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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 Jun 09. 2024

응급처치

2023.10.27.금요일

문법 수업

오늘은 동명사와 부정사, 사역동사와 준사역동사에 대한 종합적인 연습문제를 풀었다. 안그래도 어려운 두 분야를 합쳐 놓으니까 더욱더 어렵다. 하지만 너무 겁먹지 않고 최대한 침착하게 문제를 풀었다. 옆 짝꿍의 도움을 받아가면서 문제를 푸니까 그럭저럭 답을 적을 수 있었다. 역시 함께 공부하는게 중요하다. 몇 문제는 교사의 설명을 들어도 귀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표시해두었다가 나중에 따로 복습하거나 질문해야겠다.



듣기 수업

이번 달의 마지막 금요일이라 듣기 시간에 게임을 했다. 할로윈에 관련된 소리를 듣고 그게 무슨 소리인지 맞추는 게임인데 재밌다. 오래된 문을 여는 삐끄덕 거리는 소리, 무거운 발걸음 소리, 박쥐 소리, 까마귀 소리 등이 제시되었다. 다음은 할로윈 코스튬 재료에 대해 서로 공유하고 나서 재빠르게 자신의 할로윈 재료를 찾아가는 게임을 했다. 제일 늦게 찾은 학생들은 벌칙으로 복도에서 좀비가 되어 걷기로 했다. 결국 두 명의 학생이 걸려서 벌칙을 수행했다. 다들 재밌어했다. 




읽기와 쓰기 수업

이 수업이 이번달의 공식적인 마지막 수업이라서 졸업하는 학생들에게 졸업장을 나눠주었다. 우리 테이블의 귀여운 학생들이 두 명이나 졸업이다. 그리고 모든 학생들이 이번달의 성적표도 받았다. 나는 역시 문법은 말아먹었고 나머지는 그래도 선방했다. 

한쪽에서는 성적표를 확인하고 한쪽에서는 캐나다 깃발에 작별 인사를 쓰느라 어수선하다. 그런데 보강교사는 그 와중에 진도를 충실히 나간다. 열심히 하는 것은 좋은데 좀 융통성을 발휘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이 보강교사는 보충수업도 보강을 들어오는 그 사람이다. 나에게 늘 오늘 수업은 어땠는지, 학생들이 잘 이해했는지, 다음 토픽은 뭐가 좋을지를 물어보는 그 교사다. 열심히 하는 것에다가 조금만 융통성이 있으면 금상첨화일텐데 아쉽다. 역시 다 갖추기는 어려운 것 같다. 




점심시간

읽기와 쓰기 수업이 좀 늦게 끝나고 나서 떠나는 친구들과 사진도 찍고 포옹도 나눈 후에 겨우 교실을 빠져 나왔다. 서둘러서 2층의 데스크로 갔다. 왜냐하면 어제 메일을 받았는데 내가 '이달의 학생'으로 추천받았으므로 상을 받으러 오라는 것이었다. 어머나 이게 웬일? 한국의 중학교나 고등학교에서도 받아보지 못한 상을 외국에 나와서 받게 되다니 놀랍다. 여기저기 인사하느라 조금 늦게 갔더니 벌써 몇 명의 학생들이 상을 받고 사진을 찍으려던 참이다. 나를 알아본 친구가 빨리 오라고 손짓했다. 8명 정도의 학생이 상을 받았다. 다들 교사들이 추천해서 상을 받는 거란다. 오! 가문의 영광이다. 나를 아는 친구들이 오가면서 보고는  달려와서 축하해주었다. 





대만 친구 J와 밥을 먹으면서 수다를 떨고 있는데 파트타임 일을 하느라 학원을 떠난 일본 친구가 잠깐 학원에 들렀다. 오늘 자신이 일하는 레스토랑에서 뭔가 고치느라고 늦게 오라고 했단다. 우리는 반갑게 인사하고 서로 최근 사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일본 친구는 1년짜리 워킹홀리데이 비자로 왔지만 지금은 여기서 좀더 오래 일하면서 공부하는 방법을 궁리 중이란다. 그녀는 이곳이 생활비가 비싸지만 대신 레스토랑에서 버는 돈이 꽤 많아서 여기서 몇 년 더 일하면서 영어를 좀더 확실하게 익히고 가고 싶단다. 대만 친구도 비슷한 생각이라서 그녀들은 한참 자신의 미래 계획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 그들이 자신의 미래를 구상하는 모습이 너무 예뻐 보여서 열심히 귀를 기울이고 응원해주었다.




