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로 작가 데뷔?

새 출발을 준비하며

by 바람

2023.09.25. 월요일 [3달이 넘었구나.]

아침부터 인스타의 메신저가 분주하다. '루시'가 오후에 학원으로 온다고 해서 수업 끝나고 친구들과 다같이 만나서 카페에 가기로 했다. 잠시 유보했던 '루시'와의 이별을 더 이상 미룰 수 없게 되었다. 슬픈 마음을 안고 학원으로 향했다.

문법 시간에 레벨 테스트를 보았다. 역시나 어렵다. 이곳에 온지 3달이 넘었으므로 자동으로 레벨 업을 할 수도 있지만 기왕이면 좋은 점수로 넘어가고 싶다. 내일 채점 결과를 확인해 봐야겠지만 그게 쉽지 않을 것 같다. 이번 주에도 '스튜어트'는 바쁘다. 내일 또 보강교사가 들어온단다.

듣기 수업에는 '윌'이 갑자기 오지 않았다. 오늘 단어시험이 예고되어 있었는데 보강교사가 단어 시험은 없다고 한다. 무슨 일로 '윌'이 오지 않았는지 몰라도 시험이 없다니까 다들 좋아한다. 나도 그렇다. 보강 교사는 새로운 단원의 진도를 나갔다. 그런데 이 단원은 내가 이곳에 처음 왔을 때 진도를 나간 바로 그 단원이다. 3달이 된 것을 다시 한번 실감했다. 나의 첫번째 메모가 보인다. '5번 읽고 겨우 숙제함. 흐흑.' 첫날 숙제를 집에서 하는데 도무지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서 5번 읽고 겨우 숙제를 했었다. 멘붕의 첫날, 첫번째 주에 느낀 절망감이 생각난다. 시간이 참 빠르게 흘렀다. 감회가 새롭다.

읽기와 쓰기 수업은 그동안 새로운 단원의 진도를 나가지 않더니만 오늘 갑자기 새 단원을 펼치란다. 그리고 여기까지가 내일의 레벨 테스트 시험 범위란다. 짐작컨대 이 보강 교사는 원래의 담당 교사가 돌아오면 진도를 나가라고 새로운 단원을 미루어두고 있던 것 같다. 그러다가 막상 시험이 코앞에 닥치니까 오늘 딱 하루 진도를 나가고 내일 시험을 보라는 것이다. 학생들 모두 뿔딱지가 났다.

점심 시간이 되었다. '루시'와 몇 명의 친구들이 떠난 점심시간이다. 남아있는 친구들이 모여서 수다를 떨면서 밥을 먹었다. 오늘도 게임이 진행되었다. 오늘 상품은 선상파티 초대권이라니까 몇 명의 친구들이 아주 적극적으로 나선다. 특히 우리 '젠'이 아주 열정적이다. 게임은 미로찾기인데 팀원 중 한 명은 눈을 가리고 미로가 그려진 종이 위에 연필을 올린다. 나머지 사람들이 방향을 영어로 알려주어서 미로를 빠져나가는 것이다. 마음이 급하니까 영어가 아니라 자기나라 말들이 튀어나오는 친구들이 있어서 한참을 웃었다.

게임이 끝난 후 학생 라운지에서 숙제를 열나게 하고 있는데 갑자기 '스튜어트'가 나에게 왔다. 그리고는 내일 보강 교사가 들어오면 채점하는 방식에 대해 설명을 해주란다. 보강 교사가 많이 서툴러서 아무래도 걱정이 되나보다. 학생들의 이름을 가린 답안지를 나눠주고 채점 후에 해당 학생에게 돌려주는 방식이다. 내가 그걸 영어로 잘 알려줄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최선을 다해 설명해보겠다고 했다.

회화 수업은 중고 제품과 새 제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중고 제품을 사면 쓰레기도 줄이고 환경에 좋다는 건 알지만 실천은 어렵다. 그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질문 중에 '누군가 살던 집과 사용하던 차 중에 어느 것이 더 위험할까?'라는 것이 있었다. 나는 당연히 사용하던 차가 더 위험하다고 생각했다. 중고차는 사고 이력을 확인하지 않으면 위험하지 않을까? 그런데 대만 친구가 누군가 살던 집이라면 집의 역사를 모르고 혹시 귀신이 있을 수도 있단다. 상상력이 풍부한 친구다. 그래. 그럴 수도 있겠다. 갑자기 전에 보았던 공포 영화가 떠오른다. 하필이면 무서운 영화가 떠오르다니. 이따가 밤에는 잊어버리기를 바란다.

수업이 끝나고 1층에 내려가보니까 '루시'가 기다리고 있다. 그녀는 지난 목요일에 학원이 끝나자마자 토론토 여행을 갔다가 어제 밴쿠버로 돌아왔단다. 그리고 내일 새벽 비행기로 브라질로 떠난다. 떠나기 전에 우리와 마지막 작별인사를 하려고 왔다. 그동안 유보했던 '루시'와의 작별 시간이 되었다. 몇 명의 친구들과 함께 근처 카페에 가서 커피를 마시면서 그녀의 토론토 여행 이야기도 듣고 사진도 구경했다. 그리고 다같이 사진도 찍으면서 작별을 아쉬워했다. 우리는 인스타그램에서 안부를 나누자고 했다. '루시'는 영어 공부를 위해서라도 가끔 화상 통화를 하자고 한다. 그래. 그러면 정말 더 좋지.

아쉬운 이별을 하고 대만 자매들과 함께 집으로 돌아왔다. 대만 자매들은 그들의 열쇠를 친구가 빌려갔단다. 지금은 나와 함께 가야만 기숙사의 현관을 통과하고 엘리베이터를 탈 수 있다. 그래서 아까 내가 내려오니까 몹시 좋아했구나. 집으로 돌아오면서 그들은 나에게 언제가 마지막 날이냐고 묻는다. 11월 셋째 주라고 하니까 아직은 시간이 좀 있다면서 안심한다. 그들은 내년까지 여기에 있을 예정인데 그동안 너무 많은 친구들이 떠났단다. 그리고 친구들이 떠날 때마다 너무 슬픈단다. 나도 그래. '루시오'도 떠나고 '루시'도 떠났다. 이별은 언제나 마음이 아프다.

