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지마!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구나.

by 바람

2023.09.18. 월요일 [무모한 도전]

문법 수업은 지난 주에 배운 비교급에 대한 리뷰 테스트를 보았다. 생각보다 많이 헤매었다. 쉽다고 생각했는데 단순한 부분에서 은근히 헛갈렸다. 결과가 별로 좋지 않을 것 같다. 그리고 새로운 단원을 시작했다. 최상급이다. 그렇지. 비교급을 했으니 최상급을 해야지.

듣기 수업에 숙제가 있는 걸 깜빡했다. 나는 당당하게 숙제가 없다고 말했다가 무안해서 혼났다. 그런데 숙제를 해온 학생이 4명뿐이다. '윌'은 나에게 모범생인 너까지 안해올 줄 몰랐다고 말한다. 미안하다. 내 나이가 되면 깜빡깜빡한다고 말해주고 싶었으나 그냥 웃고 말았다. 이번 단원은 광고와 방송인데 단어와 숙어가 대부분 낯설고 어렵다. 오늘도 숙제가 있다. 이번에는 잊지 말아야지.

읽기와 쓰기 수업은 이야기 만들기 활동을 했다. 전체적으로 이야기를 4가지 구조로 나누어 작성해 보란다. 소개(주인공, 언제, 무엇 등, 형용사 주로 사용)-문제(주인공의 문제, 나쁜놈 등장 등, 느낌 표현 중요)-절정(중요한 파트, 짧은 문장, 동사 주로 사용)-해결(편한 결말, 때로는 미해결 등). 가만히 보면 기-승-전-결 패턴은 어디나 비슷비슷한 것 같다.

그런데 이야기를 만드는 방식이 독특하다. 빈 종이를 한장씩 꺼내란다. 종이의 맨 위에 자기 이름을 쓰고 나서 2분간 시간을 줄테니까 소개 부분을 한 문장 혹은 두 문장으로 쓰란다. 주인공이 누군지 이름까지 썼는데 시간이 되었다면서 옆 사람에게로 종이를 넘기란다. 그리고 나는 다른 사람의 종이를 받았다. 이제부터 2분을 줄 테니까 지금 받은 종이에 이야기를 이어서 쓰란다. 즉, 이어쓰기를 돌아가면서 하라는 것이다.

우리나라 말로 해도 쉽지 않은 이어쓰기를 영어로 하라고? 겨우겨우 어디 살고 있는지 쓰고 나니까 시간이 지나서 다음 사람에게로 넘겼다. 이런 식으로 총 9번 돌면서 소개-문제-절정-결말을 다 썼다. 딱 9명이 있어서 교사가 9번 돌린 것이다. 내가 처음 썼던 글이 나에게로 돌아왔다. 내용이 아주 엉뚱하게 전개되었다. 나는 '옛날 옛적에 '해피'라는 이름의 강아지가 있었다.'로 시작했는데 강아지가 가출하고 갱단도 만나고 고생하다가 여자친구를 만나서 행복하게 살게 되었다로 끝났다.

점심 시간에 오늘도 게임을 한다. 이번 게임은 영어 퍼즐 맞추기인데 나에게는 영어보다 퍼즐 글씨가 너무 작은 게 더 큰 난관이었다. 나는 노안이라 잘 안보인다고! 그래도 그럭저럭 3등을 해서 상품 쿠폰을 받았다. 지금까지 쿠폰 2개를 모았다. 내일은 또 무슨 게임을 하려나 기대가 된다.

회화 수업은 보강교사가 들어왔다. 주말에 써 온 꿈의 휴가에 대해 발표를 했다. 그룹을 지어서 발표를 하고 나서 그룹을 바꾸어 다시 한번 발표를 했다. 역시 두번째 할 때는 좀더 정돈된 발표를 할 수 있었다. 발표를 다 한 후에 종이는 걷어갔다. 내일 피드백해준단다.

수업이 끝나고 도서관에 가서 열심히 숙제를 하고 복습도 했다. 그리고 새로운 MeetUp 모임에 참여하기 위한 영어 글쓰기를 시작했다. MeetUp의 모임들을 검색하다가 영어 글쓰기 모임을 찾아냈다. 만나는 장소가 바로 이 도서관이다. 내가 늘 가던 자리 건너편에 세미나룸들이 있는데 거기서 한단다. 별다른 조건은 없고 글쓰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참여할 수 있다고 한다. 영어 원어민들의 글쓰기 모임에 내가 가도 될까? 너무 무모한 도전인가? 망설여졌지만 일단 한번 도전해보기로 했다. 한번 참여해보고 도저히 안되겠으면 그 다음부터 안가면 되겠지. 각자의 글쓰기를 공유한다고 되어 있어서 아까 했던 이어쓰기를 토대로 하여 작은 동화를 하나 쓰기 시작했다. 과연 이 도전은 어떻게 될까?


