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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 Apr 07. 2024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구나

2023.09.22.금요일

오늘은 금요일이지만 학원 수업이 없다. 야호!!! 느즈막히 일어나 집에 있는 야채들을 몽땅 때려넣고 치즈까지 넣어서 오믈렛을 만들었다. 밥위에 오믈렛을 올리고 케첩을 뿌려서 도시락 2개를 만들었다. 우리 식구들에게 줄 선물이다. 내일 그들은 떠난다. 가기 전에 한번이라도 더 음식을 해주고 싶었다.

오늘은 그냥 집에서 쉴까 하다가 밖으로 나왔다. 내일부터 비가 온다고 하길래 비가 오기 전에 야외활동을 해야겠다. 오늘의 목적지는 퀸 엘리자베스 공원이다. 밴쿠버의 시내에서 약간 남쪽으로 내려가면 있는 유명한 공원인데 유학생들이 중에 여기를 안가본 사람은 거의 없다. 나는 그동안 가까운 이곳보다는 좀 멀리 있는 곳을 주로 다녀왔다. 이번에는 혼자 조용히 가까운 공원 산책을 할 생각이다. 

우리 집에서 퀸 엘리자베스 공원까지 한번에 가는 버스가 있어서 그걸 탔다. 버스로 30분 정도 가니까 공원 바로 앞에 내린다. 공원은 약간의 언덕 위에 있어서 밴쿠버 시내를 내려다볼 수 있다. 그리고 작은 식물원도 있는데 입장료를 받는다. 별로 볼게 없다는 식물원이라 거기는 생략했다. 밴쿠버 시내를 내려다보는 장소에 설치된 사진을 찍는 가족들의 조형물이 귀엽다. 그리고 공원에서 산책로를 따라 로즈가든에 갔다. 사실 지금쯤이면 장미가 다 져서 볼게 없겠지 생각하고 갔는데 아니다. 꽃도 아직 남아있는데다가 노랗게 물든 나무도 경치에 한몫 거든다. 우와... 정신없이 사진을 찍었다. 파란 하늘까지 도와서 아름다운 색의 향연이 펼쳐진다. 




로즈가든에서 반대편에 있는 퀸엘리자베스가든까지 산책로를 따라 걸었다. 숲이 제법 우거진 길이 걷기 좋다. 낙엽에 물든 나무가 너무 예쁘다.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사진을 찍고 있다. 나름대로 잘 가꾸어진 정원을 산책하니까 기분이 좋아진다. 이런저런 이별에 마음이 무거웠는데 기분이 나아졌다. 근처에 오리 연못이라는 것이 있길래 거기까지 가보았다. 그런데 저런... 물이 죄다 빠져서 아무것도 없다. 아쉽지만 어쩔 수 없지. 다 좋을 수는 없는거다. 산책도 인생도 그렇다. 좋은 것도 있고 실망스러운 것도 있는 것이다.



오리 연못 앞쪽에 버스 정류장이 있다. 거기서 버스를 타고 메트로타운으로 갔다. 간만에 쇼핑이다. 옷구경을 하다가 겨울옷을 장만했다. 여기는 이제 아침저녁으로 제법 춥다. 게다가 두달 후에 옐로나이프에 갈 때를 대비한 옷도 필요하다. 이것저것 핑계를 대고 쇼핑을 하고 집으로 왔다. 

오후에는 학원 친구들과 사이언스월드에 가기로 했다. 원래 계획은 중간에 집에 들오지 않는 것이었으나  휴대폰 보조 배터리를 가져오지 않았더니만 휴대폰의 배터리가 간당간당하다. 아까 사진을 너무 많이 찍었나보다. 집에 와서 쇼핑해온 옷도 정리해 넣고 휴대폰 충전도 하고 점심도 먹었다. 

그리고 약속한 장소에서 친구들과 만나서 사이언스월드에 갔다. 평소에 이곳은 3만원 정도의 입장료를 받는데 오늘은 과학 이벤트로 무료란다. 내가 과학이나 수학하고는 친하지 않아서 이런 곳에 자발적으로 찾아오지는 않는다. 하지만 학원 친구들과 영어로 대화할 수 있고 무료라고 하니까 따라 나섰다. 아이들이 주로 체험학습하러 오는 곳인데 오늘은 다양한 사람들이 찾았다. 역시 공짜는 다들 좋아한다. 이것저것 전시물도 있고 직접 해결하는 퍼즐이나 체험하는 것들도 있다. 퍼즐 풀기는 좋다. 쉬운 것도 있고 굉장히 어려운 것도 있다. 다들 이것저것 만져보고 해결해보았다. 함께 힘을 합쳐서 풀기도 했다. 어떤 조각맞추기는 결국 포기했다. 다들 굉장히 여기저기 다니면서 신나게 놀았다.



