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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 May 30. 2024

세 개의 호수

2023.10.22.일요일

아침, 아니 새벽에 일어나 버스를 타고 약속 장소로 갔다. 조프리 레이크에 가는 멤버는 총 5명. 모두 밋업 모임에서 만난 사람들이다. 그 중 홍콩 친구 W와는 이미 트레킹을 다녀왔다. 몇 주 전에 같은 테이블에 앉아서 여행 이야기를 나누었던 일본 친구가 자신의 친구와 함께 왔다. 그리고 사이프러스 친구 E가 차량 렌트도 하고 운전도 하기로 했다. 렌트비는 나중에 함께 나누어 계산하기로 했다. 

드디어 출발. 여기 와서 이렇게 개인용 차량으로 여행가는 것은 처음이다. 뭔가 신난다. 홍콩 친구 W와 나는 마냥 신났다. 일본 친구들은 어제 밤 늦게까지 놀이동산 갔다가 새벽에 잠깐 눈을 붙이고 나온 것이란다. 결국 그들은 차가 시내를 벗어나기도 전에 잠들어 버렸다. 총 3시간 정도 걸리는 거리라서 한번 쉬어가야 하지 않을까 싶었는데 E가 이 정도는 먼 거리도 아니라면서 그냥 GoGo했다. 자신이 친구들과 로드 트립할 때는 하루에 8시간도 운전했단다. 은근 운전 부심이 있는 듯하다. 



조프리 레이크는 휘슬러를 지나서 한 시간 정도 더 산으로 올라가야 한다. 휘슬러를 지날 때 문득 내 브라질 친구 L이 떠올랐다. 지금 그녀는 회사에 복귀해서 무척 바쁘게 지내고 있단다. 그래도 최근에 영어 공부를 온라인으로 시작했다면서 소식을 전해왔다. 그래. 열심히 사는구나. 나는 더 열심히 놀러 다닐께. 지금은 그게 나의 일이니까.

드디어 주차장 도착. 주차장에 있는 간이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고 올라가기 시작했다. 왕복 약 4시간에서 5시간 정도 걸린다. 중간에 간이 화장실이 있으나 환경이 열악하다고 들었다. 그런데 내가 보기에는 주차장 화장실도 열악하기는 마찬가지다. 그냥 조프리레이크에 오려면 화장실 부분은 마음을 비워야할 듯하다. 어쨌든 출발해서 5분도 안되어서 만나는 Lower lake. 우와! 감탄이 절로 나온다. 맑은 호수 뒤로 설산이 있어서 더 근사한 것 같다. 여기도 아름다운데 저 위가 더 아름답단다.  



첫번째 호수를 지나서 곧 오르막이 시작되었다. 누가 이것을 하이킹이라고 불렀는가? 이건 하이킹이 아니라 클라이밍에 가깝다. 완전 등산이다. 윽! 경사도가 장난이 아닌 오르막을 한참동안 올라가야 한다. 이따가 내려올 때 나의 무릎이 아작나겠구나. 나에게는 등산스틱이 있으니까 그나마 좀 위안이다. 올라가면서 사이프러스 친구 E가 우리의 사진을 찍어주었다. 그는 사진이 취미인데 거의 전문가 수준이다. 나중에 사진 편집 작업을 해서 우리에게 공유해주기로 했다. 올라가면서 이런 저런 경치를 찍으면서  나의 속도대로 쉬엄 쉬엄 올라갔다. 그래서 친구들이 중간중간 나를 기다려야했다. 좀 미안했지만 나는 어쩔 수 없다. 내 속도를 오버하면 탈난다.




드디어 두 번째 호수인 Middle lake에 도착했다. 경치는 여기가 제일 아름답단다. 아직 저 위에 호수를 못봐서 모르겠지만 확실히 저 아래 호수보다 물 색깔이 더 아름답다. 주변의 나무들과 어우러져서 정말 아름답다. 잠시동안 감탄하느라 사진찍는 것도 잊었다. 사람들이 다들 홀린 듯이 서서 경치를 보다가 또 미친 듯이 다들 사진을 찍고 영상을 찍느라 난리다. 그래. 이놈의 호수가 사람을 홀리는 재주가 있다. 정말 아름답다. 




그런데 사람들이 다들 손을 하늘로 올리고 있어서 뭐 저런 포즈로 사진을 다같이 찍나하고 의아해 하는데 이유를 곧 알게 되었다. 주변에 새들이 사람들의 손에 날아와서 앉는다. 아마도 처음에는 누군가가 빵조가리를 주었겠지? 그래서 새들이 그것이 학습이 되어서 사람들이 손을 올리면 날아와서 앉는다. 아니 손을 올리지 않아도 그냥 모자 위에, 등산 스틱 위에, 핸드폰 위에 그냥 막 날아와서 앉는다. 다들 손을 올리고 새들이 날아오면 사진을 찍느라 난리다. 



