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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 May 10. 2024

삶은 단순하지 않아

2023.10.11.수요일

문법 수업

시제는 너무 어렵다. 단순현재, 현재 진행, 현재 완료, 현재 완료 진행, 단순과거, 과거 진행, 과거 완료, 과거 완료 진행. 일단 지금까지 이렇게 8가지 시제를 배우고 있다. 그런데 이 8가지 설명을 다 해준 다음에 시험을 봤어야 하는게 아니겠니? 게다가 룰을 알더라도 이들의 맥락을 모르면 또 헛갈릴 수밖에 없다. 

예를들어 'die 죽다'라는 것이 과거 시제에서 사용될 때 나는 단순히 어느 시점에 죽는 사건이 일어난 것이니까 단순과거가 사용되는게 아닌가 생각했다. 하지만 생각보다 복잡하다. 

After his brother had died, he decided to move back home and look for work.(그의 형이 죽은 후 그는 집으로 돌아가 일자리를 찾기로 결심했다.)

이 문장에서 decided 결심했다가 과거이므로 After로 시작하는 앞 구문은 과거 완료가 사용되어야 한다. 그래서 died가 아니라 had died가 사용된다. 이 문제도 어려웠지만 그나마 두 개의 구문이 있고 각 구문에 적용되는 룰을 생각해서 풀 수 있었다. 

We are sad to report that media he has died. (그가 죽었다는 소식을 전하게 되어 안타깝다.) 

이 문장에서 왜 he died 단순과거가 아니라 he has died 현재 완료를 사용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현재 완료는 과거의 어느 시점에서 시작해서 현재까지 어떤 영향을 미치는 것이라고 배웠는데 죽음은 과거에 일어난 사건이 아닌가? 어제 어떤 학생이 질문해서 교사가 설명을 하긴 했는데 report 때문이라고 하는 것 같았다. 보도하는 상황이라서? 여전히 이해가 되지 않는다. 대만 친구와 어제 점심시간에 토의해 봤는데 그녀도 모르겠단다. 마침 같이 수업을 듣는 한국친구들이 있어서 물어보았다. 그녀들은 우리보다 영어를 잘한다. 그런데 그녀들도 report 때문이라는데 왜 그런지는 모르겠단다. 

오늘 아침에 수업 시작 전에 교사 M에게 질문을 했다. 그랬더니 최근에 일어난 일이라서 그렇단다. 과거 오래전에 죽은 것은 그냥 단순과거를 사용한다. He died two month ago. 그는 두달 전에 죽었다. 그냥 이런 경우는 단순과거를 사용한다. 하지만 지금 이 문장에서는 최근에 그가 죽었고 그것이 보도되면서 사람들이 슬퍼하고 있기 때문이란다. 아, 그런거였어? 그의 죽음이 지금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기 때문인 거구나. 그 설명을 수업 중에 하긴 했겠지만 그게 나같은 사람에게는 아직 어려운 거였다. 

내가 연속으로 아침마다 질문을 해서 그런걸까? 그나마 오늘은 설명을 좀 많이 해주었다. 하지만 여전히 그녀의 눈높이는 영어를 잘하는 2명의 학생에게 맞추어져 있다. 연습문제를 풀 때 시간을 조금만 더 주었으면 좋겠는데 한번 슬쩍 다 풀었냐고 묻고는 바로 풀이에 들어간다. 그리고 잘하는 학생 2명이 큰소리로 답을 하면 응 그래, 잘했어, 하고는 그냥 다음 문제로 넘어간다. 나는 답을 따라 적기도 바쁜데... 이 수업을 이대로 들어도 될까? 




듣기 수업

역시 레벨3의 단어는 어렵다. 처음 뵙는 분들이 많다. 단어와 단어 설명을 매칭시키는 것은 그나마 눈치껏 연결시키겠는데 빈칸 메꾸기는 영 감을 못잡겠다. 파트너와 의논하면서 하라는데 우리는 둘 다 어질어질해하고 있다. 최대한 주변의 지형지물(?)을 이용해서 답을 추리해보았다. 예를 들어 어떤 문제는 문장이 통째로 빈칸이다. 다행히 예시문 박스에서 문장 단위로 제시된 것은 하나뿐이다. 어떤 빈칸은 동사와 전치사가 분리되어 있다. 예시문 박스에서 동사와 전치사로 구성된 것을 찾아서 내용에 따라 추리해서 답을 찾았다. 어떤 빈칸은 명사만 들어갈 수 있어서 명사 중에 답을 찾았다. 이런 식으로 문제를 풀고 남은 것은 찍었다. 누가 그랬던가? 찍기도 실력이다.




