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바람 Apr 16. 2024

아픈 만큼 성숙해지고

2023.09.28.목요일

문법 수업

교사 S가 돌아왔다. 그는 나를 보자마자 레벨 업 얘기를 꺼낸다. 내가 아마 안될껄? 하니까 놀란다. 내가 테스트 점수가 80%를 넘지 못했다고 하니까 괜찮다고 한다. 3달이 지났고 작은 테스트는 잘 봤으니까 충분히 레벨 업을 할 수 있다고 한다. 자기는 이미 나를 레벨 업 리스트에 넣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만약 내가 원하지 않으면 다시 고려해 보겠다고 하면서 세 가지 옵션이 있다고 한다. 첫째, 레벨 업을 해서 간다. 둘째, 이 클래스에 남는다. 셋째, 같은 레벨의 다른 클래스로 옮긴다. 예전에도 그는 어떤 학생이 레벨 업에 자신이 없다고 하니까 이 세 가지 옵션을 제시했었다. 나에게도 잘 생각해보란다. 

나는 시험을 잘 보면 레벨 업을 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시험 결과를 보고는 내가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문법은 이해가 가지만 적용은 못한다. 게다가 교사 S만큼 잘 가르치는 교사를 만나리라는 보장이 없다. 이런저런 이유로 며칠 간은 이 클래스에 남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제부터 조금씩 생각이 바뀌고 있다. 듣기 수업에서 전에 배웠던 구간이 반복되니까 별로 도움이 되지 않고 지루하다. 문법도 같은 교재가 반복되면 다 아는 내용이라 재미가 없을 것 같다. 그리고 처음 여기에 왔을 때 문법 레벨 3이 부담스러워서 2로 내리고 싶었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이 말렸다. 처음의 위기만 넘기면 된다고... 그 말이 맞았다. 쉬운 레벨로 시작했다면 더 발전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번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이 레벨과 이 클래스에 안주한다면 친숙해서 마음은 편하겠지만 발전은 없을 것 같다. 결국은 레벨 업을 하기로 했다. 교사 S도 그것이 영어 실력을 높이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하면서 잘 결정했다고 한다. 교사의 리스크만 부디 잘 피해가기를 바랄 뿐이다. 

교사 S는 그동안 보강교사가 어디까지 진도를 나갔는지 듣더니 예상했던 대로 놀란다. 너무 느리게 나갔지? 그런데 이번에 새로 나가는 단원이 바로 내가 이곳에 와서 처음 배웠던 그 단원이다. 다만 내가 왔을 때는 연습문제 4번부터 진도를 나가서 그 앞부분은 배우지 못했다. 오늘과 내일 사이에 이 앞부분을 배우고 이 클래스를 마무리하게 되었다. 정말 적절한 타이밍으로 마무리를 잘 하게 된 것 같다. 오늘 배운 것은 Gerunds 동명사이다. 동사들 중에는 뒤에 동명사(-ing)를 선택하는 것과 부정사(to -)를 선택하는 것이 있다. 그것은 어떤 원칙이 없이 그냥 자연스럽게 그렇게 된 것이라 외우거나 익혀야 한다. 그게 더 어렵다. 차라리 규칙이 있으면 그것만 외우면 되지만 이건 뭐 암기가 끝이 없다. 전치사까지 엮여서 한 세트가 되는 것들도 있다. 그것도 어떤 원칙이 있는게 아니다. 그냥 외워야 한다. 나는 안 외울거다. 다만 익숙해지려고 노력할 뿐이다. I`m against smoking in public places. I beleive in taking care my health.




듣기 수업

이미 들었던 내용을 다시 배운다. 처음 와서 어리버리한 상태에서 고통스럽게 들었던 내용이다. 하지만 이제는 내용을 안다. 그런데 내용을 알아도 여전히 낯선 단어들이 있다. 그리고 문제는 여전히 헛갈린다. 한참을 단어도 배우고 듣기도 반복해서 듣는 활동을 했다. 그리고 교사 W는 내일 금요일이니까 우리는 단어 시험을 볼 수도 있고 영어 팝송 시험을 볼 수도 있단다. 다같이 영어 팝송 시험을 보자고 했다. 그래. 내일 영어 팝송 빈칸 메꾸기를 하자.