2023.09.19. 화요일 [영어로 시 쓰기]

문법 수업은 새로운 학생들이 4명이나 왔다. 브라질 학생, 한국 학생 그리고 일본 학생이 2명이다. '스튜어트'는 어제 본 시험의 결과가 별로 좋지가 않다면서 아마도 우리 학생들이 그저께 술을 많이 마셨다보다고 농담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나도 20문제 중에서 4개나 틀렸고 다른 학생들의 점수도 별로 좋지 않다. '스튜어트'는 우리 학생들이 술을 깨고 나면 더 좋은 점수를 받을 거라고 했다. 뼈있는 농담이다.

시험 문제 중 많은 학생들이 공통으로 틀린 문제에 대해 설명해 준 후 다음 진도를 나갔다. 연습 문제를 쭈욱 풀다가 마지막 문제가 되자 '스튜어트'는 문제풀이를 통째로 나에게 맡겨버렸다. 윽, 내가 가장 어려워하는 틀린 내용을 찾아 고치는 문제이다. 나는 진땀을 빼면서 틀린 부분을 찾아 고쳐서 읽어냈다. 다행히 빠짐없이 다 찾았다. '스튜어트'는 눈을 찡끗하면서 잘 했단다. 내가 이 문제 유형을 어려워하는 걸 알고 일부러 시킨 것 같다. 땡큐, 스튜어트! 바짝 긴장하고 풀면 놓치지 않고 풀 수 있긴 하구나. 그동안 내가 너무 느긋하게 문제를 풀었나?

'스튜어트'는 내일부터 3일간 보강 교사가 들어올 것이라고 했다. 이번 주 금요일에 교사들 전체 회의가 있어서 그것을 준비해야 한단다. 그는 이 학원의 중간 관리자이기 때문에 매우 바쁘다. 그리고 우리는 다음 주 월요일에 레벨 테스트가 있단다. 이번에는 교재 전체가 범위란다. 잘 준비해야겠다.

읽기와 쓰기 수업은 어제 돌려가면서 썼던 이야기를 한 명씩 읽었다. 아주 많이 이상한 내용도 있고 재밌는 내용도 있다. 서로 다른 사람들이 이어서 쓴 내용 치고는 제법 이야기가 되는 것이 신기하다. 교사는 이 내용들을 수정 보완해서 다시 쓰라고 했다. 그런데 우리 학생들은 이 보강 교사의 수업 방식에 다들 불만이 많다. 지금쯤 읽기 단원 하나를 배워야 하는데 전혀 손대지 않고 있다. 쓰기 활동만 잔뜩 시킨다. 다음 주에 레벨 테스트를 해야 하는데 시험 범위는 진도에 맞추어 이미 정해져있다. 그 읽기 단원 진도를 나가지 않으면 시험을 볼 수가 없다. 어쩌려고 저러지?

점심 시간에 밥 먹고 나서 이번에도 게임을 했다. 그런데 오늘은 몸을 쓰는 게임이다. 5명이 한 팀이 되어 일렬로 섰다. 제일 끝 사람이 커다란 티셔츠를 입고 있는데 앞 사람과 마주 보고 머리를 맞대로 손을 맞잡으면 다른 팀원이 티셔츠를 뒤집어 가면서 다음 사람에게 입힌다. 처음에는 이게 가능해? 싶었는데 가능하다. 다만 순발력이 필요한 게임이다. 우리팀이 졌다. 우리팀은 중국, 한국, 일본, 대만 등 동양인들이었고 상대팀은 멕시코, 브라질 등 서양인들이었다. 그런데 서양 학생들은 입고 있는 옷이 아주 참 간단하다. 반면 우리는 다들 추워서 겹겹이 껴입고 있다. 당연히 가벼운 옷을 입은 저쪽 팀이 옷을 벗어넘기기에 유리하다. 어쨌든 승부보다는 한바탕 몸을 쓰고 협동하는 시간이 즐거웠다. 덕분에 식곤증이 달아났다.

extra 수업 시간에 한국 친구 '은남'이 '마리아나'에게 질문을 했다. 며칠 전에 자신이 사는 곳 근처에서 총기사건이 있었는데 캐나다는 안전한 나라가 아닌가 하는 질문이었다. '마리아나'는 그 사건을 안다면서 그것은 마약상들끼리 일어난 사건이고 일반적인 일이 아니라고 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현재 밴쿠버나 샌프란시스코 등의 도시에서 골치를 앓고 있는 약물 중독, 홈리스 등의 문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다들 이 문제를 더 방치하면 안될 텐데 큰일이라고 걱정을 했다.

'마리아나'가 제시한 오늘의 주제는 '가을'이다. 가을에 대한 여러 단어와 표현을 배웠다. 나는 단어들을 받아쓰면서 시적인 표현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마리아나'가 나눠준 종이에 가을에 대한 시가 적혀있다. 오! 감성이 나랑 비슷하다. 시는 4줄짜리로 아주 간단하지만 운율이 살아있다. '마리아나'는 우리에게 이 시를 한 구절씩 외우게 해서 낭송하게 했다. 그렇지. 시는 역시 낭송의 맛이 있어야지. '마리아나'는 가을에는 사람들의 감성이 좀 슬퍼지기도 해서 이럴 때는 시를 읽는게 좋다고 한다. 나는 아까 가을에 대한 단어들을 보면서 시를 쓰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녀는 나에게 충분히 할 수 있을 거란다. 그러면 영시 쓰기 도전?

