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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 Jan 22. 2024

여러 이별

2023.08.26.토요일

오늘은 기숙사의 친구 R이 떠나는 날이다. 멕시코 사람인 그녀는 나이가 좀 있는 편이다. 내가 집에 돌아오면 대부분 그녀는 집에 있었다. 저녁 때는 그녀와 나만 집에 있는 날이 많았다. 젊은이들은 역시 신나게 나가서 늦게까지 돌아다니지만, 나이 든 우리는 대부분 집에서 일하거나 공부를 했다. 아무래도 나이대가 비슷해서 그런지 서로 좀더 편하게 대화를 나누었고 집 근처의 그랜빌 아일랜드 마켓에도 함께 다녀왔다. 우리는 아침에도 생활패턴이 비슷해서 항상 일찍 일어나서 아침을 먹으면서 가벼운 대화를 나누었다. 이제 그녀가 떠나면 저녁 시간이나 이른 아침 시간에 나는 허전함을 느낄 것 같다.

아침에 그녀가 떠날 시간까지 함께 이것저것 대화를 나누면서 아쉬워했다. 그녀는 나와 대화한 시간이 너무 좋았다고 한다. 나도 마찬가지다. 그녀는 멕시코에 꼭 놀러오라고 하면서 자기 집에는 손님용 방이 2개나 있으니까 친구와 함께 와도 좋다고 한다. 그리고 주중에는 자기가 일해야 하지만 주말에는 여기저기 안내해줄 수 있단다. 너무 고마운 말이다. 그녀와 함께 방을 쓰고 있던 일본 친구 A와 나는 함께 1층까지 내려가 그녀가 우버를 타고 공항에 갈 때까지 배웅했다. 그녀가 우버를 탈 때 우리는 살짝 눈시울을 적셨다. 언제 또 만나게 될지 모르지만 친구야 잘가.


친구를 보내고 나서 집에 와서 방 청소를 했다. 그리고 시민회관의 회화모임에 나갈 준비를 했다. 여름에 한시적으로 하는 토요일 회화모임. 오늘이 마지막 날이다. 나는 첫번째, 두번째 모임에 나갔고 이후 2회의 모임은 여행 때문에 불참했다. 오늘이 마지막 모임이다. 처음부터 함께 했던 대만 가족(아버지, 아들, 딸)과 일본사람이 있다. 그리고 처음 만나는 이란 사람 부부가 있다. 서로 자기 소개를 하고 나서 각자 밴쿠버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소를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다. 여러 장소들을 소개하고 정보를 공유할 수 있어서 좋았다. 이 모임이 계속 되지 못하는 것에 대해 다들 아쉬움을 표현하고 다 함께 사진을 찍고 연락처를 주고 받았다. 오늘은 여러 사람들과 이별하는 날이구나.


집에 와서 다음 주에 있을 시험공부를 했다. 작문 시험에 대비해서 5가지 주제 중에서 3가지를 선택해서 미리 작문을 해보았다. 교사가 아마도 세 가지를 무작위로 제시하고 그 중에서 하나를 쓰라고 할 것이다. 에휴. 남의 나라 말로 내 생각을 표현하는 것은 참 어렵다. 최대한 아는 단어로 표현하려고 하다보니까 더 어렵다. 단어의 한계를 느낀다. 안되겠다. 결국 구글의 도움을 받았다. 역시 단어 공부도 필요하구나.

이번 작문의 흥미로운 주제 중 하나는 요즘 사람들은 무엇에 중독되어 있는가이다. 나는 휴대폰에 중독되어 있다고 썼다. 모든 연락을 휴대폰으로 주고 받으며, 휴대폰에 모든 정보를 저장하고, 휴대폰이 없으면 불안을 느낀다. 이렇게 세 가지 이유를 들고 그 예시를 각각 2가지씩 들었다. 예시라기보다는 뒷받침하는 내용인데 정해진 문구를 이용해야 해서 그냥 '예를 들면'이라는 말로 시작했다.