대만 자매들은 나와 함께 사는 미국 친구 '메기'의 영어가 너무 빠르다고 한탄했다. 전에 우리 집에 그릇과 요리 도구를 빌리러 왔을 때 미국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너무 빨라서 못알아 들었다고 한다. 같이 사는 나는 어떻겠니? 그래도 나는 처음보다는 조금 나아져서 저녁도 함께 나가서 먹었다니까 부러워한다. 가끔 우리집에 와서 영어 듣기 훈련을 해야겠단다. 자주 놀러오라고 했다.


2023.09.26. 화요일 [영어로 작가 데뷔?]

문법 수업 시간에 보강 교사가 들어왔다. 나는 그녀에게 '스튜어트'가 하는 채점 방식을 설명해 주었다. 다행히 교사는 나의 설명을 알아듣고는 그대로 진행했다. 채점 결과, 나는 레벨 업에 필요한 80점을 넘기지 못한 76점을 받았다. 실망스러운 점수다. 물론 3달이 넘어서 자동으로 레벨 업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그냥 여기 있는게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첫째, 아직도 교사의 설명 중에서 30%정도는 이해하지 못하는데 상위 레벨에서는 더 많이 놓칠 것 같다. 둘째, 아직도 시제, 형용사와 부사 등의 기본적인 문법을 제대로 적용해서 말하지 못하는 것이 많다. 이런 것이 내 언어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셋째, 지금까지 학생들의 평을 들어보면 '스튜어트'가 가장 잘 가르친단다. 레벨 업을 한 여러 친구들이 새 문법 교사의 수업 방식에 대해 불만을 말했다. 레벨 업은 좀더 신중해야할 것 같다.

듣기 수업은 오늘도 '윌'이 오지 않았다. 보강 교사와 함께 단어도 공부하고 방송을 듣고 문제도 풀었다. 나는 대부분의 내용을 알고 있어서 여유롭게 문제를 풀었다. 내 교재에 답이 적혀있는 것을 보고 내 옆의 브라질 친구가 놀란다. 내가 메모한 날짜를 짚어주니까 이해를 한다. 그래. 이제 이 수업을 떠날 때가 되었어. 아마도 듣기 수업은 자동적으로 레벨 업이 될 것 같다.

읽기와 쓰기 수업 시간에는 레벨 테스트를 보았는데 시험 범위의 절반만 배운 상태라서 엉망진창으로 풀었다. 이런 상황을 예상했는지 학생의 절반이 결석을 했다. 일종의 시험 거부를 한 셈이다. 나도 땡땡이칠 걸 하는 후회가 든다. 그런데 졸업을 위해 레벨 업을 해야만 하는 학생들은 어쩌냐?

점심 시간에 게임이 이어졌다. 이번에는 동그란 고무줄에 실을 여러가닥 묶어서 팀원들이 실을 각각 잡고 힘을 조절해서 컵을 옮겨서 쌓는 협동 게임을 했다. 처음에는 좀 해메었는데 어떻게 하면 놓치지 않는지 다들 감을 잡고 힘조절을 침착하게 해서 우리팀이 이겼다. '젠'이 매우 행복해한다. 친구가 행복하니까 나도 덩달아 행복해졌다.

extra 수업 시간에 '마리아나'가 나의 시를 가지고 멋진 작품을 만들어 왔다. 그녀는 내 시를 타이핑해서 그림을 넣어 출력한 다음에 낙엽으로 예쁘게 꾸며 주었다. '마리아나'는 나에게 이 시를 사진으로 찍어서 학원의 소셜미디어에 올려도 되겠냐고 묻는다. 내가 영광이라고 했더니 같이 내려가자고 한다. 교장이 이렇게 아름다운 시를 쓴 학생이 누군지 궁금해 한단다. 교장은 이 시를 어떻게 쓰게 되었냐고 묻고는 자기는 너무 감동했다면서 특히 둘째 구절이 너무 좋단다. 그리고 얼떨결에 시 작품을 들고 사진도 찍었다. 그것은 학원의 인스타그램에 올라갔다. '마리아나'가 진심으로 기뻐한다. 나는 그녀가 예쁘게 꾸며 주어서 더 좋다고 했다. 나에게 이 작품을 집에 가져가겠냐고 묻는데 가져가다가 망가질 것 같아서 그녀의 교실에 붙여두기로 했다.

도서관에 가서 공부를 하다가 도서관 4층의 세미나룸에서 진행되는 '글쓰기' 모임에 참여했다. 영어 원어민들의 글쓰기 모임이라 많이 떨렸는데 생각보다 좋은 경험이었다. 그들의 대화는 50% 정도 이해했고 그들의 글은 20% 정도 이해했다. 내 의사 전달은 대부분 잘 한 것 같다. 모임을 신청한 사람은 10명이 넘는데 날씨가 안좋아서 그런지 실제로 온 사람은 6명이었다.

이 모임은 서로 자기 소개도 하지 않고 곧장 주최자가 토픽을 주고 그 자리에서 글쓰기를 해서 서로 낭독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처음에는 좀 당황스러웠다. 이래서 다들 노트북을 가지고 왔구나 싶었다. 나는 그들 사이에서 꿋꿋하게 공책을 펼치고 나의 스토리를 썼다. 토픽은 'TV 시트콤 인물이 된다면 어떤 인물이 되고 싶은지'와 '내가 초능력을 갖게 된다면 무엇을 할지' 중에서 선택하는 것이었다.

나는 고등학교를 배경으로 한 시트콤의 교사가 되는 것으로 글을 썼다. 교사가 학생들을 이해하고 사랑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도 인간이기에 실수를 하기도 한다. 나는 교사가 학생과 함께 성장한다고 생각한다. 대충 이런 내용의 이야기를 썼다. 이것은 나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그리고 평소의 내 생각이다. 아직은 내 영어 실력이 신통치 않아서 쉬운 단어와 쉬운 문장으로 썼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도저히 문장으로 표현이 안되는 것은 번역기의 도움도 살짝 받았다. 그래도 최선을 다해서 이야기를 써서 발표했다.

마침 영어 교사가 참여했는데 그녀는 내 발표를 듣더니 아주 깊이 공감한다고 했다. 역시 경험에서 우러난 이야기는 잘 통한다. 이렇게 내 발표는 그럭저럭 했지만 역시 그들의 영어를 알아듣는 것은 너무 어려웠다. 어떤 사람은 미래 사회의 기계와 인간의 삶을 소재로 한 시트콤을, 어떤 사람은 범죄 스릴러 시트콤을 생각해냈다. 그 중 범죄 스릴러 시트콤을 쓴 사람은 아무래도 현직 작가인 듯하다. 그녀가 미리 준비해온 자신의 글을 보여주는데 이게 범상치 않다. 아무래도 시나리오 작가인 듯하다.