수업이 끝나고 도서관으로 오는데 비가 온다. 날씨가 초겨울 기온이다. 오늘은 공부를 제쳐두고 아까 자극을 받은 영시 쓰기에 도전해 보았다. 글쓰기 모임에 제시할 간단한 동화도 있지만 시가 더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좀 부끄럽지만 초등학생 수준의 동시를 한 편 써 보았다.


Autumn Leaves 가을 잎들


The leaves are changing color. 잎들은 색깔이 변하네

The trees are wearing new clothes. 나무들은 새 옷을 입네

The mountains are falling in autumn. 산들은 가을에 빠지네

A woman is sweeping fallen leaves. 여자가 떨어진 잎들을 모으네


단어 실력이 짧아서 유사 발음을 이용한 운율감은 살리지 못하겠고 현재 진행형의 문장 구조를 반복적으로 사용했다. 그리고 잎, 나무, 산으로 시야가 넓어지다가 다시 잎으로 귀결되는 말장난을 해 보았다.

집에 오는 길에 김밥 재료를 사 왔다. 이번 주 목요일에는 작별하는 친구들과 점심 시간에 이별 파티를 할 것이다. 각자 자기 나라의 음식을 싸와서 나눠먹기로 했다. 나는 그동안 주먹밥을 여러번 싸왔으니까 이번에는 김밥을 싸갈 생각이다. 아직 2일이나 남았지만 내일 MeetUp 모임 다녀오면 저녁에 준비하기 힘들 것 같아서 오늘 속재료를 준비해두려고 한다. 그리고 내일 아침에는 기숙사의 우리 식구들에게 김밥을 싸 줄 생각이다. 어쩌면 이게 우리 식구들에게 주는 마지막 선물이 될 것 같다. 그 생각만 하면 벌써 슬프다.


2023.09.20. 수요일 [다양한 언어의 자극]

아침에 김밥을 싸서 우리 식구들에게 주었다. 그들은 요즘 학원의 마지막 과제를 마무리 하고 짐도 싸야해서 매우 바쁘다. 도시락 싸는 시간이라도 아껴주고 싶다.

문법 수업에 보강 교사가 들어왔다. 그런데 우리의 수준을 잘 파악하지 못해서 그런지 문법 이론 설명을 너무 천천히 오래 한다. 이미 배운 내용들이 있으므로 지난 단원과 차이가 나는 부분만 추가로 설명하면 되는데 모든 것을 처음부터 다시 설명하고 있다. 결국 문제는 풀지도 못하고 시간이 다 갔다. 벌써 '스튜어트'가 그립다. 빨리 회의를 끝내고 왔으면 좋겠다.

듣기 수업은 방송을 듣고 그것이 무엇에 대한 광고인지 맞추는 활동을 했다. 그런데 이게 무슨 스무고개 퀴즈같다. '이것을 읽으면 역사가 되고 들으면 뉴스가 된다. 커피처럼 당신을 깨우고 GPS처럼 길을 알려준다. NO1을 선택해서 고맙다.' 이게 무슨 광고일까? 바로 라디오 채널 광고다. 처음에 들었을 때는 도대체 무엇에 대한 광고인지 맞추기가 어려웠다. 파트너와 나는 카페광고인가, GPS 광고인가 추측했다. 광고 듣기를 하면서 광고 문구를 만드는 것이 생각보다 재밌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시도 썼겠다. 이번에는 광고 문구 만들기에 도전해볼까?

점심 시간에 밥을 다 먹고 나서 숙제를 하려는데 대만 친구 '제니스'가 여행다녀온 곳 중에서 어디가 제일 좋았냐고 묻는다. 히말라야의 안나푸르나 얘기를 하니까 사진을 보여달란다.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보니까 시간이 다 지나갔다. 그녀가 너무 열심히 듣고 질문도 많이 해서 시간 가는 줄을 몰랐다. 덕분에 영어를 열심히 사용하긴 했다. 그러고 보니까 오늘은 게임을 안했다. 왜? 쿠폰 모아야하는데.

회화 수업은 어제에 이어서 '국가'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 나누었다. 일반 상식으로 국가에 대한 퀴즈도 풀었다. 전 세계의 인구는 약 80억명이 넘는단다. 실감이 나지 않는 숫자다. 가장 큰 대륙은 아시아, 전 세계의 언어는 6,000개 정도 된단다. 이곳에서 공부하면서 상식도 풍부해지고 있다.

extra 수업에서는 지난 번에 배웠던 조건문에 대해 실습을 했다. 연달아 말하기를 했는데 '마리아나'가 칠판에 '만약 시간이 난다면 너에게 전화할 것이다.'라고 썼다. 그리고 나에게 이어서 말하란다. 나는 '만약 네가 전화한다면 나는 맛있는 음식을 줄 것이다.'라고 말했다. 내 옆 친구는 '만약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 행복해질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런 식으로 이어서 말하는데 배가 점점 산으로 갔다. 행복해지면 술을 마시겠다. 술을 마시면 맥주를 추가로 먹겠다. 맥주를 마시면 알콜 중독이 될 것이다. 알콜 중독이 되면 병원에 갈 것이다. 병원에 가면 슬퍼질 것이다. 슬프면 눈물이 날 것이다. 눈물이 나면 휴지가 필요할 것이다. 이렇게 진행이 되었다. 아니, 나는 맛있는 음식을 주려고 했는데 왜 이렇게 된거야? 다들 엄청나게 웃었다.

