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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 May 01. 2024

별처럼 빛나는 친구

2023.10.06.금요일

문법시간

다음주 화요일은 small test가 있단다. 그래서 연습문제를 더 풀어야 한단다. 그런데 연습문제의 답을 확인할 때 교사 M은 너무 빠르게 말하고 넘어간다. 따라가기가 어렵다. 이 교실에 아주 잘하는 3명 정도의 학생이 있는데 교사는 그들의 답을 듣고 맞다고 말하고 바로 다음 문제로 넘어간다. 나와 내 주변의 학생들은 종종 교사의 진도를 놓친다. 내 옆자리 친구가 어느 문제를 나에게 물어보는데 이미 교사는 다음으로 나가고 있어서 나중에 확인하자고 했다. 진도를 쭈욱 뽑고 나서 몇 명 학생들이 질문을 하니까 그것에 대답을 해준다. 일단 내가 제일 못하는 것 같고 그밖에 많은 학생들도 허덕이면서 진도를 따라잡고 있다. 어렵다. 교사의 눈높이가 너무 상급 학생들에게만 맞추어진 것이 아닐까? 아니면 내가 따라가기에는 여기 레벨이 너무 높은 것일까? 좀 고민이 된다.




듣기시간

오늘은 발표가 있다. 누가 먼저 하겠냐고 하길래 내가 먼저 하겠다고 나섰다. 빨리 하고 나머지 학생들 발표를 편히 들어야지. 내가 외우지는 못해서 스크립트를 좀 보면서 하겠다고 하니까 교사 A가 그러라고 한다. 어차피 자신의 목적은 암기시키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그래. 다행이다. 대중교통의 장단점을 간단한 예를 들어서 설명했다. 교사는 내 발표를 듣거니 한국에서 차를 운전하냐고 묻는다. 그렇다니까 여기서도 운전할 수 있을 거란다. 그렇겠지만 굳이 그럴 생각은 없다. 

다른 학생들도 하나씩 발표를 했다. 발표 스타일로 제각각이다. 나름 외워 와서 최선을 다해 외운 내용을 말하려고 노력한 학생들도 있고 어떤 학생은 처음부터 끝까지 보고 읽었다. 각 나라의 대중교통에 대해서도 좀 알게 되었다. 멕시코는 여자가 혼자 버스를 타는 것은 매우 위험하단다. 그래서 주로 자차를 이용한단다. 일본의 도시간 이동은 기차가 더 좋단다. 교사는 중간중간 질문도 하고 자신의 경험담도 들려주었다. 오늘수업은 발표로 한 시간이 다 지나갔다.




작문시간

쉬는 시간에 내 옆자리에 앉은 브라질 친구가 숙제를 열나게 했다. 그녀는 숙제를 깜빡했단다. 그래도 그 짧은 시간에 작문을 해서 제출했다. 브라보!! 동사구문으로 작문하는 연습을 좀더 하고 나서 빈칸 메꾸기를 했다. 그러면서 단어로부터 파생되는 다양한 맥락에 대한 설명도 들었다. 수업이 거의 끝나갈 때 내 옆의 브라질 친구가 한국말로 메모를 해서 이게 맞냐고 묻는다. 그리고 몇 가지 한국문장을 더 써서 읽어본다. 의외로 잘 한다. 그녀는 한국에서 2달간 한국어 공부를 했단다. 와! 신기하다. 이 브라질 친구는 19살의 아직 어린 친구인데 다양한 경험을 하였다. 영어가 잘 하고 장난도 잘 친다. 재밌는 친구다.





점심시간

점심시간이 되어 전자레인지에 비빔밥을 데우고 있는데 학생들이 무료 호박파이를 나눠준다면서 우루루 안내데스크 쪽으로 간다. 나도 신나서 달려가서 받아왔다. 호박파이는 추수감사절의 대표 음식으로 칠면조 요리와 함께 먹는 디저트다. 신난다. 친구들도 호박파이를 다들 받아오고 나서 함께 점심을 먹었다. 다른 친구들도 자신의 음식을 함께 먹자고 해서 다양한 것들을 먹었다. 그래도 역시 비빔밥이 최고다. 나는 곁들여 먹을 깍두기도 가져왔다. 전에 한국친구 E가 만들어준 것이다. 그런데 이것을 대만친구들이 한번 먹어보더니 아예 숟가락으로 퍼먹었다. 한국친구들은 겨우 한 개 맛보았는데 대만친구들이 다 먹어버렸다. 제법 매운데 아주 잘들 먹는다. 다들 한바탕 신나게 점심을 먹었다. 우리 친구들이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니까 마음이 뿌듯해진다. 



밥 먹고 나서 대만친구 J가 일요일에 뭐할거냐면서 함께 밋업모임을 찾아보자고 한다. 그래. 일요일에 비가 오지 않는다니까 한번 찾아보자. 우리는 몇 가지 후보를 찾아 보았지만 딱 마음에 드는 모임은 없어서 좀더 지켜보기로 했다. 문법 복습을 하다가 다 못했다. 이번 내용은 더 어려웠다. J는 내일 우리집에서 하는 영어회화 모임에 약속시간보다 30분 정도 일찍 와서 문법 복습을 함께 하기로 했다. 