다들 발표를 한 후에 나는 내가 쓴 시를 보여주었다. 그들은 아름다운 시라면서 한 사람이 낭독을 해주었다. 영어 교사는 내 시가 좋다면서 자기도 시 한 편이 있다면서 읽어주었다. 그녀의 시도 가을에 대한 5줄 짜리로 짧은 시였다. 내가 구현하고 싶었던 유사한 발음을 활용한 운율감을 잘 살린 시였다. 이렇게 캐나다 사람들과 글쓰기 모임을 했다. 비록 나는 다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흐름을 놓치지 않고 참여할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하다. 영어를 배우러 와서 참 별거를 다 하는구나. 이러다가 영어로 작가 데뷔하는 거 아닐까라는 엉뚱한 상상을 해보았다.


2023.09.27. 수요일 [다양한 사람들]

문법 수업은 어제에 이어서 오늘도 보강 교사가 들어왔다. 그녀는 아주 느릿느릿 진도를 나갔다. 아마도 내일 '스튜어트'가 돌아오면 그녀의 느린 진도에 좀 놀랄 것 같다. 그리고 나의 시험 점수에도 놀라지 않을까? 내가 인스타 메신저로 '루시'에게 문법 시험을 너무 못봤다고 했더니 '루시'는 레벨 테스트가 전부는 아니라고 위로해 주었다.

듣기 수업 시간에 '윌'이 돌아왔다. 그동안 감기에 걸려서 아파서 못 나왔단다. 지금도 완전하지는 않지만 한결 나아졌단다. 여전히 유쾌한 '윌'이다. 그는 오늘도 이상한 영어, 미친 캐나다인 등 무엇이든 질문하라고 했다. 나는 다음 주의 공휴일에 대해 물었다. 10월2일(월)은 '진실과 화해의 날'인 9월30일(토)에 대한 대체 공휴일이다. '진실과 화해의 날'이 무엇인지 물어보았다.

캐나다의 아픈 역사를 잊지 않기 위한 날이다. 캐나다 정부가 아메리카 원주민 아이들을 모아서 강제로 기숙학교에 보내 원주민 언어를 사용하지 못하게 하고 자신들의 기준에 맞게 교화시키려 했단다. 심지어 기숙학교에서 죽어간 아이들도 있는데 그 사실을 가족에게도 알리지 않았단다. 그렇게 죽거나 행방불명된 원주민 아이들이 수천 명에 이른다고 한다. 캐나다 정부는 이 충격적인 학대의 사실을 잊지 않고 교훈으로 삼으려고 9월30일을 '진실과 화해의 날'로 정했단다. 그리고 이 날은 오렌지색 셔츠를 입는 것이 전통이다. 한 원주민 아이가 할머니가 주신 오렌지색 티셔츠를 입고 학교에 갔는데 그들이 강제로 옷을 벗긴 사건이 있었단다. 오렌지색 옷을 입음으로써 역사의 교훈을 잊지 않으려는 것이다. 오늘날 캐나다는 인권, 평등, 다양성을 포용하는 나라로 알고 있지만 이런 어두운 역사가 있었다는 것이 놀랍다. 그리고 그것을 정면으로 직시하고 잊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것도 또 놀랍다. 여러 가지 면에서 흥미로운 나라다. 나는 오렌지색 티셔츠가 없으니까 대신 오렌지색 숄을 두르고 다녀야겠다.

'윌'은 진도를 나가면서 내 책을 슬쩍 보더니 얼른 가서 교재를 복사해 왔다. 쓰여진 답을 보지 말고 풀란다. 뭐 굳이 이런 친절을. 그런데 신기한 것은 분명 배운 내용인데도 어떤 단어는 몹시 낯설다는 점이다. 처음 보는 단어처럼 느껴지는 것도 있다. 복습이 더 필요하다.

읽기와 쓰기 수업은 어제 본 답안지를 학생들에게 무작위로 나눠주고 답을 불러 주더니 채점을 마친 답안지를 걷어갔다. 점수 확인은 안해주는거야? 그리고 이제서야 새로운 단원의 진도를 나간다. 시험 전에 설명했어야 하는 것을 시험이 끝난 후에 하는 것이다. 이 설명을 시험 전에 들었다면 몇 문제는 맞출 수 있었을 것이다. 이래저래 마음에 들지 않는 교사다. 하나가 마음에 들지 않으니까 계속 눈에 거슬린다. 이런 생각을 하지 말아야지. 누군가를 미워하면 고스란히 그 화가 나에게 돌아온다. 생각을 전환시키자. 그녀에게도 장점은 있다. 여러 글쓰기의 피드백은 열심히 해주었다. 그래. 그거라도 어디냐.

점심 시간인데 오늘은 게임이 없나 보다. 밥을 먹고 친구들과 수다를 떨었다. 어제 나의 시를 학원 인스타그램에서 봤다면서 친구들이 신기하다고 한다. 어떤 친구는 왜 시를 썼냐고 묻는다. 응? 왜 썼냐고? 그냥 가을에 대한 단어가 아름다워서라고 하니까 또 다들 감탄을 한다. 아, 그게 뭐 감탄할만한 일인가? 다들 그 정도의 감성은 있는거 아닌가?

extra 수업에서는 조건문을 복습했는데 아주 재밌었다. 각국에서 모인 학생들이 참으로 다양한 상상을 한다. '당신이 현존하는 가장 부유한 사람이라면 무엇을 하겠냐?'는 질문에 어떤 학생은 우주 여행을 하고 싶단다. 어떤 학생은 굶주린 사람들에게 음식을 주겠단다. '3D 프린터가 있다면 무엇을 하겠냐?'는 질문에 어떤 학생은 인간의 신체 장기를 만들어서 아픈 사람들에게 주겠단다. 오! 훌륭한 아이디어다. 다양하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듣는 것이 즐거웠다.