수업이 끝난 후 '한영언어교환' 모임에 갔다. 벌써 10번 정도 참여한 모임이라 많이 익숙하다. 그럭저럭 말도 많이 알아듣고 내가 할 말도 문장 단위로 차분히 말할 수 있다. 어떤 경우에는 한국사람이 한 명도 없는 자리에 앉기도 했는데 침착하게 잘 대화했다. 내가 느끼기에도 오늘은 막힘없이 말이 잘 나오고 잘 들린다.

대화 중에 내가 외국 사람들에게 왜 한국말에 관심이 생겼냐고 물었다. 어떤 사람은 드라마와 영화를 보면서 흥미가 생겼다고 하고 어떤 사람은 동양의 언어를 배우는 것이 재밌다고 한다. 대체로 여기 사람들은 남의 나라 말을 배우는 것을 좋아한다. 사업을 하거나 시험을 본다는 목적이 아니라 그냥 호기심 때문에 한국어나 일본어, 스페인어 등을 배운다. 문득 생각이 났다. 내가 가르치던 한국의 고등학생들은 언어에 대한 관심이 별로 없었다. 우리 아이들은 외국어는 물론 국어를 배우는 것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그래서 내가 다시 물었다. 왜 우리 한국 학생들은 대부분 언어를 배우는 것을 안좋아할까? 그랬더니 그들은 잠시 생각해보더니 한국 학생들은 대부분 한국 사람들만 만나고 한국어로만 대화를 하니까 그런거 아닐까라고 대답한다. 여기 밴쿠버는 아주 다양한 다민족사회, 다언어사회다. 길거리만 걸어도 최소한 3개 이상의 언어가 귀에 들린다. 그러니까 더 자극되고 호기심이 생긴다는 것이다. 필리핀 사람은 자기네 나라에서 살 때는 언어에 호기심이 없었는데 여기에 와서 다른 나라 언어를 배우는 것에 흥미가 생겼다고 한다. 나름 일리가 있는 의견들이다. 그래. 자극. 다양한 언어의 자극이 언어에 대한 호기심을 끌어낼 수도 있겠다. 나도 여기 와서 영어는 물론 스페인어에도 관심이 생겼다. 다양한 언어의 자극이 필요하구나.


2023.09.21. 목요일 [울지마.]

평소 보다 1시간 일찍 일어나 김밥 7줄을 말았다. 한국에서 만드는 것만큼 풍성한 맛을 내기는 어렵지만 그래도 당근, 파프리카, 단무지 등으로 깔끔한 채식김밥을 말았다. 색깔이 예쁘다. 나는 '루시'에게 의미있는 선물을 주고 싶어서 며칠 전부터 그녀의 모습을 스케치했다. 내 취미 중 하나가 그림 그리기이다. 수업이 시작되기 전에 '루시'에게 나의 스케치를 선물하려고 그녀의 교실에 갔는데 아직 오지 않았다. 다시 내 교실로 돌아와 책을 보고 있는데 '루시'가 슬쩍 들어오더니 작은 선물이라며 무언가를 준다. '루시'도 나와 같은 마음이었다. 브라질에서 가져온 작은 가방과 열쇠고리다. 그리고 편지도 있다. 나도 슬그머니 나의 스케치를 내밀었다. 그녀는 아주 좋아하면서 액자에 넣어서 자기 방에 걸어두겠단다.

문법 수업은 오늘도 보강교사가 느릿느릿 문법 설명을 한다. 그리고 연습문제를 겨우 하나 풀었다. 우리가 숙제로 해온 것이라 빨리빨리 답만 확인하면 되는데 그녀는 너무 느리게 설명한다. '스튜어트'가 돌아오는 월요일이 기다려진다.

읽기와 쓰기 수업은 광고 글쓰기를 했다. 그런데 수업이 시작된 후 조금 있다가 교장이 들어와 수업을 경청하다가 나갔다. 아까 수업 시작 전에 교장과 보강교사가 뭔가 이야기를 나누었던 것이 생각났다. 아마도 둘 중 하나일 것이다. 누군가 이 보강교사의 수업에 대해 불만을 이야기해서 수업이 어떤지 보러 들어왔거나, 아니면 원래 수업교사인 '앤'이 학원을 그만두어서 보강교사에게 이 수업을 지속적으로 맡길지 판단하기 위해 들어왔거나. 부디 후자가 아니길 바란다.

