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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 May 11. 2024

기숙사의 할로윈 파티

2023.10.12.목요일

아침 일찍 일어나 계란 김밥을 말았다. 김밥이라고 해야할지 계란말이밥이라고 해야할지 정체성은 좀 모호하다. 어쨌든 절반은 성공했다. 첫번째 김밥은 잘 말렸다. 이것은 미국친구 M의 몫이다. 그녀가 나에게 가끔 자신의 요리를 주기 때문에 나도 보답을 하고 싶다. 하지만 그녀는 밀가루 알러지가 있어서 아주 조심해야 한다. 오늘 만든 김밥은 완전히 밀가루가 들어간 것을 배제한 것이다. 계란, 불고기, 오이, 당근, 김밥무, 우엉, 쌀이 전부다. 그녀는 나의 계란 김밥을 받고는 아주 좋아한다. 학원에 가져가서 점심으로 먹겠단다. 김이 없어서 계란으로 말았다는 설명을 하고 싶었는데 너무 어려워서 관두었다. 

그런데 두번째 김밥부터는 잘 말리지가 않는다. 일단 할 수 있는한 모양을 갖추어 성공한 것들은 도시락에 담고 흐트러진 것들로는 주먹밥을 만들었다. 그리고 일회용 장갑을 챙겼다. 김밥이 흐트러지므로 장갑을 끼고 먹는게 낫다. 젓가락으로는 집을 수가 없다. 후후... 이게 뭔 난리니?




문법 수업

오늘은 교사 M이 교사미팅에 가야해서 보강교사가 들어왔다. 이 보강교사는 전에 내가 그다지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던 바로 그 교사다. 그래도 이번 보강은 한 시간 뿐이니까 참아주지. 문법의 진도에 따라서 연습문제를 잔뜩 풀었다. 그런데 역시 문법은 어렵다. 오늘은 이놈의 after과 before가 나를 애먹인다. 

She had lunch after she had washed her hands. 그녀는 손을 씻고 나서 점심을 먹었다.

The boys had bought a ball before they played foot ball. 소년들은 풋볼을 하기 전에 공을 샀다.

after 구문은 먼저 일어난 사건이고 before 구문은 나중에 일어난 사건이다. 이게 찬찬히 보면 당연히 이해가 되는데 문제를 풀 때는 은근히 헛갈린다. 



듣기 수업

오늘은 새로운 단원으로 들어간다. 주제는 Avoid misuse and overdose(오용과 과용 피하기). 약을 먹을 때 잘못 먹거나 많이 먹는 것에 대한 이야기다. 단어와 구문을 보니까 이번에도 처음 뵙는 분들이 많다. 듣기 방송을 듣고 문제를 푸는데 딱 두번만 들려준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나는 문제를 그럭저럭 푼다. 물론 반타작이지만 그래도 아예 안 들리는 것은 아니다. 신기하다.




작문 수업

오늘은 글의 구성 방법에 대해 배웠다. 글 전체는 토픽 문단, 뒷받침 문단 2~3, 결론 문단으로 쓰란다. 한 단락은 topic+main idea, support your main idea, conclude로 구성하는 것이 좋단다. 잘 된 글의 샘플을 보고 익혔다. 그리고 우리가 써온 글을 이것에 따라 다시 고쳐서 내일까지 써오란다. 뭐? 내일은 매주 제출하는 작문 과제도 있잖아. 다들 아우성이다. 교사는 그러면 방금 낸 숙제는 내일까지 제출하고 매주 제출하는 작문 과제는 다음주 월요일에 제출하란다. 이 수업은 잘 가르쳐서 좋은데 숙제가 너무 많다. 역시 다 좋을 수는 없는 것이다.