수업이 끝나고 '한영언어교환' 모임에 갔다. 오늘도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서 신나게 영어로 떠들었다. 오늘은 새로운 얼굴들이 많다. 자기 소개도 하고 이런저런 사는 이야기도 나누었다. 프랑스 사람 '멜리사'는 정말 유쾌하고 멋진 사람이다. 그녀는 7개 국어를 한단다. 몇 개의 언어는 전문적으로 잘 하기보다는 원어민과 대화를 나누는 정도의 수준으로 말할 수 있단다. 그거면 충분히 잘하는 거 아닌가? '멜리사'처럼 언어를 수집하듯이 배우는 사람들이 있다. 사람들 사는 모습이 다양하다.

집으로 오는 길에 한인 마트에 들러서 요리할 재료를 샀다. 한국은 지금 추석 연휴가 시작되었다고 하니까 뭔가 명절 음식 비스므레한 것을 만들어 친구들과 나눠먹고 싶다. 전을 만들고 싶지만 그건 너무 힘드니까 패스! 반찬 코너에 제수용 나물이 있다. 도라지와 고사리볶음이다. 거의 2만원돈으로 매우매우 비싸지만 비빔밥을 만들기 위해 큰 맘 먹고 샀다. 콩나물도 샀다. 비빔밥에 콩나물이 빠질 수 없지. 집에 와서 당근을 채썰어 볶고, 콩나물도 데쳐서 무쳤다. 그리고 지난번 사둔 상추도 씻어서 채썰었다. 나름 색깔이 화려한 비빔밥 재료가 준비되었다. 내일 아침에 도시락에 예쁘게 담아야지. 친구들과 즐겁게 나눠 먹을 생각을 하니까 신난다.


2023.09.28. 목요일 [아픈만큼 성숙해지고]

문법 수업은 드디어 '스튜어트'가 돌아왔다. 그는 나를 보자마자 레벨 업 얘기를 꺼낸다. 내가 '아마 안될껄'하니까 놀란다. 나는 레벨 테스트 점수가 80점을 넘지 못했다고 하니까 괜찮다고 한다. 3달이 지났고 리뷰 테스트들은 잘 봤으니까 충분히 레벨 업을 할 수 있다고 한다. 자기는 이미 나를 레벨 업 리스트에 넣었단다. 그러면서 만약 내가 원하지 않으면 다시 고려해 보겠다고 하면서 세 가지 옵션이 있다고 했다. 첫째, 레벨 업을 해서 간다. 둘째, 이 클래스에 남는다. 셋째, 같은 레벨의 다른 클래스로 옮긴다. 예전에도 그는 어떤 학생이 레벨 업에 자신이 없다고 하니까 이 세 가지 옵션을 제시했었다. 나에게도 잘 생각해보란다.

나는 이런저런 이유로 요 며칠 이 클래스에 남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제부터 조금씩 생각이 바뀌고 있다. 듣기 수업에서 전에 배웠던 구간이 반복되니까 별로 도움이 되지 않고 지루하다. 문법도 같은 교재가 반복되면 다 아는 내용이라 재미가 없을 것 같다. 그리고 처음 여기에 왔을 때 문법 레벨 3이 부담스러워서 2로 내리고 싶었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이 말렸다. 처음의 위기만 넘기면 된다고. 결국 그 말이 맞았다. 쉬운 레벨로 시작했다면 더 발전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번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이 레벨과 이 클래스에 안주한다면 친숙해서 마음은 편하겠지만 발전은 없을 것 같다. 아무래도 레벨 업을 해야겠다. '스튜어트'도 그것이 영어 실력을 높이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하면서 잘 결정했다고 한다. 교사의 리스크만 부디 잘 피해가기를 바랄 뿐이다.

'스튜어트'는 그동안 보강교사가 어디까지 진도를 나갔는지 듣더니 예상했던 대로 놀란다. 너무 느리게 나갔지? 이번에 새로 나가는 단원은 바로 내가 이곳에 와서 처음 배웠던 그 단원이다. 다만 내가 왔을 때는 연습문제 4번부터 진도를 나가서 그 앞부분은 배우지 못했다. 오늘과 내일 사이에 그 앞부분을 배우고 이 클래스를 마무리하게 되었다. 정말 적절한 타이밍으로 마무리를 잘 하게 된 것 같다.

읽기와 쓰기 수업 시간에 나는 교사에게 나의 레벨 테스트 답안지를 보여달라고 했다. 나는 점수가 몇 점인지 어떤 문제가 틀렸는지 알고 싶다고 했다. 다른 학생들도 그렇다고 하자 학생들 답안지와 시험지를 탁자에 펼치고 원하는 학생은 가져가서 확인하라고 한다. 다들 가져가서 자신이 무슨 문제를 틀렸는지 확인했다. 나는 예상보다는 잘 보았다. 신기한 것은 읽기와 쓰기 시험은 대부분 80점을 넘긴다는 것이다. 역시 문법이 유독 약한 거였어.

점심 시간이 되었다. '짜잔'하고 친구들 앞에 비빔밥을 펼쳤더니 다들 좋아한다. 외국 친구들은 신기해서 사진을 찍으며 좋아한다. 한국 친구들은 고향의 맛에 반가워하면서 좋아한다. 다들 좋아하니까 나도 좋다. 신나게 비벼서 함께 나눠 먹었다.

회화 수업은 감정 표현과 인식에 대한 단어를 배웠다. 그리고 재밌는 질문지에 답을 했다. '좌뇌와 우뇌 중 나는 어느쪽일까?' 일종의 성격테스트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중간인데 아주 약간 좌뇌, 우뇌의 경향성을 가지는 것으로 나왔다. 나도 거의 중간인데 약간 좌뇌 유형으로 나왔다. 좌뇌 유형은 단계별로 진행되는 것을 좋아하고 시간 개념이 명확하고 주변 정리를 잘 한단다. 우뇌 유형은 '왜'라는 질문을 많이 하고 '보는 것'보다는 '하는 것'을 좋아한단다. 다들 자기 성격과 맞는 것 같다면서 신기해했다. 나도 그렇다.

수업이 끝나고 도서관으로 가는데 한국 친구 '은남'이 맛있는 간식을 준다. 매번 도와주어서 고맙단다. '은남'은 교사의 말을 어떤 때는 못알아들어서 너무 힘들단다. 나는 그녀의 심정을 안다. 내가 겪은 폭풍같은 첫주, 그리고 한달의 고통을 그녀가 지금 겪고 있는 것이다. 나의 경험을 얘기했더니 믿지 않는다. 나는 블로그에 올린 나의 일기를 읽어보라고 알려주었다. 첫주는 매일 징징대는 얘기, 그 다음은 뭐가 힘들고 뭐가 어렵다는 얘기로 가득하다. 그러다가 나중에 점차 안정되면서 친구들도 사귀고 여기저기 모임도 나가고 그랬다. 그 일련의 과정은 통과의례처럼 겪어야만 하는 것이었다. 문득 레벨 업을 결정한 것이 잘 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또 다시 힘들어지겠지만 그래도 성장하려면 힘든 시기를 거쳐야 한다. 뭐든지 좋은 것이 얻으려면 댓가를 치러야 한다. 아픈만큼 성숙해지는 거라고 했던가?

