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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 Jan 14. 2024

끝없는 공부, 다양한 친구들

2023.08.24.목요일

문법 수업 시작 전에 L과 나는 늘 그렇듯이 숙제를 함께 채크했다. 그리고 나서 그녀는 나에게 여행간 동안 진도 나간 부분 복습했냐고 묻는다. 다 했으면 답을 알려주겠단다. 어제 도서관에서 푼 문제의 답을 L이 확인해주었다. 고맙다. 친구야. L은 내 영어 코치같다. 그녀는 내가 함께 레벨 Up을 하기를 바란다. 하지만 그녀는 나보다 더 잘하기 때문에 그건 어려울 것 같다. 나는 아직 그 정도는 안돼. 

오늘은 동사구를 배우면서 아마존에 대한 글을 읽었다. 이번 단원의 주제는 야생 동물들이 살아남는 여러 가지 방법을 연구하는 분야에 대한 것이다. 그런데 아마존 글을 읽기 전에 교사가 누가 아마존에 가본적이 있냐고 묻는데 무의식적으로 가봤다고 말했다. 나는 너무 나대는 것 같아서 가급적 가만히 있으려고 했다. 사실 그동안 나왔던 소재들 중에 히말라야, 인도 등 워낙 많은 곳을 여행했다. 하지만 이런저런 얘기에 나서면 너무 튀는 것 같아서 조용히 있으려고 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정말 무의식적으로 가봤다고 대답했다. 교사 S는 눈을 반짝이면서 어느 나라, 어느 지역, 무엇을 타고 갔는지, 뭘 봤는지 호기심으로 잔뜩 묻는다. 그리고는 우리가 다음 주에는 레벨 테스트를 하고 나서 시간이 남는데 그때 아마존 프리젠테이션을 하면 어떻겠냐고 한다. 이럴 것 같아서 조용히 있으려고 한 것인데... 물론 교사는 내가 원하지 않으면 안해도 된단다. 아니야. 할께. 지난번 발표 때에도 힘들었지만 영어 실력에 늘어나는데 도움이 된 것 같았다. 그래서 그냥 하겠다고 했다. 에휴. 또 나는 일을 만든다. 이러니 내가 내 신상을 볶는거지.

오늘도 동사구 연습 문제를 풀었다. L과 나는 가급적 동사구 모음집을 보지 않고 문제를 풀려고 했지만 그게 쉽지 않다. 교재의 문제를 다 풀고 나서 교사는 리뷰 문제지를 나눠준다. 왜 이렇게 외워야 하는 것들이 많은거야.




듣기수업. 교사는 플래시카드에 대해 설명해준다. 단어를 암기하기 위해 만드는 작은 카드를 플래시카드라고 한단다. 그 옛날 우리가 영어단어 공부하려고 만들어 들고 다니던 그 단어암기장이다. 작은 것을 수시로 꺼내서 잠깐 보고 기억나면 넘기고 기억이 나지 않으면 아, 이걸 모르는구나 하고 깨달으면 된단다. 순간적으로 본다고 해서 플래시 카드란다. 요즘은 어플 중에도 그런 것이 있다고 소개한다. 중요한 단어들은 이렇게 들고 다니면서 친숙하게 익혀야 한다는 것이다.

이번에는 두 개의 동사구가 나란히 적혀 있는데 문장을 잘 듣고 두 개의 동사구 중에 어떤 것이 먼저 일어난 사건인지 맞추란다. 제시된 동사구는 쉬운데 듣기가 쉽지 않다. 은근히 헛갈린다. 아주 작은 표지를 잘 잡아내야 한다. before, untill, when 혹은 문장의 시제를 잘 들어야 하는데 그게 쉽지가 않다. 더 많은 듣기 연습이 필요하다.




읽기 수업 시간. 오늘도 깜짝 테스트란다. 교사 D는 이번 달이 마지막이라 그런지 그냥 대충 테스트로 때우려는게 너무 빤히 보인다. 마음이 뜬게 너무 빤히 보인다. 그나마 어제 본 시험의 피드백은 해주어서 용서가 된다. 




점심시간에 일본친구 H가 혹시 오늘 저녁에 약속이 있냐고 묻는다. 이 친구는 이번주까지 학원에 다니고 다음 주에 인근의 다른 지역으로 가서 고등학교에 입학하게 된다. 전에 홈스테이의 식사가 부실해서 걱정했던 바로 그 어린 친구다. 내가 저녁에 별일이 없다니까 같이 저녁을 먹자고 한다. 내일이 마지막 날이라서 작별인사로 함께 식사를 하고 싶은 눈치다. 여러모로 소극적인 H가 이런 제안을 하는 것은 굉장히 용기를 낸 것이다. 그래. 그러자. 같이 저녁 먹자. 마침 함께 밥을 먹고 있는 다른 일본 친구 E도 시간이 된다고 해서 같이 가기로 했다. H가 옮겨갈 지역은 아주 작은 시골 동네라서 일본 식당이 없을 것 같아서 일본 식당에 갈까 물었더니 한국 음식을 먹어보고 싶단다. 그래서 근처의 한국 식당 중에 평점이 좋은 곳을 골라 보여주니까 매우 좋아한다. 김치볶음밥을 좋아한단다. 그래. 거기로 가자. 