회화시간

나는 오늘 오전에 칠레 친구 A의 메시지를 받았다. 그녀는 오늘 결석할 것이란다. 자신은 다음주 화요일에 발표하게 되는데 나도 화요일에 발표하면 좋겠단다. 내가 그러자고 답했다. 혹시 무슨 일이 있냐고 물으니까 별일은 아니란다. 

수업에 들어가보니까 교사 N은 이미 상황을 다 알고 있다. 그녀는 칠레 친구 A가 아무래도 발표에 대해 너무 많이 긴장한 것 같다고 한다. 다른 친구들이 자신들도 너무 긴장된다고 말한다. 교사는 자기도 어린 시절에 발표하는 것이 너무 힘들었단다. 그래서 발표를 앞두고는 늘 아팠단다. 나는 고등학교 시절에 거의 말을 하지 않는 학생이었고 발표는 더군다나 아예 하지 않았다고 했다. N은 아주 반가워하면서 자신도 그랬다면서 하지만 학생들 앞에서는 아무렇지도 않다고 한다. 나도 학생들과 함께 할 때면 마음이 편하고 오히려 교사들 앞에서 말할 때는 불편하다고 했다. 우리가 신나게 이런 이야기를 나누니까 다른 학생들이 어떻게 발표의 두려움을 극복했냐고 묻는다. 교사 N은 이것을 발표라고 생각하지 말고 친구들과 편하게 대화하는 거라고 생각하라고 했다. 그래. 마음 편하게 생각해. 하지만 나는 영어로 말하는 것은 좀 어려워서 그게 쉽지는 않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교사는 학생들이 발표를 앞두고 긴장하지 않도록 하려고 이런 대화를 이끌어낸 것 같다. 참 좋은 교사다.

그녀는 칠레 친구 A와 오늘 결석한 친구들 3명이 다함께 내일 발표하므로 나에게는 그냥 오늘 발표하라고 한다. 그래. 알았다. 누가 먼저할래 하는데 나는 이번에는 마지막까지 버텨보기로 했다. 만약 발표시간이 모자르면 나는 화요일에 해도 된다. A가 자신에 대한 내 발표를 듣는 것이 좋을 듯해서다. 하지만 발표시간이 남으면 나도 발표를 해야지. 오늘 발표를 끝내지 않으면 나는 주말 내내 이것을 붙들고 연습하고 또 연습하고 있을 것이다. 오늘 끝내버리고 싶은 마음과 화요일에 A가 있을 때 하고 싶은 마음이 공존하고 있다.

학생들 발표를 듣고 있으려니까 너무 귀엽다는 생각이 든다. 대부분 학생들은 친구의 나이, 국적, 태어난 도시, 생일, 좋아하는 색깔이나 음식, 가족 소개, 장래 희망 등을 이야기했다. 어떤 일본 학생은 간호사로 일하다가 여기에 왔단다. 의외로 캐나다에는 간호사가 부족해서 영어를 배우고 여기서 직업을 구하려는 간호대학 학생들이 많이 온다. 그밖에 다양한 국적과 나이, 다양한 꿈을 가진 친구들이 있다. 

여러 학생들의 발표를 듣고 나서 마지막에 나도 발표를 했다. 교사가 출력해준 스크립트와 휴대폰 메모를 간간히 보면서 이야기를 했다. 나의 발표 제목은 '별처럼 빛나는 친구'다. A의 꿈, 가족, 사랑, 미래를 테마로 해서 이야기를 전개하면서 마지막 미래에서는 그녀가 자신의 꿈인 세계 여행을 하면서 이곳 밴쿠버에 와서 교사 N과 재회할 것이라는 상상, 그녀가 한국에 오면 제주도를 보여주겠다는 상상 등을 곁들여서 발표를 마쳤다. 



학생들 발표를 듣고 나서 교사 N은 다들 너무 잘했다면서 한 명씩 인상깊었던 부분을 말하면서 칭찬해주었다. 막연한 칭찬이 아니라 아주 구체적이다. 역시 그녀는 좋은 교사다. 나에게는 친구에 대해 아주 잘 이해하고 있으며 중간중간 농담을 적절하게 곁들여서 인상적이었다고 칭찬해주었다. 내가 알기로는 서양사람들은 발표를 할 때 대체로 농담을 곁들인다. 농담을 하면서 분위기를 좋게 유도하면서 하는 발표가 더 좋은 발표란다. 뭐, 내가 농담에는 소질이 없지만 어쨌든 몇 군데 웃음 포인트를 두었다. 

폭풍 칭찬 후에 교사는 대부분의 학생들이 가장 많이 하는 문법 실수를 짚어 주었다. 역시 주어가 3인칭 단수일 때 동사를 제대로 바꾸지 못했다. 그리고 주어가 단수일 때와 복수일 때의 동사 변형도 많이 놓쳤단다. 그게 가장 많이, 모든 학생들이 한 실수란다. 하지만 과거, 현재 진행, 미래 등 시제를 골고루 사용했단다. 의식하지 못했는데 그러고 보니까 그러네. 나도 모르게 시제를 적절하게 사용한 것 같다. 




