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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 Apr 18. 2024

캐나다에서 맞이하는 추석

2023.09.29.금요일

문법 수업

2주동안 내 옆에 앉았던 일본 친구 S가 오늘이 마지막 날이란다. 그녀와는 문법, 회화 수업을 함께 들었다. 자주 파트너가 되어 대화를 나누었는데 차분한 성품을 가진 착한 친구다. 그녀가 작은 선물과 쪽지를 주었다. 어머나. 나는 아무것도 준비하지 못했는데... 미안한 마음에 얼마전에 산 예쁜 볼펜과 교실에 있던 색종이에 메모를 쓰고 만화를 그려서 주었다. 나의 취미 중 하나는 만화그리기이다. 나는 취미 부자!! 이 친구는 내일 귀국한다는데 건강하게 잘 가기를 바란다.

동명사와 부정사를 한꺼번에 비교하는 연습문제를 풀었다. 좀 어려운 문제가 있었는데 단어의 의미를 알고 있어서 나는 비교적 쉽게 풀 수 있었다. 그러자 교사 S는 나에게 그것보라며 너는 레벨4가 될 자격이 있다고 한다. 그는 자꾸 나에게 용기를 주는 말을 한다. 고맙다. 용기 내서 열심히 해볼께. 

수업이 끝나고 교사 S와도 사진을 찍고 일본 친구와도 사진을 찍었다. 물론 교사 S는 왔다갔다 하면서 자주 보겠지만 그래도 가장 정이 많이 든 수업이라서 아쉬운 마음이 가득하다. 




듣기 수업

오늘은 금요일이므로 영어 팝송을 들으면서 빈칸 메꾸기를 했다. 엘튼 존의 노래인데 늘 그렇듯이 어떤 부분은 발음이 뭉개져서 듣기가 어려웠다. 그러자 명랑한 터키 학생이 그의 발음이 이상하다고 투덜거렸다. 그런데 어린 학생들이 엘튼 존이 누군지 모른단다. 대부분 나이든 사람들만 그가 누군지 알고 있었다. 역시 세대차이... 두 대차이가 아니고 딱 세대차이... 딱 한 대만 맞자. 하.하.




읽기와 쓰기 수업

마지막주 금요일의 읽기와 쓰기 수업 시간에는 졸업하는 학생들에게 주는 졸업장, 한달간의 학생 수업에 대한 피드백이 담긴 레포트 그리고 다음달의 수업 스케쥴을 나눠준다. 오후 수업이 없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나와 같은 아파트 건물에 사는 한국친구가 졸업장을 받았다. 그녀와는 한국에 돌아가서 만나기로 했다. 우리는 아마도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치게 될 것이다. 정말 지금 생각해도 참 신기하다. 이 머나먼 곳에서 이웃 주민과 같은 학원에서 공부하다니...

나는 다음달 스케쥴을 새로 받았다. 예상했던 대로 문법, 듣기, 회화 수업이 동시에 레벨 업이 되었다. 그리고 읽기와 쓰기 수업의 교사가 바뀐다. 읽기와 쓰기 수업의 새로 오는 교사는 내가 아는 교사인데 좋은 사람이다. 전에 듣기 수업을 보강했던 교사인데 가르치는 방식이 나와 맞는다. 다행이다. 이로써 다음주부터는 모든 수업이 바뀐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간 느낌이다. 게다가 문법, 듣기 수업은 옆 건물이다. 읽기와 쓰기 수업, 회화 수업을 듣기 위해 건물을 이동해 와야 한다. 우기가 다가오는데 건물 이동을 해야 하다니... 오늘 수업은 어제 마인드맵을 작성한 것을 교사에게 점검받고 그것을 토대로 작문을 했다. 이제 이 교사와 작별이다. 다행이다. 




점심시간

대부분의 학생들이 오후 수업이 없어서 집으로 갔다. 특별 보충 수업을 신청한 학생들은 남아서 점심을 먹었다. 나도 신청했다. 함께 밥을 먹으면서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들의 주말 계획을 들으면서 나도 이번 주말에 뭘하지 싶다. 요며칠 내내 비가 내리다가 드디어 주말을 앞두고 날씨가 좋아졌다. 앞으로도 계속 비가 올 테니까 무조건 해가 나면 밖으로 나가야 한다고 현지 주민들이 강조했다. 그래. 주말에 뭐하고 놀지 검색 좀 해보자. 