특별 보충수업

오늘 오후 수업은 원래 없지만 신청자에 한해서 특별 보충수업을 한다. 보통은 회화 수업을 두 가지 레벨로 나누어 수업을 진행하는데 오늘은 좀더 특별한 수업이 진행된다. 새로운 교재로 진행하는 시범수업이다. 나의 문법 교사 M이 수업을 진행하고 나의 회화 교사 R이 보조하면서 수업 영상을 찍는단다. 시작할 때는 교재 개발자들도 참관을 하다가 나갔다. 회화 교사 R은 나에게 눈을 찡끗하면서 잘 왔다고 했다. 그녀는 이 교재와 새로운 교육과정에 대해 문제 의식을 가지고 있다. 그녀는 나에게 와서 살짝 귓속말로 이따가 의견을 많이 말해달란다. 내 짧은 영어로 잘 전달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최선을 다하마.

새로운 교재 중에서 중간 레벨의 단원을 선택해서 수업을 시작했다. 교재의 구성은 단어, 문법, 회화의 순서로 구성되어 있다. 주제가 영화 혹은 TV쇼에 대한 것이라서 단어는 비교적 쉬웠다. 다만 참여한 학생들 중에 우리 문법 교실의 잘하는 학생 둘이 있는데 그들이 너무 많이 대답을 하는 바람에 나머지 학생들은 말할 기회가 거의 없었다. 교사 M은 나를 비롯한 학생들에게 의견을 물어보기도 했지만 역시 대화의 주도권을 그 둘이 가져가는 바람에 다른 학생들은 좀 불편함을 느꼈다. 단어의 의미를 배운 후에는 학생들은 휴대폰으로 교재 어플을 다운 받아서 연습 문제를 풀었다. 

다음은 문법 부분을 학습할 순서가 되었는데 교사 M과 R이 잠시 멈추고 의논을 한다. 문법 내용은 현재 완료 진행인데 여기 학생들 중에 이 내용을 아직 배우지 않은 학생들이 있단다. 그래서 짧게 시제에 대해 정리해서 알려준 후에 교재의 내용을 이어나가기로 했다. 빠른 속도로 시제에 대해 설명을 한 후에 다시 시범 수업이 시작되었다. 교사가 문법에 대해 다시 한번 설명을 했다. 그리고는 다같이 칠판의 화면을 보면서 연습문제를 함께 풀었다. 이번에도 잘하는 학생 둘이 주도적으로 대답을 했다. 교사 M은 안되겠다 싶은지 그들에게 잠시 자제하도록 하고는 다른 학생들에게 답을 하도록 유도했다. 

문법 연습문제 풀기가 끝난 후에는 회화 연습을 잠깐 했다. 하지만 시간이 다 되어서 회화 연습은 맛만 보고 말았다. 10분 정도 남기고는 학생들에게 이 교재에 대한 소감을 들었다. 학생들 의견을 다양했다. 휴대폰으로 문제를 풀어서 재밌다는 의견, 화면이 작아서 불편했다는 의견, 단어와 문법을 함께 배워서 흥미로웠다는 의견, 문법이 어려워서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는 의견 등이 있었다. 교사 R이 나에게 의견을 구했다. 나는 두 가지 문제를 제기했다. 첫째, 휴대폰이나 화면을 보면서 문제를 풀다보니까 학생들 간의 토의하는 활동이 없었다. 우리는 그룹이나 파트너와 토의하면서 서로 도와주고 그 과정에서 배우는 것이 많았는데 오늘 수업에서는 그럴 기회가 없었다. 둘째, 교재에 나온 문법에 대한 설명이 너무 간단하고 연습문제도 너무 적어서 확실하게 문법을 이해했다고 할 수 없다. 아까 설명을 들어서 이해했지만 그런 공부가 없었다면 이 수업만으로는 부족하다. 물론 나쁜 점만 얘기하지는 않았다. 토픽이 흥미로웠고 단어와 연결된 여러 활동이 이어져서 그런 점은 재미있었다는 칭찬도 해주었다. 




