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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 Jan 11. 2024

아닌 밤중에 대청소

2023.08.23.수요일

내 친구 L의 페북 문제가 아직도 해결되지 않았다고 해서 구글에서 검색해서 한국 블로거 중에 유사한 문제를 해결한 사례를 찾아 공유해주었다. 그러나 번역이 지원되지 않아서 소용이 없다. 블로그를 자세히 읽어보니까 꽤 과정이 복잡하고 지난했다. 경찰에 신고까지 해서 사건을 접수해야 해서 여기서는 해결이 어려울 것 같다.


문법 수업에서 본문에 소개되었던 김연아 선수의 우승 장면을 함께 감상했다. 전에도 봤던 것인데 여전히 아름답다. 교사는 나에게 요즘 김연아 선수가 무엇을 하고 있냐고 묻는다. 내가 친하지 않아서 잘 모르겠다고 했다. 후후. 그걸 내가 어찌 알겠소. 

이번 단원은 동사구인데 이건 뭐 거의 문법이 아니라 단어 공부 수준이다. 교사도 이것은 문법 영역이라고 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암기는 불가능하다. 그저 친숙해지는 수밖에 없다.

L과 나는 연습문제를 파트너로 함께 풀었는데 우리 둘다 엄청 헛갈려했다. 지금까지 이렇게까지 둘다 헛갈린 적은 없었다. 그동안 문법 연습문제를 풀 때는 내가 혼동하면 L이 바로 잡고 L이 혼동하면 내가 바로 잡아서 대체로 함께 푸는 문제들은 거뜬히 해결했는데 오늘은 둘다 손을 들었다. 

He observed that these chimps get by/up at dawn to eat the leaves of Aapilla. 

이 문장에서 우리는 get by라고 생각했다. get by는 살아남다. 침팬지가 아필리아 잎을 먹고 살아남았다는 내용으로 추리했다. 본문의 내용이 야생에서 동물들이 어떤 것을 먹고 치유하거나 살아남는지에 대한 것이므로. 그러나 틀렸다. get up 잠자리에서 일어나다. 해석하자면 '그는 침팬지들이 새벽에 잠자리에서 일어나 아필리아 잎을 먹는 것을 관찰했다.'라는 의미다. at dawn 새벽이 힌트란다. 결국 단어만 딸랑 암기해서는 해결되지 않는다. 맥락도 함께 파악해야 한다.



듣기 수업에서는 어제 배웠던 사람의 성격을 표현하는 형용사를 복습했다. 그룹을 지어서 가족이나 친구를 다시 한번 형용사를 이용해 소개하고 그 이유를 덧붙여 말했다. 'My sister is reliabe because she is true person. I belive her.' 이런 식으로 표현해서 단어를 익혔다. 복습활동을 하고 나서 이번에 숙어 표현을 배웠다. 대체로 아는 내용인데 알듯말듯한 것도 있고 새로 배운 것도 있다. every week는 매주인데 every other week는 격주란다. make a bet은 '내기를 하다'란다. 




읽기와 쓰기 수업은 예고한 대로 내용 확인 시험을 보았다. 문제는 전과 비슷한 패턴으로 알맞은 단어를 찾아 빈칸 메꾸기, 알맞은 단어의 품사 선택하기, 내용 확인을 주관식으로 쓰기의 세 가지 유형이다. 그럭저럭 문제를 풀었는데 마지막에 좀더 디테일하게 물어보는 문제는 예상치 못해서 그냥 대충 썼다. 문제를 거의 다 풀고 날 때쯤 어제 기습적으로 본 작은 테스트의 결과를 준다. 겨우 절반을 넘겼다. 내용 문제는 자신 있었는데 은근한 디테일을 읽어내지 못해서 많이 틀렸다. 단어의 품사도 계속 틀렸다. 문제 수준이 조금씩 더 어려워지는 느낌이다. 



점심시간에 밥을 먹으면서 일본 친구와 근처에 있는 문화예술회관에서 하는 무료 행사 정보를 교환했다. 그리고 숙제를 열나게 했다. 오늘은 졸지 않았다. 