작문연습을 하고 나서 보드게임 모임에 참석하기 위해 선셋비치를 향해 출발했다. 집에서 10분 정도 거리에 있어서 아주 여유롭게 갔다. 좀 일찍 도착했다 싶었는데 내 친구 L이 보였다. 우리는 그늘에 앉아 각자 오늘 뭐했는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리고 보드게임 그룹을 찾아 나섰다. 그들은 파란색 비치우산을 찾으라고 했다. 파란색 비치우산이 딱 하나 보이는데 그들은 가족들이 모여서 놀고 있는 그룹이다. 알고보니까 평소에는 파란색 비치우산을 표지삼아 모이는데 오늘은 그 주최자가 오지 않았단다. 그 주최자는 젊은이였는데 오늘은 보니까 나이든 사람들이 주도를 하고 있다. L과 나, 또다른 학원 친구 J는 비치우산을 찾다가 그들이 보낸 사진을 보고 겨우 찾아갔다. 비치우산은 없고 비치타올을 펼치고 사람들이 모여 있다. 이미 한 그룹이 게임을 하고 있다. 

우리 셋은 새로운 비치타올을 펴고 앉아서 어제 내가 산 게임을 했다. 처음에는 우리끼리 몇 가지 유형으로 게임을 했다. 그 다음에는 처음 그룹에서 나이든 사람들 몇 명이 우리 쪽으로 합류했다. L이 초보자들에게 쉬운 게임을 추천해달라고 해서 그들이 재밌는 게임을 알려주었다. 굴을 파서(카드를 연결해서) 황금이 있는 카드까지 도착하는 게임을 했는데 재밌다. 처음에 각자 역할 카드를 받는데 그 중에는 방해꾼이 2명 있다. 그들은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 은근히 굴을 파는 것을 방해해야 한다. 일종의 마피아게임인 것이다. 처음 판에서 나는 방해꾼이 되었는데 너무 티가 나서 금방 견제를 받았다. 첫판은 시민이 승리했다. 두번째 판에서는 방해꾼이 승리했다. 알고 보니 내 친구 L이 방해꾼이었다. 우리는 정말 몰랐다. 나이든 사람 중 한 명은 금방 티가 나서 시민들이 견제했는데 다른 한 명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다들 이리저리 추측만했다. 결국 방해꾼이 이기고 난 후 L이 자신이 방해꾼임을 밝혔다. 게임에 이긴 L의 표정이 아주 의기양양하다. 하.하.하. 이제 보니까 L이 은근 승부욕이 강하다. 

그밖에 굉장히 큰 카드로 하는 일종의 원카드 게임, 같은 카드를 이용해서 재산을 모으는 부자놀이 게임 등을 했다. 2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지난번 젊은이가 주최했을 때보다 훨씬 재밌다. 그 젊은이는 게임에 대해 설명하다 말고 가버렸는데 이번 주최자들은 영어로 하는 설명을 우리가 잘 이해했는지 확인하면서 아주 친절하게 게임을 진행했다. 그리고 끝까지 함께 게임을 했다. 나이든 사람들의 노련함과 여유가 느껴진다.



L이 타려는 전철이 우리집 방향이라서 함께 걸어오면서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었다. 그녀는 저번 모임보다 이번에 더 좋았다고 했다. 나와 비슷한 마음인 것 같다. 다음에도 저 사람들이 설명해주면 우리는 다른 게임도 배울 수 있을 거라고 기대했다. 그러나 저분들이 또 나올지 어떨지 그건 알 수 없다. 

L과 헤어지고 집에 들어와서 작문 시험 준비를 마저했다. 내일은 문법 시험 공부를 해야겠다. 레벨 테스트에서 최소한 부끄럽지 않을 정도는 되어야지. 에휴. 나이들어 공부하는 것은 정말 쉬운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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