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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 Dec 31. 2023

캐나다 동부에서 서부로

2023.08.19.토요일


오늘은 이동의 날이다. 캐나다의 동부 끝에서 서부 끝으로 이동한다. 비행기를 2번 갈아탄다. 샬럿타운에서 몬트리올(1시간 30분 정도), 몬트리올에서 캘거리(6시간 정도), 캘거리에서 밴쿠버(1시간 30분 정도). 그런데 저 시간이 맞는지 잘 모르겠다. 시간 변경선을 두 번 지나는데 모두 도착지 현지시간을 기준으로 해서  좀 헛갈린다. 어쨌든 샬럿타운에서 11시20분에 출발 하루 종일 움직여서 저녁 6시30분에 밴쿠버에 도착한다.

아침 일찍 일어나 짐을 싸서 나왔다. 이 에어비앤비 숙소는 너무 만족스러웠다. 주인들도 친절하고 방도 넓고 깨끗했다. 옷장도 있고 커다란 책상도 있어서 짐을 편하게 풀고 사용할 수 있었다. 문자로 감사했다고 인사를 남기고 길을 나섰다. 

원래 계획으로는 1번 버스를 타고 환승장에서 공항가는 버스를 탈 생각이었다. 올 때 그렇게 왔으니까 그러나 역시 마지막까지 긴장의 끈을 늦추면 안된다. 1번 버스가 유독 늦게 왔다. 버스가 운행되지 않은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다. 환승장에 내리니까 사람이 아무도 없다. 어잉? 여기는 늘 사람들로 북적였는데... 갑자기 든 생각. 오늘이 토요일이지. 서둘러 휴대폰으로 버스홈페이지에 들어가서 확인해보니까 스케뷸표 상단에 월~금이라고 써 있다. 하지만 아까 1번 버스가 운행했쟎아. 그리고 아까 1번 버스에서 내릴 때 캐번디시로 가는 시외버스도 보았다. 그래도 너무 이 장소가 한가하다. 오가는 사람도, 버스도 거의 없다. 이게 뭔일인가 싶다. 누군가에게 물어보고 싶은데 사람이 당최 없다. 한참 초초하게 기다리니까 1번 버스가 온다. 얼른 기사에게 여기서 공항버스 타는거 맞는지 물었다. 맞단다. 그러면 오늘 토요일인데 오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고개를 갸오뚱하더니 무전기로 누군가에에 묻는다. 그러더니 오늘은 공항가는 버스가 없단다.

침착하자. 혹시나 해서 아까 공항까지 걸어서 얼마나 걸리는지 보았다. 45분 걸린다. 내 걸음으로는 1시간이 좀 넘게 걸리겠구나. 그 다음 방법은 우버. 그런데 우버 서비스 지역이 아니란다. 그 다음 방법은 택시인데 오늘이 토요일이라서 그런지 여기에 택시가 안보인다. 그렇다면 이따가 1번 버스가 오면 타고 시내로 나가서 택시를 타는 방법이 있다. 그러려면 여기서 공항까지 가는 길의 정 반대로 한참 가야 한다. 거기서도 택시를 탈 수 있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여기서는 걸어갈 수 있지만 거기서는 도저히 걸어갈 수 없다. 

결국 나의 선택은 걷기. 한시간 정도는 거뜬히 걸을 수 있다. 그래. 역시 여행은 마지막까지 다이나믹하구나. 구글맵이 알려주는 최단거리로 걷기 시작했다. 황량한 주차장을 가로질러 가니까 길이 있을까 싶은 곳에 산책로가 나온다. 비포장이라 트렁크를 끌기가 좀 불편했지만 산책하기 좋은 길이다. 산책로를 벗어나 도로를 건너고 다시 산책로길을 걸었다. 마침내 더 이상 산책로로 걸을 수 없는 구간에서는 도로를 따라 걸었다. 예상대로 1시간 정도 걸려서 공항에 도착했다. 구름이 끼어서 햇살도 없고 바람도 살살 불어서 산책하기는 딱 좋은 날씨다. 짐만 없다면 아주 좋았을텐데...




