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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 May 21. 2024

무너지지 않는 젠가

2023.10.16.월요일

문법 시간

지난 시간에 몇 가지 역할 중에서 하나를 선택해서 미래시제를 사용해서 말할 내용을 생각해 오라고 했다. 점쟁이, 기상예보, 정치가, 졸업연설 등이 있었다. 나는 기상예보를 선택해서 오늘과 내일 그리고 다음 주 이렇게 세 가지 시점에 따라 현재, 단순미래, 미래진행 시제를 사용했다. 어떤 브라질 학생은 점쟁이를 선택했는데 자기는 점을 보는 상태가 필요하다고 해서 다른 학생을 대상으로 그럴듯하게 미래를 예언했다. 재밌는 것은 손바닥을 보면서 이 라인은 생명선이고 이 라인은 재물운이라고 하는 것이 우리나라와 비슷하다. 

이어서 미래시제에 대한 연습문제를 풀었다. 이번에도 처음에는 잘 따라갔으나 중간부터 좀 어려워졌다. 교사 M이 처음에는 시간도 좀더 주고 다시 한번 답도 확인시켜주더니 중간부터 좀 빨라졌다. 나중에 보니까 오늘 진도를 끝내고 컴퓨터로 하는 게임 활동을 하려고 빨리 진도를 뺀 것 같다. 교재를 덮고 화면의 QR 코드로 접속하란다. 오늘은 튕기지 말고 참여해야지. 그리고 잘 안보이는 사람은 앞으로 의자를 가지고 나오란다. 나랑 내 옆의 친구가 의자를 가지고 앞쪽으로 나갔다. 후후. 그래. 나 혼자만 안보이는게 아니었어. 그나마 오늘은 끝까지 같이 풀었다. 문제 범위는 간단한 시제부터 시간 표현, 의문문 구조 등으로 다양했다. 교사는 이번 게임에서 1등, 2등, 3등 학생에게는 레벨 테스트에 특별 점수를 주겠단다. 와~! 이러니까 다들 경쟁적으로 열심히 한다. 늘 그렇듯이 잘하는 학생들이 순위를 휩쓸었다. 내 이름은 보이지도 않는다. 그래도 꼴등은 아닌 것 같다. 그나마 다행이다. 역시 오늘도 점심시간에 열심히 복습해야겠다. 대만친구가 이따가 같이 복습하자고 한다. 그래야겠지. 



듣기 시간

지난 주에는 2분 발표를 안했는데 이번 주에는 한단다. 격주로 진행하는 것 같다. 이번 주제는 약물의 오남용에 대한 뉴스를 하나 골라서 듣고 그것을 요약하고 자신의 의견을 추가해서 말하란다. 어렵다. 주제가 점점 더 어려워지는 것 같다. 

단어 매칭하기 활동 후에 듣기 활동을 했다. 이번 문제는 객관식이 아니라 주관식이다. 내용을 듣고 주어진 문제를 문장으로 써야 한다. 에고 어려워라. 그런데 어렵다고 느낀 것 치고는 그런대로 내용을 맞게 썼다. 나이스! 방금 문제를 푼 내용을 교사가 나눠준 종이에 받아쓰는 활동을 했다. 역시 받아쓰기는 어렵다. 그런데 교사가 받아쓰기한 종이에 각자 이름을 쓰게 하고 걷어간다. 이걸로 중간 평가를 하나보다.



쓰기 시간

주간 작문 과제를 걷어간다. 그리고 지난번 나눠준 글을 다시 한번 분석하면서 보다 흥미롭게 글을 쓰는 방법에 대해 설명했다. 내용을 전개할 때 쭈욱 같은 논조로만 쓰는 것보다는 살짝 한번 반전을 주는게 좋단다. 가령 어떤 주제에 동의하는 이유를 두 가지 정도 제시하고 나서 세번째에서는 다시 그 반대 의견을 슬쩍 던진 다음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의해야 하는 이유를 제시하면 독자가 더 재미있게 읽게 된단다. 맞는 말이다. 그걸 영어로 표현하는게 어려운 것이 문제지만... 이번에도 짧은 문단 쓰기 숙제가 잔뜩이다. 그런데 우리가 제출한 글들에 대한 피드백은 언제쯤 해주는 것일까? 궁금하다. 뭔가 에세이가 어쩌고 했는데 내일 해주려나?



점심 시간

밥을 먹으면서 시애틀에 놀러갔다 온 친구들 이야기도 듣고 문법 수업에 대한 이야기도 나누었다. 그냥 이 수업을 듣기로 하고 열심히 노력하지만 여전히 어렵다. 오늘도 대만 친구와 함께 수업 중에 놓친 것들에 대해 확인하고 몇 가지는 내일 교사에게 물어보기로 했다. 



회화 시간

오늘은 보강교사가 들어왔는데 젠가게임을 이용한 회화활동을 했다. 젠가는 블럭을 쌓아놓고 중간에 있는 젠가를 하나씩 뽑아 위에 쌓다가 누군가가 무너뜨리면 지는 게임이다. 다만 영어회화 연습용이라서 자신이 뽑은 막대기에 쓰여진 질문에 대해 말하는 활동이 더해진다. 질문은 비교적 무난하다. 좋아하는 음식은 무엇인가, 자신의 나라에서 바꾸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 5년 후 자신의 모습을 이야기해 보라 등등. 