작문 수업

교사 A는 역시 체계적으로 수업을 진행한다. 본문의 내용을 다시 한번 환기시킨 후에 critical thinking 비판적 사고 문제를 가지고 그룹 토론을 했다. Do you think the internet maks it too tempting for students to simply 'cut and paste' thier assignments from other sources? (인터넷이 학생들에게 다른 소스에서 과제를 '잘라내고 붙여넣기'하는 것을 너무 유혹한다고 생각하나?) 이런 질문들에 대해 서로 자신의 의견을 제시하고 그 이유를 말했다. 내 의견을 말하는 것은 그럭저럭하겠는데 다른 학생의 영어 말하기를 듣는 것은 좀 어려웠다. 그들의 발음도 알아듣기 어렵고 영어도 알아듣기 어렵다. 이중고를 겪고 있다.  

다음은 인터넷 사용에 대한 의견을 주고 그에 대한 찬반토론을 해보란다. 4인그룹에서 2인씩 찬성 의견과 반대의견을 정해주었다. 그리고 첫번째로 5분간 토론해보란다. 그 후에는 찬성과 반대 의견을 서로 바꾸게 해서 두번째로 5분간 토론해보란다. 처음 토론할 때 열심히 내 주장의 근거를 제시했는데 두번째 토론에서는 입장을 바꾸어서 근거를 제시해야 하는 것이다. 다들 처음 토론할 때는 그런가 보다 하고 떠들었는데 두번째 활동을 제시하니까 당황했다. 뭐? 입장을 바꾸라고? 이런 것이 진정한 토론 수업이지. 교사 A는 이 근처 대학의 대학원에서 교육학을 공부하다가 왔다고 하던데 역시 잘 가르친다. 다만 이런 토론을 영어로 한다는 것은 나에게는 아주 어려운 일이다. 




점심 시간

오늘도 열나게 대만친구 J와 함께 문법 복습을 했다. 쉬어야 하는 시간에 죽어라고 복습을 하고 있으려니까 너무 힘들고 지친다. 결국 지치고 눈이 뻘개져서 회화 수업 교실로 들어갔다. 쉬는 시간이라 다들 뭔가 열심히 떠들고 있었다. 일본 친구 B가 내 얼굴을 보더니 무슨 일이 있냐고 묻는다. 나는 지금 1시간 넘게 문법 복습을 했다고 하니까 혹시 교사 M의 수업이냐고 묻는다. 그렇다니까 B는 매우 분개하면서 자신이 그 교사의 수업을 듣다가 너무 힘들어서 학교측에도 건의하고 그녀에게도 말했단다. 그리고 다른 교사의 수업으로 바꿔 달라고 했더니 그건 안된다면서 레벨 다운을 하려면 그렇게 하라고 했단다. 그래서 자신은 매우 상처를 받고 결국 레벨을 다운해서 다른 교실로 옮겼다고 한다. 우리 얘기를 듣던 한국친구 A가 자신의 친구도 이 교사의 수업을 바꿔달라고 학교에 요청했지만 거절당해서 어쩔 수 없이 그냥 듣는다고 했다. 다들 비슷한 어려움이 있구나. 그들은 내가 지금까지 한번도 교실을 바꿔달라고 한 적이 없으므로 혹시 처음이니까 바꿔줄지도 모른다면서 학교측에 요청해보란다. 특히 교사 W가 같은 레벨의 문법 수업을 하는데 아주 재미있단다. 교사 W는 전에 나의 듣기수업 교사라서 잘 안다. 그는 아주 쾌활하고 재밌는 교사다. 그의 수업이라면 당연히 재밌고 활기찰 것 같다. 그러면 그래 볼까? 한국인 상담선생님에게 요청해볼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교사 M의 수업 방식 문제는 어쨌든 학교 측에서 알고 있어야 할 것 같다.