공항에 도착해서 검색대를 통과하여 비행기를 기다리는데 비행기가 연착된단다. 처음에는 20분 연착된다더니 결국 40분 연착이다. 그러면 다음 비행기의 탑승시간에 이 비행기가 도착하게 된다. 게이트가 열릴 때까지 초초하게 기다리다가 직원이 나오길래 다음 비행기 표를 보여주면서 내가 다음 비행기를 탈 수 있겠냐고 물었다. 그녀는 가까운 곳이라 충분히 가능하다고 별일 아닌 듯이 말한다. 너네는 그렇게 느끼겠지만 나는 불안하다고... 어제 캐나다어플에서 채크인하라고 알려주었을 때 잽싸게 채크인해서 비행기의 앞쪽 자리를 선택했다. 그나마 비행기가 도착하면 빠르게 뛰어나갈 수 있다. 

40분이나 늦어진 비행기에 탑승하고 이륙한 후 다시 승무원에게 물었다. 내가 다음 비행기를 놓치지 않겠냐고. 그녀는 괜찮을거라고 한다. 그런데 내 옆자리의 승객도 자기 표를 보여주면서 같은 것을 묻는다. 보니까 여러 승객들이 같은 질문을 하고 있다. 승무원은 다 괜찮다고 말하고 가버렸다. 니들은 그렇게 느끼겠지만 나는 아니라고... 정말 마지막까지 별일이 다 생기는구나 싶다. 혹시 비행기를 놓치면 어떻게 할지 생각해 두었다. 이럴 경우 캐나다항공의 지연으로 인한 것이니까 이들이 대체 항공편을 연결해주는 것으로 알고 있다. 따라서 비행기에서 내리면서 출구에 있는 캐나다 항공 데스트에 상황을 말하고 대체 항공편을 티켓을 받아야 한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아까 그 승무원이 뭔가 잔뜩 메모한 것을 들고 온다. 승객 한 명 한 명에게 어디가는 연결편인지 묻고는 그 비행기는 몇번 게이트인데 이 비행기가 내리는 곳에서 나가서 좌측으로 몇번째 게이트다, 대략 몇 분 정도 걸어가면 된다고 설명해준다. 나에게도 너의 다음 비행기는 우리가 도착하는 곳에서 오른쪽으로 3분만 걸어가면 되는데 아주 여유있게 멋진 뷰를 보면서 가도 충분하다고 한다. 보니까 우리 도착게이트가 47번인데 내가 탈 게이트는 50번이다. 우측으로 3번째 게이트까지만 이동하면 된다. 좀 안심이 되었다. 

그러나 비행기가 몬트리올 공항에 착륙하고 나서 출구에 연결되기까지 10분이 넘게 걸렸다. 처음에는 비행기가 착륙해서 아, 이제 가면 그래도 좀 여유있겠구나 싶었다. 그러나 출구 연결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렸다. 안전벨트 싸인이 꺼지자 잽싸게 일어나 짐을 내리고 나갈 준비를 했다. 그런데 보니까 연결편이 있는 승객들만 일어나서 짐을 내리고 나갈 준비를 하다. 아까부터 기장과 승무원이 방송으로 연결편이 어쩌고 승객이 어쩌고 했는데 그게 비행기 지연에 따라 연결편 승객들이 먼저 내려서 비행기를 갈아타야 하니까 연결편 이용 승객이 아닌 사람들은 이들이 먼저 내릴 수 있게 협조해달라는 것이었나보다. 순전히 나의 추측이다. 그런데 맞는 것 같다. 심지어 1등석 승객 중 일부도 그냥 앉아서 급하게 나가는 사람들이 빠져나가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일단 나가자마자 우측으로 냅따 뛰었다. 영화에서 보면 가끔 공항에서 달리는 사람들이 있다. 홈어론2에서도 공항에서 연결편 탑승하다가 가족을 놓쳐서 주인공 캐빈이 엉뚱한 비행기에 탑승했었지. 영화에서처럼 멋지지는 않았지만 일단 나는 트렁크를 끌고 열심히 뛰었다. 아주 짧게 뛰다가 곧 지쳐서 그냥 걸었다. 게이트 3개만 더 가면 되는 거라서 짧을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길었다. 도착하니까 1등석, 2등석 승객이 탑승 중이다. 어차피 그 이후 승객은 줄만 길게 서 있을 뿐이었다. 그래도 줄은 중간쯤에 설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예전에 나는 비행기에 탈 때 그 좁은 곳에 오래 앉아있기 싫어서 최대한 늦게 탔다. 그래서 줄도 서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는 가급적 일찍 탄다. 이유는 자칫하면 트렁크를 넣을 공간이 없어서 뒤쪽에 짐을 두어야 하는 경우가 있어서다. 어떤 승객들은 자기 자리가 뒤쪽임에도 불구하고 탑승하면서 앞쪽 공간에 트렁크를 올려두고 간다. 내릴 때 편하게 여기까지 와서 트렁크를 들고 내리려는 심산이다. 그러다 보니까 앞쪽은 늘 트렁크 둘 공간이 부족하다. 늦게 타서 자리가 없으면 트렁크 올려둘 자리를 찾아 뒤쪽까지 가는 경우도 있다. 그러면 내릴 때도 다른 사람들이 다 내린 다음에 가서 짐을 찾아오거나 사람들을 뚫고 뒤쪽으로 짐을 찾으러 가야 하는 것이다. 그런 것을 몇 번 목격하고 나서 나는 일찌감치 비행기에 탄다. 