회화 수업은 위치를 설명하고 길을 찾는 활동을 했다. 그런데 교사 C가 기운이 좀 없다. 그녀의 제일 친한 친구 D는 우리의 읽기와 쓰기 수업 교사인데 D가 이번달까지만 근무하고 대학으로 가기 때문인 것 같다. 굉장히 명랑하고 활기차던 C가 기운빠진 걸 보니까 안타깝다. 미로같은 도시에서 파트너에게 길을 안내해서 목적지까지 도착하도록 하는 활동을 했다. 설명을 잘못하면 파트너가 종이 위에서 길을 잃는다. ㅋㅋ 






보충 수업에서는 gerund 동명사에 대해 배웠다. 말 그대로 동사에 ing를 붙여서 만든 명사다. 주어나 목적어로 사용할 수 있다. 'Shopping with you was fun. 너와 쇼핑하는 것은 즐겁다.' 그런데 이 예문을 보는 순간, 드는 생각. 그냥 쇼핑 자체가 즐거운게 아닐까? 태도나 대화, 스포츠 등에서 동명사가 사용되는 것을 배웠다. 그리고 실전 연습으로 빈칸 메꾸기 활동을 했다.  'You can lose weight by eating less. 적게 먹기는 체중을 줄일 수 있다.' 너무 당연한거 아니야? 나도 모르게 자꾸 예문에 딴지를 걸고 있다. 



보충 수업을 듣고 나오는데 전에 같이 놀러갔던 대만 친구 J가 여행 어땠냐며 말을 붙여왔다. 그녀가 가는 지하철 방향과 내가 가는 도서관 방향이 비슷해서 함께 걸어가면서 여행 얘기를 신나게 했는데 그녀가 나에게 요리에서 고민이 있단다. 그녀는 전에 내가 만들었던 떡볶이와 튀긴 만두를 아주 맛나게 먹었고 그 후에는 내가 만든 주먹밥도 맛나게 먹었다. 그래서 내가 요리를 잘하는 줄 알고 조언을 구하는 것이다. 아! 내가 요리를 잘하는 것은 아닌데, 어쨌든 들어보자. 

녀가 어떤 빵 종류를 샀는데 그게 예상했던게 아니란다. 사진을 보여주는데 타르트를 만들 수 있는 기본빵을 산 것 같다. 그녀는 그게 타르트인줄 알고 샀단다. 그러니까 빵 위에 블루베리나 과일이 들어가 있는 그런 타르트를 기대했나보다. 그걸로 자기가 블루베리를 얹어서 타르트를 만들고 싶은데 뭐가 잘 안된단다. 사실 여기까지 이해하는 것도 굉장히 어려웠다. 내가 영어를 잘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잊고 그녀는 뭔가 말을 하는데 너무 빠르다. 내가 고개를 갸오뚱하니까 그녀는 사전으로 뭔가 보여주는데 보니까 접착제라는 단어다. 추측하건대 타르트빵 위에 과일이나 뭔가를 올렸을 때 그게 빵에 잘 달라붙어 있지 않고 따로 놀아서 먹기가 어려운가보다. 그래서 블루베리가 타르트에 잘 붙어 있는, 시중에서 파는 타르트처럼 만들고 싶은 건가 보다. 이때 내 머리를 스치는 아이디어! 꿀이나 메이플시럽을 발라봐. 혹은 잼이나 땅콩버터도 가능할거 같아. 그녀는 감탄하면서 좋은 아이디어란다. 그러면서 메이플시럽을 사본적이 있냐고 묻는다. 아니 그건 나도 잘 몰라. 그녀는 자기가 알아보겠다며 고맙단다. 소가 뒷걸음치다 쥐잡은 것 같지만 도움이 되었기를 바란다.



도서관에 가서 숙제를 마무리하고 여행간 동안 진도 나간 부분도 복습을 열나게 했다. 그러나 오래 있지는 못했다. 오늘은 Meetup의 한영 언어교환 모임이 있는 날이다. 전철을 타고 모임 장소로 갔다. 오늘도 사람들이 바글거린다. 몇 명은 그 사이 안면을 익혀서 인사를 나누었다. 지난주에 왜 오지 않았냐고 해서 여행 다녀왔다고 했다. 퀘백과 앤섬에 갔다니까 다들 놀란다. 그래. 좀 멀리 다녀왔지. 오늘도 폭풍같은 2시간이 지났다. 영어를 잘하는 사람들 틈에서 좀 따라잡기 버거웠지만 그래도 열심히 들으려고 노력했고 말도 열심히 했다. 그룹을 몇 번 바꾸면서 조금씩 말이 유창해지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2시간을 열심히 듣고 열심히 말했더니 진이 다 빠진다. 그래도 보람을 느끼면서 집으로 왔다.