대만 친구 J가 이사를 가는데 내가 토요일에 돕겠다고 했었다. 그녀는 친구의 친구가 차를 가지고 와서 도와주기로 해서 내가 돕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그래. 너에게는 참 잘 된 일이야. 그녀는 겨울을 대비해서 이불을 사야하는데 침낭을 살지 이불을 살지 고민이라고 했다. 그녀는 앞으로 몇 번 더 이사를 다녀야해서 침낭이 편할 것 같은데 한번도 사용해본 적이 없단다. 여행 경험이 많은 나에게 어떠냐고 묻는다. 나는 겨울용침낭을 사면 따뜻하고 이동하기 편할거라고 추천해주었다. 대신 침낭 종류가 다양하니까 여러 가지를 비교해보고 사라고 말해주었다.  

그리고 우리는 함께 2층으로 가서 레벨 업이 된 클래스의 책을 새로 받았다. J는 2권을, 나는 3권을 받았다. 윽. 기존의 책과 새로운 책을 다 넣으니까 가방이 어마무시하게 무거워졌다. 오늘은 도서관에 가지 말고 바로 집으로 가서 책을 정리해야겠다. 



매월말 금요일 오후는 수업이 없다. 졸업하는 학생들이 많아서 행사도 하고 뭐 이것저것 어수선하다. 하지만 희망자는 사전에 신청하면 특별 보충 수업을 들을 수 있다. 회화 수업인데 초급반, 중급반 2개가 개설된다. 나는 초급반으로 갔다. 이 수업에는 그동안 회화수업 보강을 했던 교사가 들어왔다. 그녀는 아주 명랑하고 풍부한 제스쳐를 사용하면서도 영어를 또박또박 발음한다. 그래서 수업을 듣기 아주 좋은 교사다. 여러 학급의 학생들 중에서 신청자를 모아놓은 것이라서 서로 잘 모르는 학생들이 모여있다. 그래서 우선 자기소개를 했다. 교사가 먼저 자기소개를 하는데 와! 그녀는 배우란다. 연극 무대에 주로 서는데 가끔은 이렇게 보강교사로 들어오기도 한단다. 어쩐지 발음이 명료하고 제스쳐가 풍부하더라니...연극배우여서 그랬구나. 다음에도 그녀가 보강 들어왔으면 좋겠다. 다들 자기소개를 했다. 그런데 어떤 학생이 브라질에서 왔고 여기서 공부하다가 대학에 가려고 하고 자기는 색맹이란다. 색맹? 다들 호기심 가득해서 이것저것 물어본다. 불편하지 않냐고 물으니까 그는 별다른 불편함은 없다고 한다. 심지어 자기가 색맹인 것을 자기와 자기 가족들은 몰랐단다. 친구들이 한번 확인해보라고 해서 검사했더니 특정 색깔을 잘 구별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았단다. 이런 얘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나누는 것이 나에게는 낯설다. 일종의 장애일 수 있는데 그것을 담담하게 이야기하고 질문도 한다. 그냥 그의 특징 중 하나일 뿐이라는 것 정도의 분위기다. 그래. 나와 조금 다른 특징을 가진 것 뿐이지. 사람마다 다양한 특징을 가지고 있음을 이해하면 된다. 