점심 시간. 드디어 이별 파티다. 우리는 평소 이용하던 학생 라운지가 아니라 '루시'와 그 친구들이 주로 수업을 듣는 교실에 판을 벌렸다. 대만의 국수와 팥죽, 한국의 김밥과 만두, 브라질의 버섯치즈요리, 일본의 국수와 과자 등등 한 상이 가득하다. 이것저것 맛보느라 벌써 배가 너무 부르다. 다들 신나게 먹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이별에 대한 걱정이 가득하다.

대만 자매가 '루시'에게 지금 심정이 어떠냐고 물었다. 그 순간, 다들 갑자기 눈시울이 붉어졌다. '울지마.' '젠'이 외쳤다. 누가 한 명 울면 다 울게 되니까 절대 울지 말라고 했다. 서로 서로 울지마, 울지마라고 말하고 겨우 위기를 넘기고 또 음식 이야기를 나누었다. 대만 자매들이 정성들여 만든 캐릭터 도시락을 누가 먼저 파괴할 것인가를 두고 옥신각신했다. 너무 귀여워서 아무도 파괴 못하겠다고 하자 결국 만든 친구들이 파괴했다. 음식이 어느 정도 마무리되고 있는데 '젠'의 눈시울이 붉어진다. 그녀는 김치가 너무 매워서 그런거라고 핑계를 대다가 갑자기 울음을 터트렸다. 너희들이 처음 왔던 날이 생각난다면서. 에구구! 여기저기서 훌쩍훌쩍거린다.

누군가 이 장면을 보면 이게 뭔가 싶을 것 같다. 세계의 음식들을 놓고 신나게 먹다가 갑자기 울다니. 그러나 이럴 시간이 없다. 곧 수업이 시작된다. 이 교실에서 오후 수업을 듣는 학생들이 차마 들어오지 못하고 밖에 서 기다리고 있다. 갑자기 분주해지면서 눈물바다 직전에 수습되었다. 탁자를 치우고 원래대로 복귀시키고 의자도 정리했다. 그 와중에 단체사진을 찍고 친구들끼리 사진을 찍고 난리다.

정말 한바탕 교실을 정리하느라 난리를 치르고 나서 나는 학생 라운지로 왔다. 대만 친구 '제니스'와 함께 나란히 앉아서 음식이야기를 나누었다. 이런저런 수다를 떨다가 숙제를 했다. 근데 숙제가 별로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에휴! 이별은 언제나 어렵다. 한국 친구들은 마음만 먹으면 한국에서 다시 만날 수 있지만 외국 친구들은 어렵다. 게다가 멕시코나 브라질 친구들은 아마 다시 만나기 어려울 것이다. 물론 내가 여행을 가면 되겠지만 그게 어디 쉽나? 마음이 어지럽다.

extra 수업의 주제는 '날씨'다. 단어도 배우고 계절에 대한 이야기도 나누었다. '마리아나'가 이번에도 가을에 대한 시를 한편 낭독하자고 해서 다같이 한 줄씩 읽었다. 나는 부끄럽지만 영어로 시를 써 보았다고 했다. '마리아나'가 아주 좋아하면서 읽어보란다. 나의 아주아주 짧은 동시를 읽었다. '마리아나'가 나의 시를 자기가 가져가서 타이핑해서 자신의 교실에 붙여 놓아도 되겠냐고 묻는다. 오! 영광이다. 좋다고 했다.

수업이 끝나고 '루시'를 찾았는데 그녀는 볼일이 있어서 벌써 갔단다. '루시'는 오늘부터 몬트리올로 여행을 갔다가 월요일에 밴쿠버에 돌아왔다가 화요일에 브라질로 떠난다. 인스타그램의 채팅방에서 '루시'는 월요일 오후에 자신이 학원에 올거니까 그때 작별 인사를 나누자고 한다. 그래. 그러자. 이별을 잠시 유보하자.

도서관에 가서 미친 듯이 문법 공부를 했다. 처음부터 쭈욱 다시 복습을 하다보니까 예전에 써 둔 메모들이 눈에 띈다. 처음 만난 친구들 이름을 급히 메모한 것부터 너무너무 어려운 내용에 커다란 물음표를 붙인 것까지 다양한 메모들이 보인다. 새록새록 추억이 떠오른다. 에휴. 공부에 집중이 안된다.


2023.09.22. 금요일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구나.]

오늘은 금요일이지만 학원 수업이 없다. 왜냐면 학원의 교사들이 워크샵을 하기 때문이다. 새로운 교육과정에 대해 논의하고 단합대회 같은 것도 하는 것 같다. 느즈막히 일어나 집에 있는 야채들을 몽땅 때려넣고 치즈까지 넣어서 오믈렛을 만들었다. 밥 위에 오믈렛을 올리고 케첩을 뿌려서 도시락 2개를 만들었다. 우리 식구들에게 줄 선물이다. 내일 그들은 떠난다. 가기 전에 한번이라도 더 음식을 해주고 싶다.

오전에는 그냥 집에서 쉴까 하다가 밖으로 나왔다. 내일부터 비가 온다고 하므로 비가 오기 전에 야외활동을 해야겠다. 캐나다 친구가 레이비쿠버에서 우울증에 걸리지 않으려면 해가 나면 무조건 밖으로 나가라고 조언해주었다. 밴쿠버의 유명한 공원 중 하나인 '퀸 엘리자베스' 공원을 산책하고 나서 메트로타운에 가서 쇼핑까지했다.

