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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 Apr 05. 2024

울지마

2023.09.21.목요일

평소 보다 1시간 일찍 일어나 김밥 7줄을 말았다. 오늘 L과 몇 명의 친구들이 마지막으로 수업을 듣는 날이다. 친구들이 각자 자기 나라의 음식을 싸와서 함께 나눠 먹는 potluck 파티를 할 것이다. 한국에서 만드는 것 만큼 풍성한 맛을 내기는 어렵겠지만 그래도 깔끔한 채식김밥을 말았다. 색깔이 예쁘다. 근데 만드는 과정의 사진만 찍고 정작 완성품 사진은 찍지 않았다. 대체 왜?




수업이 시작되기 전에 L에게 나의 스케치를 선물하려고 그녀의 교실에 갔는데 아직 오지 않았다. 다시 내 교실로 돌아와 책을 보고 있는데 L이 슬쩍 들어오더니 작은 선물이라며 무언가를 준다. L도 나와 같은 마음이었다. 브라질에서 가져온 작은 가방과 열쇠고리다. 그리고 편지도 있다. 나도 슬그머니 나의 스케치를 내밀었다. 그녀는 아주 좋아하면서 액자에 넣어서 자기 방에 걸어두겠단다. 




문법 수업

오늘도 보강교사가 느릿느릿 문법 설명을 한다. 그리고 연습문제를 겨우 하나 풀었다. 우리가 숙제로 해온 것이라 빨리빨리 답만 확인하면 되는데 그녀는 너무 느리게 또 설명한다. S가 월요일에 돌아와서 다행이다.




듣기 수업

오늘 단어 시험을 볼 줄 알고 다들 쉬는 시간에 열나게 단어를 외웠는데 시험을 다음주에 본단다. 그리고 내일 금요일 학원이 휴원이므로 오늘이 금요일이란다. 금요일은 팝송 데이이므로 오늘 새로운 팝송을 배웠다. 이제는 고인이 되어 버린 Sinead O`Conner의 Nothing Compares to You라는 노래다. 

It`s been seven hours and fithieen days since you took your love away.

당신의 사랑을 가져간지 15일 7시간이 되었어요.

I go out every night and sleep all day since you took your love away.

당신의 사랑을 가져간 후 나는 매일밤 나가고 낮에는 잠을 자요.

....

이런 이별 노래다. 노래를 듣는 것은 좋지만 빈칸 메꾸기는 어렵다. 오늘도 이렇게 듣기 수업은 음악과 함께 끝이 났다.




읽기와 쓰기 수업

오늘은 지난번 만든 자신의 스토리에 대해 광고하는 간단한 글을 써보란다. 처음에는 무슨 말인지 잘 이해가 안가서 다들 우왕좌왕했는데 나중에 샘플을 몇 개 보여주어서 겨우 이해했다. 세 줄짜리 광고글을 썼다. 나의 이야기는 집나간 강아지의 모험이다. 그래서 강아지는 과연 어떤 일을 겪게 될까? 누가 그를 도울까? 이런 식으로 호기심을 자극하는 질문으로 글을 썼다. 돌아가면서 광고글을 읽고 이어서 자신이 쓴 글을 읽었다. 

그런데 수업이 시작된 후 조금 있다가 교장이 들어와 수업을 경청하다가 나갔다. 아까 수업 시작 전에 교장과 보강교사가 뭔가 이야기를 나누었던 것이 생각났다. 아마도 둘 중 하나일 것이다. 누군가 이 보강교사의 수업에 대해 불만을 이야기해서 수업이 어떤지 보러 들어왔거나, 아니면 원래 수업교사가 학원을 그만두어서 보강교사에게 이 수업을 지속적으로 맡길지 판단하기 위해 들어왔거나... 부디 후자가 아니길 바란다. 




점심 시간

드디어 potluck 파티다. 우리는 평소 이용하던 학생 라운지가 아니라 L과 그 친구들이 주로 수업을 듣는 교실에 판을 벌렸다. 대만 국수와 팥죽, 한국 김밥과 잡채와 만두, 브라질 버섯치즈요리, 일본 국수와 과자 등등 한상 가득하다. 다들 신나게 먹었다. 이것저것 맛보느라 배가 너무 부르다. 다들 신나게 떠들면서 먹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이별에 대한 걱정이 가득하다. 


어떤 친구가 떠나는 친구에게 지금 심정이 어떠냐고 물었다. 다들 순간, 눈시울이 붉어졌다. 안돼. 다들 누가 한 명 울면 다 울게 되니까 절대 울지 말라고 했다. 서로 서로 울지마, 울지마라고 말하고 겨우 위기를 넘기고 또 음식 이야기를 나누었다. 대만 친구들이 정성들여 만든 도시락을 누가 먼저 파괴할 것인가, 서로 너무 귀여워서 못하겠다고 한다. 결국 만든 친구들이 파괴했다. 음식이 어느 정도 마무리되고 있는데 일본 친구 M의 눈시울이 붉어진다. 그녀는 김치가 너무 매워서 그런거라고 핑계를 대다가 갑자기 울음을 터트렸다. 너희들이 처음 왔던 날이 생각난다면서. 에구! 여기저기서 훌쩍훌쩍거린다. 

