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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 Feb 12. 2024

Perfect timing 휘슬러2

2023.09.03.일요일

아침 7시에 일어나서 우리는 숙소의 1층 카페로 내려왔다. 카페가 7시에 문을 연다고 해서 시간 맞춰 내려와서 커피를 마시면서 간단한 빵으로 아침을 때웠다. L은 자기는 보통 알람 없이 6시30분쯤 잠에서 깬단다. 나도 비슷하다고 했다. 우리는 이대로 하이킹을 가기로 하고 어제 봤던 다리쪽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그런데 갑자기 빗방울이 떨어진다. 아무래도 안되겠다. 후퇴! 다시 숙소로 뛰어 왔다. 나는 방수 바람막이가 있지만 L은 없어서 대신 우산을 가지러 다시 방으로 갔다. 나도 추위에 대비해서 옷을 한 겹 더 챙겨 입었다. 

카페에 앉아서 잠시 기다리니까 비가 그친다. 오늘은 하루 종일 비가 왔다갔다 할 것이다. 이대로 여기 있을 우리가 아니다. 다시 출발. 다리를 지나 하이킹 시작 지점을 찾아 숲 속으로 들어갔다. 비는 몇 방울 떨어지다 말다가 한다. 사람들이 다니는 하이킹 길 옆으로 산악 자전거 길도 있다. 우리는 하이킹 길을 따라 걸어갔다. 중간에 살짝 헛갈리는 지점이 있었지만 그럭저럭 길을 찾아 갈 수 있었다. 



하지만 길이 문제가 아니라 물이 문제다. 마시는 물이 아니라 흐르는 물. 우리는 강가를 끼고 가고 싶었는데 강의 물이 다 말라 붙었다. 아무리 가도 메마른 개천만 보이자 L이 이것은 우리가 원한 경치가 아니다, 우리가 검토했던 다른 하이킹 코스로 바꾸는것이 좋겠다고 한다. 나도 찬성. 말라붙은 개천을 보면서 걷고 싶지는 않다. 왔던 길을 다시 되짚어 나왔다. 

아까 하이킹 시작 점의 카페를 보면서 참 예쁜 카페다라고 했는데 그곳에 도착하자, 우리는 말없이 슬쩍 눈길을 주고 받고는 카페로 직행했다. 하.하. L과 나는 정말 죽이 잘 맞는다. 그녀는 카푸치노, 나는 짜이라떼를 마시면서 다시 찾아갈 길을 의논하는데 앗, 바깥에 비가 와장창 내린다. 어머나! L은 우리가 정말 좋은 타이밍에 카페에 들어왔다고 감탄한다. 그렇다. 아까 걷기 시작할 때 다시 숙소로 갔을 때도 그렇고, 지금 여기 카페에 들어왔을 때도 그렇고 적절한 타이밍에 비를 피했다. 게다가 오늘 픽2픽 곤돌라를 타러 간 사람들은 전망을 제대로 못 볼 것이다. 하늘에 구름이 잔뜩 끼었다. 우리는 정말 어제 갔다오길 잘했다. 비가 그치고 카페를 나서서 새로운 하이킹 코스로 갔다. 




거기서는 제법 큰 강을 끼고 걸을 수 있다. 오, 강물이 장난이 아니다. 물 색깔도 너무 예쁘다. 우리는 이게 우리가 원하던 거야...라고 외치면서 신나게 걸었다. 중간에 빗방울이 내렸지만 뭐 우산까지 꺼내서 쓸 정도는 아니었다. 가볍게 산책하듯이 걸을 수 있는 구간도 있고 살짝 산의 느낌이 나는 구간도 있지만 어렵지는 않다. 너무 멋진 뷰포인트도 있어서 사진도 마구 찍었다. 때로는 산길을 끼고 걷기도 하고 때로는 강가를 끼고 걷기도 했다.

한참 걸으니까 우리 목표인 다리가 나온다. 캐나다에 와서 뜻밖에 다리 구경을 많이 한다. 한결같이 멋진 곳에 다리가 놓여있고 한결같이 아슬아슬 흔들린다. 그리고 한결같이 아래가 다 내려다 보인다. ㅋㅋㅋㅋ 



다리를 건너 반대편 길로 해서 다시 우리 숙소 쪽으로 향했다. 왔던 길이 아닌 길을 걸어서 더 좋다. 게다가 이쪽은 내리막이 장난이 아니다. 나는 스틱을 가져오길 잘 했다. 우리는 만약 이쪽 길로 올라왔다면 힘들었을 거라면서 저쪽 길로 오길 잘했다고 또 스스로 칭찬했다. 뭐 알고 선택한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하.하.

오다가 카약하는 사람들도 보았다. 안그래도 여기 카약이 유명하지 않아? 아까 차에 카약 싣고 가던 사람들은 어디로 간걸까? 등의 대화를 한 다음이었다. 기가 막힌 타이밍이다. 우리는 또 신나서 떠들었다. 카약 하는 사람들에게 손도 흔들어 주었다. 물론 내 생각에 그들은 우리에게 손을 흔든게 아니라 자기들끼리 신호를 주고 받은 것 같았지만... 뭐... 상관없다. 




우리는 하이킹을 마치고 다시 숙소로 와서 가볍게 씻고 잠시 쉬었다. 그리고 버스를 타고 시내로 나왔다. 나는 오늘 날씨가 안좋아서 곤돌라가 운행을 안할 거라고 생각했지만 아니었다. 곤돌라는 운행하고 있었다. 다만 구름이 산위에 가득해서 어제 우리가 보았던 전망은 볼 수가 없을 것 같다.