집에서 점심을 먹고 오후에는 학원 친구들과 함께 '사이언스월드'에 가기로 해서 다시 길을 나섰다. 평소에 이곳은 3만원 정도의 입장료를 받는데 오늘은 과학 이벤트로 무료란다. 나는 과학이나 수학하고는 친하지 않아서 이런 곳에 자발적으로 찾아오지는 않는다. 점심을 함께 먹는 친구들이 같이 가자고 해서 따라 나섰다. 여기는 아이들이 주로 체험학습하러 오는 곳인데 오늘은 다양한 사람들이 찾았다. 역시 공짜는 다들 좋아한다. 이것저것 전시물도 있고 직접 해결하는 퍼즐이나 체험하는 것들도 있다. 퍼즐 풀기는 재밌었다. 쉬운 것도 있고 굉장히 어려운 것도 있다. 다들 이것저것 만져보고 해결해보았다. 어떤 문제는 우리가 다함께 힘을 합쳐서 풀기도 했다. 나름 재밌는 경험이었다.

나는 MeetUp의 '영어회화' 모임이 있어서 친구들과 작별하고 일찌감치 '사이언스월드'를 빠져나왔다. 카페에 도착하니까 오늘은 사람이 그렇게 많지 않다. 저번에는 말이 잘 통하는 일본, 홍콩, 이란, 캐나다 사람과 대화를 나누었는데 오늘은 그 사람들이 보이지 않았다. 낯설은 사람들과 앉아서 서로 어색해 하고 있는데 다행히 안면이 있는 캐나다 사람이 한 명 왔다. 덕분에 조금 분위기가 나아졌다.

그리고 '사이프러스'라는 유럽의 낯선 나라에서 온 사람과도 이야기를 나누었다. '에디'라는 사이프러스 사람은 여기저기 전 세계를 돌아다니다가 지금은 캐나다에 정착했단다. 그래서 시민권을 따기 직전 단계까지 왔단다. 그런데 잠시 후 우리 테이블에는 다들 자리를 뜨고 사이프러스 사람과 나만 남았다. '에디'는 오늘과 내일 근처의 경기장에서 유명한 가수의 공연이 있단다. 그래서 오늘 여기 사람이 적게 모인 거라고 한다.

'에디'와 이야기를 나누다보니까 그 나라도 남과 북으로 나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짧은 영어로 열나게 남한과 북한의 관계 이야기를 했다. 사이프러스는 작은 섬나라인데 남쪽과 북쪽의 민족이 다르고 언어도 다르단다. 하지만 자신은 작은 섬나라가 둘로 나뉘어 있는 것이 말이 안된다고 생각한단다. 그래. 나도 그렇게 생각해. 작은 나라가 둘로 쪼개지는 것은 옳지 않아. 게다가 한국은 하나의 민족이고 언어도 같은데 억지로 쪼개진거야. 그는 한국의 경우 남한 사람과 북한 사람이 서로 왔다갔다 할 수 있는지 물었다. 완전히 막혀있다고 하니까 놀란다. 사이프러스도 예전에는 그랬는데 최근에는 사람들이 왔다갔다 할 수 있게 되었단다. 새로운 세대가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겨서 다행이란다. 그러게 너희는 좋겠다. 우리는 완전히 막혀있어. 그래서 걱정이야. 어쩌다보니 분단 국가의 이야기로 공감대가 형성되어 한참 떠들었다.

'에디'는 대화가 끝날 무렵에 수줍게 고백했다. 자신은 원래 사람들과 만나서 이야기하는 것이 성격에 맞지 않아서 어렵단다. 그래서 여기 나오는 것이 늘 새로운 도전이었는데 오늘 즐거웠단다. 나는 그런 느낌을 전혀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나도 오늘 너와 대화해서 즐거웠다고 말했더니 그는 그러면 오늘 자신은 성공한 것이란다. 그래. 다음에도 또 즐겁게 대화해 보자.

집에 와보니까 우리 식구들이 내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같이 저녁을 먹자고 한다. 그동안 나에게 너무 많이 얻어먹었다면서 오늘은 나에게 연어와 고기를 구워주겠단다. 어머나 고마워라. 나도 혹시나 싶어서 저녁 때 이별주 한잔 할 요량으로 그들이 좋아하는 맥주 블랑을 사 놓았다. 분주하게 저녁 준비를 하는데 앞집에 사는 대만 자매들이 왔다. 그들은 쿠킹 클래스 때 자연스럽게 우리 집 학생들과 안면을 텄다. 그리고 어제는 내가 없을 때 우리 집에서 요리 도구 몇 가지를 빌려갔었단다. 아까 인스타 메신저로 나의 귀가 시간에 맞추어 도구를 돌려주러 올 건데 보답으로 쿠키도 가져올 거라고 했다.

