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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 May 03. 2024

두 개의 공원과 칠면조 요리

2023.10.08.일요일

아침 일찍 일어나 나갈 준비를 했다. 오늘은 밋업 모임에서 새로 사귄 홍콩친구 W와 함께 하이킹을 가기로 한 날이다. 어제 다른 친구들에게 같이 가겠냐고 물었는데 다들 하이킹은 싫단다. 그래서 나와 홍콩친구 W만 길을 나섰다. 

우리는 밴쿠버 시청역 앞에서 만나 버스를 타고 Whytecliff Park에 갔다. 거기에는 작은 섬이 있는데 물때가 맞으면 걸어서 갈 수 있단다. 우리는 물때가 언제인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뷰가 멋진 공원이라서 무작정 찾아갔다. West Vancouver 쪽으로 버스를 타고 가는데 홍콩친구 W가 이 근처가 자기가 일하는 사무실이란다. W는 홍콩에서는 유치원교사였고 지금도 여기서 교육회사에서 일한단다. 그렇구나. 그러고 보니까 여기서 만난 친구들 중에 유치원교사가 서너명된다. 캐나다에 워킹홀리데이로 오는 동양인 중에는 간호사 다음으로 유치원교사가 많은 것 같다.

버스는 해안가를 끼고 달린다. 덕분에 버스에서 바라보는 경치가 근사하다. 우리는 날씨도 좋고 경치도 좋아서 신났다. 공원은 버스 정류장에서 내려서 30분 정도 걸어가야 한다. 걸어가는 길의 경치도 근사하다. 해안가 절벽을 따라서 지어진 집들이 있는데 어떤 집은 아슬아슬하게 절벽에 매달려 있다. 신기하다. 이쪽은 산과 바다를 끼고 있어서 집값이 비싸고 부자들이 많이 산단다. 그래서인지 버스도 다운타운과 달리 백인들이 유독 많았다. 




드디어 공원 도착. 딱 봐도 근사한 섬이 보인다. 게다가 물때가 맞아서 걸어갈 수 있다. 야호! 그런데 여기는 스쿠버다이빙 명소인가보다. 엄청 많은 스쿠버다이버들이 장비를 챙기고 있고 어떤 그룹은 벌써 바다에 들어가 있다. 재밌네. 

우리는 섬으로 향해 걸어갔다. 가는 길의 바위들이 미끄러워서 나는 한번 꽈당 했다. 다행히 다치지는 않았지만 좀 창피했다. 하필이면 오늘은 등산스틱을 가져오지 않아서 후회를 했다. 오늘 갈 곳들이 모두 공원 내의 하이킹 길이라서 스틱이 필요하지 않을 것이라 예상했지만 늘 그렇듯이 인생은 예상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정말 스틱이 필요한 곳들이었다.




어쨌든 겨우겨우 섬으로 건너갔는데 뜻밖의 귀여운 친구들을 만났다. 바다표범(물범)들이다. 한마리는 어미이고 한마리는 아기인 것 같다. 그런데 아기 바다표범의 하는 짓이 너무 귀여워서 눈을 떼지 못하겠다. 아기 물범은 햇볕을 쪼이는 것이 지루한지 자꾸 움직이고 사람들을 쳐다보고 난리다. 반면에 엄마 물범은 꿈쩍을 하지 않는다. 그러나 엄마 물범은 중간에 다른 물범이 다가오자 경계소리를 내었다. 아마도 새끼를 지키려고 그러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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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동안 물범들을 구경하다가 섬 위쪽로 올라갈 것인지 의논했다. 바위가 너무 위험해 보인다. 올라가는 것은 기어서 어떻게든 올라가겠지만 내려오는 것은 자신이 없다. 게다가 어떤 서양애가 내려오는 것은 보았는데 거의 미끄러져서 내려오는 모습이 위태위태해 보인다. 결국 우리는 위험한 짓은 하지 않기로 하고 대신 물범 가족을 좀더 구경하다가 섬을 빠져 나왔다. 공원을 한바퀴 돌면서 멋진 경치에서 사진도 찍고 산책을 즐겼다. 공원 자체는 생각보다 작지만 멋진 바다 풍경을 가지고 있었다. 




우리는 공원을 가볍게 돌고 다시 버스를 타러 나갔다. 다시 30분을 걸어 나가야 하는 것이 좀 번거로웠지만 경치가 근사하니까 그런대로 산책삼아 걸을 만하다. 아까 내렸던 정류장의 반대편에서 버스를 타고 다운타운 방향으로 15분 정도 가면 두번째 목적지인 Lighthouse Park에 도착한다. 여기는 등대가 있는 공원이다. 버스에서 내려 5분 정도 걸어가니까 주차장이 나오고 근사한 숲길이 시작된다. 오래된 나무들이 정말 장엄하다. 