회화수업. 오늘도 길을 안내하는 활동을 한다. 그런데 아주 독특한 방법으로 한다. 2명씩 짝을 짓고 나서 칠판에 이 근처의 길을 그려서 보여준다. 그리고 우리 학원이 있는 블럭을 둘러싼 거리의 이름을 쓴다. 지금부터 파트너와 함께 나가서 우리 학원 근처의 어느 건물이나 상점, 장소 중에서 한 곳을 선택해 오란다. 중요한 것은 다른 팀에게 거기까지 가는 방법을 알려주어야 하므로 설명할 것을 잘 생각하고 다녀오란다. 일종의 야외 활동이다. 오. 좋은 방법이다나는 일본 친구 S와 파트너가 되었다. 우리는 슬슬 학원이 있는 블럭을 돌아보다가 YWCA를 발견하고 거기를 설명하기로 했다. 길도 단순하다. 우회전, 우회전, 우회전 그리고 중간에 길을 건너가면 된다. 

교실로 돌아오니까 각자 선택한 장소는 탑 시크릿이란다. 쉿! 그리고 다른 친구들이 우리가 지시한 문장만으로 그곳을 찾아낼 수 있도록 설명글을 쓰란다. 쉽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설명하려니까 그게 마냥 쉬운 것은 아니다. 학원 건물을 나가서 우회전해서 길 끝에서 또 우회전해서 한 블럭을 간다. 그리고 다시 우회전을 해서 반블럭을 간다. 거기서 길을 건넌다. 어느 호텔 옆에 있다. 그런데 그 호텔의 오른쪽인지 왼쪽인지가 어렵다. 무엇과 무엇 사이라고 하면 쉽겠는데 옆 건물이 없어서 그 표현을 사용할 수가 없다. 편법이지만 주소를 말해주자. 후후. 한참 문장을 만들고 나니까 시간이 다 갔다. 비밀 장소를 찾아가는 것은 내일 하기로 했다.





보충 수업 시간에는 cooking verb에 대해 배웠다. 그림과 요리동사 카드를 쭈욱 나열하고 다 함께 짝을 이루는 카드를 찾았다. 생각보다 다양한 단어들이 사용된다. bake(굽다), peel(벗기다), steam(찌다), blend(갈다)와 같이 익숙하게 아는 것들도 있다. drain(물기를 빼내다), squeeze(짜내다), sift(체로 치다)와 같이 어려운 것들도 있다. 이런 저런 단어를 배우고 나서는 우리에게 다같이 최고의 오믈렛 레시피를 만들어보자고 한다. 우선 계란을 깬다. 그리고 섞는다라고 하려는데 무엇을 넣고 섞을 거냐고 한다. 그렇지 뭔가 넣어야지. 양파, 토마토, 베이컨 등을 넣기로 했다. 그것을 썬다. 치즈도 갈아 넣기로 했다. 아, 최고의 오믈렛이라면 버섯도 넣어야지 버섯을 씻고 자른다. 그리고 후라이팬에 붓는다. 얼마나 오래 요리할 것인가, 2~3분. 이렇게 해서 멋진 레시피가 만들어졌다. 교사는 최고의 팀이라고 매우 흡족해했다. 학생들도 모두 만족스러운 표정이다. 





보충수업까지 마치고 나서 H, E와 함께 한국식당에 갔다. 김치볶음밥, 떡볶이, 치킨을 시켜서 먹었다. 아주 맵싸한 떡볶이와 치킨의 조화가 환상이다. 김치볶음밥도 오랜만에 먹으니까 맛나다. 나는 서툰 영어로 H에게 새로운 장소에 가서 좋은 친구를 많이 사귀라고 덕담을 해주었다. 수줍음이 많은 H가 계속 친구가 없이 혼자 밥을 먹고 혼자 다녀서 마음이 쓰였다. 아주 조금씩 안면을 익혀서 이제 겨우 몇 명과 친해진 것 같은데 또 새로운 장소로 간다. 아마도 또다시 엄청난 시간이 지나야 겨우 친구가 생길 것 같다. 함께 간 E는 유치원교사인데 내가 H를 걱정하는 마음을 깊이 공감하고 함께 걱정해주었다. 우리는 이심전심 선생님의 마음으로 H를 바라보고 있다. 




저녁식사를 마치고 집으로 왔다. 이제부터 숙제와 복습 타임이다. 끝없는 공부, 그리고 다양한 친구들. 지금 나는 공부와 친구 이 두가지 속에서 살고 있다. 영어공부는 이 어학연수의 본 목적이다. 하지만 친구를 사귀게 되는 것도 매우 중요해졌다. 이번 어학연수가 끝나고 나면 영어와 친구 두 가지가 나에게 남을 것 같다. 친구들과의 소중한 추억을 매일매일 잘 기록하고 간직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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