누군가 이 장면을 보면 이게 뭔가 싶을 것 같다. 세계의 음식들을 놓고 신나게 먹다가 갑자기 울다니... 그러나 이럴 시간이 없다. 곧 수업이 시작된다. 이 교실에서 오후 수업을 듣는 학생들이 들어오지 못하고 밖에 서 기다리고 있다. 갑자기 분주해지면서 눈물바다 직전에 다행히 수습되었다. 탁자를 치우고 원래대로 복귀시키고 의자도 정리하고 그 와중에 단체사진을 찍고 친구들끼리 사진을 찍고 난리다. 

정말 한바탕 교실을 정리하느라 난리를 치르고 나서 나는 학생 라운지로 왔다. 대만 친구 J와 함께 나란히 앉아서 음식이야기를 나누었다. 이런저런 수다를 떨다가 숙제를 했다. 근데 숙제가 별로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에휴! 이별은 언제나 어렵다. 한국 친구들은 마음만 먹으면 한국에서 다시 만날 수 있지만 외국 친구들은 어렵다. 게다가 멕시코나 브라질 친구들은 아마 다시 만나기 어려울 것이다. 이런 저런 생각에 마음이 참...



회화 수업

오늘은 대화의 주제가 바뀌었다. 쇼핑이다. 쇼핑? 내가 처음 여기에 왔을 때 주제가 쇼핑이었다. 즉, 한바퀴를 다 돌았다는 것이다. 여기서 공부한지 3달째가 된다. 대체로 3달을 주기로 교육과정이 반복된다. 이제 레벨을 올릴 때가 되었다는 것이지. 쇼핑에 대한 새로운 단어를 배웠다. Mam and Pop shops. 이것은 가족단위로 운영하는 작은 가게란다. far-fetched 믿기지 않는, stay afloat 빚지지 않고 있다(사업의 현상 유지를 한다는 의미) 이런 단어들을 배우고 나서 글을 읽었다. 독립서점이나 작은 가게가 살아남기 어렵다는 내용의 글이다. 대형 가게들과 경쟁하기 어렵다. 우리는 과연 작은 가게를 얼마나 이용할까? 좀 어려운 주제이지만 그럭저럭 자신의 경험들을 이야기했다. 다들 마음으로는 독립서점이나 작은 가게들이 살아남기를 바라지만 실제로 생활을 하다보면 대형 가게를 자주 이용하게 된다. 경험이 비슷비슷하다. 




보충수업

오늘은 날씨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hot, cold와 같은 쉬운 내용부터 drizzling(부슬부슬 내리는 비), hailing(우박) 등도 배웠다. 자기네 나라 날씨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콜롬비아 사람이 한국의 날씨를 궁금해 한다. 겨울에 많이 춥냐고 묻는다. 아주 많이 추울 때는 -10도까지 내려간 적도 있다고 했더니 아주 놀란다. 물론 서울은 그렇게까지 내려가지는 않지만 어쨌든 우리나라 겨울은 매섭다. 멕시코, 브라질, 콜롬비아는 가을과 겨울이 없단다. 뭐 나름 기온이 여름보다 조금 내려가는 시기가 있지만 그래도 늘 더운 나라다. 우리는 여름에는 덥고 겨울에는 춥다. 어느쪽이 더 좋은 걸까? 변함없는 기온? 변화하는 계절? 나는 변화하는 계절이 더 좋다. 물론 온화한 지중해성 기온이 일년 내내 되는 것도 좋겠지만 그러면 좀 심심할 것 같다. 봄이 되면 파릇파릇하게 새순도 돋고 여름에는 울창한 숲을 보고 가을에는 단풍이 물들고 겨울에는 눈도 내리고 그래야 1년이 지나감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날씨 이야기를 나누다가 교사 M이 이번에도 가을에 대한 시를 한편 낭독하자고 해서 다같이 한 줄씩 읽었다. 나는 부끄럽지만 나도 영어로 시를 써 보았다고 했다. M이 아주 좋아하면서 읽어보란다. 나는 아주아주 짧은 동시를 읽었다. M이 나의 시를 자기가 가져가서 타이핑해서 자신의 교실에 붙여 놓아도 되겠냐고 묻는다. 오! 영광이다. 좋다고 했다.




수업이 끝나고 L을 찾았는데 그녀는 볼일이 있어서 벌써 갔단다. L은 오늘부터 몬트리올로 여행을 갔다가 월요일에 밴쿠버에 돌아왔다가 바로 브라질로 떠난다. 인스타그램의 채팅방에서 L은 월요일 오후에 자신이 학원에 올거니까 그때 작별 인사를 나누자고 한다. 그래. 그러자. 이별을 유보하자.

도서관에 가서 미친 듯이 문법 공부를 했다. 처음부터 쭈욱 다시 복습을 하다보니까 예전에 써 둔 메모들이 눈에 띈다. 처음 만난 친구들 이름을 급히 메모한 것부터 너무너무 모르겠는 내용에 커다란 물음표를 붙인 것까지 다양한 것들이 보인다. 새록새록 추억이 떠오른다. 에휴... 안돼. 공부에 집중해. 이번 문법 시험에 좋은 점수를 받고 싶다. 어차피 3달이 되었으므로 레벨은 오르겠지만 점수가 미달되는 사태가 벌어지면 너무 창피할 것 같다. 그리고 기왕이면 아주 좋은 점수로 올라가고 싶은 욕심도 생긴다. 정신없이 문법 공부를 하고 밤이 되어 집에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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