내가 뽑은 첫 번째 문제는 남자와 여자가 친구가 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었는데 여기에 대해 살짝 논쟁이 붙었다. 나는 어릴 때는 당연히 남녀가 친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나이가 들어서는 그게 아주 어렵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다른 학생들은 다들 남녀가 친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단다. 대부분 10대, 20대의 어린 친구들이다. 교사가 웃으면서 그게 어릴 때는 그렇게 생각하겠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면서 남자와 여자는 생각구조가 다르다고 했다. 그랬더니 나의 칠레 친구가 불끈해서 아니라고 남자와 여자는 다르지 않고 친구가 될 수 있다면서 자기 주변에는 많은 남자와 여자 친구들이 있다고 했다. 교사는 그게 아직 너희 나이 때에는 그렇게 생각하겠지만 점차 크면서 남자는 결국 여자를 만나면서 섹스를 생각할 수밖에 없고 그것은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 했다. 헉. 매우 노골적으로 이야기하는구나. 여기는 이런 문제를 아무렇지도 않게 서로 이야기하는구나 싶다.

어쨌든 다양한 질문들에 답을 하는 것도 재밌었지만 더 흥미로운 것은 이 젠가가 끝까지 무너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나랑 칠레 친구가 일부러 아슬아슬하게 아래쪽 젠가를 뽑았는데도 불구하고 정말 끝까지 넘어지지 않았다. 결국 한시간이 다 지나서 수업을 끝낼 때까지 젠가는 무너지지 않았다. 교사는 아주아주 잘했다면서 너희가 모두 우승자라고 했다. 다들 젠가가 무너지지 않고 시간이 끝나서 기분이 좋다. 우리는 다 같은 마음이었다. 다들 행복하게 수업을 마무리했다. 이 회화수업 친구들과는 서로 공유하고 있는 개인적인 일들이 많아서 그런지 정말 끈끈하다. 내가 여기 처음 왔을 때 문법 시간에 느낀 것처럼 서로에게 관심과 애정을 가지고 있어서 특별한 마음이 든다. 레벨 업을 통해 이런 교실로 오게 되다니 나는 정말 운이 좋은 사람이다.




보충수업

오늘은 새로운 보충수업이 개설되는 날이다. 이름하여 Idiom & Slang 관용어와 속어. 자주 사용되는 영어 구문 표현들이나 속어 표현들을 배우는 시간이란다. 이 수업은 레벨이 구분되지 않고 하나만 개설되어서 그런지 교실이 꽉 찼다. 더 들어오고 싶어하는 학생들이 있었으나 자리가 없어서 결국 포기해야 할 정도였다. 역시 빨리 와서 자리를 맡아두길 잘 했다. 

교사는 처음보는 사람인데 자기는 옆 건물에서 수업을 한단다. 그녀는 우선 영상을 통해 관용어 10여가지를 설명해 주었다. Hit the sack-to go to bed(자러 가다), Call it a day-to stop work or another activity for rest(이제 그만하자) 등등. 여기 재밌는 표현이 하나있다. Break a leg는 직역하면 '다리를 부러뜨려라'인데 의미는 to wish someone good luck 행운을 빌어준다는 의미다. 왜 이런 의미냐고 물으니까 그냥 그렇단다. 하긴 그러니까 관용어지. 




보충수업이 끝나고 대만 친구 J와 함께 새로운 도서관에 가서 공부를 했다. 학원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다. J가 자주 가는 대학 도서관이라는데 중앙도서관과는 분위기가 다르다. 규모는 중앙도서관에 비해 작지만 여기저기 그룹토의를 할 수 있는 숨은 공간이 많다. 그리고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탁 트인 전망을 가지고 있는 장소도 있다. 다 좋은데 위치가 우리집과는 반대 방향인 것이 흠이다. 뭐 가끔은 색다른 분위기에서 공부하는 것도 좋지. 우리는 각자 숙제부터 하고 나서 문법을 조금 복습하고 나왔다. 숙제하느라 시간이 많이 가서 문법 복습은 많이 하지는 못했다.



집에 와서 저녁을 먹고 나서 일기를 쓰고 있는데 미국 친구 M이 외출에서 돌아왔다. 나는 슬쩍 나와서 오늘 새로운 보충수업에서 관용어를 배웠다고 했다. Hit the sack(자러 가다)를 말하니까 그녀는 sack가 Just a sec(잠깐만)의 sec와 발음이 비슷해서 헛갈리기 쉽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그러네. M의 발음을 들어봤는데 나는 구분을 못하겠다. 

우리가 관용어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새로 이사온 학생이 들어왔다. 그녀는 멕시코 사람인데 오늘 오후에 도착해서 짐만 내려놓고 나가서 저녁을 먹고 들어오는 길이란다. M과 나는 새로운 인물의 등장에 신나서 그녀에게 공용 식기 두는 곳, 냉장고 자리, 화장실 사용 등에 대해 안내했다. 주로 M이 안내하고 나는 거드는 정도였다. 멕시코 사람 B는 영어를 겁나 잘한다. M과 어려움 없이 소통한다. 게다가 그녀는 M과 같은 학교란다. 그녀의 전공은 에니메이션이란다. 얼마 전에 이사온 캐나다 학생도 같은 전공인데 학교는 다른 것 같다. 그 캐나다 학생은 너무 바빠서 첫날 인사를 나눈 후에는 얼굴도 보지 못하고 있다. 

어쨌든 여기저기 집 소개를 하고 나서 서로 신상을 파악하고 있는데 일본 친구 K가 방에서 나왔다. 그녀와도 서로 인사를 나누었다. M이 토요일 저녁 6시에 앞집 친구들이 와서 가벼운 대화 모임을 하는데 다들 원하면 함께 하자고 했다. 일정이 빈다면 같이 이야기를 나누기로 했다. 우와, 우리의 토요일 모임이 점점 커지고 있다. 

일본 친구 K가 나에게 언제 여기를 떠나는지 묻고는 내가 떠나기 전에 다같이 한번 나가서 놀자고 했다. 나는 너무 좋지. 그래서 주말에 시간을 맞추어 보기로 했다. 그래. 이래저래 나는 주말에 계속 바빠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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