읽기와 쓰기 수업

교사에게 나의 레벨 테스트 답안지를 보여달라고 했다. 나는 어떤 문제가 틀렸는지 알고 싶다고 했다. 학생들 답안지와 시험지를 탁자에 펼치고 원하는 학생은 가져가서 확인하라고 한다. 다들 가져가서 자신이 무슨 문제를 틀렸는지 확인했다. 나는 예상보다는 잘 보았다. 신기한 것은 읽기와 쓰기 시험은 대부분 80%를 넘긴다는 것이다. 역시 문법이 유독 약한 거였어.

오늘은 쓰기 과제에 대해 좀더 자세한 설명을 들었다. 쓰기 과제에 안내된 기준이 있는데 우리가 과제를 작성할 때 그것을 잘 참고하지 않아서 점수를 줄 수 없었다고 한다. 가령 10~15문장으로 쓰라고 되어 있으면 그것을 넘겨도 안되고 미달이 되어도 안된단다. 대화형으로 쓰라고 되어 있으면 반드시 대화형으로 쓰란다. 그러면서 주제 중 하나를 예로 들어서 마인드 맵을 그리는 샘플을 만들어 보여주었다. 마인드 맵을 이용해서 글을 쓰면 아주 쉽게 쓸 수 있다고 한다. 그리고 우리에게 주제를 하나 정해서 마인드 맵을 그려보란다. 결국 또다시 쓰기 활동이 시작되었다. 




점심시간

짜잔! 친구들 앞에 비빔밥을 펼쳤더니 다들 좋아한다. 외국인 친구들은 신기해하면서 좋아하고 한국인 친구들은 반가워하면서 좋아한다. 뭐, 다들 좋아하니까 나도 좋다. 신나게 비벼서 함께 나눠 먹었다. 




밥을 먹고 나서 대만 친구랑 나란히 앉아서 공부하다가 수다를 떨었다. 그녀는 이번 토요일에 이사를 하는데 그 사이 짐이 많이 늘어서 여러번 나눠서 옮길 거란다. 나는 밋업 모임 시간과 겹치지만 않으면 가서 도와주겠다고 했다. 여러번 왔다갔다 하느니 나랑 같이 한 번에 옮기자고 했다. 너무 고맙다면서 일단 금요일에 한번 옮길 예정이라서 혹시 토요일에 일손이 필요하면 연락하겠다고 한다. 나는 토요일에 2시30분부터 4시30분까지 영어 언어교환 모임이 있어서 그것만 피하면 된다고 했다. 그녀는 나의 언어교환 모임을 여러번 들어서 잘 알고 있단다. 오전에 이사를 할 예정이니까 시간이 겹치지 않는단다. 그리고 이번에 이사하는 집이 시내와 가까워서 자신도 앞으로 이런 모임에 참여할 수 있을 거란다. 같이 다니면 좋지.




회화 수업

감정에 대한 표현에서 한단계 나가서 perception 인식에 대해 배웠다. 긍정적인지 부정적인지 이런 것이다. 그리고 재밌는 질문지에 답을 했다. 좌뇌와 우뇌. 나는 어느쪽일까? 일종의 성격테스트다. 나는 거의 중간인데 아주아주 약간 좌뇌 유형이다. 사실 대부분의 학생들이 중간인데 아주 약간 좌뇌, 우뇌의 경향성을 가진다. 좌뇌 유형은 단계별로 진행되는 것을 좋아하고 시간 개념이 명확하고 주변 정리를 잘 한단다. 뭐 내가 좀 그런 경향이 있지. 우뇌 유형은 왜라는 질문을 많이 하고 보는 것보다는 하는 것을 좋아한단다. 

좌뇌 유형 학생들과 우뇌 유형 학생들이 그룹을 지어 앉았다. 그리고 우리가 선택해서 쓴 단어카드들을 섞어서 상자에 담고 한명씩 나가서 1분 안에 단어를 설명해서 팀원들이 맞추게 하는 게임을 했다. 다들 승부욕이 강해서 열심히 게임을 했다. 그런데 아는 단어도 영어로 설명하는 것은 참 어렵다. 다들 한번씩 나가서 설명을 하는데 각양각색이다. 모르는 단어는 패스. 그러다 보니까 마지막까지 남은 단어들이 있다. 배웠던 건데 까먹은 것들이다. 재밌게 게임을 하고 나서 이번 주에 마지막인 일본 친구가 다같이 사진을 찍자고 해서 함께 사진을 찍었다. 그녀는 나와 문법 수업, 회화 수업을 같이 듣는 친구다. 그 사이 많이 친해졌는데 아쉽다.