나는 밋업의 영어회화 모임이 있어서 친구들과 작별하고 일찌감치 사이언스월드를 빠져나왔다. 집 근처의 카페에서 모이는 모임이다. 이번에 3번째 참석한다. 저번에는 말이 잘 통하는 일본, 홍콩, 이란, 캐나다 사람과 대화를 나누었는데 이번에는 그 사람들이 오지 않았다. 좀 낯설어하는 사람들과 앉아서 어색해 하고 있는데 다행히 수요일의 한영언어교환 모임에서 안면이 있는 캐나다 사람이 왔다. 덕분에 조금 분위기가 나아졌다. 사이프러스라는 유럽의 낯선 나라에서 온 사람과 주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는 여기저기 전 세계를 돌아다니다가 지금은 캐나다에 정착했단다. 그래서 시민권을 따기 직전 단계까지 왔단다. 홍콩 사람도 중간에 합류했다. 그는 6달째 영어 공부 중이란다. 캐나다의 하이킹 코스 이야기, 운전 면허 이야기 등을 나누었다. 그런데 어쩌다 보니 우리 테이블에서는 다들 일찍 자리를 뜨고 사이프러스 사람과 나만 남았다. 오늘과 내일 근처의 경기장에서 유명한 가수의 공연이 있단다. 그래서 오늘 여기 사람이 적게 모인 거라고 한다. 사이프러스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다보니까 그 나라도 남과 북으로 나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짧은 영어로 열나게 남한과 북한의 관계 이야기를 했다. 사이프러스는 남쪽과 북쪽의 민족이 다르고 언어도 다르단다. 하지만 자신은 작은 섬나라가 둘로 나뉘어 있는 것이 말이 안된다고 생각한단다. 그래. 나도 그렇게 생각해. 작은 나라가 둘로 쪼개지는 것은 옳지 않아. 게다가 한국은 하나의 민족이고 언어도 같은데 억지로 쪼개진거야. 그는 한국의 경우 남한 사람과 북한 사람이 서로 왔다갔다 할 수 있는지 물었다. 전혀. 완전히 막혀있다고 하니까 놀란다. 사이프러스도 예전에는 그랬는데 최근에는 사람들이 왔다갔다 할 수 있게 되었단다. 새로운 세대가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겨서 다행이란다. 그러게 너희는 좋겠다. 우리는 완전히 막혀있어. 그래서 걱정이야. 어쩌다보니 분단 국가의 이야기로 공감대가 형성되어 한참 떠들었다. 그는 나중에 살짝 고백했다. 자신은 원래 사람들과 만나서 이야기하는 것이 성격에 맞지 않아서 어렵단다. 그래서 여기 나오는 것이 늘 새로운 도전이었는데 오늘 즐거웠단다. 나는 그런 느낌을 전혀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나도 오늘 너와 대화해서 즐거웠다고 말했더니 그는 그러면 오늘 자신은 성공한 것이란다. 그래. 다음에도 또 보자.


집에 와보니까 우리 식구들이 내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같이 저녁을 먹자고 한다. 그동안 나에게 너무 많이 얻어먹었다면서 오늘은 나에게 연어와 고기를 구워주겠단다. 어머나 고마워라. 나도 혹시나 싶어서 저녁 때 이별주 한잔 할 요량으로 그들이 좋아하는 맥주 블랑을 사 놓았었다. 분주하게 저녁 준비를 하는데 앞집에 사는 학원 친구들(대만)이 왔다. 그들은 지난번에 내가 없을 때 우리 집에서 요리 도구 몇 가지를 빌려갔었다. 아까 인스타 메신저로 나의 귀가 시간에 맞추어 도구를 돌려주러 올 건데 보답으로 쿠키도 가져올 거라고 했다. 고기를 굽느라 연기가 가득한 우리 집을 보더니 그들은 놀라면서 렌지후드가 없냐고 묻는다. 그리고 우리 레인지를 보더니 자기네 것이랑 다르다면서 나에게 자기 집에 와보란다. 그래서 갑자기 앞집을 방문하게 되었다. 정말 그들의 렌지 구조와 우리집의 구조가 다르다. 그들은 요리할 때 연기를 빼내는 렌지후드가 있다. 하지만 그들의 집에는 문을 열 수 있는 창문이 없다. 아, 그게 다르구나. 우리는 창문이 있다. 대신 렌지후드가 없다. 방의 구조도 다르다. 그들은 복도형으로 방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다. 여러가지가 다르구나. 갑작스러운 집구경을 하고 다시 우리집으로 왔다.  


연어, 삼겹살, 목살 등으로 우리는 신나게 한편으로는 아쉽게 저녁 만찬을 즐겼다. 우리 식구들은 한국에 들어가기 전에 뉴욕으로 여행을 간단다. 뉴욕에 가서 여행할 곳이나 숙소 이야기며, 한국에 돌아가서의 계획 등으로 한참 이야기 꽃을 피웠다. 처음 만났을 때의 이야기, 멕시코 배우 친구와의 언쟁, 소풍 갔던 이야기 등을 하면서 시간이 참 빨리 지나간다고 느꼈다. 이제 집에 와도 우리 식구들이 없다. 뭔가 음식을 살 때 잘 조절해서 사야겠다. 너무 많은 양을 사면 안된다. 이제는 먹어줄 식구들이 없다. 우리는 한국에 가서 또 보자고 했다. 그래. 우리는 한국에서 만날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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