도서관에서 공부하다가 집으로 왔다. 집에 오니까 일본 친구 '유카'가 식탁에서 공부를 하고 있다. 그녀에게 비빔밥을 좋아하냐고 물었더니 아주 좋아한다고 한다. 그래. 내가 지금 한 그릇 만들어줄께. 점심 도시락을 만들고도 재료가 아직 반이나 남았다. '유카'가 다음주에 떠나기 전에 요리를 한번 해주고 싶었다. 색색깔로 예쁘게 비빔밥을 만들어주니까 아주 좋아한다. 나도 한 그릇 만들어서 함께 먹었다. 그녀는 일본이나 캐나다에서 한국 식당에 몇 번 가보긴 했단다. 하지만 이렇게 누군가 집밥으로 만들어준 한국 음식은 처음 먹어본단다. 그리고 너무 맛있단다. 너를 위해 요리를 해서 나도 기쁘다. 우리가 밥을 먹는 중간에 '메기'가 왔다. 그녀도 자신의 음식을 가져와서 함께 식탁에 앉았다.

'메기'가 오늘 하루는 어땠냐고 묻는다. 나는 문법 수업의 레벨 업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메기'는 문법의 어느 부분이 특히 어렵냐고 묻는다. 나는 시제가 어렵다. 과거, 현재, 미래, 진행, 완료를 따로따로 배우면 쉽지만 이들이 한 문장에 나오면 어렵다. '유카'도 시제가 어렵다고 했다. 특히 진행, 완료가 더 어렵다. '메기'는 우리 이야기를 듣더니 그러면 한국어나 일본어에는 진행이나 완료가 없냐고 묻는다. 우리는 과거, 현재, 미래 시제만 있고 대신 보조하는 말로 진행이나 완료를 표현한다. 일본어도 마찬가지란다. 완전히 체계가 다른 언어를 배우는 거라서 더 어려운 것이다. '메기'는 유심히 듣고는 메모지를 가져와서 우리가 헛갈린다고 하는 시제에 대해 몇 가지 예를 들어 주었다. 이론은 이미 아는 것이지만 예문을 원어민으로부터 이것저것 들으니까 실전 연습이 된다. 집에 과외 선생님이 있는 것 같아서 너무 좋다.


2023.09.29. 금요일 [캐나다에서 맞이하는 추석]

문법 수업에서 2주동안 내 옆에 앉았던 일본 친구가 오늘이 마지막 날이란다. 그녀와는 문법, 회화 수업을 함께 들었다. 자주 파트너가 되어 대화를 나누었는데 차분한 성품을 가진 친구다. 그녀는 나에게 작은 선물과 편지를 주었다. 어머나. 나는 아무것도 준비하지 못했는데. 미안한 마음에 얼마전에 산 예쁜 볼펜과 교실에 있던 색종이에 편지를 쓰고 만화를 그려서 주었다. 나의 취미 중 하나는 만화그리기이다. 이 친구는 내일 귀국한다는데 건강하게 잘 귀국하기를 바란다.

동명사와 부정사를 한꺼번에 비교하는 연습문제를 풀었다. 좀 어려운 문제가 있었는데 단어의 의미를 알고 있어서 나는 비교적 쉽게 풀 수 있었다. 그러자 '스튜어트'는 나에게 그것보라며 너는 레벨4가 될 자격이 있다고 한다. 그는 자꾸 나에게 용기를 주는 말을 한다. 고맙다. 용기 내서 열심히 해볼께. 수업이 끝나고 '스튜어트', 친구들과 다함께 사진을 찍었다. '스튜어트'는 왔다갔다 하면서 자주 보겠지만 그래도 가장 정이 많이 든 수업이라서 아쉬운 마음이 가득하다.

듣기 수업은 영어 팝송을 들으면서 빈칸 메꾸기를 했다. 엘튼 존의 노래인데 늘 그렇듯이 어떤 부분은 발음이 뭉개져서 듣기가 어려웠다. 그러자 명랑한 터키 학생이 그의 발음이 이상하다고 투덜거렸다. 어린 학생들 대부분이 엘튼 존이 누군지 모른단다. 우리 나이든 사람들만 그가 누군지 알고 있었다. 역시 세대차이가 있다. 두 대 차이가 아니고 세 대 차이. 딱 한 대만 맞자. 이제 명랑쾌활한 '윌'과도 작별이다.

읽기와 쓰기 수업 시간에 나는 다음달 스케쥴을 새로 받았다. 예상했던 대로 문법, 듣기, 회화 수업이 동시에 레벨 업이 되었다. 그리고 읽기와 쓰기 수업의 교사가 바뀐다. 오! 다행이다. 읽기와 쓰기 수업의 새 교사는 '아민'이다. 학생들에게 도움이 되는 사이트와 사전을 많이 알려준 사람이다. 이로써 다음주부터는 모든 수업이 바뀐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간 느낌이다. 게다가 문법과 듣기 수업은 옆 건물이다. 읽기와 쓰기 수업, 회화 수업을 듣기 위해 건물을 이동해 와야 한다. 우기가 다가오는데 건물 이동을 해야 한다. 타이밍이 참 기가 막히다.

점심 시간에 대부분의 학생들이 오후 수업이 없어서 집으로 갔다. 특별 보충 수업을 신청한 학생들은 남아서 점심을 먹었다. 이번에는 나도 놓치지 않고 신청했다. 밥을 먹으면서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들의 주말 계획을 들으면서 나도 이번 주말에 뭘하지 싶다. '루시'가 있었다면 또 어디론가 함께 놀러갔을 것이다. '루시'가 보고 싶다.