수업이 끝난 후 나는 집으로 와서 가방을 내려 놓고 잠시 휴식을 취한 후 밋업의 영어회화 모임에 나갔다. 마침 저번에 조프리 레이크에 함께 갔던 친구들이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길래 그 자리에 합류했다. 그 자리에 처음 온 한국 학생이 있었는데 영화를 전공했단다. 다들 신나게 영화 이야기를 나누었다. 각자 선호하는 영화 장르부터 제일 인상깊었던 영화, 영화 음악, 영화 산업 등 다양한 이야기들이 오갔다. 대화를 나누는 중간에 대만 친구 J가 와서 합류했다. 그밖에도 전에 가끔 이야기를 나눈 친구들도 합석했다. 2시간이 짧게 느껴질 정도로 신나게 떠들었다. 



영어 회화모임이 끝난 후 집으로 와서 복습을 좀 하고 나서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그런데 갑자기 미국 친구 M이 급히 나를 불렀다. 나가보니까 그녀가 손가락을 움켜쥐고 있다. 야채를 써는 도구를 이용해서 감자를 썰다가 손가락을 다쳤다. 많이 심각한 것은 아니지만 살점이 얇게 떨어져 나가서 피가 나고 있었다. 피를 보고 놀랐는지 가엾게도 그녀는 손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우선 그녀를 식탁에 앉히고 나의 구급 상자를 찾아서 연고와 밴드를 가져와서 응급 처치를 했다. 그리고 피를 멈추게 하려고 지압을 했다. 그러면서 걱정하지마, 피가 금방 멈출거야하면서 안심시켜 주었다. 두어번 밴드를 갈면서 지압을 계속했다. M도 자신의 구급상자에서 연고와 밴드를 꺼냈다. 아무래도 사용하던 익숙한 것들이 그녀에게 더 나을 것 같아서 그것들로 바꾸어서 지압을 했다. 

지압을 하는 동안 나는 일부러 신경을 다른데로 돌리기 위해 오늘 학원에서 상을 받은 이야기를 해주었다. M에게 너는 오늘 학원에서 뭐했는지 물었다. 그녀는 오늘 학원에서 실습한 메이크업 사진을 보여주면서 각 세대별로 다른 스타일의 메이크업에 대해 설명을 했다. 확실히 자신의 분야에 대해 이야기를 할 때 신나 보인다. 한참 수다를 떨면서 손을 잡고 지압을 하고 나니까 서서히 피가 멈추었다. 

그 사이 M의 엄마가 전화를 했고 그들은 스피커폰으로 대화를 나누었다. 대략적으로 알아들은 바로는 메신저로 다쳤다는 사실을 알렸고 이어서 내가 도와주고 있다는 사실을 알렸다. 엄마는 그래도 걱정이 되어서 직접 목소리를 들으려고 전화한 것이다. M은 걱정시켜서 미안하다고 했다. M의 엄마는 지금은 어떤지 묻고는 나에게 미안하고 고맙다고 인사를 했다. 나는 괜찮다고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전화를 끊고 나서도 잠시 더 메이크업에 대한 수다를 떨고는 밴드를 바꾸어 주고는 내일 아침에 한번 더 밴드를 바꾸자고 했다. 

그리고 M에게 이 손가락을 사용하지 않는게 좋으니까 오늘은 요리를 더 이상 진행하지 않는게 좋겠다고 했다. 그런데 저녁을 아직 먹지 않아서 걱정이 되어서 내가 김치볶음밥을 만들어 줄 수 있다고 제안을 했다. 하지만 M은 나에게 더 이상 폐를 끼치고 싶지 않다면서 잠시 뭘 먹을까 고민을 하더니 오트밀을 만드는 것이 가장 간단할 것 같다고 했다. 그녀는 오트밀을 먹고 나는 전에 사둔 빵을 먹었다. 저녁을 다 먹고 나서 방으로 들어가는 그녀에게 혹시 밤에 손이 아프거나 열이 나는 것 같으면 바로 내 방을 노크하라고 말해 주었다. 

일기를 쓰고 있는 지금까지 별일은 없는 듯하다. 오늘도 참으로 다양한 일을 경험했구나. 학원에서 상을 받았고, 새로운 교재의 시범 수업에 참여했고, 영어회화 모임에서 새로운 친구를 만났고, 옆방 친구가 다쳐서 도와주었다. 그러고 보면 여기에 와서는 하루하루 매일 다양한 경험을 하고 있다. 내 인생에서 이렇게 짧은 기간에 이렇게 많은 경험을 한 적이 없는 것 같다. 내일은 또 어떤 일이 일어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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