어쨌든 비행기를 놓치지 않고 탔다. 아침부터 정말 다이나믹하구나. 공항 가는 버스가 없어서 걸었고 비행기가 연착해서 뛰었다. 이번 비행기는 장시간 가는 것이라서 전략을 잘 짜야 한다. 우선 영화 한 편을 때렸다. '인사이드'라는 영화인데 어떤 도둑이 미술품을 훔치러 갔다가 그 집에 갇힌 이야기다. 그 집은 최첨단 시스템으로 작동되고 경비와 보안이 철저한 집이다. 어느 빌딩의 최고 꼭대기 집인데 그 집 주인이 1년간 해외여행을 가서 그 집에 갇힌 주인공은 그냥 거기서 생존을 위해 발버둥을 친다. 내용만 봐서는 코미디일 것 같았는데 아니었다. 매우 철학적인 내용이었다. 배우의 연기도 일품이었다. 

재밌게 영화를 보고 나서 잠시 눈을 쉬어주다가 문득 스케치를 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앤의 집을 스케치하려고 생각해 놓고는 아직까지 하지 못했다. 뭐가 그리 바빴을까? 휴대폰의 사진을 보면서 스케치에 열중했다. 나중에는 좀 멀미가 나려고 해서 쉬엄쉬엄 겨우겨우 마무리했다. 중간에 식사를 하는 사람들도 있었는데 여기 기내식은 무료가 아니라 유료다. 나는 아까 샬럿타운에서 사둔 샌드위치로 대충 때운다. 밴쿠버에 가면 맛있는거 먹어야지.

아직도 시간이 2시간이나 남아서 이번에도 영화 한 편을 선택했다. 이번 영화는 '러브 어게인'. 한국에서 여기 올때부터 눈여겨보았던 영화인데 자칫하면 울 것 같아서 참고 있었다. 여자 주인공이 사랑하는 남자친구가 사고로 죽고 나서 남자친구의 휴대폰으로 자기 심정을 문자로 보낸다. 마침 그 휴대전화 번호를 이어받은 어떤 남자가 그녀의 마음에 감동받고 그녀을 우연인척 만나서 서로 사랑하게 된다는 내용으로 마지막은 해피엔딩이다. 하지만 역시 그녀가 죽은 남친을 그리워하는 장면에서 눈물을 찔끔 흘렸다. 조금만 슬픈 내용이 나와도 나는 너무 잘 운다. 

