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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 May 02. 2024

연합 기숙사의 친구들

2023.10.07.토요일

아침에 느즈막히 일어나 문법 공부를 하고 있는데 거실에서 수다 소리가 들린다. 그러고 보니까 오늘 일본친구 A가 귀국하는 날이다. 혹시 작별인사를 못할까봐 어제 선물을 미리 주었다. 아침에 공항으로 출발한다고 했는데 지금 출발하나 싶어서 얼른 거실로 나왔다. 그런데 뜻밖에 반가운 얼굴이 있다. 여기서 처음 문법 수업을 함께 들었던 일본친구 M이 A의 귀국을 도우려고 온 것이다. 둘은 여기와서 친해졌단단다. 나와 M은 너무 반가워서 서로 얼싸안고 요란을 떨었다. 누가 보면 6.25때 헤어진 가족 만난 줄 알겠다. 우리는 문법 교사 S의 수업을 들으면서 멕시코 친구 R, 브라질 친구 L과 함께 많이 친해졌다. 그 사이 일본친구 M은 학원을 그만두었다고 들어서 일자리를 구했나 짐작했었다. 오늘 얘기를 들어보니까 그녀는 여기서 정착하기 위해 영어 능력 시험을 보려고 준비하고 있단다. 집중적으로 시험공부를 하려고 잠시 학원을 중단했던 것이고 이번달 말에 다시 학원으로 복귀할거란다. 그래. 파이팅이다. 

그녀는 나의 레벨 업 소식을 자기 일처럼 기뻐한다. 내가 새 문법 교사가 너무 빨리 진도를 나가서 나는 못 따라 간다고 하니까 심각한 표정으로 그러면 그것을 학원 운영진에게 알리란다. 우리가 듣는 코스는 외국어로어 영어를 배우는 사람들이니까 우리 학생들의 입장을 이해하고 설명해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즉시 항의해서 바꾸게 해야 한단다. 우리가 좋아하는 교사들 S, M, R은 모두 학생들을 잘 이해하고 가르쳐주기 때문에 좋아하는 것이다. 학생들은 적극적으로 항의하거나 교사를 바꿔달라고 요청해야 한단다. 그녀의 말도 일리는 있다. 내가 일주일만 더 들어보고 도저히 안되겠으면 요청하겠다고 했다. 내가 너무 소극적으로 대처하고 있나? 그런데 한편으로는 내 실력이 부족해서 못따라 가는 점도 있는 것 같고, 좀 어려운 내용을 쫓아가야 내 실력이 늘지 않을까 싶은 마음도 있다. 일단 한 주 더 들어보고 도저히 안되겠으면 반을 바꿔달라고 해봐야겠다. 


우리가 수다를 떠는 사이에 일본친구 A가 가방을 가지고 나왔다. 이제 짐 정리가 다 되었단다. 커다란 트렁크가 두 개이고 어깨에 매는 가방도 있다. 이래서 친구 M이 도와주러 온거다. 마지막으로 한번 더 방을 채크하고 아쉬운 작별인사를 하고 그녀는 떠났다. 이로써 이 기숙사에 내가 처음 왔을 때부터 함께 있던 친구들은 모두 떠났다. 지금 친구들은 모두 새롭게 이사온 친구들이다. 그리고 이제 나도 7주 후에 떠나간다. 연합 기숙사라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대학 기숙사는 이렇게까지 사람이 바뀌지는 않겠지만 여기는 학원 연합 기숙사라서 끝없이 사람이 들고 난다.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과 함께 살아보는 경험! 내 생전에 언제 이런 경험을 해보랴 싶다. 




친구를 보내고 나서 문법 공부를 하다가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새로운 한달이 시작된 이번 주는 너무 바빴다. 덕분에 일기를 거의 쓰지 못했다. 한꺼번에 3일치 일기를 쓰고 나니 오전이 다 갔다. 일기쓰기는 날짜마다, 일어난 사건들에 따라 걸리는 시간이 다르지만 대체로 하루치를 쓰는데 1~2시간 정도 걸린다. 사실 이 작업은 그다지 녹녹하지 않다. 너무 바쁠 때는 일기쓰기가 부담스럽기도 하다. 하지만 이 기록은 나를 위한 것이다. 여기 온 첫날부터 지금까지의 기록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여러가지 추억들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그리고 내가 서서히 변해가고 있는 것도 보인다. 그래서 일기쓰기는 나를 돌아볼 수 있는, 소중한 일이다. 