그들은 고기를 굽느라 연기가 가득한 우리 집을 보더니 놀라면서 환풍기가 없냐고 묻는다. 우리 집은 환풍기가 없다. 그들은 우리집의 전자렌지를 보더니 자기네 것이랑 다르다면서 나에게 자기 집에 와보란다. 그래서 갑자기 앞집을 방문하게 되었다. 정말 그들과 우리 집의 구조가 다르다. 그들은 요리할 때 연기를 빼내는 환풍기가 있다. 하지만 그들의 집에는 문을 열 수 있는 창문이 없다. 아, 그게 다르구나. 우리는 창문이 있다. 대신 환풍기가 없다. 방의 구조도 다르다. 그들은 복도형으로 방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다. 여러가지가 다르구나. 갑작스러운 집 구경을 하고 다시 우리집으로 돌아왔다.

연어, 삼겹살, 목살 등으로 우리는 신나게, 한편으로는 아쉽게 저녁 만찬을 즐겼다. 우리 식구들은 한국에 들어가기 전에 뉴욕으로 여행을 간단다. 뉴욕에 가서 여행할 곳이나 숙소 이야기며, 한국에 돌아가서의 계획 등으로 한참 이야기 꽃을 피웠다. 처음 만났을 때의 이야기, 멕시코 배우 친구와의 언쟁, 소풍 갔던 이야기 등을 하면서 시간이 참 빨리 지나간다고 느꼈다. 이제 집에 와도 우리 식구들이 없다. 뭔가 음식을 살 때 잘 조절해서 사야겠다. 너무 많은 양을 사면 안된다. 이제는 먹어줄 식구들이 없다. 우리는 한국에 가서 또 보자고 했다. 그래. 우리는 한국에서 만날 수 있어.


2023.09.23. 토요일 [다양한 주제로 대화하자.]

토요일이라 늦잠을 자도 되는 날이다. 하지만 알람 없이 눈을 떠도 결국 비슷한 시간에 일어나게 된다. 느그적거리면서 일어나서 나와보니까 우리 식구들이 떠날 준비를 하고 있다. 아직은 시간이 있는 듯하여 얼른 김치볶음밥을 만들고 그 위에 오믈렛을 올려서 간단한 아침식사를 준비했다. 먼길 떠나기 전에 잘 먹여서 보내고 싶었다. 그들은 안그래도 아침거리가 없어서 집 앞 카페에 가서 간단한 먹거리를 사오려고 했단다. 타이밍이 잘 맞아서 다행이다.

공항으로 떠나는 식구들을 마지막으로 배웅하고 나서 대청소를 했다. 마음이 심란할 때는 청소만한 것이 없지. 청소를 하고 나서 도서관에 가서 공부할까 하다가 그냥 집에서 공부를 했다. 날씨가 마음처럼 심란하다. 비가 추적추적내린다. 단단히 마음을 먹고 문법 복습을 열나게 했다.

어느새 시간이 훌쩍 지나서 '한영언어교환' 모임에 나갈 시간이 되었다. 그동안 매주 수요일에 나갔던 모임인데 그들은 수요일 모임과 토요일 모임을 운영하고 있다. 이제 많은 사람들과 친해져서 어느 자리에 가서도 편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그래서 활동을 늘려보기로 마음 먹었다. 게다가 토요일 모임은 우리 집에서 걸어서 30분 거리에 있는 카페에서 진행된다. 정말 기숙사의 위치가 너무너무 훌륭하다. 비가 오지만 씩씩하게 걸어갔다.

카페에 좀 일찍 도착했는데 벌써 사람들이 제법 있다. 점차 사람들이 더 많아져서 카페가 가득 찼다. 자리가 없어서 일부는 스탠딩으로 대화를 나누었다. 대충 50명이 넘게 모인 것 같다. 한국사람이 전체의 절반 정도 되는데 그 중에 절반 정도는 캐나다에서 최소한 1년이상 거주한 사람들이다. 그 중 일부는 캐나다 시민권을 가진 사람들도 있다. 오늘 처음 참여하는 사람들 중 여기에 한국사람들이 많아서 영어 연습이 잘 될까 걱정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하지만 걱정할 필요가 없다. 여기서는 한국사람들끼리 그룹이 되어도 영어를 사용한다. 영어를 잘하는 한국사람들은 나처럼 영어 연습이 절실한 사람의 마음을 잘 이해하고 도와준다.

오늘도 여러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었다. 주제는 주로 자기소개, 캐나다에 와서 어디 가봤는지, 여행 경험 등이다. 그러고 보니까 주제가 늘 반복되는 것 같다. 이란 아저씨 '케빈'이 이런 모임에서 너무 반복되는 주제로 이야기를 하면 영어가 잘 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주제를 여러 가지로 생각하고 노력해야 영어 연습에 도움이 된다고 조언해 주었다. 맞다. 전적으로 동감한다. 대화 주제를 좀더 다양하게 가지고 있어야겠다. 그래. 다음번 모임까지 새로운 주제를 생각해오자.