집으로 와서 무거운 가방을 내려놓고 집 근처에서 장을 봐왔다. 한동안 밥을 먹었으므로 이제는 빵을 먹어야지. 그런데 식빵이 아닌 독특한 종류의 빵을 샀다. Pita라는 것인데 인도의 난처럼 생겼는데 이것은 가운데를 갈라서 안에 이것저것 넣어서 먹을 수 있는 빵이다. 한동안 이걸로 재밌는 요리를 만들어봐야겠다.  


장을 봐온 것을 정리하고 나서 밋업 영어회화 모임에 나갔다. 주최자와 입구에서 마주쳤는데 주말에 하이킹을 잘했냐고 묻는다. 나는 그가 추천해준 곳에 갔었는데 너무 좋았다고 했다. 차를 주문해서 받아서 처음에는 커다란 테이블에 가서 앉았다. 그런데 거기 친구들과는 낯이 설고 좀 서먹서먹해서 대화가 잘 이어지지 않았다. 마침 건너편 작은 테이블에 저번에 같이 대화하면서 친해진 친구들이 몇 명 보이길래 테이블을 옮겼다. 그들은 반가워하면서 주말 하이킹을 잘 했냐고 묻는다. 흐흐. 다들 내가 하이킹을 좋아하는 것을 알고 있다. 나는 그들에게 무지개 사진을 보여주었다. 처음 만난 친구들이 어디냐고 묻길래 열심히 설명해주었다. 다들 주말에 뭐할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사이프러스에서 온 친구는 주말에 사진을 편집할거란다. 그는 자신이 작업한 사진을 보여주는데 일반적인 선명한 사진이 아니라 일부러 흐리게 처리한 사진들이 많다. 인상주의 화가 모네를 얘기하면서 자기는 그런 종류의 사진을 찍는단다. 내가 사진 예술가라고 칭찬하니까 아직은 아니란다. 

나는 토요일에는 영어회화 모임에 갈 것이고 일요일은 또 어디론가 하이킹을 갈거라고 했다. 조프리 레이크에 가고 싶지만 이번 주 버스는 매진이다. 이런 얘기를 하니까 오늘 새로 온 홍콩친구 W가 어디로 하이킹을 갈거냐고 묻고 자기도 같이 가면 안되냐고 묻는다. 그녀는 워킹홀리데이 비자로 와서 여기서 일했는데 다음달에 귀국을 앞두고 지금은 일을 그만두었단다. 그동안 일하느라 놀러다니지 못해서 이제부터 열심히 놀러다녀야 한단다. 내가 여기저기 많이 다닌 것을 알고는 같이 가고 싶단다. 그런데 아직 이번 일요일은 정해진 장소가 없어.

이런 얘기를 하고 있는데 이 모임의 주최자가 우리 테이블에 합류했다. 홍콩친구 W가 이런 모임을 만들어서 고맙다고 하니까 주최자는 자기가 처음 만든게 아니라고 한다. 자신도 여기 참여하던 사람이었는데 이 모임을 만든 친구가 다른 지역으로 이사가서 자기가 이어서 하고 있단다. 이 주최자는 캐나다의 다른 지역에 살다가 여기로 이사왔는데 타 지역에 와서 친구도 없고 쓸쓸해서 이 모임에 참여했단다. 그러면서 여기는 외국에서 공부하러 온 많은 사람들이 있는데 다들 외롭고 쓸쓸하니까 이런 모임을 만들어서 서로 친구가가 되고 의지가 되는 것이 좋단다. 다들 공감하였다. 너무 좋은 모임이다. 

주최자는 우리에게 무슨 이야기 중이었냐고 해서 하이킹 장소를 찾고 있다고 하니까 새로운 장소를 소개해주었다. 그 중에서 나와 홍콩친구가 아주 딱 마음에 드는 곳이 있어서 일요일에 우리는 그곳에 가기로 했다. 시내에서 버스를 한번만 타고 가면 되는 곳인데 한 번에 두 군데를 들를 수 있다. 둘 다 바닷가인데 아주 쉬운 산책로를 가지고 있단다. 그 중 한 곳은 작은 섬이 있는데 물때가 맞으면 걸어서 들어갈 수도 있단다. 버스로 접근하기 좋은 곳이고 지금 계절이 좋으니까 가보면 좋을 거란다. 나는 홍콩친구와 인스타그램을 연결하고는 일요일 아침 8실에 시청역앞에서 보기로 했다. 내일 대만친구 J가 오면 그녀에게 같이 가겠냐고 물어봐야겠다. 이렇게 일요일 놀러갈 계획이 생겼다. 처음 보는 사람과 함께 가도 될까? 새로운 친구와 새로운 인연을 만들게 되는 걸까? 아직은 잘 모르겠다. W는 아주 명랑하고 적극적인 친구다. 영어는 당연히 나보다 잘한다. 앞으로 어떤 일들이 펼쳐질지 나도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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