유모차도 갈 수 있는 편한 숲길을 따라 30분정도  걸어가니까 등대가 나온다. 1800년대에 만들어진 등대인가보다. 등대의 역사에 대한 글도 있고 근처에 2차세계대전에 사용한 건물들도 있다. 하지만 등대나 주변 건물에는 들어갈 수 없고 근처 산책로와 뷰포인트들만 갈 수 있다. 이 공원이 위치한 곳은 바다쪽으로 약간 튀어나온 지형인데 오래된 나무들로 둘러쌓여있고 바닷가쪽은 근사한 바위들이 있어서 곳곳에 등산로와 뷰포인트가 있다. 주된 하이킹 코스도 있지만 샛길도 꽤 많았다. 우리는 등대 앞에서 반가운 얼굴을 보았다. 그는 밋업 모임에서 우리와 같은 테이블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었던 일본 친구다. 서로 반가워했다. 그는 일행이 있어서 오래 이야기를 나누지는 못했지만 다음주 금요일에 보자고 인사했다. 





우리는 등대를 다양한 각도에서 바라볼 수 있는 뷰포인트들을 찾아다녔다. 그 중 한 곳은 다소 험란한 길을 내려가야 하는 커다란 해변 바위이다. 여기저기 사람들이 다닌 흔적이 있어서 그 길을 따라 조심스럽게 내려갔다. 바위에서 바라보는 풍경이 근사하다. 등대의 옆모습도 보이고 바다에도 한층 가깝게 다가설 수 있다. 좁은 바위에 떼지어 앉아 있는 갈매기들도 바로 앞에서 볼 수 있다.




등대 주변을 다 둘러보고 나서 우리는 잠시 쉬면서 지도를 보고 어느 코스로 하이킹을 하면서 버스 정류장으로 이동할지 의논했다. 은근 홍콩친구 W와 나는 비슷한 성향이 있는 것 같다. 사진 찍는 거 좋아하고 왔던 길을 그대로 돌아가기 보다는 새로운 길로 가는 것을 좋아하고 오랫동안 걷는 것을 좋아한다. 우리는 최대한 바닷가쪽으로 난 길을 따라 근사한 뷰포인트를 즐기면서 주차장까지 가기로 했다. 오솔길을 따라 멋진 풍경이 있는 곳곳을 찾아다니면서 사진을 찍었다. 어느 곳은 멀리 밴쿠버 다운타운의 빌딩들이 보이는 곳도 있었다. 시내에서 멀지 않은 곳에 이런 장소가 있다는 것이 신기하다. 곳곳의 뷰 포인트를 즐기면서 걸었다. 중간에는 본격적인 등산로라서 좀 힘든 곳도 있었지만 그래도 경치가 그 값어치를 했다.





우리는 버스를 타고 오면서 다음 번에는 조프리 레이크에 같이 가자고 했다. 하지만 그게 쉽지는 않을 것 같다. 우선 조프리 레이크에 가는 셔틀버스가 더 이상 운영하지 않는다. 여름 시즌이 끝난 것이다. 그러면 차로 갈 수밖에 없다. 저번에 홍콩 친구가 밋업 모임에서 친해진 캐나다 친구에게 같이 가자고 부탁했고 그도 오케이를 했단다. 다만 공원 입장권을 사야하는데 그게 입장하는 날의 2일 전에 살 수 있지만 오픈되자마자 매진되는 티켓이란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거기에 가기 때문에 인원을 제한하기 위한 조치란다. 그리고 또 하나의 난관은 비다. 다음주부터는 비가 온다. 이래저래 어쩌면 조프리 레이크는 인연이 닿지 않을 것도 같다. 

우리는 이런저런 수다를 떨다가 W가 회사에 들려야해서 버스에서 내렸다. 나는 곧장 집으로 와서 씻고 다음 일정을 준비했다. 저녁에 대만친구 J와 함께 밋업 사교모임에서 주최하는 추수감사절 저녁 식사에 참석하기로 했다. 저번부터 대만친구 J가 참석하고 싶은데 혼자 가기는 싫다고 같이 가자고 졸랐던 모임이다. 추수감사절의 전통 음식인 칠면조 요리를 먹을 수 있다고 해서 가기로 했다. 때마침 모임 장소는 우리 집 근처의 레스토랑이다. 정말 우리 집의 위치는 너무 짱이다. 

J가 모임에 가기 전에 문법 시험 대비해서 한번 더 복습하자고 해서 우리집에 오라고 했다. 우리집에서는 모르는 문제를 물어볼 수 있는 미국 친구 M이 있다. 우리는 또 열나게 문제를 풀고 왜 이것이 답인지 설명했다. 어떤 문제는 단어가 막혀서 사전을 찾고 있는데 미국 친구 M이 슬쩍 일어나서 몸으로 표현해 주었다. 하.하.하. 쉽게 맞출 수 있었다.

그렇게 열공을 하고 나서 신나게 모임 장소로 갔다. 모임 장소는 이 사교모임이 자주 이용하는 레스토랑이다. 그리고 보아하니까 칠면조 요리는 추수감사절용  특별요리가 아니라 이 레스토랑의 주메뉴 중 하나이다. 그래도 어쨌든 크린베리 소스와 그레이비 소스를 곁들이고 데운 야채들과 으깬 감자를 함께 먹는 전통식으로 주문했다. 