집에 오니까 미국 친구 '메기'가 요리를 하고 있다. 그녀는 전에 자신의 엄마 레시피대로 닭고기 요리를 하고 싶은데 이곳에서 구하지 못하는 치즈가 있다고 했었다. 오늘 그 치즈를 구했다면서 요리를 위한 쿠커까지 사들고 왔다. 그 요리는 거의 5시간 정도 약한 불에 뭉근하게 끓여야해서 슬로우쿠커가 필요하단다. 지금부터 본격적인 요리를 시작할 건데 오늘 저녁부터 시작해서 내일 아침이면 먹을 수 있을 거란다. 그래? 내일 얻어먹을 수 있겠다. '메기'는 전에도 자기 할머니 레시피로 만든 음식을 맛보라고 주었다. 아싸, 내일이 또 기대된다.


2023.09.24. 일요일 [캐나다에서 소맥]

아침에 일어나보니까 '메기'의 요리가 완성되었다. 내가 나오니까 마침 그녀는 식탁에서 밥을 먹고 있다. 아침 인사를 나누고 보니까 밥을 아주 많이 했다. 그녀는 자신이 양을 잘 조절하지 못해서 밥을 많이 했단다. 그래? 그러면 내가 먹어주지. 닭고기 요리를 맛보니까 아주 맛있다. 더블치즈, 블랙빈, 닭고기 그밖에 다양한 향신료들이 들어갔단다. 치즈가 잔뜩 들어가서 많이 느끼할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다. 물론 사람마다 입맛은 다르다. 내 입맛은 완전 서양식이다. 내가 아주 맛있게 먹으니까 그녀는 신나서 요리 과정을 설명해준다. 하지만 영어 원어민의 말은 역시 내게는 너무 장벽이 높다. 내 표정을 보더니 그녀는 레시피를 메모해서 보여준다. 땡큐!! 읽어보니까 생각보다 간단하다. 쿠커에다가 모든 재료를 때려넣고 끓이면 된다. 오직 시간과 인내심만이 필요하다. 우리나라의 곰탕이 생각나서 짧은 영어로 곰탕을 설명해주었다. 내가 잘 설명하지는 못한 것 같다. 좀더 공부해서 다시 설명해주어야겠다.

미국식 아침을 잘 얻어먹고 오전에는 열심히 문법 공부를 했다. 그리고 쓰기 숙제도 했다. 내가 이 나이에 이렇게 열심히 공부하게 될 줄은 몰랐다. 정말 농담이 아니라 고3때 이렇게 열심히 공부했으면 서울대를 갔을 것 같다. 그런데 비가 와서 그런지 너무 춥다. 아직 난방을 할 시기는 아니지만 나는 춥다. 여기는 길거리에 다양한 옷을 입은 사람들이 다닌다. 반팔을 입고 배꼽을 드러내고 다니는 사람부터 얇은 패딩을 입고 다니는 사람까지 다채롭다. 너희들은 아직 더울지 몰라도 나는 춥다. 결국 월마트에서 사온 간이 난방기를 틀고 옷을 껴입었다. 지금 아프면 안된다. 절대 안된다.

저녁에는 미국 친구 '메기', 일본 친구 '유카'와 함께 밥 먹으러 나갔다. 지난번에 이야기를 나누다가 '유카'가 귀국하기 전에 함께 저녁을 먹으러 나가자고 약속을 했었다. 오늘이 그날이다. '메기'에게는 알러지가 있어서 못 먹는 음식이 있단다. 좀 복잡하던데 특정 곡물(밀과 보리)에 대한 알러지라고 들었다. 처음 들어보는 알러지다. 그래서 먹을 수 있는 음식이 매우 한정적이란다. 그녀에게 식당을 고르라고 했다. 그게 안전할 것이다.

그녀는 우리 집에서 세 블럭 떨어진 곳의 식당으로 안내했다. 동양식과 서양식이 혼합된 퓨전 레스토랑이다. 각자 자기 입맛에 맞는 음식을 골랐다. 그리고 '유카'가 좋아하는 소맥과 미성년자인 '메기'를 위한 음료수도 시켰다. 우리는 소맥과 음료수로 건배를 했다. '유카'는 소주만 먹으면 쓰지만 이렇게 맥주랑 섞으면 맛있다고 좋아한다. 캐나다에서 미국 친구, 일본 친구와 함께 소맥을 마시게 될 줄은 몰랐다.

음식은 그런대로 괜찮았다. 밥이 적절하게 고슬고슬했고 고기도 맛있었다. 반찬이 별로 다양하지 않아서 좀 아쉽다. 그러나 해외에서는 우리나라식의 반찬을 기대하면 안된다. 밥을 먹으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솔직히 나는 내용의 일부만 알아들었다. 이곳 식당의 분위기 얘기, 학교의 수업 시간이 서로 다르다는 얘기, 아침에 먹은 미국식 닭고기 요리 얘기 등을 나누었다. 대략적인 윤곽만 겨우 따라갔다. 역시 영어 원어민의 영어를 듣는 것은 비영어권 친구들의 영어를 듣는 것과는 다르다. 처음 '메기'를 만났을 때는 10%도 못알아들었는데 이제는 20% 정도는 알아듣는다. 나의 목표는 내가 떠나기 전에 이 친구의 말을 50%까지 알아듣는 것이다. 그때까지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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