대만 친구 '제니스'가 다운타운으로 이사를 온단다. 우리집에서도 그다지 멀지 않은 곳이다. 전에 쿠킹 클래스에 왔던 '제니스'는 앞으로 우리집에 자주 놀러오겠단다. 그런데 그녀는 겨울을 대비해서 이불을 사야하는데 침낭을 살지 이불을 살지 고민이라고 했다. 그녀는 앞으로 몇 번 더 이사를 다녀야해서 침낭이 편할 것 같은데 한번도 사용해본 적이 없단다. 여행 경험이 많은 나에게 어떠냐고 묻는다. 나는 겨울용침낭을 사면 따뜻하고 이동하기 편할거라고 추천해주었다. 대신 침낭 종류가 다양하니까 여러 가지를 비교해보고 사라고 말해주었다.

특별 보충 수업은 회화 수업인데 초급반, 중급반 2개가 개설된다. 나는 초급반으로 갔다. 이 수업에는 그동안 회화수업 보강을 했던 교사가 들어왔다. 그녀는 아주 명랑하고 풍부한 제스쳐를 사용하면서도 영어를 또박또박 발음한다. 그래서 수업을 듣기 아주 좋은 교사다. 여러 학급의 학생들 중에서 신청자를 모아놓은 것이라서 서로 잘 모르는 학생들이 모여있다. 그래서 우선 자기소개를 했다. 교사가 먼저 자기소개를 하는데 그녀는 배우란다. 연극 무대에 주로 서는데 가끔은 이렇게 보강교사로 들어오기도 한단다. 어쩐지 발음이 명료하고 제스쳐가 풍부하더라니 연극배우여서 그랬구나.

학생들도 자기소개를 했다. 그런데 어떤 학생이 브라질에서 왔고 여기서 공부하다가 대학에 가려고 하고 자기는 색맹이란다. 색맹? 다들 호기심 가득해서 이것저것 물어본다. 불편하지 않냐고 물으니까 그는 별다른 불편함은 없다고 한다. 심지어 자기가 색맹인 것을 자기와 자기 가족들은 몰랐단다. 친구들이 한번 확인해보라고 해서 검사했더니 특정 색깔을 잘 구별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았단다. 이런 얘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나누는 것이 나에게는 낯설다. 일종의 장애일 수 있는데 그것에 대해 담담하게 이야기를 나눈다. 그냥 그의 특징 중 하나일 뿐이라는 것 정도의 분위기다. 그래. 나와 조금 다른 특징을 가진 것 뿐이지. 사람마다 다양한 특징을 가지고 있음을 이해하면 된다. 그런 마음 자세가 중요한 것 같다.

오늘의 대화 주제는 남의 나라에 가서 받는 문화 충격에 대한 내용이다. 여기 캐나다에 와서 가장 충격적이었던 것, 혹은 캐나다에 와서 달라진 자신의 일상생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리고 문화 충격과 적응의 단계에 대해 배웠다. 1단계 허니문 기간으로 여행지에 오면 대부분 초반에는 다 좋아 보이고 신나게 즐긴단다. 2단계는 충격 기간으로 그동안 좋았던 것들의 이면에 실생활을 경험하면서 충격을 받는단다. 그러면서 집에 가고 싶어진단다. 3단계는 조정 기간으로 포기할 것은 포기하고 다른 문화를 배워가면서 친구를 사귄단다. 4단계는 적응 기간으로 새로운 문화를 받아들여서 생활방식이 변화하고 용기를 갖게 된단다. 마지막 5단계는 재진입 충격 기간인데 이것은 고국으로 돌아가서 자신의 원래 문화에 낯설음을 느끼게 된단다.

교사는 한국에서 2년간 살다 왔단다. 아! 그래서 한국에 대해 잘 알고 있었구나. 그런데 그녀는 캐나다에 돌아왔을 때 바로 이 5단계를 겪었단다. 한국에서는 지하철에서 떠들지 않는데 여기는 사람들이 수다를 많이 떤다. 그래서 자기네 나라임에도 문화 충격을 받았단다. 우리에게 자신이 어느 단계인지 생각해보란다. 나는 조정 단계인 것 같다. 학생들 대부분 조정 단계인 것 같다고 했는데 어떤 학생이 자기는 적응 단계라고 한다. 오! 그래? 뭐 사람마다 다르겠지. 이렇게 재밌는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까 2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이 교사와는 다음에도 만나고 싶다.

수업이 끝나고 집으로 왔다. 가방이 너무너무너무 무겁다. 새 책을 세 권이나 받았다. 책을 정리하면서 문득 노트도 다 써가서 새로 사야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서 다시 나와서 '달라라마(우리나라의 다이소 같은 곳)'에 가서 노트를 샀다. 여기 와서 벌써 세 번째 노트다. 이번 노트가 마지막이겠지? 내 생전에 이렇게 짧은 기간에 이렇게 많은 노트를 써 본적이 없는 듯하다. 참 열심히 살고 있구나. 항상 열심히는 한다. 잘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정말 열심히는 한다.

'달라라마'에서 나와서 아이폰 매장에 들러서 구경을 했다. 며칠 전에 아이폰15가 출시되는 날 이 매장 앞에 들어가려는 사람들 줄이 최소한 100미터는 되었다. 아직도 매장 안은 북적북적거린다. 여기서 사면 좀 싸다고 하는데 들어가보니까 싸긴 개뿔, 150만원 정도 한다. 물론 내가 최고사양을 찾아봐서 그럴 수도 있다.

집 근처의 카페에서 하는 '영어회화' 모임에 갔다. 오늘 4번째 참석인데 제법 익숙한 얼굴들이 있다. 처음 여기 왔을 때 친해진 캐나다 사람과 음식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사이 대만 사람, 터키 사람이 합류했다. 캐나다 사람은 한국말도 조금 할 줄 알고 나의 영어 수준을 알고 있어서 천천히 이야기해주었다. 대만 사람도 영어를 공부하는 중이라서 내가 알아들을 수 있는 수준에서 이야기를 했다. 음식 이야기는 다들 편하게 나눌 수 있는 주제다. root beer라는 음료수를 먹어보란다. 맥주가 아니라 그냥 소다수인데 캐나다 사람이 좋아하는 음료수이지만 맛이 감기약 같아서 호불호가 갈린단다. 그래? 도전해봐야지.