오늘의 대화 주제는 Culture Shock. 남의 나라에 여행가서 처음 받는 문화 충격에 대한 내용이다. 여기 캐나다에 와서 가장 충격적이었던 것, 혹은 캐나다에 와서 달라진 자신의 일상생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다음은 문화 충격과 적응의 단계에 대해 배웠다. 1단계 허니문 기간으로 여행지에 오면 대부분 초반에는 다 좋아 보이고 신나게 즐긴단다. 2단계는 충격 기간으로 그동안 좋았던 것들의 이면에 실생활을 경험하면서 충격을 받는단다. 그러면서 집에 가고 싶어진단다. 3단계는 조정 기간으로 포기할 것은 포기하고 다른 문화를 배워가면서 친구를 사귄단다. 4단계는 적응 기간으로 새로운 문화를 받아들여서 생활방식이 변화하고 용기를 갖게 된단다. 마지막 5단계는 재진입 충격 기간인데 이것은 고국으로 돌아가서 자신의 원래 문화에 낯설음을 느끼게 된단다. 교사는 한국에서 2년간 살다 왔단다. 아! 그래서 한국에 대해 잘 알고 있었구나. 그런데 그녀는 캐나다에 돌아왔을 때 5단계를 겪었단다. 한국에서는 지하철에서 떠들지 않는데 여기는 사람들이 수다를 많이 떤다. 그래서 자기네 나라임에도 문화 충격을 받았단다. 그리고 이제는 다시 4단계로 적응했단다. 우리에게 자신이 어느 단계인지 생각해보란다. 나는 조정 단계인 것 같다. 대부분 조정 단계인 것 같다고 했는데 어떤 학생이 자기는 적응 단계라고 한다. 오! 그래? 뭐 사람마다 기간은 다 다르단다. 그렇겠지. 재밌는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까 2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이 교사와는 다음에도 만나고 싶다. 


수업이 끝나고 집으로 왔다. 가방이 너무너무너무 무겁다. 새 책을 세권이나 받았다. 책을 정리하면서 문득 노트도 다 써가서 새로 사야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서 다시 나와서 달라라마에 가서 노트를 샀다. 여기 와서 벌써 세 번째 노트다. 이번 노트가 마지막이겠지? 내 생전에 이렇게 짧은 기간에 이렇게 많은 노트를 써 본적이 없는 듯하다. 참 열심히 살고 있구나. 항상 열심히는 한다. 잘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정말 열심히는 한다.

달라라마에서 나와서 아이폰 매장에 들어서 구경을 했다. 며칠 전에 아이폰15가 출시되는 날 이 매장 앞에 들어가려는 사람들 줄이 최소한 100미터는 되었다. 아직도 매장 안은 북적북적거린다. 여기서 사면 좀 싸다고 하는데 들어가보니까 싸긴 개뿔, 150만원 정도 한다. 물론 내가 최고사양을 찾아봐서 그럴 수도 있다. 어쨌든 오늘은 구경에 만족해야겠다.  


집 근처의 카페에서 하는 밋업의 영어회화 모임에 갔다. 수요일에 하는 모임과 달리 캐나다 사람이 주최하는 모임이라 외국인들이 매우 많다. 이번이 4번째 참석인데 제법 익숙한 얼굴들이 있다. 처음 여기 왔을 때 친해진 캐나다 사람과 음식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사이 대만 사람, 터키 사람이 합류했다. 캐나다 사람은 한국말도 조금 할 줄 알고 나의 영어 수준을 알고 있어서 천천히 이야기해주었다. 대만 사람도 영어를 공부하는 중이라서 내가 알아들을 수 있는 수준에서 이야기를 했다. 물론 그래도 나보다는 잘 한다. 음식 이야기는 다들 편하게 나눌 수 있는 주제다. root beer라는 음료수를 먹어보란다. 맥주가 아니라 그냥 소다수인데 캐나다 사람이 좋아하는 음료수이지만 맛이 감기약 같아서 호불호가 갈린단다. 그래? 도전해봐야지. 색다른 음식에 대해 서로 아는 것을 이야기했다. 