점심시간

친구들과 계란 김밥을 나누어 먹었다. 내가 김을 까먹어서 이 모양이 되었다고 설명하니까 다들 웃는다. 그리고 김없이 김밥을 싼 것을 신기해 한다. 밥을 먹으면서 나는 친구들에게 문법 수업에 대한 나의 고민을 이야기했다. 한국인 상담교사에게 상담요청 이메일을 보냈는데 아직 확인하지 않았다. 이따가 그녀에게 가서 다른 교실로의 교체를 요청해볼까 한다고 했더니 내 얘기를 듣던 대만 친구 J가 넌즈시 조언을 한다. 그렇게 하지 말고 먼저 교사 M에게 이야기를 해보는 것이 좋겠다는 것이다. 만약 내가 수업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교실을 바꾸겠다고 학교측에 말하면 학교측에서는 교사 M에게 그 이야기를 해야만 하는데 그러면 교사 M이 기분나빠할 것이다. 교실을 바꾸게 되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그것이 쉽지 않다고 들었다. 만약 이 수업에 남아 있게 되면 교사 M과의 관계가 너무 힘들어지지 않겠냐는 것이 J의 의견이다. 전적으로 맞는 말이다. 교사 M과 먼저 얘기해서 혹시 그녀가 나의 고민을 이해하고 교실을 바꾸는 것이 좋겠다고 하면 일이 수월하게 풀릴 수 있다. 혹시 교실 교체가 되지 않는다 해도 그녀에게 나의 힘듦을 알리고 수업 방식을 좀 개선할 수 있다면 최소한 손해는 아닐 것이다. 물론 교사가 화내면 그때는 망하는 거다. 어떻게 말하면 그녀가 기분나쁘지 않게, 하지만 명료하게 나의 의사를 전달할 수 있을까? 영어로 어떻게 말할지 생각해 봐야겠다. 




회화 수업

오늘은 교사 R도 교사미팅이 있어서 보강교사가 들어왔다. 그러고 보니까 나의 이전 문법 교사인 S의 교실에도 보강교사가 들어간 것을 보았다. 오늘 대대적으로 교사미팅이 있나보다. 

해외에서 살게 되면 어떨지를 주제로 그룹 대화를 나누었다. What are some expectations you had about living on Canada? What about Vancouver specifically? 캐나다 생활에 대해 어떤 기대를 갖고 있었나? 밴쿠버는 구체적으로 어떤가? 이런 질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우리는 대부분 영어공부를 하러 여기에 왔기 때문에 가장 기대한 것은 영어실력이 나아지는 것이다. 그리고 해외에서 생활하는 것은 대부분 처음이다. 낯선 환경에서 생활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도 가지고 있었다. 비슷한 처지에 있어서 그런지 서로 많이 공감하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What are some things you miss about your country? 너의 나라에 대해 그리워하는 것들은 무엇인가? 이 질문에서 다들 봇물터지듯이 가족, 친구, 음식 등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교사는 우리의 대화를 듣고 있다가 문법이 틀리면 교정해주기도 하고 적절한 단어로 표현을 바꾸어주기도 했다. 그러면서 어떤 때는 우리가 캐나다에 대해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은 설명을 해주기도 했다. 예를들어 여기는 대부분 점심에 샌드위치를 먹는다고 생각하는 학생들이 많다. 이유는 홈스테이에서 점심에 샌드위치를 주로 싸주기 때문이다. 교사는 꼭 그런 것은 아니라고 했다. 점심이 저녁보다 더 가벼운 식사이긴 하지만 샌드위치 외에도 많은 선택이 있다고 했다. 그러자 칠레 친구가 자신의 나라에서는 저녁을 샌드위치처럼 가벼운 것을 먹고 점심은 정찬으로 먹는단다. 그래? 문화가 많이 다르구나. 음식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니까 다들 자신의 나라에서 뭐뭐가 지금 먹고 싶다고 난리다. 나는 딱히 그리운 음식은 없지만 생각해보니까 여기 와서는 국물이 있는 찌게류를 먹은 적이 없다. 갑자기 김치찌게가 먹고 싶네. 일본 친구는 다 필요없고 자신의 엄마가 끓여준 미소된장국이 먹고 싶단다. 또 다들 엄마 음식에 대해 떠들어댔다. 에구구, 다 비슷한 마음들이다. 고향이 그립다.