나중에는 취미 이야기로 넘어가서 나는 하이킹을 좋아한다고 했다. 대만 사람과 나만 하이킹을 좋아하고 나머지 사람들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단다. 좀 시간이 지나서 터키 사람과 캐나다 사람은 각각 약속이 있어서 자리를 떴다. 대만 사람과 나는 하이킹 이야기를 계속 나누었다. 우리 둘만 남아있으니까 이 모임의 주최자인 캐나다 사람 '마이클'이 와서 합류했다. 언제나 젠틀한 그는 오늘도 우리를 위해 또박또박하게 말을 해주었다. 우리의 주제가 하이킹이라니까 자신의 고향을 소개해주었다. 밴프와 캐나다의 중간쯤 되는 곳의 마을이라는데 구글맵으로 검색해보니까 정말 아름답다. 아주 큰 호수를 끼고 있고 하이킹 코스도 정말 많단다. 나는 그에게 밴쿠버 근처에서 버스로 갈 수 있는 하이킹 코스를 추천해달라고 했다. 그는 우선 나에게 어디어디를 갔었냐고 묻는다. 내가 간 곳은 린 캐년, 딥 코브, 그라우스 마운틴, 휘슬러다. 그랬더니 갈 만한 곳은 거의 다 갔다고 한다. 내가 좀 빨빨거리고 다니긴 했지. 그는 그라우스 마운틴에 갈 때 버스를 타고 갔다면 그 근처에 댐을 끼고 걸어갈 수 있는 코스가 있다면서 추천해 주었다. 다운타운에서 버스를 한번만 타고 갈 수 있는 곳이다. 좋다. 가까우면서도 쉽게 걸을 수 있는 곳이다. 이번 주말에 가봐야겠다.

즐겁게 모임을 마치고 집에 와서 샤워를 하고 나와서 이제부터 요리를 해야지 하는데 휴대폰의 알림이 뜬다. 내가 씻는 사이에 인스타그램으로 앞집에 사는 대만친구들이 자기 집에 놀러오라고 메시지도 보내고 전화까지 했었다. 생각해보니까 앞집에 사는 한국 친구가 추석이라 한국음식을 해준다고 놀러오라고 했었다. 내가 이것저것 음식을 해주었던 것에 대해 보답하고 싶다고 했다. 그 사이에 내가 까먹고 있었다. 얼른 친구들에게 지금 간다고 메시지를 보내고 슬리퍼를 끌고 편하게 앞집에 갔다. 내가 딱 들어서니까 그들은 마침 상을 차리고 있었다. 그러면서 어쩌면 이렇게 타이밍을 잘 맞추냐고 한다. 그래. 내가 먹을 복이 좀 많아.

한국 친구가 내가 엄청 좋아하는 동그랑땡을 만들었다. 와! 너무 좋다. 그리고 대만 자매들은 송편과 대만 케잌을 사왔다. 나는 얼른 집에 가서 맥주를 가져와서 보답했다. 한국은 어제 이미 추석이었고 캐나다는 시차가 있어서 오늘이 추석이다. 보름달도 구경하고 맛있는 음식도 먹으니까 제법 명절 분위기가 난다. 캐나다에서 맞이하는 추석이라는 것을 이제야 실감한다.

대만 자매들은 우리 집에 사는 미국 친구 '메기'과 영어 실전 연습을 하고 싶다면서 주말에 우리 집에 와도 되겠냐고 묻는다. 내가 마침 내일 '메기'의 메이크업 모델을 해주기로 했으니까 저녁 6시에 놀러오라고 했다. 얼마 전에 '메기'가 식탁에 쪽지를 붙여 놓았다. 자신의 학교에서 메이크업 모델을 구해서 실전 연습을 하고 사진을 찍어서 제출하라고 했단다. 그래서 내가 해주겠다고 답을 했다. 그녀와 시간을 맞추어서 내일 저녁 6시에 메이크업을 하기로 했다. 대만 자매들에게 그 시간에 자연스럽게 와서 구경하면서 대화를 나누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그들은 매주 토요일에 우리집에 와서 '메기'와 대화를 나누고 싶단다. 그러면 내일 와서 부탁해보라고 했다. 그들은 미국 친구와 사는 나를 부러워한다. 매일 대화할 수 있어서 좋겠단다. 내가 잘 알아들으면 더 좋겠지만 아직은 그정도가 아니라 어려움이 많다. 하지만 노력 중이라고 하니까 그들은 매일 노력하는게 중요하다고 했다. 맞다. 그게 중요하지. 영어 실력은 한번에 느는 것이 아니라 매일매일 꾸준히 해서 익숙해지는 것이 중요하지. 자아, 그러면 내일도 열심히 영어로 떠들어 보자.


2023.09.30. 토요일 [메이크업 모델]

모처럼 늦잠을 잘 수 있는 날인데 이런 날은 꼭 눈이 일찍 떠진다. 참 신기하다. 좀더 침대에서 뒹굴거리고 싶었으나 정신이 너무 말똥말똥해져서 그냥 일어났다. 오늘 오전에는 집에서 버스로 30분 정도 걸리는 예리코 해변으로부터 이어지는 해안가 산책로를 걸어가볼 예정이다. 밴쿠버 다운타운의 남서쪽에 위치한 해변인데 거기서부터 쭈욱 해안가를 따라 산책길이 형성되어 있다. 아침을 먹고 슬슬 출발해서 UBC 대학까지 걸었다. 오랜만에 길게 걸었더니 너무나 상쾌하다. 역시 나는 빨빨거리고 돌아다녀야 에너지를 얻는다.

집에 와서 간단히 점심을 먹고 '한영언어교환' 모임에 나갔다. 오늘도 엄청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수요일 모임보다 토요일 모임에 사람이 더 많다. 수요일 모임을 '작은 언어교환' 모임, 토요일 모임을 '큰 언어교환' 모임이라고 부르는 이유를 알겠다. 아는 사람들이 많아져서 너무 편하다. 베트남 사람과 여러번 같은 테이블에 앉게 되었다. 그는 자신의 형제와 함께 여기에 와서 영어공부를 하고 있다. 이들 형제가 비슷하게 생겨서 처음에는 나도 많이 헛갈렸다. 하지만 조금만 대화를 나눠보면 구별이 된다. 형은 수줍음이 많고 동생은 좀더 명랑하다. 오늘은 형과 여러번 마주쳤다. 이젠 좀 친숙해져서 우리는 농담도 했다. 여러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다보니까 어느새 두 시간이 훌쩍 지났다.