모임에는 10여명이 참석했다. 지금까지 참여한 밋업 모임 중에 가장 작은 규모다. 그런데 반가운 얼굴이 보인다. 금요일에 하는 밋업 모임에서 여러번 함께 이야기를 나눈 캐나다인 W다. 그는 중국어를 제법할 줄 알고 한국어는 단어 몇 개 정도는 알고 있는 사람이다. 우리는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다. 그는 대뜸 한국말로 밥 먹었냐고 묻는다. 아니, 먹으러 왔어라고 대답했다. 

이 모임은 캐나다 사람이 절반이었고 나처럼 영어공부 중이거나 여기 대학에 다니는 동양인이 절반이었다. 주최자는 사람들이 다 오자 일어나서 이 모임의 취지를 설명해 주었다. 이 모임은 모든 가족이 모이는 추수감사절에 고향을 떠나 있는 사람들이 외롭지 않도록 함께 모여서 따뜻한 저녁을 먹자는 취지의 모임이라고 했다. 물론 추수감사절은 내일이지만 이들도 가족과 함께 해야 할테니까. 이 사교모임은 명절에는 이런 모임을 갖고 평소에는 다양한 취미를 나누는 모임이란다. 

사람들이 돌아가면서 자기소개를 하고 이번주 혹은 최근에 감사할 일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공부하러 온 학생들은 친구들을 사귀어서, 시험에 통과해서 감사하다고 했다. 어떤 사람은 최근에 모형 만들기를 배웠는데 그게 너무 즐거워서 감사하다고도 했다. 나는 이곳에서 영어 공부를 하는 이유를 말하고 이 모든 것이 감사하다고 했다. 정말 너무 감사하지. 비록 영어는 잘 못해서 스트레스를 받지만 그래도 여기저기 다니면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다양한 경험을 하고 있어서 나는 모든 것이 감사하다.

칠면조 요리는 솔직히 그저 그랬다. 나에게는 모두 너무 짜다. 칠면조는 크린베리 소스를 곁들여서 먹으니까 그나마 좀 중화되었지만 나머지는 다 너무 짜다. 여기 요리가 전반적으로 내 입맛에는 짜다. 그냥 여기 방식의 명절 요리를 먹어본 경험에 만족해야겠다. 




저녁을 먹으면서 다양한 이야기들이 오고 갔는데 그 중 단연코 화제는 영어 공부에 대한 것이었다. 대만 친구 J가 아주 적극적으로 영어 공부 방법에 대해 물어봤기 때문이다. 여기서 1년째 대학에 다니고 있다는 일본 친구가 자신의 경험을 많이 들려주었다. 그는 일본에서 영어 공부를 어느 정도 하고 왔지만 여기 와서는 자기도 어려웠단다. 하지만 일부러 어학원에는 다니지 않고 일부러 영어 공부를 따로 하지 않았단다. 대신 무조건 현지인들과 대화하고 무조건 영어 전공 서적을 읽고 대학 강의를 듣고 했단다. 그냥 24시간 영어만 해야 살 수 있으니까 저절로 영어가 늘었다고 한다. 너무 당연한 얘기지만 우리같은 영어 공부가 숙제인 학생들에게는 그저 신기한 얘기다. 아마 우리도 저렇게 살면 1년도 안되서 영어를 잘하게 되겠지? 

모임 주최자가 다음 주에는 악기를 들고 와서 음악을 나누는 모임을 할 것인데 혹시 악기를 다룰 줄 아냐고 묻는다. 어떤 학생이 플루트를 불 수 있지만 캐나다에는 들고 오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자 주최자가 밴쿠버 도서관에서는 모든 악기를 무료로 대여해준다고 알려준다. 뭣이? 도서관증이 있으면 빌릴 수 있단다. 피아노도? 아, 피아노는 옮길 수가 없어서 불가능하고 대신 전자키보드를 빌릴 수 있단다. 신기하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나는 악기를 다룰 줄 아는게 별로 없다. 예전에 가야금을 좀 배웠지만 다 까먹었다. 외국 여행 하면서 한국 음악을 들려주려고 대금도 좀 배웠었는데 다 까먹었다. 한국의 악기는 밴쿠버 도서관에는 없겠지. 

취미 모임에 참여하는 것은 조금 고민해봐야겠다. 사람들도 좋고 장소도 적당하지만 나는 이제 더 이상 모임을 늘리기보다는 서서히 떠날 준비를 하면서 모임을 줄여나갈 때이다. 즐겁게 대화를 나누고 각자 식사비를 계산하고 밖으로 나왔다. 대만친구 J는 우리 집과 반대방향이라 작별인사를 하고 마침 우리집 방향의 전철역으로 가는 캐나다 친구 W와 함께 걸었다. 음식과 요리에 대해 몇 가지 이야기를 나누다가 길이 갈라져서 작별했다. 다음 주 금요일에 보자. 

오늘 하루도 정말 다이나믹하게 보냈구나. 두 곳의 공원을 걸었고 문법 복습을 했고 칠면조 요리를 먹었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났고 영어로 또 열심히 떠들었다. 오늘도 뿌뜻한 하루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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