타고 쭈욱 훑고 4군데 정도 내리는 것 같다. 전용 투어버스를 이용해서 편하겠고 영어공부에는 도움되겠지만 짧은 시간에 많은 곳을 스치듯이 다니는 것은 내 스타일이 아니다. 무엇보다도 나는 앤의 집을 아주 천천히 둘러 보고 싶다. 그 마을도 천천히 산책하고 싶다. 나는 버스로 갈 수 있는 방법을 알려달고 했다. 그랬더니 버스의 홈페이지를 알려주고 거기서 예약하란다. 내가 이미 알고 있는 정보다. 


한국인들의 앤섬 여행 후기들은 대부분 차량 렌트를 권하고 있지만 나는 그러지 않고 대중교통으로 이동하려고 한다. 구글에서 영어로 검색해보니까 앤섬의 버스 홈페이지가 있다. 여기도 이제부터 친환경을 위해 버스 이용을 권하다고 어쩌고 저쩌고 한다. 버스 노선에 대한 자세한 안내와 시간표, 시외 노선의 경우에는 예약도 가능한 사이트를 이미 섭렵했다. 그래도 혹시나 안내소에서는 더 좋은 방법을 알고 있나 싶었는데 역시 내가 아는 정보와 같다. 안내소 직원에게 시내버스 티켓을 사면 그걸로 그린게이블스(더 정확한 지명은 케번디시)에 갈 수 있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그걸로는 거기 가는 버스를 이용할 수 없단다. 다른 시스템이란다. 하긴 그 시외버스는 하루에 5번만 운행하니까 요금부터 다르겠지. 알았다. 


아, 또 하나 질문. 여기에 엄청 아름다운 국립공원(Greenwich)이 있는데 거기는 어떻게 가냐고 물었더니 거기야말로 전혀 대중교통으로 갈 수 없단다. 개인 투어로 가는 수밖에 없단다. 그래. 내가 여기의 버스홈페이지에서 샅샅이 뒤졌는데 정말 없더라.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없구나. 개인 투어를 추천해줄 수 있냐고 물었더니 명함 몇 개를 준다. 정말 깊이 고민해봐야겠다. 개인 투어로 갈 것인가 말 것인가.


안내소에서 나오려는데 바로 앞이 리퀴르 스토어. 술파는 곳이다. 역시 나는 신이 내린 술꾼이다. 맥주를 사가지고 가야지. 내 방에 작은 냉장고도 있어서 시원한 맥주를 마실 수 있다. 오늘은 책상다운 책상에서 일기도 쓸 수 있다. 사소한 것들이 행복하다. 맥주를 사가지고 나와서 근처의 슈퍼스토어에 갔다. 거기 점원에게서 버스표 10회권을 살 수 있단다. 자잘한 간식과 버스표를 사가지고 바로 옆의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를 타고 숙소로 왔다.


오늘은 드디어 4일 만에 개인 공간에서 잠을 잘 수 있다. 사실 유스호스텔의 도미토리룸은 여러모로 불편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가끔 그곳을 이용하는 것은 가성비가 좋고 잘하면 친구도 사귈 수 있기 때문이다. 가성비는 예나 지금이나 좋다. 가격도 다른 유형보다 저렴하고, 또 대부분의 유스호스텔이 관광지에 바로 인접해 있다. 그런데 친구를 사귈 수 있다는 장점은 이제 퇴색된 것 같다. 저번 밴프에서 그렇고 이번 올드퀘백에서도 그렇고 정말 도미토리룸의 분위기가 예전과 달라졌다. 라떼는 버전으로 말하고 싶지는 않지만, 옛날에는 휴대폰도 없고 인터넷도 없어서 여행지에 대한 정보는 그때그때 만나는 사람들에게서 얻을 수 있었다. 그래서 도미토리룸은 그야말로 정보의 보고였다. 같은 방에 묵는 친구들과 정보도 교환하고 그러다가 뜻이 맞으면 같이 다니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대부분 인터넷으로 정보를 검색하기 때문에 굳이 무언가를 물을 필요가 없다. 그것은 도미토리룸뿐 아니라 여행 전체의 방식이 달라진 것이겠지? 예전에는 길을 찾을 때도, 버스에서 내릴 때도 예전에는 지도를 보면서 두리번거리고 있으면 현지인들이 어디를 찾냐고 묻고는 길을 알려주었다. 심지어는 같이 가준 적도 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휴대폰을 쳐다보고 있으면 아무도 말을 붙이지 않는다. 나도 더 이상 길을 묻지 않는다. 그래, 이제 여행의 방식 자체가 바뀐 것이다. 도미토리룸에서도 무언가 말을 붙일까 싶어 둘러봐도 다들 휴대폰만 보고 있었다. 어쩌면 이런 변화는 자연스러운 것일 수도 있겠다. 지금 일기를 쓰고 있는 이 공간은 주인 부부의 자녀들의 방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공간을 여행자에게 임대하는 일이 자연스러워졌다. 그렇게 여러 가지 변화들이 일어나고 있다. 세상도 변하고 여행도 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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