보충 수업

오늘은 교사 M이 결근을 했다고 들었다. 그래서 보충수업을 함께 듣던 학생들이 오늘 보충수업이 있는지 궁금해 한다. 그나마 이들 중에서는 나의 영어레벨이 높기 때문에, 그리고 내가 이 수업에 가장 많이 참석한 학생이라서 다들 나만 쳐다보고 있다. 결국 이들에게 잠시 기다리라고 하고 2층 데스크에 가서 보충 수업이 진행될 수 있는지 물어 보았다. 데스크에서 확인해보고 알려주겠다면서 교실에 가서 기다리란다. 5분 정도 있으니까 보강교사가 들어왔다. 그는 처음 보는 교사인데 보아하니까 갑자기 섭외되어 들어왔나보다. 우리에게 이름과 국적을 물어보고는 보통 어떻게 수업이 진행되었는지 묻는다. 또 다들 나만 쳐다본다. 윽, 본의 아니게 이 수업의 반장같은 역할을 하게 되었다. 나는 평소에는 교사가 주제를 말해주고 질문지를 주면 그룹으로 대화를 나누었다고 설명했다. 

보강교사가 그러면 오늘은 왜 영어 공부를 하는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어 보자고 한다. 그리고 칠판에 Determined (단단히 결심한)이라고 적는다. 여기에 많은 시간과 돈을 들여서 와서 영어 공부를 하는 목적, 이유에 대해 이야기를 들어보고는 목적을 이루려면 단단히 결심한 목적이 있어야 한다고 한다. 그런데 이번에는 Globalization, Culture issues (세계화, 문화 이슈)라고 적는다. 무엇 때문에 세계화가 진행되었을까, 각 지역의 문화는? 이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런데 갑자기 깨달은 점이 있다. 내가 교사의 질문을 좀 알아들어서 이것저것 대답을 하다보니까 다른 학생들이 소외되고 있었다. 안되겠다 싶어서 대답을 자제했다. 나중에는 교사가 이런저런 의견을 다른 학생들에게 물어보았다. 조금씩 다른 학생들도 대답을 했다. 휴우, 다행이다. 



수업이 끝나고 나서 집으로 왔다. 오늘은 우리 기숙사의 할로윈파티가 있는 날이다. 물론 할로윈은 이번달 말에 있지만 기숙사에서는 오늘 2층 커뮤니티룸에서 파티를 한다고 했다. 우리 집에 얼마전에 이사온 일본 친구 N과 함께 가기로 약속했다. 미국 친구 M도 함께 갔으면 했지만 그녀는 알러지 때문에 가지 않겠다고 했다. 

우리는 신나게 2층으로 내려갔다. 가보니까 벌써 몇 명이 모여있다. 보아하니까 몇 명은 이미 친한 사이다. 기숙사측의 진행자가 서로 자기 소개를 하도록 안내했다. 일본, 대만, 브라질, 멕시코 등등 많은 나라에서 왔다. 그리고 대학생, 어학원 학생, 전문학원 학생 등 신분도 다양하다. 

진행자가 피자가 오기를 기다리는 동안 할로윈 게임을 하자고 한다. 그래. 재밌겠다. 그녀는 포스트잇에 할로윈 캐릭터를 쓰고 그것을 한 명에게 준다. 다만 포스트잇을 받은 사람 자신은 그것을 보지 못하고 다른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들고 있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예스, 노 질문을 하란다. 가령 나는 사람인가? 그러면 다른 사람들이 예스, 노로 대답해준다. 우리나라의 스무고개 퀴즈와 비슷하다. 나는 여자인가? 나는 키가 큰가? 나는 하얀색인가? 이런 식으로 질문을 하고 추리해서 어떤 캐릭터인지 맞추는 게임이다. 할로윈 캐릭터를 많이 알지 못하지만 재밌다. Ghost(유령), Zombie(좀비), Witch(마녀), Joker(조커), Clown(광대), Skeleton(해골) 등등 아는 단어들도 나왔지만 도무지 뭔지 모르는 것도 있었다. 내 차례가 되었는데 내가 포스트잇을 받는 순간 살짝 뒤쪽으로 비친 첫글자를 보았다. F로 시작한다. 순간 떠오른 단어는 Frankenstein(프랑켄슈타인)이다. 그런데 재미가 있으려면 내가 이걸 모르고 있어야 한다. 그래서 나는 모르는 척하고 사람인가? 죽었나? 여자인가? 하얀색인가? 이런 것을 물었다. 그들은 나에게 이 캐릭터가 어렵다고 생각했는지 힌트를 주려고 난리다. 사람은 아니지만 움직인다. 매우 크고 힘이 세다. 초록색이다. 남자다. 등등을 묻지도 않았는데 열심 설명해준다. 그래서 일부러 고개를 갸오뚱하면서 초록색? 키가 크다고? 그러면 슈렉인가하고 답하니까 다들 뒤집어진다. 슈렉은 할로윈 캐릭터가 아니란다. 그러면 아, 헐크? 다들 너무 재밌어한다. 헐크도 할로윈 캐릭터가 아니란다. 너무 오래 끌면 재미가 없을 것 같아서 이쯤에서 맞춰주었다. 프랑켄슈타인? 내가 맞추니까 다들 좋아한다. 그래. 니들이 좋아하니까 나도 좋다. 하.하.하.