나중에는 취미 이야기로 넘어가서 나는 하이킹을 좋아한다고 했다. 대만 사람과 나만 하이킹을 좋아하고 나머지 사람들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단다. 좀 시간이 지나서 터키 사람과 캐나다 사람은 각각 약속이 있어서 자리를 떴다. 대만 사람과 나는 하이킹 이야기를 계속 나누었다. 우리 둘만 남아있으니까 이 모임의 주최자인 캐나다 사람이 와서 합류했다. 그는 나를 위해 또박또박하게 말을 해주었다. 우리의 주제가 하이킹이라니까 자신의 고향을 소개해주었다. 밴프와 캐나다의 중간쯤 되는 곳의 마을인데 정말 아름다운 곳이란다. 구글맵으로 검색해보니까 정말 아름답다. 아주 큰 호수를 끼고 있고 하이킹 코스도 정말 많단다. 나는 그에게 밴쿠버 근처에서 버스로 갈 수 있는 하이킹 코스를 추천해달라고 했다. 그는 우선 나에게 어디어디를 갔었냐고 묻는다. 내가 간 곳은 린 캐년, 딥 코브, 그라우스 마운틴, 휘슬러다. 그랬더니 갈 만한 곳은 거의 다 갔다고 한다. 후후. 내가 좀 빨빨거리고 다니긴 했지. 그는 그라우스 마운틴은 계단이 많아서 별로 추천하고 싶지 않은 곳이란다. 그러면서 그라우스 마운틴에 갈 때 버스를 타고 갔다면 그 근처에 댐을 끼고 걸어갈 수 있는 코스가 있다면서 추천해 주었다. 다운타운에서 버스를 한번만 타고 갈 수 있는 곳이다. 오, 좋다. 가까우면서도 쉽게 걸을 수 있는 곳이다. 땡큐. 


즐겁게 모임을 마치고 집에 와서 샤워를 하고 나와서 이제부터 요리를 해야지 하는데 휴대폰의 알림이 뜬다. 내가 씻는 사이에 인스타그램으로 앞집에 사는 대만친구들이 자기 집에 놀러오라고 메시지도 보내고 전화까지 했었다. 생각해보니까 앞집에 사는 한국 친구가 추석이라 한국음식을 해준다고 했다고 놀러오라고 했었다. 내가 이것저것 음식을 해주었던 것에 대해 보답하고 싶다고 했다. 그 사이에 내가 까먹고 있었다. 얼른 친구들에게 지금 간다고 메시지를 보내고 슬리퍼를 끌고 편하게 앞집에 갔다. 내가 딱 들어서니까 그들은 마침 상을 차리고 있었다. 그러면서 어쩌면 이렇게 타이밍을 잘 맞추냐고 한다. 그래. 내가 먹을 복이 좀 많아. 

보니까 한국 친구가 내가 엄청 좋아하는 동그랑땡을 만들었다. 와! 너무 좋다. 그리고 그들은 송편을 사왔다. 대만 친구들은 문 케잌이라는 치즈케잌을 사왔다. 아싸. 나는 얼른 집에 가서 맥주를 가져와서 보답했다. 다같이 맛있게 명절 분위기를 내먼서 음식을 먹었다. 어제 한국은 추석이었고 캐나다는 하루가 늦어서 오늘이 추석이다. 보름달도 구경하고 맛있는 음식도 먹으니까 제법 명절 분위기가 난다. 캐나다에서 맞이하는 추석이라는 것을 이제야 실감한다.




대만 친구들은 우리 집에 사는 미국 친구 M과 영어 실전 연습을 하고 싶다면서 주말에 우리 집에 와도 되겠냐고 묻는다. 내가 마침 내일 미국 친구 M의 메이크업 모델을 해주기로 했으니까 저녁 6시에 놀러오라고 했다. 얼마 전에 M이 식탁에 쪽지를 붙여 놓았다. 자신의 학교에서 메이크업 모델을 구해서 실전 연습을 하고 사진을 찍어서 제출하라고 했단다. 그래서 모델을 구한다고 했다. 그래서 내가 해주겠다고 답을 했다. 그녀와 시간을 맞추어서 내일 저녁 6시에 메이크업을 하기로 했다. 대만 친구들에게 그 시간에 자연스럽게 와서 구경하면서 대화를 나누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그들은 매주 토요일에 우리집에 와서 M과 대화를 나누고 싶단다. 그러면 내일 와서 부탁해보라고 했다. 그들은 미국 친구와 사는 나를 부러워한다. 매일 대화할 수 있어서 좋겠단다. 음. 그게 내가 잘 알아들으면 더 좋겠지만 아직은 그정도가 아니라 어려움이 많아. 하지만 노력 중이야. 그들은 매일 노력하는게 중요하다고 했다. 맞다. 그게 중요하지. 영어 실력은 한번에 느는 것이 아니라 매일매일 꾸준히 해서 익숙해지는 것이 중요하지. 자아, 그러면 내일도 열심히 영어로 떠들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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