장시간의 비행이었지만 알차게 시간을 보내서 그다지 지루한 줄은 몰랐다. 두 번째 영화가 끝날 때쯤 딱 알맞게 캘거리 공항에 도착했다. 이번에는 여유롭게 1시간이 있어서 느긋하게 다음 게이트로 갔다. 하지만 게이트가 생각보다 아주아주 길었다. D40에서 C52라니까 즉 건물 하나를 이동해야했다. 물론 실내로만 이동하는 것이라 다행이지만 걸어서 약 15분 정도 걸렸다. 한참 기다린 끝에 밴쿠버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이제 집에 간다고 생각하니까 만감이 교차한다. 장장 9일의 여행이 끝났다. 그 중에서 3일은 이동하느라 다 지났고 3일은 퀘백에서 3일은 앤섬에서 보냈다. 정말 알차게 잘 다녔구나. 도깨비 순례도 하고 앤의 마을에도 가고 실컷 걷고 자전거도 탔다. 그리고 이제 밴쿠버로 돌아간다. 앞으로 한동안은 여행을 다니지 않을 생각이다. 여행에서 생각보다 영어를 많이 사용하지 않았다. 친구를 사귀면 좀 달랐을텐데 예전과 달리 그게 쉽지 않다. 밴쿠버를 떠날 때보다 영어실력이 더 줄어든 것 같다. 이제는 열심히 공부해서 영어 단계가 올라가서 원어민과도 대화가 될 때쯤까지는 여행을 가지 않을 생각이다. 그게 언제쯤일지는 모르겠지만.

즐거운 여행을 마무리하고 집으로 돌아와서 씻고 짐을 정리했다. 그 사이 우리집에 변화가 생겼다. 내 옆 방에 새로 학생이 들어왔다. 아주 명랑하고 귀여운 18세의 미국학생 M이다. 응? 미국인? 그녀는 이곳에 메이크업을 배우러 왔단다. 그런데 역시 네이티브 스피커는 발음이 너무 빠르다. 너무 알아듣기가 어렵다. 지금은 어렵지만 그녀와 함께 생활하면서 익숙해져야겠다. 좋은 연습 상대다. 내가 적극적으로 말을 걸고 자꾸 대화를 해야겠다. 이 친구는 아주 잘 웃는데 주방에서 마주칠 때마다 아주 밝게 웃으면서 인사한다. 성격 좋은 사람이라는 것이 확 느껴진다. 

그런데 브라질 친구 K가 커다란 트렁크를 사가지고 왔다. 그녀는 다음주부터 터키에서 촬영하는 리얼리티쇼에 참여한단다. 어느 섬에서 서바이벌로 진행하는 쇼인데 자기가 얼마나 생존할지 몰라서 언제 돌아올지 모른단다. 그녀에게 나도 그 쇼를 보고 싶다, 너와 인스타그램을 연결하자고 했다. 그녀가 좋다면서 나와 자신의 인스타를 연결하고 그 쇼의 인스타도 연결해주었다. 허걱, 그녀의 인스타 팔로워는 259만명이 넘는다. 역시 인기스타는 다르구나.

그런데 이렇게 인기 있는 연예인인데도 나와 대화할 때 보면 그런 티가 나지 않는다. 내가 어디를 갔다 왔다고 하면 꼭 어디가 제일 좋았는지, 무엇 때문에 좋았는지 묻는다. 내가 영어가 서툴러서 이런저런 단어로 돌려서 표현해도 끝까지 아주 집중해서 듣는다. 경청하는 자세가 되어 있다. 그래서 그녀와 대화할 때는 내가 있는 단어, 없는 단어, 다 짜내서 말하게 된다. 전에 인도여행을 이야기할 때도 느낀 것인데 뭔가에 대한 호기심도 많고 열정도 많은 친구다. 그녀가 연예인으로, 그리고 한 사람으로 멋지게 살아가기를 진심 응원한다. 리얼리티쇼가 끝나면 여기로 다시 올거라는데 최장으로 진행되면 12주가 걸린단다. 끝까지 서바이벌에서 살아남으면 상금이 많아서 여기 오면 우리에게 한턱 낼거란다. 그래. 12주 후에 반갑게 만나자. 그때쯤이면 내 영어도 더 나아지겠지? 가만있자, 12주 후면 12월이다. 나는 그때 여기 없겠구나. 그래도 어쩔 수 없지. 이렇게 너와 알게 된 것만도 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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