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바람 Apr 15. 2024

다양한 사람들

2023.09.27.수요일

문법 수업

어제에 이어서 오늘도 보강교사가 들어왔다. 그녀는 아주 느릿느릿 진도를 나갔다. 내일 S가 돌아오면 좀 놀랄 것 같다. 부사의 비교급, 최상급 표현을 반복해서 연습했다. 대부분 안다고 생각했지만 역시 연습문제에서는 예상 밖의 어려움이 발견된다. 맥락을 읽으면서 판단해야 하는 것들이 있어서 그렇다. 남의 나라 말을 배우는 데서 가장 큰 어려움은 맥락 파악이 아닐까 싶다. 그 다음 어려움은 단어. 둘 다 어렵다.



듣기 수업

교사 W가 돌아왔다. 그동안 감기에 걸려서 아파서 못 나왔단다. 지금은 완전하지는 않지만 한결 나아졌단다. 여전히 유쾌한 그는 이상한 영어, 미친 캐나다인 등 무엇이든 질문하라고 한다. 나는 다음 달에 공휴일이 두 개 있는거 맞냐고 물었다. 그렇단다. 10월2일(월)은 'Truth and Reconciliation(진실과 화해의 날)'인 9월30일(토)에 대한 대체 공휴일이란다. 

'진실과 화해의 날'이 무엇인지 물어보았다. 캐나다의 아픈 역사를 잊지 않기 위한 날이다. 캐나다 정부가 아메리카 원주민 아이들을 모아서 강제로 기숙학교에 보내 원주민 언어를 사용하지 못하게 하고 자신들의 기준에 맞게 교화시키려 했단다. 심지어 기숙학교에서 죽어간 아이들도 있는데 그 사실을 가족에게도 알리지 않았단다. 그렇게 죽거나 행방불명된 원주민 아이들이 수천명에 이른다고 한다. 캐나다 정부는 이 충격적인 학대의 사실을 잊지 않고 교훈으로 삼으려고 9월30일을 '진실과 화해의 날'로 정했단다. 그리고 이 날은 오렌지색 셔츠를 입는 것이 전통이다. 한 원주민 아이가 할머니가 주신 오렌지색 티셔츠를 입고 학교에 갔다가 강제로 옷을 벗긴 사건이 있었단다. 그래서 오렌지색 옷을 통해 역사의 교훈을 잊지 않으려는 것이다. 오늘날 캐나다는 인권, 평등, 다양성을 포용하는 나라로 알고 있지만 이런 어두운 역사가 있었다는 것이 놀랍다. 그리고 그것을 정면으로 직시하고 잊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것도 또 놀랍다. 여러 가지 면에서 흥미로운 나라다. 9월30일에 나는 오렌지색 티셔츠가 없으니까 대신 오렌지색 숄을 두르고 다녀야겠다. 

W는 진도를 나가면서 내 책을 슬쩍 보더니 이미 배운 단원임을 알고는 얼른 가서 새 책을 복사해 왔다. 배웠던 내용의 답을 보지 말고 풀란다. 뭐 굳이 이런 친절을... 그런데 신기한 것은 분명 배운 내용인데도 어떤 단어는 몹시 낯설다는 점이다. 에구구. 그런데 진도를 나가느라 교사 W는 지난 단원의 단어시험 보는 것을 까먹었다. 뒤늦게 시험지를 발견하고 당황한다. 사실 나는 아까부터 단어시험은 어떻게 되는 것인지 궁금했다. 하지만 굳이 내가 먼저 나서서 물어볼 필요는 없지. 후후. 결국 시간이 부족해서 W는 단어시험은 내일 보자고 한다. 그런데 이렇게 오래 지나갔는데 우리가 그 단어들을 기억할 수 있을까? 




읽기와 쓰기 수업

어제 본 시험의 답안지를 학생들에게 나눠준다. 내 것을 내가 채점하는 것은 아니고 다른 학생에게 준다. 그런데 최소한 이름 정도는 가려야 하지 않겠니? 문법 시간에는 답안지를 나눠주면서 학생의 이름 부분을 가리고 주는데 이 교사는 그럴 생각이 없다. 

시험지도 나눠주고는 한문제씩 설명하면서 답을 알려준다. 그래. 이건 그나마 좋다. 답만 알려주는 것보다는 설명해주는게 좋지. 설명을 하면서 다 풀어주고 나서 답안지를 걷어간다. 그리고는 교재의 진도를 나간다. 나는 내 점수도 모르고 어떤 문제가 틀렸는지 가물가물한 것도 있는데.... 점수를 입력하고 내일 보여주려나?