이런 게임을 하고 있는데 피자가 도착했다. 다들 신나서 피자를 먹었다. 평소 같으면 한쪽이면 끝이지만 요즘 나는 피자 두 조각을 거뜬하게 해치운다. 여기 와서 늘 허기가 지고 많이 먹는다. 피자를 먹는 사이에 새로운 친구들이 많이 합류했다. 사람이 많아지니까 진행자가 게임 종류를 바꾸자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함께 하는게 좋으니까 몸으로 말해요. 즉 제스쳐로 캐릭터를 표현하는 게임을 하잖다. 그래. 그게 낫다. 나는 한국에서는 이런 게임을 정말 못했는데 여기 와서는 몸으로 말하기 실력이 아주 많이 향상되었다. 영어가 짧으니까 그럴 수밖에 없다. 

한 명이 처음에 자원해서 자신이 부여받은 캐릭터를 몸으로 표현했다. 좀비. 좀비는 표현하기가 쉬운 편이다. 나와 함께 간 일본 친구가 아주 난감한 캐릭터를 부여받았다. 그녀는 자꾸 하늘을 가리킨다. 그리고는 어색한 걸음으로 걷는다. 뭐지? 우리가 너무 못 맞추니까 진행자가 space(우주)라는 단어로 힌트를 준다. 응? 혹시 alien(외계인)? 맞단다. 나에게 부여된 캐릭터는 Clown(광대)다. 응? 광대를 어떻게 표현하지? 나는 광대의 모자를 손으로 표현하고는 스마일 웃는 특징을 표현했다. 그랬더니 누군가 맞추었다. 이런 식으로 다들 한번씩 나가서 캐릭터를 표현하는데 각 나라의 특징이 다 달라서 재밌었다. 

파티에 합류한 사람 중에는 중학생 정도 되어 보이는 딸과 엄마가 있었다. 딸내미가 처음에는 나가서 표현하는 것을 안하겠다고 빼더니 나중에 다들 재밌게 즐기니까 자신도 한번 해보겠단다. 브라보. 진행자가 그녀에게는 표현이 좀 쉬운 인어공주를 주었다. 그건 표현하기 쉽지. 그런데 인어공주가 할로윈 캐릭터인가? 에라, 모르겠다. 그게 뭐 중요하겠니? 다들 즐거우면 되었지.

두 시간 정도 재밌게 놀다가 일본 친구와 함께 올라왔다. 진행자가 2층 커뮤니티 센터에서 가끔 모여서 노니까 언제든지 방문해서 즐기라고 한다. 그래. 알았다. 시간이 되면 놀러올께. 앞으로 커뮤니티 센터에 자주 놀러가야겠다. 영어 연습도 하고 친구도 사귈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일본 친구랑 오늘 재밌었다면서 서로 동행해주어서 고맙다고 인사를 나누었다. 기숙사에 있으니까 이런 경험도 하는구나. 나는 정말 기숙사에 오길 잘 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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