집에서는 사건이 발생했다. 내가 집에 가니까 일본 친구만 있었는데 그녀는 나에게 기숙사측의 이메일을 읽어보았냐고 한다. 아직이라니까 좀 심각한 표정이다. 얼른 확인해보니까 경고 이메일이 와 있다.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멕시코 배우 친구 K가 터키로 떠나면서 자기가 쓰던 여러가지 물건들을 친구들에게 필요하면 사용하라고 싱크대와 식탁에 올려두고 갔다. 휴지나 키친타올은 싱크대 위에 올려두었고 커피(거의 새거)와 과자류, 티 박스 등은 식탁 위에 올려두었다. 메모들이 잔뜩 붙어 있었는데 커피는 나를 위해 남긴다고 하고(내가 그녀의 커피를 많이 얻어마셨다.) 과자는 다른 친구를 위해 남긴다고 붙어 있다. 문제는 이런 저런 것들이 엄청 지저분하게 여기저기 널려있다는 점이다. 

학생들이 이사를 나가면 하우스키퍼들이 와서 그 방을 다시 청소하고 새로운 학생을 맞이할 준비를 한다. 대부분 학생들은 이사를 나가면서 자기 짐을 깨끗하게 치우고 냉장고와 싱크대 서랍도 싸악 비우고 나가는데 K는 그러지 않았다. 그래서 하우스키퍼들이 주방과 식탁, 냉장고의 사진을 찍었고 그것을 우리 모두에게 경고로 보낸 것이다. 경고 내용이 어마무시하다. 이것은 마지막 경고로 계약 조항에 따라 내일까지 치우지 않고 이렇게 지저분하게 두면 벌금을 물리겠다고 한다. 왜? 우리에게?

그들이 보낸 사진은 어제의 오후 상황이었다. 나는 어제 저녁에 와서 그녀가 남긴 메모와 물건들을 보고 나서 메모는 치우고 함께 먹으라는 것들은 가지런히 주방 옆 공간에 두고 그밖의 물건들은 정리해두었다. 그리고 오늘 아침에는 내가 어제 새로 사온 커피드리퍼로 커피를 내려서 친구들과 함께 마시고 그것을 공용으로 함께 사용하자고 해서 주방 옆 공간에 올려두었다. 그런데 지금 보니까 내가 새로 사온 커피드리퍼와 거의 새거인 커피만 사라졌다. 보아하니 오늘 메일을 보내기 전에 와서 확인하고 가져간 것 같다. 웃긴 것은 다른 물건들은 그대로인데 커피드리퍼와 커피만 사라졌다는 것이다. 어떤 물건은 공용공간에 두면 안되고 어떤 물건은 거기 두어도 되는 거야? 기준이 뭐냐고? 어이가 없다.

일본 친구와 나, 그리고 막 집으로 들어온 멕시코 친구는 이 상황이 당황스러워서 어떻게 할까 난감했다. 나는 화가 나서 친구가 선물로 준 커피와 새로 산 드리퍼를 그들이 치운 것에 대해 이메일로 항의하겠다고 했다. 일본 친구와 멕시코 친구도 각자 이메일로 항의하겠다고 한다. 그런데 이메일로 항의는 하더라도 우리는 K가 남기고 간 물건들은 좀 치워주자고 했다. 그녀가 자신의 뒷마무리를 제대로 하지 못한 것은 사실이니까. 우선 냉장고의 음식 중에 우리가 먹을 수 있는 것은 각자 자기 칸으로 옮기고 버릴 것은 버리기로 했다. 몇 가지씩 각자 선택해서 옮기고 버릴 물건들은 함께 버렸다. 이참에 이것저것 오래전 학생들이 남기고 간 것으로 추정되는 것들도 한꺼번에 버렸다. 한바탕 한밤중의 대청소를 마치고 각자 항의 메일을 보냈다. 그러고 나니까 거의 자정이 다 되었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고 이게 뭔 난리인지 모르겠다. 오늘도 길고 긴 하루를 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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