회화 수업

수업이 시작되었는데 뭔가 분위기가 어수선하다. 아까 나의 문법 수업 때문에 몇 명의 친구들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사이에 우리 교실의 한국 학생 한 명이 울면서 누군가와 통화하고 있었다. 보아하니까 그녀의 엄마와 통화하는 듯했다. 수업이 시작되자 교사 R은 울고 있는 한국학생에게 나를 지목하면서 그녀(나)는 교사였으므로 너를 도울 수 있을 것 같다고 한다. 나? 무슨 일? R은 내가 방금 수업에 들어 왔으므로 한국학생에게 잠시동안 한국말로 설명하라고 시켰다. 

대략 요약하자면 이 학생은 캐나다에 있는 엄마의 지인을 통해 홈스테이를 구해서 이곳에 왔다. 그런데 그 홈스테이가 시내에서 엄청나게 먼 거리임에도 너무 터무니없는 가격을 받고 있어서 그 사실을 엄마에게 알렸다. 그리고 학원까지 통학이 너무 힘드니까 조금 더 가까운 곳으로 옮겨 달라고 했다. 그러나 엄마는 옮겨주지 않으려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해당 홈스테이 주인이 알게 되어서 자신의 입장이 곤란해졌단다. 이 학생은 긴 통학 시간도 힘들고 부당하게 높은 요금을 내는 것도 속상하고, 특히 엄마의 여러 말들이 자신에게 상처가 되어 너무 고통스럽단다. 

대략 내용을 듣고 나니까 그녀의 엄마는 외국에 나간 딸이 걱정도 되고 한편으로는 통제도 하고 싶어서 지인에게 홈스테이를 맡긴 듯하다. 참고로 이 학생은 20대의 대학생이다. 성인이지만 아직은 부모로부터 독립하지 못하는 참으로 애매한 시기이다. 

나는 좀 망설여졌다. 내가 교사일 때 우리반 학생들 상담을 하면서 많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것은 서로 잘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하는 말이 뭔가 도움이 되려면 신뢰가 형성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 학생과는 서로 잘 모르는데 뭐라고 도움말을 줄 수 있을까? 게다가 그걸 영어로 하려면 더욱더 어렵다. 내가 더듬더듬 영어로 엄마는 네가 해외 생활을 하는 거라 걱정도 되고 통제도 하고 싶어 하는 것 같다, 그러니까 홈스테이의 가격문제나 통학 거리문제는 중요하지 않을 것이다, 지금 엄마는 자신의 통제에서 벗어나려는 너에게 화가 나서 그런 상처주는 말을 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때 그 학생의 옆에 있던, 다른 한국학생이 그녀에게 그냥 홈스테이에서 나오라고 했다. 너는 이미 성인이니까 스스로 결정하고 움직일 수 있다, 너는 여기서 파트타임을 구할 수 있다, 일하면서 학원에 다닐 수 있을 거라고 했다. 순간 교사 R과 나는 눈이 마주쳤는데 같은 마음이었던 것 같다. 지금 이 학생의 조언이 해결책이 될 수 있을지 걱정이 되는 마음이었다. 어쩌면 나이든 사람들의 틀에 박힌 생각일 수도 있으나 그녀에게 좀더 다양한 관점의 조언이 필요해 보였다.

교사는 학생들에게 자신이 이런 상황이라면 어떻게 할지 돌아가면서 이야기해보자고 했다. 이러한 사적인 내용이 수업의 주제가 되어도 되는지 좀 의구심이 들었다. 하지만 어차피 다들 내용을 알고 있고 이런 갈등은 인생사 살면서 겪을 수 있는 일이므로 인생공부 삼아 이야기를 나누어보자는 취지인 것 같다.

학생들은 각자 자신이 부모와 갈등을 겪었던 경험을 이야기했다. 각자 나라는 다르지만 부모와 자식의 관계에서 겪는 갈등과 어려움은 비슷비슷한 것 같다. 그 중 어떤 일본 학생이 자신의 부모는 대체로 강압적이지는 않았지만 대학 진로를 결정할 때는 자신의 생각과 달랐다. 그때 그냥 자신의 생각을 포기하고 부모의 의견을 따랐단다. 왜? 나와 교사 M이 동시에 물었다. 그 학생은 좀 생각해보더니 자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부모의 의견이 더 맞는 것 같다고 했다. 그 학생도 영어로 표현하는 것을 어려워 했지만 대략적으로는 그런 내용이다. 