오늘 우리는 피자를 먹기로 했다. L이 검색한 피자 화덕에서 즉석에서 구워주는 피자 가게로 갔다. 그녀는 치즈 피자와 버섯 피자를 추천했다. 좋아좋아. 나는 맥주도 한 잔 할래. 피맥이 최고지. L은 술을 잘 마시지 않는단다. 이 점에서는 나와 다르다. 그녀는 물로 나와 건배를 했다. 피자는 정말 환상의 맛이었다. 예전에 여동생이랑 베트남 여행할 때 먹었던 최고의 피자와 동급이다. 역시 바로 화덕에서 구워나오는 피자는 진리다. 



피자를 먹고 나서 다운타운 근처의 예쁜 공원, 다리 등을 걸어 다녔다. 강물 색깔은 아까 우리가 보았던 것에 비교할 수가 없다. 올림픽 상징물 앞에는 사람들이 줄을 서서 사진을 찍고 있다. L이 여행지에서 마그네틱 모으는게 취미라고 해서 같이 선물가게를 쭈욱 휩쓸어 보았다. 재밌는 것들이 참 많다. 이미 여행지에서 이것 저것 모아본 경험이 있는 나는 이게 다 부질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구경만 했다. 하지만 딱 내 마음에 드는 것이 있어서 하나 샀다. 인연이 닿으면 내 손에 들어오게 되는 것. 그런 것 같다.



멋지게 사진도 찍고 여기저기 구경하고 다니는데 날씨가 점점 추워진다. 우리는 여기서 다운타운의 야경을 구경하려고 했는데 점점 추워진다. 우리는 어디 들어가기에는 뭘 먹기 부담스럽고 어쩔까 하다가 버스를 타고 근처 호수 구경을 하고 오기로 했다. 버스가 무료잖아. 그러나 우리가 기다리는 버스 시간이 너무 한참 남았다. 우리가 동태가 되기 직전에 버스가 왔다. 내가 검색해보니까 이 버스는 우리가 내리려는 정류장을 지나 근처의 마을에서 다시 시내로 돌아 나온다. 나는 이대로 버스를 타고 한바퀴 돌자고 했지만 L은 호수를 좀더 보고 싶어한다. 그래. 내렸다가 다시 타지 뭐. 그런데 버스에서 내리려니까 기사가 여기서 내리는게 맞냐고 묻는다. 뭐지? 싶었지만 맞다면서 내렸다. 내리고 나니까 여기는 승용차들이 몇 대 서서 호수를 구경하는 전망대이다. 그리고 버스 정류장이 반대편에는 없다. 

헉! 혹시나 해서 잽싸게 검색해보니까 시내로 가려면 이 자리에서 다시 버스를 타고 내가 아까 말했던 마을에서 되돌아 나오는 방법 뿐이다. 그리고 내리니까 너무 춥고 바람 피할 곳이 없다. L도 당황해서 다음 버스를 타자고 한다. 그런데 다음 버스가 1분 후에 온다. 우리는 잽싸게 사진만 찍고 덜덜 떨면서 버스가 오기를 기다렸다. 버스가 오자 살려주세요! 포즈로 버스를 세우고 탔다. 오! 나이스 타이밍! 우리는 버스 안에서 한참 웃었다. 이게 뭐냐고... 버스가 종점에서 서고 기사가 말 없이 내린다. 우리는 그래도 좋아, 여기는 따뜻하고 우리는 앉아 있으니까 잠시 후 기사가 와서 버스는 다시 출발한다. 



시내에 와서 근처의 카페를 찾아서 들어가기로 했다. 그런데 앗! 카페들이 대부분 문을 닫았다. 오늘은 일요일이라 술집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일찍 문을 닫는 듯하다. 어쩌냐. 허겁저겁 검색하는데 팀홀튼스 중에서 한 곳이 아직 30분 정도 영업을 더 한다. 잽싸게 거기로 갔다. 따뜻한 차를 마시면서 몸을 녹이는데 우리 뒤로 사람들이 다들 추워하면서 들어온다. 비슷한 처지들이다. 일단 한숨 돌리고 나서 우리는 야경이고 뭐고 숙소로 가기로 했다. 이 정도면 오늘 충분히 즐겼다. 가서 쉬자. 

버스를 타고 숙소로 와보니 우리 방의 그녀들은 없다. 우리는 편하게 수다를 떨었다. L은 우리 방의 그녀들이 자기보다 키가 크다고 했다. 정말 그랬다. 그녀들은 나보다 훨씬 큰 L보다 더 크다. 나는 그들에게 난장이 수준이다. 우리는 그들이 북유럽 사람들일거라고 추측했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영어 공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녀가 새로 배운 표현도 이야기하고 나는 내가 요즘 신경쓰고 있는 시제표현도 이야기했다. 그런데 이야기를 나누면서 나는 나의 영어 실력에 스스로 좀 놀랐다. 나도 모르게 문장을 제법 갖추어서 말하고 있다. 내가 내 느낌을 말하니까 L이 너는 이미 잘 말하고 있다며 영어를 잘 못한다고 생각하지 말란다. 고맙다. 친구. 

우리는 신나서 옛날 학창시절 얘기도 하고 자신의 성격이 변한 것도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녀와 나는 정 반대의 케이스이다. 나는 수줍음이 많아서 고등학교까지는 있는듯 없는듯한 학생이었다. 대학 때부터 성격이 바뀌었다. 그녀는 고등학교까지 사고뭉치였다가 대학 갈 때쯤부터 성격이 바뀌었단다. 서로 상상이 안된다면서 정말이냐고 되물었다. 한참 수다를 떨고 나서 잠자리에 들었다. 역시 우리가 잠들 때쯤 북유럽의 그녀들이 돌아왔다. 하지만 나는 곧 잠들어 버렸다. 추위에 떨어서 힘들었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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