보충 수업

오늘은 정중한 표현을 배웠다. 친구 사이가 아니라 낯선 사람에게 부탁하거나 제안, 질문 등을 할 때 정중하게 말하는 표현이다. By any chance, Do you know where is the bus stop? 정보를 물어볼 때 정중하게 물어보는 표현이다. What if I helped you with your eassy? 제안을 할 때 정중하게 물어보는 표현이다. I would love to, but I can`t go there. I have an appointment. 정중하게 거절하는 표현이다. 이런 것을 배우고 서로 돌아가면서 적용해서 말하는 연습을 했다. 




수업이 끝나고 도서관으로 가는데 회화수업과 보충수업을 함께 듣는 한국 친구 E가 맛있는 간식을 준다. 그러면서 매번 도와주어서 고맙단다. 별말씀을. E는 교사의 말을 어떤 때는 못알아들어서 너무 힘들단다. 나도 그렇다. 아직까지 어떤 것은 못알아 듣는다. 그녀는 그래도 나는 영어를 잘 하지 않냐고 한다. 천만에 말씀. 나는 지금 그녀의 심정을 안다. 내가 겪은 폭풍같은 첫주, 그리고 한달의 고통을 그녀가 지금 겪고 있는 것이다. 지금은 정말 장족의 발전을 한 것이지만 그때는 엄청 힘들었다. 그 얘기를 했더니 믿지 않는다. 후후. 내 일기를 봐라. 그게 증거다. 첫주는 매일 징징대는 얘기. 그 다음은 뭐가 힘들고 뭐가 어렵다는 얘기로 가득하다. 그러다가 나중에 점차 안정되면서 친구들도 사귀고 여기저기 모임도 나가고 그랬다. 그 일련의 과정은 통과의례처럼 겪어야만 하는 것이다. 문득 레벨 업을 결정한 것이 잘 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또 다시 힘들겠지만 그래도 성장하려면 힘든 시기를 거쳐야 한다. 뭐든지 좋은 것이 얻으려면 댓가를 치러야 한다. 아픈만큼 성숙해지는 거라고 했던가?

도서관에서 숙제를 하고 쓰기 정리를 하고 집으로 왔다. 집에 오니까 일본 친구 A가 식탁에서 공부를 하고 있다. 그녀에게 비빔밥을 좋아하냐고 물었더니 아주 좋아한다고 한다. 그래. 내가 지금 한 그릇 만들어줄께. 점심 도시락을 만들고도 아직 반이나 남았다. 나물 종류라 빨리 먹는게 좋다. 일본 친구 A가 다음주에 떠나기 전에 요리를 한번 해주고 싶었다. 매번 한국 친구들에게만 요리를 해주어서 내심 마음에 걸렸는데 잘 되었다. 색색깔로 예쁘게 비빔밥을 만들어주니까 아주 좋아한다. 나도 한 그릇 만들어서 함께 먹었다. 그녀는 일본이나 캐나다에서 한두번 한국 식당에 가보긴 했단다. 하지만 이렇게 누군가 집밥으로 만들어준 한국 음식은 처음 먹어본단다. 그리고 너무 맛있단다. 그래. 너를 위해 요리를 해서 나도 기쁘다. 우리가 밥을 먹는 중간에 미국 친구 M이 왔다. 그녀도 자신의 음식을 가져와서 함께 식탁에 앉았다. 

M이 오늘 하루는 어땠냐고 묻는다. 나는 문법 수업의 레벨 업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M은 문법의 어느 부분이 특히 어렵냐고 묻는다. 나는 시제가 어렵다. 과거, 현재, 미래, 진행, 완료를 따로따로 배우면 쉽지만 이들이 한 문장에 나오면 어렵다. A도 시제가 어렵다고 했다. 특히 진행, 완료가 더 어렵다. M은 우리 이야기를 듣더니 그러면 한국어나 일본어에는 진행이나 완료가 없냐고 묻는다. 응. 우리는 과거, 현재, 미래 시제만 있어. 대신 보조하는 말로 진행이나 완료를 표현해. 일본어도 마찬가지란다. 완전히 체계가 다른 언어를 배우는 거라서 더 어려운 것이다. M은 유심히 듣고는 메모지를 가져와서 우리가 헛갈린다고 하는 시제에 대해 몇 가지 예를 들어 주었다. 이론은 이미 아는 것이지만 예문을 원어민으로부터 이것저것 들으니까 연습이 되어 좋다. M은 너무 착하다. 앞으로도 M과 많이많이 대화해야겠다. 어렵다고 도망치지 말고.




매거진의 이전글 다양한 사람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