두번째로 배운 스토리의 단어에 대해서 보충 설명을 한다. 시험 전에 설명했어야 하는 것을 시험이 끝난 후에 하는 것이다. 이 설명을 시험 전에 들었다면 몇 문제는 바로 풀 수 있었을 것이다. 이래저래 마음에 들지 않는 교사다. 하나가 마음에 들지 않으니까 계속 눈에 거슬린다. 이런 생각을 하지 말아야지. 누군가를 미워하면 고스란히 그 화가 나에게 돌아온다. 생각을 전환시키자. 뭐, 그녀에게도 장점은 있다. 여러 글쓰기의 피드백을 해주고 있다. 그동안 진도 나가면서 교재에 쓴 문장들에 대해 빨간펜으로 피드백을 해주었다. 그래. 그거라도 어디냐.



점심시간

오늘은 게임이 없다. 밥을 먹고 친구들과 수다를 떨었다. 어제 나의 시를 학원 인스타그램에서 봤다면서 친구들이 신기하다고 한다. 어떤 친구는 왜 시를 썼냐고 묻는다. 응? 왜 썼냐고? 그냥 가을에 대한 단어가 아름다워서라고 하니까 또 다들 감탄을 한다. 아니, 그게 뭐 감탄할만한 일은 아닌데... 



회화 수업

오늘 수업은 감정에 대한 것이다. I `m bored. 나는 지루하다. The book is boring. 그 책은 지루하다.  두 문장을 보니까 전에 문법 수업 시간에 배운 것과 일치한다. -ed가 사용되면 주어가 그 감정을 느끼는 것이고 -ing가 사용되면 주어로 인해 내가 그 감정을 느끼는 것이다. 그런데 딱 하나 예외가 있다. I`m starving. 배가 엄청시리 고프다. 여기서는 -ing가 사용되었으나 주어가 그 감정을 느끼는 것이다. 새로 배운 단어도 있다. The boy is curious. 그 소년은 호기심이 많다. Your socks is disgusted. 너의 양말은 역겹다. He is frustrated. 그는 좌절했다.




보충 수업

오늘은 전에 배운 것에 이어서 가정법을 복습했다. First Conditional은 현재 시제로 시작해서 미래시제로 이어지면서 현재나 미래에 대한 가정법이다. If I have a car, I will go to travel.(나는 차가 있다면 여행을 갈 것이다.) Second Conditional은 과거로 시작해서 would로 이어지면서 비현실적인 상황에 대한 가정법이다. If I won the lottery, I would buy an island.(내가 복권에 당첨되면 섬을 살 것이다.)

조건문에 대해 대화를 나누는데 아주 재밌다. 각국의 사람들이 참 다양한 상상을 한다. What would you do if you were the richest person alive? (당신이 현존하는 가장 부유한 사람이라면 무엇을 하겠냐?)는 질문에 어떤 사람은 우주 여행을 하고 싶단다. 어떤 사람은 굶주린 사람들에게 음식을 주겠단다. What would you do if you had a 3D printer? (3D 프린터가 있다면 무엇을 하겠냐?)는 질문에 어떤 사람은 인간의 신체 장기를 만들어서 아픈 사람들에게 주겠단다. 오! 멋진 아이디어다. 다양하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듣는 것이 재밌다.


수업이 끝나고 도서관에 들러서 숙제를 하다가 밋업의 한영 언어교환 모임에 갔다. 오늘도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서 신나게 영어로 떠들었다. 이제 10여차례 갔더니 익숙한 사람들이 많아서 이야기하기가 더 편하다. 물론 뉴페이스들도 많다. 자기 소개도 하고 이런저런 사는 이야기도 나누었다. 전에 만났던 프랑스 사람 M은 정말 유쾌하고 멋진 사람이다. 그녀는 7개 국어를 한단다. 물론 몇 개의 언어는 전문적으로 잘 하기 보다는 원어민과 대화를 유창하게 나누는 정도의 수준으로 말할 수 있단다. 근데 그거면 충분히 잘하는 거 아닌가? 어쨌든 언어를 수집하듯이 배우는 사람들이 있다. 사람들 사는 모습이 다양하다.


집으로 오는 길에 한인 마트에 들러서 요리할 재료를 샀다. 한국은 지금 추석연휴가 시작되었다고 하니까 뭔가 명절 음식 비스므레한 것을 만들어 친구들과 나눠먹고 싶다. 전을 만들고 싶지만 그건 너무 힘드니까 패스! 반찬코너에 제수용 나물이 있다. 도라지와 고사리볶음이다. 거의 2만원돈으로 매우매우 비싸지만 비빔밥을 만들기 위해 큰 맘 먹고 샀다. 콩나물도 샀다. 비빔밥에 콩나물이 빠질 수 없지. 집에 와서 당근을 채썰어 볶고, 콩나물도 데쳐서 무쳤다. 그리고 지난번 사둔 상추도 씻어서 채썰었다. 나름 색깔이 화려한 비빔밥 재료가 준비되었다. 재료를 준비하는 사이에 냄비밥도 했다. 살짝 질게 되었지만 뭐 어쩔 수 없지. 내일 아침에 도시락에 예쁘게 담아야지. 히히. 친구들과 즐겁게 나눠 먹을 생각을 하니까 신난다.








매거진의 이전글 영어로 작가 데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