일기를 다 쓰고 나서는 밋업 한영 언어교환 모임에 나갔다. 오늘도 다양한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한국말을 좀 할 줄 아는 캐나다 사람, 여기 온지 2주 된 한국 학생, 1년간 토론토에서 일하다가 얼마전에 밴쿠버로 이사온 한국 사람, 그냥 무작정 이곳으로 와서 일하면서 영주권을 기다리는 브라질 사람, 워킹홀리데이 비자로 여기에 와서 식당에서 일하는 일본 학생 등등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여기에 있다. 이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역시 세상은 넓고도 넓으며 사람들은 다양하고도 다양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너의 영어는 어떤 때는 잘 작동되는 것 같지만 영어를 아주 잘하는 사람들과 섞였을 때는 여전히 어려움을 느낀다. 맥락을 한 번 놓치면 무슨 말인지 도통 모르겠다. 언제쯤 이 정도의 대화는 그냥 스르륵 이해할 수 있을까? 앞으로 남은 7주동안 가능할까?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면서 대화를 나누다보니까 좀 지쳤다. 2시간 동안 진행되는 이 모임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같은 텐션을 유지하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후반에는 주로 남의 수다를 듣기만 했다. 그것도 나름 재밌다. 한국말을 가르쳐주는 이야기, 한국의 공기놀이(주최하는 친구가 공기를 사옴), 한국 음식 이야기, 추석에 대한 이야기 등 대체로 한국을 소재로 한 수다였다. 




모임을 끝내고 집으로 왔다. 오늘은 우리 집에서 미국친구 M과 함께 하는 영어회화 모임이 있다. 앞집에 나는 학원 친구들과 문법수업을 함께 듣는 대만친구 J가 함께할 것이다. 모임 시작 전에 J가 30분 정도 먼저 와서 문법 복습을 함께 하기로 했다. 지난번에 다 못한 복습이 있다. 대만친구 J가 와서 우리는 식탁에 앉아 문법 복습을 했다. 우리가 수다를 떠는 소리를 듣고 미국친구 M이 방에서 나왔다. 서로 인사를 나누고 우리는 다시 문법 공부를 했다. 그 사이 미국 친구가 간식을 챙겨와서 우리 앞에 앉는다. 그리고 슬쩍 우리에게 간식을 권한다. 너무 착한 미국 친구 M! 마침 나와 J는 한 문장이 이해가 되지 않아서 서로 버벅거리고 있었다. J가 이해가 잘 안되는 것을 M에게 물어보았다. M도 고개를 갸오뚱한다. 아무래도 답이 틀렸나보다. 내가 봐도 이건 문장이 말이 안된다. 우리는 교사에게 물어보기로 했다.

앞집 친구들이 왔다. 한 명은 대만친구 W, 또 한 명은 한국친구 H다. 이들은 모두 나보다 영어를 잘한다. 역시 이들이 오니까 미국친구 M과의 대화가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나는 사실 미국친구 M이 우리의 목적이 원어민과 함께 하는 영어회화 연습이라는 것을 이해했을까 의구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오늘 보니까 그녀는 확실하게 우리의 목적을 이해하고 있었고 도와주려고 했다. M은 공책을 가져와서 우리가 잘 알아듣지 못하는 발음은 스펠링을 써주기도 하면서 말을 천천히 하려고 노력했다. 물론 말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다시 빨라지긴 했지만 그래도 노력하려는 것이 느껴졌다. 미국 친구 M이 만들었던 치킨 요리, 영어 문법의 어려움, 미국식 표현 등으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한시간 정도 수다를 떨고 모임을 끝냈다. 앞으로 특별한 일이 없으면 토요일에 이렇게 모여서 한시간 정도 이야기를 나누기로 했다. 

이렇게 해서 우리집에서  M과 함께 하는 영어회화 첫 모임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다. 너무 신난다. 영어 연습을 할 수 있어서도 좋지만 그보다 더 좋은 것은 M이라는 친구와 가까워지는 것이 더 좋다.  M과 나는 매일 비슷한 시간에 아침 준비를 하고 비슷한 시간에 집에 머무른다. 그리고 우리는 둘 다 방에 있기 보다는 거실에 나와 있는 것을 좋아한다. 이 친구와 더 가까워지고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되어서 이 시간이 참 소중하다. 많은 사람들이 들고 나는 연합 기숙사이지만 나는 좋은 친구를 만나게 되어서 좋다. 여기 오길 참 잘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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