어떤 학생은 부모가 귀가 시간을 통제하는 것으로 인한 갈등을, 어떤 학생은 부모의 이혼 후에 겪었던 어려움 등을 이야기했다. 교사도 자신의 부모가 매우 엄격한 사람들이라서 힘들었던 이야기, 대학 때 해외로 도망갔던 이야기 등을 들려주었다. 그러면서 교사 R은 많은 도움이 되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솔직히 부모의 생각을 바꾸는 것은 어렵다. 거의 불가능하다. 바꿀 수 있는 것은 부모의 말에 대한 나의 반응 뿐이다.' 맞는 말이다. 사실 부모 뿐 아니라 어느 누군가의 생각을 바꾸는 것은 어렵다. 여기서 할 수 있는 것은 나의 반응, 나의 응대를 어떻게 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 뿐이다. 어떻게 대응하여 서로의 생각 차이를 줄여 나갈지, 해결책을 찾아갈지 생각해 봐야 한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한 시간이 지나고 나서 교사는 그 학생에게 기분이 좀 나아졌는지 물었다. 그녀는 감사하다고 했다. 

쉬는 시간이 되자 교사 R은 눈짓으로 나에게 그녀와 이야기를 나누라는 신호를 보냈다. 나도 그럴 생각이었다. 그녀와 잠시 한국말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솔직히 래포가 형성되지 않은 상태에서 섣부른 조언은 조심스럽다. 하지만 여러 관점을 그냥 들어보고 판단하면 도움이 되지 않을까? 이런 심정이었다. 상투적일 수밖에 없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주었다. 어쩌면 해답은 그녀와 그녀의 엄마 마음 속에 다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 해답을 꺼내놓는 과정이 쉽지는 않을 것이다. 부디 그 과정에서 서로 너무 많이 상처받지 않고 그 해답을 찾기를 바란다.




보충 수업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느라고 보충수업에 늦게 들어갔다. 불이 꺼져 있어서 좀 놀랐는데 보니까 영상을 보고 들으면서 과거시제의 규칙 동사에 적용되는 발음을 연습하고 있다. 나도 합류해서 동사 변화의 규칙도 익히고 발음도 연습했다. 


수업이 끝나고 나서 한국친구 E와 함께 밋업의 영어회화 모임에 갔다. 모임 장소로 가면서 한국친구 E가 아까 보충 수업 시간에 내가 늦으니까 교사 M이 매우 안타깝게 기다렸다면서 다음 달에 내가 학원을 그만두면 교사 M이 몹시 슬퍼할 것 같다고 한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다음달의 이별이 벌써부터 걱정이다. 교사 M과 정이 많이 들었는데...



밋업 모임에서는 오늘도 열심히 떠들었다. 어떤 한국 학생이 영어 공부 방법에 대해 이야기를 했는데 전적으로 공감한다. 생활 속에서 영어를 배우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전에 만난 일본 학생도 같은 이야기를 했다. 그래서 내가 이렇게 열심히 모임을 찾아다니는 것이다.



집에 오는 길에 한인 마트에 들러서 김밥 재료를 샀다. 오랜만에 김밥이나 만들어 먹자. 신나게 김밥 재료를 가지고 집으로 왔는데 집에 도착한 순간 깨달았다. 김을 깜빡하고 안 샀다. 이 덜렁쟁이! 집에 들어와서 어떻게 할까 고민했다. 다시 갔다오기에는 너무 늦었다. 내일 싸지 말고 모레 쌀까? 아니다. 내일은 또 다른 저녁 일정이 있어서 바쁘다. 그렇다면 내가 계란을 이용해서 김밥을 쌀 수 있을까? 혹은 누드김밥? 일단 노력해보기로 했다. 결국 늦은 시간까지 김을 대신할 수 있도록 계란을 얇게 부쳤다. 그리고 다른 재료들을 손질해서 준비했다. 내일은 한시간 일찍 일어나서 김밥을 쌀 것이다. 나는 뭔가 한번 해보겠다고 마음 먹으면 기어이 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다. 안좋은 성격이다. 내 신상을 내가 볶는다. 


오늘 하루를 생각해보니까 참 많은 일들이 있었구나 싶다. 문법 수업은 어떻게 할까? 교실을 바꾸겠다고 해볼까? 회화 수업의 그녀는 엄마와의 갈등을 어떻게 풀어나갈까? 보충수업 교사와의 이별은 어떻게? 내일 계란김밥 만들기는 성공할까? 세상에 역시 쉬운 일은 없구나. 에휴. 삶은 단순하지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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