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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 Dec 28. 2023

비 속의 퍼레이드

2023.08.18.금요일

아침에 일어나 보니까 정말 비가 내리고 있다. 추적추적 내리는 비는 우산이 필요한 정도로 오고 있다.이래가지고 퍼레이드를 할 수 있을까 싶다. 그래도 일단 시내에 가보기로 했다. 1번 버스를 타러 나와보니까 승객들이 몇 명 기다리고 있다. 그런데 버스가 하염없이 오지를 않는다. 혹시 국경일이라 버스 운행 안하는거 아닐까 싶다. 구글맵에서는 버스가 방금 지나갔다고 나온다. 미쳤니? 유령버스가 지나갔니? 혹시나 해서 다른 어플로도 확인해 보았다. 실시간 버스 운행도 확인하고 버스비도 낼 수 있는 어플을 설치해 온게 있는데 그걸로 확인해 보니 버스들이 한 곳에 모여있는 걸로 나온다. 아무래도 오늘은 운행을 하지 않는가보다 하고 포기하고 걸어가려는 순간, 기적같이 1번 버스가 왔다. 이건 뭐지? 임시로 운행하는 버스인가? 버스를 타고 얼마 가지 않아서 여기가 자기가 세울 수 있는 마지막 정거장이라고 모두 내리란다. 보니까 저 앞에 길을 막고 있다. 퍼레이드길인가보다. 그나마 이만큼이라도 버스를 타고 와서 다행이다.

길가에는 정말 사람들이 옹기종기 의자에 앉아있다. 거의 한 시간 정도 행렬이 지나가기 때문에 이곳 사람들이 피크닉 의자를 가지고 나와서 구경한다고 했다. 정말 그러네. 이미 10시가 넘었고 비는 계속 부슬부슬 내리고 있다. 언제 시작될지는 몰라서 일단 내가 오늘 목표로 했던 빅토리아 공원 쪽으로 걸어갔다. 퍼레이드가 그쪽 방향에서부터 시작되나 보다 사람들이 다들 그쪽을 바라보고 있다. 공원에 거의 도착할 때쯤 갑자기 방송이 나오더니 퍼레이드 행렬이 온다. 나는 길가에 자리를 잡고 서서 사진도 찍고 영상도 찍었다. 제일 먼저 역시 영국 통치령이었던 곳답게 스코틀랜드 전통 복장, 백파이브 등의 행렬이 제일 처음에 지나간다.



그리고 다양한 행렬이 지나간다. 보니까 행렬의 대부분은 이곳 경찰, 소방관, 주민, 가게 주인, 농부 등인 듯하다. 가족 단위로 퍼레이드에 참여한 사람들도 있고 학생들이 그룹으로 참여한 경우도 있다. 한 무리의 학생들이 커다란 풍선을 함께 들고 간다. 학생 중에 한 명이 딴짓을 해서 풍선이 뒤뚱거리니까 지도교사인 듯한 사람이 뭐라뭐라 한다. 하기 싫은데 억지로 끌려나왔구나? 후후.




그밖에 가지각색의 사람들이 다양한 컨셉으로 참여하고 있다. 대놓고 가게 홍보하는 팀도 있고, 목장 주인이 진짜 소와 송아지를 태우고 지나가기도 한다. 행렬 참가자 중에는 거리에 나와 구경하는 사람들과 아는 사람들도 있어서 서로 인사도 하고 그런다. 동네 잔치 분위기다. 이런 분위기 좋아.




비는 계속해서 부슬부슬 내리고 있는데 참 열심히들 퍼레이드를 하고 있다. 약 50분 정도 되니까 행렬이 끝나가나 보다. 사람들이 주섬주섬 의자를 접고 일어난다. 재밌게 잘 봤다. 지역 행사를 우연히 마주하게 되는 것은 아주 즐거운 경험이다. 오늘 시내에 나오기를 참 잘한 것 같다. 퍼레이드가 끝난 후에는 시내의 끝 쪽에 있는 빅토리아 공원을 한바퀴 돌아 보았다. 바닷가 쪽 산책로가 아주 예쁘다. 무슨 포대같은 것도 있는데 강화도의 초지진이 연상되었다.



해안가 산책로를 따라서 다시 시내거리로 나왔다. 점심은 항구 앞의 평점이 높은 곳에서 먹었다. 랍스터가 들어간 메뉴를 골랐다. 여기에 화이트 와인을 곁들였다. 저쪽에 보니까 서양 아저씨도 혼자 앉아서 맥주와 식사를 즐기고 있다. 그래. 역시 낮술은 진리지. 즐겁게 식사를 하고 있는데 빗소리가 범상치 않다. 보니까 이제는 아예 폭우가 쏟아진다. 최대한 천천히 식사를 즐겼다. 비가 좀 잦아들면 나가야지 싶었다. 그러나 비는 그칠 생각이 없나보다. 아까 걸었던 길의 반대쪽을 산책하려 했는데 아무래도 어려울 것 같다. 

점심을 먹고 나서 바로 앞 가게에서 이 지역의 명물이라는 COWS 아이스크림을 하나 먹었다. 뭐 아이스크림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지만 여기 명물이라니까 먹어줘야지. 시내 거리에도 가게가 있었는데 여기 항구에도 있다. 아이스크림을 먹으면서 항구 옆 공원을 산책하고 성당도 구경할 생각이었으나 비가 많이 와서 마음을 바꾸었다. 와인도 알딸딸하고 살살 졸리다. 숙소에 가서 낮잠을 자고 비가 그치면 다시 생각해보자. 



숙소에 와서 그대로 뻗었다가 일어나니 5시가 넘었다. 비는 많이 잦아들었다. 하지만 다시 버스를 타고 시내에 나가려니까 귀찮다. 그냥 동네 산책이나 해야겠다. 숙소가 조용한 동네라서 산책해보고 싶었다. 길을 따라 바닷가 공원 쪽으로 갔다가 한바퀴 돌고 왔다. 벌써 2만보 넘게 걸었다. 오늘은 푹 쉬지만 내일은 장시간 비행기를 타고 가야 한다. 싼 표라서 무려 2번의 환승을 해야 한다. 

조용한 동네를 산책하고 들어오면서 이제 이곳 프린스 에드워드 아일랜드 여행도 마무리 되는구나 생각하니까 뭔가 좀 울컥하는게 있다. 그토록 오고 싶었던 앤섬에 왔다. 이런저런 많은 경험을 하고 간다. 언제 이곳에 다시 오게 될까? 올드퀘백을 떠날 때는 이런 생각이 들지 않았는데 왜 지금 이런저런 생각이 드는 것일까? 이번 여행의 끝이라서? 아니면 이곳 앤섬이 쉽게 오기 어려운 곳이라서? 둘다 인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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