호수 주변을 따라서 길이 나 있는데 걷다보니까 멋진 뷰 포인트가 있다. 다같이 사진도 찍고 개인 사진도 찍고 뒷모습 사진도 찍고 앞모습 사진도 찍고... 찍고 또 찍었다. 정말 아름다운 곳이다. E는 이곳에 여러번 와봐서 어디가 멋진 사진을 찍을만한 곳인지 잘 알고 있다. 이 친구와 같이 오기를 잘했다.

조금 더 가니까 또다른 뷰 포인트가 있는데 거기는 내려올 때 가기로 했다. 조금 더 올라가니까 드디어 제일 높은 곳에 위치한 Upper lake가 나왔다. 물색깔이 정말 아름답다. 다만 주변에 나무가 없어서 전체적인 경치는 두번째 호수가 더 나은 것이 맞다. 하지만 물은 여기가 가장 맑고 아름다운 색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황량해보이는 바로 앞의 산 뒤로 하늘이 아주 가깝게 느껴져서 그것도 또 멋진 매력 포인트다. 그러고 보니까 세 개의 호수가 각각 다른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다. 이들 호수의 물은 저 위의 설산에서 녹아내린 물이란다. 그래서 이렇게 파란색과 녹색으로 물 색깔이 아름다운 것이다. 다만 아래로 내려갈수록 색깔이 흐려진다. 




아름다운 호수를 바라보면서 각자 챙겨온 간단한 점심을 먹었다. 대부분 샌드위치다. 그게 간편하지. 나는 친구들에게 팀 홀튼스의 작은 도넛인 팀비트를 나눠 주었다. 호수를 한참동안 보면서 쉬다가 내려가기 시작했다. 윽. 예상대로 내리막은 무릎에 너무 좋지가 않다. 게다가 길이 질어서 미끌거린다. 등산스틱이 없었다면 포기했을지도 모른다. 길이 미끄덩거려서 더 조심조심 내려갔다. 하지만 경치가 너무 아름다와서 이 고생쯤은 감수할 수 있다. 두번째 호수의 또다른 뷰 포인트에서 또 다들 사진을 찍었다. 멋진 나무가 호수를 향해 잠겨있어서 사람들이 그 위에 가서 사진을 많이 찍는 곳이다. 다만 나무 위에서 균형을 잡는게 너무 어렵다. 결국 어떤 사람은 미끄러져서 발이 빠지기도 했다. 나는 균형감은 제로이기 때문에 그냥 나무 둥치를 잡고 살짝 다리만 걸쳤다. 




사진을 찍고 또 찍으면서 내려오다 보니까 어느새 제일 아래 호수까지 내려왔다. 확실히 올라갈 때보다는 내려올 때가 시간이 짧게 걸렸다. 이 호수는 아까도 들렀지만 마침 해가 옆으로 비켜서 비추고 있어서 다시 가서 사진을 찍었다. 아름다운 호수야. 잘 있어라. 홍콩 친구와 나는 호수에게 작별 인사를 했다. 우리는 날씨도 좋고 아름다운 호수도 봐서 너무너무 행복하다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돌아오는 길에는 구름이 산위에 걸친 모습도 보고, 아름다운 석양도 보았다. 참으로 좋은 날이다. 날이 좋아서 더 좋았고 경치가 좋아서 더 좋았고 사람들도 좋아서 더 좋았다. 좋은 것이 한가득인 날이다. 시내로 돌아와서 E가 렌트카, 아니 엄밀히 말하면 공유차를 앱으로 정산했다. 그리고 5명으로 나누어서 24.2달러를 자신에게 이체하라고 이메일 주소를 알려주었다. 여기서는 은행 이체를 이메일 주소 정보를 통해 할 수 있다. 24.4달러면 우리나라 돈으로 24,000원 정도 한다. 너무 저렴하게 좋은 여행을 다녀왔다. 그런데 운전을 하루 종일한 E에게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나는 홍콩 친구에게 '5명으로 나누는 것이 맞나? E가 운전했쟎아?'라고 말했는데 그냥 어깨를 으쓱한다. 내 의도가 뭔지 모르는 것 같았다. 

우리는 근처의 햄버거 가게로 가서 저녁을 먹었다. 나는 E가 메뉴를 고르자 슬쩍 가서 내가 너의 메뉴를 계산하고 싶다고 했다. 그는 '왜?'라면서 의아해 한다. 그냥 나는 너에게 감사한 마음이라서 계산하고 싶다고 했더니 어깨를 으쓱하고 고맙단다. 그가 어떻게 이해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렇게 하는게 내 마음이 편하다. 다들 햄버거를 먹으면서 사진을 공유하느라 바빴다. E는 자신이 찍은 사진은 컴퓨터로 작업을 한 후에 왓츠앱으로 공유해주겠다고 했다. 식사를 마치고 각자 집으로 흩어졌다. 


이렇게 해서 못 갈 줄 알았던 조프리 레이크에 다녀왔다. 홍콩 친구 W가 물었다. 밴프의 호수와 여기 조프리 호수 중에 어느 것이 아름다워? 나는 분위기가 달라서 비교가 어렵다고 했다. 밴프의 루이스 호수는 규모가 크고 웅장하다. 하지만 이곳 조프리 호수는 아기자기하고 아름답다. 비교하지 말자. 모두 다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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