집으로 돌아와서 씻고 '메기'의 메이크업을 받을 준비를 했다. '메기'에게 내 친구가 와서 메이크업 과정을 구경해도 되는지 물었다. 그녀는 좋다고 했다. 그래서 앞집의 대만 자매들이 와서 구경을 했다. '메기'의 어마무시한 장비를 보고 대만 친구들이 놀랬다. 정말 많은 장비들이 동원되었다. 피부톤을 조절하는 기초 메이크업을 하고 이어서 눈 화장을 했다. '메기'는 나에게 컬러풀한 화장을 원하는지, 내츄럴한 화장을 원하는지 물었다. 나는 내츄럴이 좋다고 했다. 눈 화장에 이어서 입술까지 해서 메이크업이 완성되었다. 갈색과 검은 색으로 눈 주위를 강조하고 입술은 갈색으로 자연스러운 톤을 살렸다. 거울을 보니까 낯설지만 멋진 내 모습이 보인다. 과하지 않은 화장인데 이목구비가 뚜렷해진 느낌이다. 나는 이대로 드레스만 입고 나가면 파티에 가도 되겠다고 했다.

메이크업이 진행되는 사이에 대만 친구가 자기는 내츄럴보다는 밝은 화장이 좋다고 했다. 그랬더니 '메기'가 블링블링한 화장품 세트를 보여주었다. 대만 친구가 부러워하니까 '메기'가 그 중 대만친구가 좋아하는 핑크로 블링블링한 눈화장 샘플을 만들어 선물로 주었다. 대만 친구는 매주 토요일 이 시간에 여기 와도 되냐고 물었다. '메기'는 친구랑 약속이 생기지만 않으면 대체로 집에 있으니까 그러자고 했다. 나도 토요일에는 MeetUp 모임 외에는 별다른 약속이 없다. 그래서 우리는 매주 토요일 저녁 6시에 모여서 이야기도 나누고 같이 놀기로 했다. 오예! 이렇게 집에서 하는 영어 수다 모임이 결성되었다.

메이크업 결과에 대한 사진을 찍고 나서 '메기'와 함께 저녁을 먹었다. 이번에는 '메기'의 알레르기에 대해 좀더 많이 알게 되었다. 그녀는 밀과 보리에 대한 알레르기가 있는데 시중에 파는 것들에는 밀과 보리가 들어가 있어서 자신은 먹지 못하는 것이 많단다. 그래서 일반적인 빵이나 과자를 먹을 수 없다. 빵가루나 국수 등은 밀가루가 들어가지 않은 제품을 구매해서 먹는단다. 나는 한국식 카레를 만들어 주려고 했는데 거기에 밀가루가 들어가 있어서 안된다. 그녀는 자신만의 카레가루를 보여주었다. 고추장에도 밀가루가 들어가서 먹을 수 없다. 내가 '메기'를 위해 해줄 수 있는 요리가 거의 없다. 아쉽다. 아니, 좀더 생각해 봐야겠다. 밀, 보리가 들어가지 않은 한국 음식을 생각해보자.


2023.10.01. 일요일 [새로운 출발]

아침에 알람울릴 시간에 맞추어 저절로 눈이 떠지는 이 신통방통한 재주? 평일에는 그토록 늦잠을 자고 싶건만 왜 휴일에는 알람없이 제시간에 일어나는 것일까? 오늘은 '마이클'이 소개해 준 하이킹 코스를 걸어볼 생각이다. 밴쿠버 다운타운에서 대중교통으로 갈 수 있는 클리블랜드 댐과 근처의 하이킹 코스다. 어제 '메기'가 만들어 준 간식과 등산스틱을 챙겨서 길을 나섰다. 내가 하이킹을 간다니까 '메기'가 쿠키를 만들어 주었다. 밀가루가 들어가지 않은 건강 쿠키다.

버스를 한번 갈아타고 약 1시간 정도 걸려 댐 근처에 도착했다. 댐은 그냥 우리나라의 청평댐이나 팔당댐 정도, 아니 그보다 규모가 더 작아보인다. 여기는 밴쿠버의 상수원 보호구역인 셈이다. 이 지역의 하이킹 코스가 아주 다양한데 나는 그 중에서 '마이클'이 추천해준 쉬운 코스를 걸었다. 아주 울창한 숲길을 걸었고 댐 아래 전망대도 들렀다. 전망대에서는 예쁜 무지개도 보았다. 산길을 걷다가 다시 마을로 나와서 버스를 타고 시내로 돌아왔다.

집에 와서 씻고 잠시 쉬다가 요리를 했다. 오늘의 요리는 카레다. 우리 식구들이 떠날 때 주고 간 대용량 카레가루가 많이 있다. 그래서 카레를 잔뜩 끓였다. 앞집의 친구들과 나눠 먹으려고 넉넉하게 만들었다. 내가 카레를 만드는 동안 '메기'가 옆에 와서 사과를 깎아 주면서 수다를 떨었다. '메기'는 틱장애가 있어서 자주 딸꾹질이 나는데 민망함을 감추기 위해 고양이 소리를 낸다. 나는 그때마다 '메기'가 민망하지 않도록 고양이는 귀엽다고 해주었다. 우리는 서로 웃으면서 고양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 조카가 동물을 키우고 싶었지만 매제에게 털 알러지가 있어서 못 키운다고 했다. 그랬더니 '메기'가 뭔가 검색해서 보여준다. 저자극성 고양이나 개가 있단다. 그래서 털에 자극이 강한 알러지가 있는 사람도 이런 종류의 개나 고양이는 키울 수 있단다. 오, 이런 것도 있어? 참 신기하다. 외국 사람들은 개나 고양이를 참 좋아한다. '메기'도 개와 고양이를 모두 키우고 있었는데 2주전에 자신의 개가 죽었단다. 자기가 3살 때부터 키운 개인데 이제 너무 늙어서 죽었단다. 개 치고는 꽤 오래 산 것이다. 나는 너의 개는 너와 함께 살아서 아주 행복했을 거라고 위로해주었다.

이렇게 한 주가 지났다. 이번 주도 정말 많은 일들이 있었구나. '루시'와 작별했고 영시로 주목도 받았고 영어 글쓰기 모임에도 참여했다. 앞집의 친구들과 추석 달맞이도 했고 '메기'와 더 많이 친해졌다. 무엇보다도 세 과목이나 레벨 업을 해서 다음 주부터는 완전히 새로운 출발을 하게 된다. 이렇게 또 하나의 봉우리를 넘어가고 있다. 앞으로는 과연 어떤 일들이 펼쳐질까? 기대와 설레임, 걱정과 긴장이 한꺼번에 몰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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